한국은 외국인들에게 어떤 모습일까. 사실 한국에 살면서 한국인이 외국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궁금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나는 이런 저런 이유로 외국을 비교적 다양하게 가 본 사람가운데 한 명이다. 관광이 아닌 주로 일때문에 해외에 갔기때문에 일이 없으면 숙소에서 그 나라 뉴스를 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대부분의 나라의 뉴스에는 한국의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었다. 노사분규로 인한 공권력 진입이나 요즘은 거의 없지만 대학가의 시위장면 그리고 그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들의 리얼한 광경, 그리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무기 개발 소식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런 뉴스만 보면 한국은 참으로 여행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구나 판단하게 한다. 한국인들의 자랑인 K-팝 등 한류에 관한 뉴스는 일부 교양프로나 연예 프로그램에 조금 소개될 뿐이었다. 내가 전세계를 다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 한류에 대한 뉴스가 전세계적으로 어떻게 소개됐는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다. 하여튼 내가 주로 갔던 유럽이나 동남아시아 등지에는 그러했다.
하지만 한국은 일단 여행온 외국인들에게는 또 다른 세상을 제공하고 있다.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공항 시스템 그리고 공항에서 도심을 진입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깔끔한 풍경들, 세계의 탑클래스라는 지하철 모습들, 밤 늦게 돌아다녀도 볼 거리 먹을 거리가 풍부한 나라, 여성들 혼자 밤길을 다녀도 절대 위험하지 않은 나라, 휴대전화나 가방을 카페나 음식점에 두고 잠시 자리를 비워도 그대로 존재하는 나라 등등 한국인이 다시 봐도 괜찮을 광경이 펼쳐지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특히 치안과 안전문제에서는 그래도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오랫시간동안 독재정치의 통행금지로 인해 밤거리 문화가 안정됐으며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자 지금도 준 전시상태인 상황이라 무기같은 흉기에 특히 민감한 것이 한국의 상황아니던가. 일부러 만들려고 해서가 아닌 오랜시간동안 쌓여져 왔던 이런 저런 상황이 축척된 모습이 안전과 치안의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들어 이런 안전과 치안 강국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백만이상의 시민이 모였던 광화문 촛불 시위에도 단 한건의 안전사고가 없었던 나라에서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 이때도 다른 나라에서는 연일 대서특필되었다. 뉴스에서는 톱시간대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런 참사의 기억이 사라질 쯤 다시 요상한 사건들이 터지기 시작한다. 이른바 묻지마 폭행사건이다. 잇단 흉기 난동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서울 신림역 칼부림 사건에서부터 경기도 성남시 서현역 사건 등 백주 대낮 또는 퇴근시간대 번화가에서 무차별 흉기 난동이 벌어진 것이다.
외신도 크게 다루기 시작했다. 잇단 칼부림과 차량 난동 사건은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며 이 사건이 전국적인 우려와 공포를 불어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외신들은 한국이 치안 문제에서는 그래도 상당히 앞서가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그런 분위기가 아닌 것같다는 논조를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 크고 작은 안전사고는 일어났지만 이렇게 묻지마식 흉기난동 사건은 상당히 이례적인 사건이라고 말하며 한국인 조차도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타국의 방송에서도 한국의 묻지마 폭행사건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특히 일본과 중국은 더하다.
이런 상황속에 2023년 제 25회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대회는 그야말로 혼란스럽다. 상상을 초월하는 무더위도 무더위지만 대회운영도 정말 매끄럽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무더위는 세계적인 현상으로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그런 무더위에 대처하는 시스템이 너무 형편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세계의 청소년들이 여기저기서 쓰러지는데도 그냥 미리 정해진 수순대로 대회를 진행할 뿐이었다.영국과 미국 참가자들은 장소를 떠나버렸고 타국 참가자들도 하는 수없이 버티는 실정이다. 더위와 환경문제 외에도 위생 보건 그리고 음식마저 불량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이름이 너무도 무색한 수준이었다.야영장 내 여자 사워실을 훔쳐보던 외국인까지 발각되고 그런 상황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논란으로 조직위에 많은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는 뉴스도 있다. 한국에 어린 자녀들을 보낸 외국 부모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남북이 대치하고 언제 전쟁이 터질질 모르는 상황이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 K 팝의 나라 ...그래도 치안과 안전면에서는 괜찮다는 생각에 어린 아이들을 보냈지만 한국 조직위는 전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총리까지 나섰지만 그 분한 목소리를 잠재우지 못하는 모습이다. 외국 언론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한국의 잼버리 현황이 그대로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전세계에 자랑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온갖 부끄러운 장면만 노출시켰다는 것이 너무 참혹스럽다. 이제는 하다못해 책임자들은 남의 탓을 하기 시작한다. 세계인은 그런 남의 탓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냥 나타난 현상이 모든 것이다.
한국은 치안과 안전면에서 괜찮은 나라인가에 대해 정말 심각하게 스스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그동안 외국에 비쳐진 안전한 사회분위기가 신기루였을까 하는 자괴감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이 안전해서 좋아요 하는 그 말에 마음 한구석이 안도하기도 했는데 그냥 빈말일 뿐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얼마전 방문한 프랑스 프로축구선수 네이마르가 일본인보다 한국인은 배려심이 강하고 타인에게 피곤함을 주지 않는 국민성이 참 좋다는 그 말이 채 귓가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이런 일들이 동시다발로 터지니 정말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한 나라의 좋은 이미지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동안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 바로 좋은 이미지이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가 붕괴되는 것은 정말 하루 아침이다. 동시다발로 터지는 부끄러운 작태가 좋은 이미지를 하루 아침에 사라지게 하고 만다. 그러면 그 괜찮음이 사라진 자리에 흉하고 더러운 이미지만 남는 것이다. 해외의 언론들은 앞으로 틈만 있으면 이런 류의 보도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외국인들에게도 한국의 이미지가 좋게 남을 리 없다. 환상의 대회가 극혐 내지는 공포의 대회로 남게됐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세계의 청소년들은 누구인가. 153개국의 4만2천명이 누구인가. 앞으로 이 세계를 어깨에 지고 함께 나아갈 그런 존재들 아닌가. 하지만 그들에게 한국은 정말 대책이 없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참담하다. 얼마남지 않은 엑스포 도시 결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안그래도 사우디와 이탈리아에 비해 뒤쳐졌다고 알려졌는데 요즘 동시다발로 터지는 이런 뉴스가 더욱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마음이 참으로 편하지 않다.
2023년 8월 6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