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용산에서 1984년 7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중앙대 부속 용산병원에서 근무를 하였으니 27년간이다.
그러니 부근의 괜찮은 식당이나 가게들은 좀 안다.
그러다보니 단골 식당도 생기고, 단골 구두닦이, 한번씩 복권을 사는 단골 구멍가게 등.
물론 안면이 있는 은행 직원까지도.
한번은 인공신장실에서 정기적으로 혈액투석을 받는 환자가 사온 과자 한통.
어릴 적에 변두리에 살던 부모님이 대구 시내에서 영화구경을 하고 밤늦게 기다리는 아이들한테 사온 과자.
그때는 그냥 신문지로 만든 봉투에 몇가지 갓구운 과자를 가득 사와서 먹곤 하였다.
허나 좋은 세월 덕분에 종이 상자에, 포장도, 봉투도 근사하게 되었으나
맛은 바로 그 과자이었다.
며칠전 용산역에 KTX표도 사고, 전자상가에 몇가지 살 물건이 있어
아예 지하철 삼각지 역에 내려서 크게 나붓지 않은 간판땜에
없어진 줄 알고 전화롤 확인까지 하고 찾아 가서 한세트를 사왔다.
좁은 가게안에는 연신 두 젊은이가 과자를 구워내고 있었다.
작년 9월 일본 사이타마현의 가와코에에 학회 참석 차 갔을 때
우정 과자거리인 오까시조(菓子町)을 찾아 사탕을 비롯한 여러 가지 과자를 사온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 사 온 소위 센베이나 여기에서 바싹하게 잘구운 과자는 그 맛이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하나 흠을 구태어 잡는다면 깨물면 과자가 불규칙하게 떨어져 나가니까
아예 무얼 깔고 먹는지 식탁에서 먹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나는 과자를 먹으며 떨어져 나간 부스러기가 컴퓨터 책상를 어지렵히고 있다.
제발 이런 가게가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가게에 대한 소개 글 중
'지역정보포털 향토자원' 이 가장 정확하여 인용하여 보았다.
**** 추억의 과자 ****
먹을 것이 없었던 시절. 엿을 먹기 위해 중고물품이나 신었던 신과 바꾸어 먹던 경험들은 어르신들의 추억 속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 시절에 과자도 귀했다. 요즘 과자하면 어린이들의 간식 정도로 구멍가게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주전부리할 때의 기대감을 가질 수 없었으나, 옛 과자는 다르다. 옛 과자의 추억 속에는 모든 집안 어른들과 함께 모여서 먹는 온 가족의 먹거리가 되었다.
요즘의 과자들은 가격대로 판다. 과자의 가치는 가격대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과자를 근(斤)으로 계산한다. 한 근에 얼마 하는 과자가게가 있다. 김용안 과자점의 과자들이다. 고기를 가늠하듯 과자를 무게로 가늠한다. 대체로 손님들은 두 근 정도 구입한다고 한다.
7평 남짓의 작은 공간에서 전 국민이 아는 과자점이 있다. 기계 한 대로 모든 이가 먹을 수 있는 과자를 만들어 세계의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시는 사장님은 오사카에서 열린 전시회에도 출품하시기도 하셨으며. 요즘은 외국 사람들도 찾으신다고 한다.
68년에 이 과자점은 시작되었다. 과자점을 하실 당시. 정읍이 고향이신 사장님은 집안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사셨다고 한다. 서울로 상경하셔서 친척 형님께 과자기술을 배워서 과자를 만드셨고, 동생분이 운영을 하셨다고 한다. 처음 과자점을 하셨을 당시 이 골목에는 4군데 정도 가게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과자점이 되었다. 하지만, 운영하시면서 고비도 있었다. 1985년에는 장사가 잘 안 되서 과자점 일과 아르바이트로 다른 일을 하시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인건비가 오르긴 했지만 경제가 좋아져서 과자를 찾으시는 분들도 많고 홍보가 잘되어 먼 지역에서 찾아오시는 손님들도 있다고 한다. 또한, 백화점과 마트에서 과자를 파는 데가 많아졌는데, 처음에는 서로 경쟁하는 사이였으나 지금은 마트나 백화점이 고객으로 수량을 다 못 되어줄 정도로 호응이 크다고 한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전자상거래가 호황일 때, 과자점에서도 www.김용안.com이라는 주소로 전자상거래를 하기도 했지만, 지금 홈페이지 운영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과자가 많이 팔릴 는 명절라고 하며, 과자의 품목은 13가지 정도이고, 모양과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밤과자, 부채과자, 들깨과자, 쑥전병, 〇〇전병으로 불리고 있으며, 사장님은 쉽게 모양에 따라 사각, 부채, 네모, 빗살무늬, 〇〇과자로 부르신다고 한다.
과자점에 전수(傳受) 받기 위해 여러 사람이 찾아오기도 했다고 하며, 과자를 만드는 과정이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것에 대해 많이들 놀란다고 한다. 지금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과자를 만들고 있었다.
일본에 센베이(せんべい)가 있다. 전병(煎餠)이라고도 불리는 과자다. 일본의 기술을 아직은 따라가기 힘들다고 사장님은 말씀하신다. 일본보다 나은 과자를 만드는 게 사장님의 바람이라고 한다. 그것은 그곳을 방문한 모든 이들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고, 취재를 나간 우리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왼쪽 아래 첫번째 과자는 '김용안'이라고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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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에게 정서가 담겨있는 식품이 하나 둘이겠는가마는 옛날에는 웬만한 동네에는 반드시 이런 과자점이 한 둘 있어 어린 시절 궁금하던 입을 호강시키던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가 무엇이라도 하나 사오시지나 않을까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시절 호주머니는 가벼웠으나 그래도 맨손으로 들어가기가 싫어 한 봉다리씩 사가지고 들어가면 꿀맛인 양 먹던 그런 때가 우리에게 있었다.
요즘은 이런 것들까지 대형과자점에서 취급하니 영세상인들이 당할 재주가 없어 자꾸만 사라져 간다. 몇십년 씩 경영하던 동네 빵집들이 하나둘 씩 사라져 가고 있으니 이것도 인류문화의 진화의 한 단면인가?
그 과자, 나도 어렸을적에는 맛있게 먹었었지요. 요즘은 더 다양한 과자가 나온탓도 있고, 나는, 당 조절에 신경써야 하니까 멀어지게 되었네요. 추억의 과자입니다
혈당에 너무 신경쓰지 말고 잘 먹고 약 먹지 뭐.
그쪽 갈일 있으면 한번 먹어 보고 싶네요. 가게가 계속 잘되서 꼭 일본을 능가하길 바랍니다.
부산 피난시절 먹던 "센베이와 다마내기 손주"(그러고 보니 모두 일본 말이네" 생각이 나네. 모두 일제의 잔재였는데 그때는 왜 그리도 맛있었는지...
센베이라고들 했지요.. 난 요즘도 자주 먹는데 제과점에서 사기도 하고 백화점에서 살때도 있지만 그래도 어려서 부터의 맛을 간직하고 있는것은 약간의 불량식품성이 있는 동네 시장터에서 사는거가 진짜라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그런거 사먹고도 아직 멀쩡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