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가 한 해에 수능 시험을 보게 되었다. 자식 대신 공부를 해 줄 수 없는 부모는 바라보다가 넘어갈 지경이다. 대리성취 욕망을 가루 내는 일이 가장 현명한 처사라는 것 정도 모르지 않는다. 자신을 죽이고 자식을 살리는 침묵과 그 침묵의 의미가 자식에게 전달 될 때 비로소 진정한 도움일 것이라 판단되었다. 마음을 맑혀 산소 공급하듯 기운을 주입하는 일에 돌입하였다. 외부 출입 제한하고 벽면수도 하듯 하루 네 시간씩 영적 운동과 글쓰기에 몰입하다가 다 놓아지는 시간을 맞았다.
성적표 보여주지 말고 하는 데까지 해보다가 안 되면 차선으로 살아보자고, 살아온 이력대로 라면 못 살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걱정을 털어냈다. 동네사람들이 나처럼 해서는 자식 대학 못 보낸다고 해도 그해 같은 학번의 두 대 학생이 태어났다.
세상에 대한 나의 감사는 정성으로 이어졌다. 일일일선을 하여 글로 써서 수능수험생을 위한 생미사에 제물로 봉헌하였다. 성실하게 수험생활에 임한 부모와 자식들에게 힘이 되어 주기를 바랐다. 누군가 내 자식을 위해서도 기도했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