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1881~1973)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이자 세계사에 남을 미술계의
거장이다. 피카소가 위대한 점은 자유분방했던 창작혼에 있다.
피카소는 큐비즘,신고전주의, 초현실주의, 상징주의, 표현주의, 추상주의 등 많은 시대적 양식들
을 선도했다. 살아생전 그가 남긴 작품만 그림 1만3500여점, 조각품 7백여점에 이른다.
이런 왕성한 작품활동과 다양한 양식 추구의 이면에는 그의 끊임없는 바람끼가 긍정적으로 작
용했다. 여자 친구가 바뀌면 그의 양식도 변했다.그의 여성편력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공인된 피카소의 여인은 7명이었지만 짧게 그의 몸을 거친 여인은 셀수없이 많아 수백명에 이
른다고 알려졌다.그는 절륜한 정력의 소유자로 특히 연하의 여성들을 좋아했다. 제법 나이가 든
40대이후에도 10대, 20대의 여성들과 즐겼다.
파리로 와 가난하고 우울했던 피카소는 매춘부,거지등 가난한 이웃들의 애환을 청색으로 상징
화해 표현했다. 이 ‘청색시대’(1901~1904년)의 대표작이 '솔레르씨의 가족'이다.양복점주인의
가족을 정감있게 그렸다.
그러던중 피카소는 동갑내기 유부녀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만나 동거하면서 밝은 ‘장미시대’로
화풍이 바뀐다.그녀는 초기 입체파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그녀와는 7년 동안 함께했다.
두 번째 연인 에바 구엘도 피카소의 작품에 많이 등장했지만 주로 기타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로
표현됐다.
피카소가 처음으로 정식 결혼한 부인인 올가 코클로바는 그의 세 번째 연인이었다.러시아 발레
단의 무용수 출신이다.그녀의 영향으로 피카소의 그림도 프랑스의 고전주의 풍으로 바뀌게 된
다.‘우물가의 세 여인’이 그당시 작품이다.
마리 테레즈는 올가와의 결혼 생활 중에 만나 10년이나 불륜을 지속했던 숨겨진 여인이었다.
1926년 처음 만나 감춰진 얼굴, 숨은 기호로 그림속에 등장하다가 후에 얼굴전체가 그려진다.
1937년 피카소는 마리 테레즈를 떠난다. 이에 앞서 그린 그림 ‘창문 앞에 앉아있는 여인’에는 젊
은 마리 테레즈가 백발 할머니로 묘사됐다.마치 이별을 암시하는 듯...
피카소는 초현실주의 여류 사진작가 도라 마르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피카소 나이 54세, 도
라는 29세였다.
1937년 스페인내전을 계기로 반전활동을 벌이던 피카소는 그녀를 모델로 전쟁의 잔혹함을 표현한
‘우는 여인’을 그렸다. ‘게르니카’는 ‘반전 예술’의 대표작으로 고국 스페인에서 내전 중에 일어난 비
극적인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그러나 피카소는 마리와도 관계를 정리하지 않았고 올가와도 계속 법적 부부인 상태였다. 도라는
이에 많은 상처를 받아 나중에 정신착란증으로 정신병원에서 죽게 된다. 이때를 피카소의 '게르니카
시대'라고 한다.
63세의 피카소는 22세의 여류화가 프랑스와 질로와 다시 사랑에 빠진다.그럼에도 피카소는 올가,
마리, 도라와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지 않았다.당찬 성격의 질로는 10년의 관계가 이어지던 어느
날 자신의 동생인 17세의 주느비에브와 피카소가 바람을 피운 것을 알자 환멸을 느끼고 이별을 선
포한다.나중에 피카소가 죽자 소송을 걸어서 재산 일부를 분할 받기도 했다.
피카소는 질로와 헤어진뒤 72세때 35세의 재클린 로크와 1961년 두 번째 결혼을 한다.재클린은
피카소가 사망할 때까지 20년간 여생을 함께 보낸다.그녀는 피카소를 주인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피카소가 죽은뒤 복잡한 재산, 친자 소송 등의 문제를 사심없이 처리했다. 피카소와 관련된 여인
들과 자식들에게 골고루 유산을 분배해 주었다. 피카소 사망 13년 뒤 피카소의 생일날 무덤 앞에
서 권총자살로 그를 따라 갔다.
피카소의 그림에 나오는 연인들은 하나같이 눈 코 입이 정상이 아니다. 이는 입체주의(큐비즘)의
서막을 연 천재 예술가의 연인이 걸어야 할 숙명이었다. 피카소는 26세이던 1907년 다섯 명의 누
드 여인이 나오는 그림을 그렸다.이 그림속에는 그의 첫번째 연인 페르낭드 올리비에가 등장한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소장한 그 유명한 걸작 ‘아비뇽의 처녀들’이다. 인물의 이목구비는 변형
되고 몸통은 뒤틀려 있는 입체주의의 첫 그림이다.
원근법이 단일한 시점에서의 화면을 구현한 것과 달리 입체주의는 한 화폭에 여러 방향에서 본
모습을 다 담아낸다. 새로운 창작을 위해 고민했던 피카소는 “나는 보는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그린다”고 선언했다.이후로도 평생 이같은 도전은 계속됐다.
‘시계를 찬 여인’은 마리 테레즈를 그렸지만 살결은 보라색으로, 인체는 이리저리 해체된 기괴한
모습이다.피카소의 대표적 걸작으로 흔히들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등을 연상하지만 ‘무용’도
대단한 작품이다. 1925년에 그린 ‘무용’은 혼란스러운 꿈의 세계를 생생한 현실과 결합시켜 인체를
해부학적으로 분해해 당시 파리 화단을 깜짝 놀라게 했다.
피카소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수십 장의 밑그림을 그리는 완벽함을 기했다.밑그림 자체
가 곧 완성품으로 평가된다.
그는 90이 넘어서까지 담배를 즐겼다.이 양반을 봐서는 담배가 폐암의 주원인이라는 얘기도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오분전님이나 다다닥님등 얘연가들이 피카소를 보고 담배를 끊지 않으려할
까 우려된다.
아무튼 피카소는 담배 피우는 남자도 많이 그렸다.“이제야말로 늙었다. 그러나 담배 맛은 20대 시절
그대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피카소의 연인들은 그의 삶과 작품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강렬하고 열정적인 다양한 방식으로
그의 예술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대표작이자 미술사에 한획을 그은 걸작들은 모두 여인에게
영감을 받아 완성된 작품들이다.
Elton John은 1947년 영국 출생으로 팝가수겸 작곡가다.9세 때 런던의 왕립 음악원에 입학했으나
졸업을 앞두고 학교를 떠난다.그가 관심을 가졌던 음악은 클래식 쪽 보다 리듬 앤 블루스였다.
1961년 밴드 블루솔로지(Bluesology)를 결성했다.1968년 밴드를 나와 이름을 엘튼 존으로 바꾸고
데뷔 8년만에 11장의 앨범을 발표한다. 이중 7장의 앨범과 6곡의 싱글이 1위에 오르는 등 전성기
를 구가했다.그래미상 5회 아카데미상,골든글로브상,그래미레전드상 공연예술평생공로상,폴라음악
상등 수없이 많은 상을 탔다.
1998년 음악과 자선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왕실로부터 기사작위를 받기도 했다. 1억7천만장의 음반
이 팔린것으로 집계됐다.
Yellow Brick Road는 1973년 발매된 동명의 앨범에 들어있다.록 스타 이지만, 사업가에게
놀아날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이 도시에서 시골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노래했다.
대표곡으론 We all fall in love sometimes,Sorry Seems to Bethe Hardest Word,Daniel,Tonight등
이 있다.
첫댓글 피카소
완전 바람둥이 였군요
재능에 여인들이 모여들고 ~
그렇습니다.
바람을 피면서 좋은 걸작들은 많이 남겼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늦은 밤이네요.멋진 꿈 꾸세요...
피카소의 그림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피카소의 여인 편력?은 더 이해가 어렵네요
그래도~여인들은 피카소를 사랑한 것 같네요
특히~마지막 여인 두번째 부인은 더더욱........
암튼~좋아하는 여인들과 담배와 그림과 함께 살 수 있었으니....
어찌보면~최고의 행복한 삶을 누렸다고도 생각됩니다
피카소가 여인들에 인기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가서 작업을 걸면 여인들이 어렵지 않게 넘어오는 것 같습니다.
특히 유부녀가 넘어오는 거 보면 신기해요..
그림은 2차원 평면이라 뒷쪽이나 옆같은 곳은 표현하기 어려운데
사실적인 표현을 제쳐놓고 같은 평면에 뒷통수나 발바닥 같은 것을 함께 그려넣는다는
게 입체파의 개념이라보 보시면 됩니다.보이는대로 그리지 않고 생각하는대로 그린다는
피카소의 말이 바로 피카소의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순정파 예술인은 없소?
이러면 예술 하기 싫어 ㅎ
호태님 같은 순정파 예술인도 많습니다.
주제가 바람둥이 예술가라서 그러니 혜량하여 주십시요....
순정파 매력 없어요 ㅎ
@큰언니1 큰언니1님은 나쁜남자 스타일이신 건가요?
@비온뒤 그냥 매력만 이야기
한겁니다 ㅎ
@큰언니1 그러시군요...
져녁 맛잇게 드시고
좋은 시간보내세요...
여성에게서 영감을 받았네요~
여성을 예술로 승화~삶이 즐거워 장수도 하시고~^^
엘톤존 노래까지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나이로 93세까지 살았으니 장수한 셈입니다.
수없이 바람을 피고 담배도 끊지 않았는데 이정도 살았다는 것은
건강이나 정력도 보통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술적 재능에 신체적 강건함과 장수까지 누렸으니 복받은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편한 밤 뵈세요..
영감을 연애로 필 받는가 봅니다.
그런 피카소를 사랑 할 수 밖에 없었던 여인들이 딱하네요.
그럼에도
불 나방처러 불 속을
뛰어 들었겠지요..
피카소가 워낙 매력이 많은 사람이었나 봅니다.
헤어진뒤에도 대다수 여인들이 피카소를 원망하지 않고
이해했다고 하니 불가사의한 사람이긴 합니다.
헤어져도 칼로 물베듯이 단칼에 자르지 않고 상당기간
우정내지 연인관계가 이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범접할 수 없었던 벽을 깨고 읽어봅니다.
피카소의 여인들은 어떤 경지가 있었나봅니다.
전 단칼에 베버리는 못난 성격인지라...
그럴 수 있었던것 또한 피카소의 남다름일거란
생각도 듭니다.
다 상대적이라 모호한 합리화를 장착합니다.
팝에도 접근을 해봅니다.
아는만큼 들린다는 전설을 믿습니다.
봄날이 따스했음 좋겠습니다~
서양사람들의 연애관과 한국사람들의 연애관이 차이가 좀 나는 것 같습니다.
배우자에 불륜에 대해 다 그런건 아니지만 서양사람들이 너그러운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몽연님을 존경합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좋게 표현 해 바람둥이지 가정파괴범입니다.
.
유부녀와? 그 남편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함니다.칼에 찔려죽거나 맞아 죽어야 하는데 다 그림으로 매수해서(살아서 거부된 유일한 화가...)넘어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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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여인들 곧 딴 남자와 바람펴 파국을...피카소 자녀 중 3인이 권총자살 했습니다.
.
요새 그랬다면 미투로 고발당해 유치장에 몇십년 썩었겠지요.ㅎㅎㅎ
.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부인도 남편이 있는데 중학생 제자인 마크롱과 성인이 된후 바람펴 재혼한 여인...그 남편 홧병으로 몇년후에 죽었습니다.
.
.예술을 빙자해 가정을 파괴하는 피카소는 나쁜x입니다.ㅋㅋㅋ
음유시인님이 평상시보다 격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피카소가 많이 부러우셨던 것 같습니다.ㅎㅎ
@비온뒤 그런x은 일찍 갔어야 하는데 그림이 잘팔려
오랫동안 장수하며 호의호식...팔자 좋은x입니다.ㅎㅎㅎ 전해진 이야기는
다 미화된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