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에서 물을 두병 받아서 배낭에 짊어지고 새벽 눈길을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걸어서 집으로 온다. 걸으면서 2,3일간 예사로 생각하다가 큰 코 다친 일을 되새겨 본다.
요즘 날씨가 영하 18도까지 내려가기도 하며 연일 추위가 계속되니 아파트 안내방송에서 수시로 ' 기온이 많이 떨어지고 있으니 각 가정에서는 세탁기 사용을 자제 해 주시고 온수 수도꼭지를 조금씩 물을 흘려보내 수도관이 얼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 바랍니다 ' 하고 방송을 내 보낸다. 나는 속으로 시끄럽게 왜 방송을 계속 하지 하면서 우리집과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해 버린다. 그런데 사실은 3년전 겨울에 온수관이 얼어버려 조그만 난로를 갖다대고 헤어드라이기로 관에다 뜨거운 공기를 쬐고 야단법석을 떨어 겨우 이틀인가 사흘만에 온수관을 녹인 일이 있는데 그 일을 까마득하게 까먹고 있었다.
그저께 저녁때 아내가 ' 여보 큰 일 났어 ' 하길래 또 무슨 일이요 하니 온수가 나오지 않아요 한다. 수도를 다 틀어봐도 모두 안 된다. 3년전에 그 고생을 했는데도 매일 하루에 몇번이고 안내방송을 들으면서도 입도 벙긋 안 하다가 이런 아내나 나나 참 한심한지고 !
3년전 일을 그대로 되풀이 한다. 세탁기를 옆으로 밀치고 난로를 계속 관쪽으로 틀어놓고 때때로 헤어드라이기로 뜨거운 공기를 쐬기도 하지만 하루가 지니고 이틀째 접어들어도 소식이 없다. 일상생활에서 조금만 신경을 쓰면 쉽게 예방할 수 있는 일을 그냥 예사로 생각하다가 이런 낭패를 당하는 일이 비단 이 일뿐이겠는가 ?
이틀동안 샤워도 못하고 면도도 못하고 있다가 면도는 할 수없이 물을 커피포트에 데워 대충 하고 동네 집주위에 목욕탕이 없나 알아봐야겠다고 수선을 떨고 아내는 하루종일 난로를 틀어놓고 있으니 전기료는 전기료대로 많이 나오겠다고 걱정하면서 전기 사고 날까싶어 바깥에 나가지도 못한다. 나는 웃으면서 봄까지 온수가 나오지 않으면 그냥 필요한 물만 데워 쓰고 맘 편히 먹고 안달을 떨지 말라고 하지만 그게 맘 먹은대로 되는것도 아니고.
어제 저녁때 드디어 아내가 ' 여보 온수가 나와요 ' 하면서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나도 여기 저기 온수를 틀어보고 기뻐한다. 이젠 뜨끈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겠구나 싶어 은근히 좋다. 속으로 이젠 조심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는데 이 마음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런지. 23.1/27 (금) |
첫댓글
우리네 삶의 단편이 그대로 그려집니다
저희도 그랬거든요
매사 준비해야 되는데 여의롭지 못한 게 우리네 삶인 듯 하여 크게 공감하며 웃고 있습니다~♡
2019년 6월 1일 기준으로 안짱병조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