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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아침 공기가 차게 느껴지는 10월의 어느 일요일. 연탄가스 냄새가 옅은 안개와 함께 낮으막하게 번지는 원평동 산동네에 여명이 비친다. 도시의 아침 스모그 저 너머로 붉은 해가 뜬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회색의 도시. 회색의 슬레이트 내지는 짙은 색의 기와를 얹은 낮은 집들과 그 지붕 위에 하나씩 달려 있는 TV 안테나들이 회색 도시 변두리의 능선을 이룬다. 아래로 보이는 목욕탕과 길거리의 상가건물들 사이로 버스의 걸걸한 엔진소리가 디젤 매연 냄새를 떠올리게 하며 축대 위 숙자네 집에까지 들린다. 용달차가 겨우 올라 올 넓이의 골목길은 좌우에 연탄재와 쓰레기들이 세대별로 모여 있고, 거의 꼭대기에 있는 숙자네 집에 이르기까지 길게 나있다. 무말랭이가 오글오글 모여 몸을 비비고 누워있는 대소쿠리가 엊저녁 늦게까지 잔업을 하고 온 숙자 어머니의 피곤함에 부엌으로 못 들어가고 새벽 안개에 설핏 젖어 있다. 그리고 무말랭이 소쿠리 얹혀진 장독들 옆, 축대 쪽으로 창이 나 있는 금순네 방에 불이 켜져 있다.
방문도 창문도 열려 있었고, 부엌의 샤시문도 열려 있었다. 금순과 할머니가 지난 5년을 살았던 그들의 체취가 배인 공간이 이 작은 방에서 이젠 나오려는 모양이다. 대기가 찬 저 바깥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듯 형광등 불빛 따라 나오려 준비를 하는 것 같다. 길지 않은 머리를 뒤로 묶은 금순은 곤색 이불 보따리와 노끈으로 묶은 박스들 옆에 놓여 있는 책상 의자에 앉아 있다. 책상 위에 큼직한 만한 가방을 뉘여 놓곤 그 안으로 이 것 저것을 챙겨 넣고 있다. 책상에는 어제까지 벽에 걸려 있었을 것 같은 큼직한 사진 액자가 작은 사진들을 올망졸망 품고 있다. 그리곤 가방에 들어갈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스웨터를 꺼내 입은 야윈 금순의 짙은 갈색 머리엔 하얀 리본이 꼽혀있다. 물끄러미 액자를 바라보다 가방에 집어 넣고는 마지막으로 남은 오래된 두꺼운 공책 한 권과 나무 묵주를 만지작거린다.
옆 방 숙자네 마루의 여닫이 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머리를 빗지 않은 잠에서 들 깬 숙자가 조금은 불안하고 바쁜 걸음으로 플라스틱 슬리퍼 소리를 내면서 금순의 방으로 걸어갔다. 금순의 방문을 손으로 잡고는 약간은 서운한 듯, 너 일어나면 나 깨우라니깐, 벌써 짐 다 싼 거야? 하며 금순을 쳐다본다. 빙그레 웃는 금순, 공책을 가방에 넣고 묵주는 주머니에 넣고는 숙자 옆에 와서 치마를 잡아 당겨 종아리 밑으로 집어넣어 쪼그려 앉으며 조용히 말했다.
"잠이 안 와서… 새벽에 짐 쌌어. 너무 일찍이어서 널 못 깨우겠더라."
숙자도 금순이 옆에 앉았다. 숙자를 옆으로 눈을 들어 보는 금순. 참 뽀얀 얼굴이다. 크고 예쁜 눈. 그리고, 처음 봤을 때부터 숙자가 언제나 부러워했던 미소.
금순이와 금순이 할머니가 숙자네로 이사를 들어 온 것은 숙자와 금순이 국민학교 5학년이었던 5년 전쯤이었다. 이른 봄이었고, 전날 진눈깨비가 내린 탓에 이곳 저곳 진창이어서 숙자는 신발과 바지에 흙을 잔뜩 묻히고 들어왔었다. 엄마에게 혼날 까봐 수돗가 물통에 받아놓은 물을 바가지로 퍼서 장화에 묻은 흙을 살살 씻는데, 비어있던 축대 쪽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나즈막하게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신발이랑 손을 씻고 방에 들어와서 상을 차려 부엌 쪽문으로 안방에 들이는 엄마에게서 어떤 할머니와 손녀딸이 축대쪽 방에 새로 이사 들어왔다는 이야길 들을 수 있었다. 엄마는 여자애가 숙자와 동갑이니깐 친구하면 되겠다고 하셨다.
"근데, 이름이 웃겨. 금순이래."
"숙자... 금순이... 친구하면 잘 맞겠네." 숙자 아빠도 옆에서 거들었다.
"무슨 이름이 금순이야? 굳세어라 금순아냐? 촌시럽게..."
숙자는 금순이란 이름을 들으면서 한마디 했다. 그리고 밥상 위에 놓여 있는 무말랭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못생기고 쪼그맣고 쭈글쭈글한 애면 친구하기 싫은데. 이름을 듣고는 괜히 이유 없이 실망스런 맘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 금순을 보았을 때, 담박에 금순이 무말랭이처럼 생긴 애가 아니고 백설햄 보다 더 이쁘게 생긴 애 란걸 알게 되었다. 나이가 같은 둘은 첫눈에 서로가 맘에 들었고 그날로 바로 친구하기로 하고 손잡고 다녔다. 그 때부터 여섯살이던 숙자 동생 경철이는 엄마한테 누나가 자기랑 안 놀아 준다고 밤낮 빼빼 울기 시작했다.
금순의 할머니는 대현시장에서 나물 장사를 하셨는데, 숙자 엄마는 장보러 가는 날이면 거기를 꼭 들러서 나물을 사오곤 했다. 대로변 시장 입구에서 걸어 들어가다 보면 순대냄새 풍기고 해장국 솥에서 허연 김이 피어 오르는 식당들이 하나 둘 줄어들고 나물좌판을 펼친 리어카들과 가방이며 사진 앨범들을 펼쳐 놓고 목소리를 높여 호객을 하는 시장통으로 바뀐다. 건너편 국사동으로 향하는 골목과 만나는 제법 넓은 귀퉁이의 건어물점 바로 앞에 널직한 평상을 펴고 말린 나물과 시금치, 가지, 오이 등 계절에 맞는 채소를 파시는 금순이 할머니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하셨다. 그래서 금순네가 이사온 몇 일 후 숙자 엄마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던 금순이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금순이 할머니가 숙자네가 원평동 집으로 이사온 후 늘 다니던 대현시장에서 나물을 팔던 바로 그 주름 깊은 할머니였다는 걸 기억해 내곤, 여기서 장사하셨구나, 맞어!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하며 새삼스레 반가워 했다. 숙자는 엄마를 따라 시장엘 가면서 가끔 할머니께서 사주시는 국화빵을 얻어 먹었고, 숙자 엄마는 나물이 좋은데 너무 싸게 주신다고 미안해 하면서도 매번 할머니에게 숙자가 보기에도 염치 없을 정도로 많은 덤을 받아 오곤 했다.
금순과 숙자는 학교를 파하곤 종종 시장으로 가서 할머니 장사하시는 옆에서 한참 놀다 오곤 했다. 금순이 할머니가 좌판을 벌릴 수 있게 자리를 내어준 할머니의 오랜 친구분이신 건어물점 주인 할머니는 금순을 보면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하시면서 친손녀처럼 이뻐하셨다. 금순은 시장에서 인기가 많았다. 그 많은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돌아다니며 인사를 다하고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을 다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해 손바닥을 맞기 일쑤였지만, 시장에선 웃으면서 대답을 자근자근 잘 했다. 과일 파는 뚱뚱한 아줌마는 앞치마처럼 두른 전대에서 금순과 숙자를 볼 때 마다 젤리 사탕을 꺼내 주었는데 쫀득한 젤리가 먹고 싶어 시장에 가면 꼭 가서 인사를 드렸다.
금순의 볼은 장사하시는 아줌마들과 할머니들의 손을 많이 탔다. 금순이 이쁘다며 거친 손으로 한번씩들은 톡톡 치거나 쓰다듬었다. 그래도 금순의 뒤통수와 발그스레 뽀얀 볼은 금순 할머니가 하루에 몇 번이고 어루만지던 할머니 전유물이었다. 할머니가 하도 많이 쓰다듬어서 금순의 볼이 자기보다 더 통통한 건지도 모른다고 숙자는 생각했다. 그렇게 할머니 곁에서 심부름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늦은 오후가 되어 장보러 나온 주부들이 몰리기 시작하면 할머니는, 바쁘다며 금순과 숙자에게 집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시장에서 일하시는 금순 할머니는 늘 어두워져서야 집에 오셨다.
할머니는 늦은 귀가에도 손녀에게 늘 저녁밥을 지어주셨는데 부엌에선 굽거나 튀기는 맛있는 냄새가 나곤 했다. 저녁을 드시고 난 후 날씨가 좋은 날이면 장독대 위에서 염주알을 굴리시며 중얼 중얼 염불을 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가끔 금순이를 데리고 저녁엔 시장 건너에 있는 성당엘 갔다 오시기도 했다. 그래서 숙자는 한 동안 그런 금순이 할머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염불을 외우시면서 절에는 안 가시고 왜 성당에 가시는지. 원래 다른 사람들도 절에도 가고 성당에도 가고 하는 건지 헷갈렸다. 그리곤 얼마지 않아 그 것이 염주가 아니라 성당 사람들이 쓰는 묵주라는 걸 알게 되었다.
금순이 할머니는 가끔 금순을 혼내시기도 했지만 숙자 엄마처럼 빗자루 손잡이로 때리진 않았고 대문 밖으로 신발도 안 신기고 쫓아 내시는 일도 없었다. 숙자가 한번은 까부는 경철이를 밀었다가, 경철이 마루 밖으로 굴러 떨어져 이마가 찢어진 적이 있었다. 마당에서 두어 계단 꺼진 부엌에서 일하던 엄마는 놀라서 화다닥 뛰쳐나오셨고 숙자도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몰라 뛰어 내려왔다.
첨엔 떨어진 충격에 아픈지 어떤지 모르는 채 엉거주춤 일어 서던 경철이는 곧바로 민방위 날 사이렌 소리 비슷한 목소리로 터져라 울기 시작했다. 경철이의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본 놀란 엄마가 경철이를 감싸고 마루로 올라가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숙자를 무섭게 내려보며, 넌 뭐하고 있냐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숙자도 왕 하고 울어버렸다. 안방으로 경철이를 데리고 간 뒤에 엄마의 놀란 고함 소리와 경철이의 아프다고 악쓰며 우는 소리가 뒤섞였다. 그리곤 경철이가 누나가 밀었다고 서럽게 울면서 고자질을 하였다. 갑자기 집안이 지붕이 폭삭 내려 앉은 것처럼 시끄럽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는 내내 자지러지는 경철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도망도 못 가고, 그렇다고 마루로 올라 가지도 못한 채 잔뜩 움츠리며 훌쩍거리던 숙자는, 빗자루를 들고 팔을 휘저으며 숨소리가 식식 들릴 정도로 콧구멍이 넓어져 벌겋게 화가 나서 걸어 나오는 육중한 엄마를 보았다. 13년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빗자루는 사정 없이 공기를 가르고, 퍽! 퍽! 소리와 함께 숙자의 눈에선 정말 별이 번쩍 번쩍거렸다. 마루 위를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싹싹 빌고 울부 짖는 숙자를 엄마는 옷을 잡아 애를 바짝 들고선 복날 개 패듯 패셨다. 빗자루 몽둥이에 피 멍 들게 맞고는, 나가 죽어라고 히스테리칼하게 소리지르는 엄마에게 신발도 못 신고 맨발로 대문 밖으로 쫓겨났었다.
팔뚝이며 허벅지며 군데군데 매맞은 데가 퍼렇게 멍들어 있었고, 아픔과 충격에 숙자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아픈 것 아픈 거지만 나가 죽으라고 눈이 희번덕이며 소리 지르는 엄마가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그렇게 내 쫓긴 게 너무 서러워서 자기도 모르게 울컥울컥 가슴이 흔들리면서 울고 있었다. 때는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오후였고 숙자가 쪼그리고 앉아 있던 대문의 시멘트 바닥은 차갑기만 했다. 지나가는 어른들이 흘끔 쳐다보았고, 개들도 한번씩 쳐다보고 지나갔다. 까만 철문의 찬 냉기가 대문과 담벼락 구석에 몸을 밀어 넣은 숙자의 등에 차갑게 파고 들었다.
무섭고 서럽게 어둔 대문 밖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니 콧물도 눈물만큼이나 줄줄 흘러나왔다. 훌쩍이며 그렇게 한참이 지났고 배가 고프기 시작하는데, 끼이익 녹슨 소리를 내며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금순이었다.
“숙자야.”
어둠 속에 금순의 목소리가 들렸다. 숙자는 눈물에 젖은 속눈섭을 들어 금순을 비스듬히 올려 보는데 갑자기 서러운 울음이 왈칵 터져나왔다.
“으허어어어엉.”
“울지마…”
금순이 숙자의 옆에 와서 쪼그리고 앉으며 말했다. 어두워서인지 숙자는 머리 속엔 아무 생각이 안 나고, 마음 속에서 불안만 그득 차 있는 데 금순이 옆에 와주니 눈물이 더 났다. 갑자기 마른 손수건 냄새가 나면서 금순이 숙자의 눈물을 훔쳐주었다. 어깨 위로 올라온 금순의 작은 손이 따뜻했다. 등을 톡톡 치면서 손으로 볼을 만져주었다. 할머니가 자신에게 늘 해주듯이.
“너… 집에서 쫓겨났니?”
“…”
“많이 아퍼?”
“으…으으…” 대답을 하려고 했는데 신음소리만 났다.
“그럼… 일단 우리 방에 가자… 할머니가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숙자는 눈물이 잔뜩 젖은 눈으로 금순을 쳐다봤다.
금순이 숙자의 손을 잡고 안 들어가겠다며 서럽게 우는 숙자를 당겨 일으켜 세웠다. 손을 꼭 잡고 끌고 가는 금순에게 마지 못해 끌려갔다. 훌쩍거리던 숙자는 금순에게 이끌려 금순네 방으로 들어가면서 자기 손을 잡고 있는 금순이 너무 고마웠다. 고사리 같은 손이 무척 따뜻했다. 할머니는 계속 징징 우는 숙자에게 괜찮다며 달래주셨다. 그리고 달걀 프라이를 해서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밥을 비벼서 주셨다. 그렇게 밥을 먹이고 숙자의 마음이 가라앉자 할머니가 숙자를 데리고 나가셨다. 할머니는 숙자 엄마에게 숙자가 많이 혼났으니 이젠 용서해주라고 하셨고, 숙자는 두어대 더 쥐어 박히고 방에 들어가서 잤다.
봄이 깊어져 축대에 겨우 붙어 피어 있던 개나리 덤불에서 파란 잎사귀가 점점 커지고 날씨가 따뜻해졌다. 신천동 축대 위의 숙자네 집에는 금순과 숙자의 웃음 소리가 자주 들렸다. 경철이의 조그만 발동기 돌아가는 듯한 웃음 소리도 간간히 섞이곤 했다. 가끔은, 놀아달라고 달라붙는 경철이를 피해서 금순이네 방으로 들어가곤 했는데, 방에는 금순이 아끼는 물건이 몇 가지 있었다. 머리띠와 핀 같은 걸 넣어두는 조그만 상자와 옷을 넣어두는 서랍장이었다. 둘 다 어린이용 가구였는데 귀여운 다람쥐와 토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할머니는 금순의 양말이며 티셔츠 같은 걸 참 반듯하게도 접어서 그 알록달록한 서랍장에 넣어두셨다. 누가 봐도 엄마 아빠 있는 애들 보다 더 깨끗해야 된다며 늘 금순에게 단정하게 하고 다니라고 일러주셨다. 그래서인지 금순은 양말을 신어도 똑 같은 높이로 당겨서 이리 저리 손보며 구김 하나 없이 신었다. 금순은 시장에서 사오는 촌스러운 옷일지라도 먼지 탈탈 털어가며 깔끔하고 반듯하게 입고 다녔다.
금순이 상자에서 깨알 만한 꽃이 달린 까만 머리핀을 꺼내어 숙자의 머리를 빗어 하나하나 머리에 꽂아주었다. 지금 할머니에게 고데세터기를 사달라고 조르고 있으니, 이 다음에 고데를 해서 캔디 머리를 만들자며 수다를 떨며 드러누워 있었다. 머리핀을 이리저리 꽂아 이마가 훤히 드러나서 안 그래도 동그란 얼굴이 더 동글동글해 보이는 숙자에게 금순이 옆으로 돌아누워보라고 했다.
“왜에?” 숙자는 돌아누우면서 물었다.
별로 바쁠 것 없는 수요일 오후 봄의 나른함이 소녀들을 살살 졸리게 하는데 금순이 숙자의 등에다 귀를 댄다. 금순의 볼과 콧대가 말캉하게 등에서 느껴졌다.
“야, 뭐해?”
“가만 있어봐. 소리 좀 들어보게. 심장소리.”
“심장소리? 그런게 들려?”
“아니, 가만 있어보래두. 말하면 울려서 안들려…”
“….”
“…”
“들리니?”
“응… 도동 도동 도동 소리가 나. 넌 우리 할머니 보다 좀 빠른 것 같애…”
금순이 나름대로 심장 뛰는 속도와 비슷하게 리듬을 줬다.
“도동 도동 도동 거린다고?”
“응. 첨엔 그냥 웅웅 거리거든. 근데 가만히 있으면 들려.”
“그래? 그럼 나도 한번 들어 보자…”
두 소녀가 동시에 몸을 돌려서 이번엔 숙자가 금순의 등에다 귀를 댔다.
“…”
“…”
“들리긴 뭐가 들려? 아무 것도 안들리는데…”
“잘 들어봐… 숨 쉬지 말고.”
“…”
“…”
“안들려… 에이. 뭐가 들린다고 그래?”
그때 금순의 갑자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반대편 귀를 막고 금순의 등에 딱 붙어 있던 숙자의 귀에 그 소리가 무척 크고 기이하게 들렸고, 이내 숙자는 꺄르르 뒤집어지고 말았다.
그날 저녁, 낮에 금순이와 심장소리 듣던 게 생각나 숙자는 자고 있는 경철이의 등에다 대고 심장소릴 들으려 귀를 대어 보았다. 쌕쌕 거리는 숨소리 말고 심장소리를 한번 들어보려고 한참 귀 기울이다가 그만 경철을 베고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날 밤 경철이는 마징가 제트에게 밟히는 꿈을 꾸었다.
금순의 어깨는 찬 공기에 조금 움츠려 있었다. 숙자는 늘 그랬듯 금순의 팔을 자신의 팔에 끼워 넣고는 금순에게 딱 붙어 앉았다. 정다운 친구. 지나간 5년을 한번도 떨어진 적 없이, 한번도 크게 다툰 적도 없이 언제나 같이 있었다. 가끔은 언니처럼 믿고, 가끔은 동생처럼 보살펴도 주며 친자매 같이 지내왔던 금순이 아니었던가. 그런 금순이 몇 주 전에 더 이상 숙자네에서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학교를 자퇴하고 천안에 있는 제일모직 기숙사로 가겠다는 말을 했다. 다니던 여상에서 금순을 평소에 이뻐하던 선생님이 일자리를 알아봐준 모양이었다. 거기엔 직원들을 위해서 야간 고등학교가 있다고 했다. 금순의 결심을 듣고 가지 말라고 무던히도 말렸었다. 그냥 숙자는 자기 방에서 같이 자면서 지금처럼 학교 다니면 되지 않냐고 했다. 하지만 세상엔 어쩔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걸 아프게 실감할 뿐이었다.
“너무 서운해 하지마. 가끔 놀러 올게. 너도 나보러 올거지?”
금순의 목소리가 숙자의 마음에서 조용히 진동했다. 금순의 목소리에 마음이 눌려서 자기도 모르게 배여 나오는 서운함 때문에, 그리고 이젠 헤어진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렸다. 괜히 콧끝이 시큰거렸다. 숙자는 금순의 팔을 자신의 옆구리에 더 밀착시키며 몸을 기대었다. 보내야 된다는 걸 알지만, 그리고 떠나야 된다는 것도 알지만 둘은 추위에 떠는 강아지들처럼 서로를 가까이 두고 계속 그렇게 부비며 옆에 있고 싶었다.
“…”
언제나 씩씩한 금순이었지만 오늘따라 숙자의 몸에 깊이 기대고 있는 그녀.
할머니의 죽음 이후 숱하게 울던 밤들… 숙자는 그런 금순과 한 달 이상을 같이 잤었고, 같이 울었었다. 많이 야위어버린 금순. 그리고 옆에서 늘 가늘게 한숨을 쉬는 금순의 숨결엔 숱한 눈물의 밤을 보내면서도 다 토해내지 못한 뜨거운 슬픔이 피어 나왔다. 금순의 불안해 하는 마음이 전해져 숙자는 금순을 쳐다 보았다. 왠지 금순이 추울 것 같은 느낌에 숙자는 금순의 어깨를 감싸줬다. 참 씩씩하고 잘 웃던 금순이었는데.
금순이 그 큰 눈에서 눈물을 하염 없이 흘리며 우는 걸 처음 본 건, 금순의 할머니가 처음으로 쓰러졌던 그 겨울이 다 지나갈 때 쯤이었다.
심장병이라고 했다. 금순의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를 몇 해 간격으로 먼저 보내곤 그 노인의 심장이 견뎌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 깊은 슬픔이 독이 되어 심장을 조금씩 헤쳐와서 심장병이 생긴 할머닌 몇 달을 걷기도 힘들어 하셨다. 그렇게 병을 얻은 할머니에게 오히려 금순은 시도 때도 없이 할머니, 할머니 높은 목소리로 불러대었다. 재잘재잘 이야기도 전에 없이 많이 했다. 부엌에서 된장이라도 하나 끓일 양이면, 할머니 이젠 감자 넣어? 할머니 이젠 파 넣어? 할머니 이젠 어떻해? 끊임 없이 물었다. 원래 그렇게 시끄럽지 않았는데 일부러 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처음엔 좀 의아했지만, 숙자도 곧 그런 금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금순이 왜 그렇게 밤마다 할머니 심장 소릴 들었고, 숙자의 등에도 귀를 대고 심장소릴 들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왜 그리 남의 심장에 관심이 많은지.
할머니는 그렇게 병이 나서 오랫동안 장사를 못했고, 월세도 두 달인가 밀렸다. 숙자 엄마는 한편으로는 할머니를 가여워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월세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입 밖으로 툭툭 내 던졌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아이들에게 내복 두벌씩 껴 입히고 연탄불이 꺼지지 않을 정도로만 난방을 하며 버티고, 돈 아끼려고 신문지 잘라서 철사에 꿰어 화장지 대신 쓰는 숙자 엄마에겐 인심을 쓸 마음 속의 곳간이 없었다. 그래도 숙자 엄마는 금순이나 할머니 앞에선 방세에 대해선 아무 내색을 하지 않았다. 늘 나물이며 먹을 것을 나눠주던 할머니와 친해서도 그랬고, 중학교 일학년 밖에 안된 금순이 할머니 병간호 하면서 밥짓고 집안일 다 하는 걸 참 기특하게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어린 것이 찬물에 설거지 하는 게 안스러웠는지 뜨거운 물도 종종 바가지로 퍼주고, 반찬도 많이 나누어주었다.
그렇게 엄동설한이 끝나가던 이월 말쯤 어느 날 숙자네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왔다. 시외버스 운전을 하시던 숙자네 아버지가 사람을 치었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엄마는 스웨터를 뒤집어 입은 것도 모르고 황급히 청주로 달려갔다. 때는 어두워 지는 늦은 오후였는데, 밤이 되자 숙자와 경철이는 겁에 질려 금순네 방으로 찾아갔다. 할머니는 누워서 힘들어 하시면서도 경철이를 보듬어 주셨고 그날 밤은 곁에서 재워주셨다. 그날 처음으로 숙자는 금순과 같은 이불을 덮고 잤다. 금순이 자면서 뽀드드득 이빨을 간다는 것도 그 날 밤 처음 알았다.
숙자네 아버지는 과실치사혐의로 구속이 되었지만, 엄마의 이야길 들어보니 누군가 벌써 사고를 내고 뺑소니를 친 상태에서 숙자 아버지가 재차 사고를 낸 것이기에 뺑소니 차량의 목격자만 나오면 해결될 수 있는 일이었다. 평소에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동작이 빠르던 숙자 엄마는 그날부터 목격자를 찾으려 청주를 자주 갔다 왔고, 사고난 길거리에 현수막도 내 걸고 광고 전단지도 뿌리면서 어떻게든 목격자를 찾으려고 애썼다. 그 와중에 현상금도 내 걸었다.
남들보다 더 큰 덩치로 이리저리 뛰어다닌다고 숙자 엄마는 많이 지쳤다. 몸도 마음도. 마루에는 인형 속치마를 만들려고 가져다 놓은 흰 천들이 비닐 봉지에 쌓여 재봉틀 주변에 숙자의 키보다 더 높이 쌓여있어 어수선했다. 엄마는 평소와 달리 늦둥이에 아들이라고 귀여워하던 경철이에게도 화를 많이 내었다. 경철이는 파리채로 자주 맞자 엄마에게 가기 보단 숙자 옆에서 빙빙 돌았다. 엄마는 가끔 전화로 돈 빌려 달라는 전화를 외갓집이나 숙자네 삼촌네에 하기도 했는데, 어느날은 외할머니와 소리 지르면서 싸우면서 울었다. 그리고 가끔 금순이나 할머니에게, 어떻게 월세 밀린 것 좀 줄 수 없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숙자는 그런 엄마가 조금씩 싫어졌고, 반찬도 없는 밥상에서 찬밥으로 끼니를 떼우기도 싫어졌다. 아빠가 너무 걱정 되긴 했다. 하지만 엄마가 너무 신경질적으로 변하니까 사고를 낸 아빠가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청주에 갔다가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서 닫는 대문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고, 그 소리를 들으면 순간 마음은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엄마의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집안분위기가 살얼음판을 걷듯이 위태위태하고 차가웠다. 경철이도 기가 죽어서 까불지도 않고 방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하루 금순네 부엌 앞에서 숙자 엄마가 금순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금순아. 내가… 기가 막혀 말이 안나오네… 너 지금 굴비 사오니?”
금순은 시장엘 다녀 오는지 물기가 배여나온 종이 봉지에다 큼직한 굴비 두 마리를 담아가지고 부엌으로 들어가다가 숙자엄마의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놀라 쳐다보았다.
“너… 월세 줄 돈은 없으면서 이렇게 비싼 생선 사 먹을 돈은 있었니?”
숙자 엄마는 조금씩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야! 너… 이런 거 살 돈 있으면 밀린 월세 먼저 갚아야 하는 거 아냐?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내가 니 할머니하고 너 한테 어떻게 했는데… 너 아저씨 감옥에 갇혀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몰라?”
“아줌마… 그게 아니고요…”
“아니긴 뭐가 아냐! 너… 이제 보니까 돈 있는데도 안낸거 아냐?”
“아줌마… 이건요, 건어물가게 할머니가…”
금순이는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하는 숙자엄마에게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갑자기 숙자 엄마가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 이년아! 너… 당장 밀린 방세, 석달치 가져와… 굴비 사 먹을 돈은 있으면서 남의 피 같은 방세 낼 돈은 없다 이거지. 너… 돈 없음 당장 방 빼! 알았어?”
시끄러운 소리에 숙자가 방에서 나와서 밖을 내다 보았다. 엄마는 흥분해서 숨을 거칠게 쉬면서 두 손을 둘 곳을 모를 정도로 혈압이 오른 모양이었다. 숙자의 눈엔 놀라서 잔뜩 주눅이 들어 부엌문 앞에 서 있는 금순이 보였다. 금순이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숙자 엄마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야! 너도 이제 중학생 아냐? 넌 신문배달 같은 것도 못하니, 응?”
숙자 엄마는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해 어깨가 잔뜩 경직이 되어서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분이 삭질 않는지 뒤돌아 보며 독한 말을 했다.
“아니 키울 능력이 없음 애를 고아원에나 보내지… 그리고… 아니, 할머니가 아파서 일을 못하면 지가 새벽에 나가서 신문 배달을 하든지… 아님 집에서 인형 눈을 붙이든지, 공부도 지지리 못하는 게, 아무 것도 안하고 그 비싼 굴비 사 쳐먹을 생각이 드니, 응? 부모도 없는 게 우리 애들도 못 먹는 걸 겁대가리 없이… 방세 밀려도 지 쳐먹을 것만 챙겨, 응?”
숙자 엄마는 옆으로 금순을 내려 보면서 부들부들 떨면서 마루 앞에서 큰소리로 말했다.
“아줌마… 이거 사온게 아니라 건어물점 할머니가 공짜로 주신거에요.”
금순이 기가 죽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금순은 너무 당황해서 무슨말을 더 하려고는 하지만 놀라서인지 말은 못하고 숙자 엄마를 쳐다보면서 눈물만 그릉그릉 했다. 그런 금순을 보면서 숙자는 너무 미안한 감정에 가슴이 턱 막히고 다리 힘줄에 전기가 오는 것 같았다. 아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는 듯, 엄마를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흥분한 엄마는 피가 머리로 몰려서인지, 아니면 금순의 대답에 자신이 방금 너무 심한 말을 했다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인지 숙자를 못보고 방으로 들어갔다. 숙자는 좀 전에 한 엄마의 잔인한 말이 귀에 맴돌며 못 견디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떻해, 어떻해 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금순에게 너무너무 미안하고도 창피했다. 방금 금순에게 그토록 잔인한 말을 한건 바로 자신의 엄마가 아닌가? 그래서 금순에게 가서 위로해줄 생각도 못할뿐더러, 문을 열어 차마 고개를 들어 금순을 쳐다보지도 못하였다. 다만 쪽창문 너머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를 가슴 아프게 바라만 보았다.
저녁이 되어 안방에선 숙자 엄마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숙자 엄마는 화가 가라 앉자 스스로도 자신이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자기가 왜 이러는지 자신이 미워졌다. 원래 처녀 땐 그저 소심하고 얌전한 여자였는데 시집와서 가난에 찌들려 살다가, 이렇게 남편까지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이 되자 그 소심한 마음이 극한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한 번 화가 나면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불안해져서 안절부절 못했다. 그리곤 조절되지 않는 자가증폭 끝에 폭발로 이어지곤 했다. 아무래도 이러다간 미쳐버릴지도 모를 것 같은 무서운 예감이 들기도 했다. 숙자는 그런 엄마의 심정을 헤아리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고, 금순에게 못되게 군 엄마가 너무 미워서 저녁도 안 먹고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미안함과 엄마에 대한 원망에 가슴속이 다 타버려 어디선가 비닐 탄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두 모녀 각자의 가슴속이 쓰레기 소각장처럼 시커멓게 타 들어가고 있는데 마루 여닫이 문을 조심스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To be continned...
첫댓글 넵...다음편이 기대 됩니다..건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