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영남의 대학자 인 퇴계 이황은 벼슬을 오래 동안 하지 않았으며, 낙향 한 뒤로 학문에 매진하고
제자를 많이 두었다.
퇴계 이황의 흔적은 많은 문적과 그를 제향하는 도산서원이 남아 있다.
그러면 그의 후손의 기록은 어디 있을까 하여 찾아 보았다. 선정비 위주로 하여 본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퇴계후손의 기록 중 선정비는 이휘정과 이만도 그리고 만인산을 남긴 이만기이다.
초산부사를 역임하고 난 뒤 부사를 유임해 달라는 뜻과 선정을 하였기애 만인산을 백성들이 제작 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이휘정이다... 이휘정은 선정비가 3좌가 남아 있으며, 정읍과 양산 밀양에 남아 있다.
정읍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어 비를 세운 것으로 보이는데 함풍 갑인년 9월에 세웠다고 한다.
현재는 정읍 천원리에 있으며, 흑화 현상으로 글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휘정의 비는 밀양 표충사 영사각에 있으며, 이 비는 표충사의 이건과 관련 된 것으로 보인다.
양산군수를 역임한 이휘정의 비가 어찌 된 일인지 밀양에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임진왜란이후
승병들을 기리는 표충사(사당)를 현재 사찰인 표중사(사찰) 내로 이건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기에
비를 세웠다고 한다.
그를 기리는 송시가 비에 있다.
실력은 없지만 풀이 하여 본다.
양산군이후 휘 휘정 유공불망비
申維嶽降 산악에서 신처럼 내려와 펼치시니
循其一揆 정사는 변함이 없으며
莫嚴非法 법보다 엄중함 한 것이 없게 하시니
左劵昭然 좌권이 훤하게 드러났다네
---중간 생략 ----
公惟秉直 공은 오직 정직함을 지니시니
捨爾虛案 그것을 버려 빌 곳을 찾았네
願施囙果 원하는 만큼 베품으로 과보가 되고
一閣永思 누각을 지어 영원히 잊지 못하네
疇敢逞智 어느 누가 감히 술수를 부릴 것이냐
還我本地 원래의 자리에 돌아오게 하시니
受用現在 현재의 것을 받아 들이니
千秋遺愛 길고 긴 세월동안 애민을 남기셨네
특히 이휘정의 비는 보기 드문 나무로 만들었고, 전국에 16좌 없는 목비 중 하나이다.
그 다음으로는 양산군수 역임하여 선정비를 남겼는데 양산 향교에 그의 비가 있다.
양산 군수 이휘정의 비에 보이는 명문은 희미하여 물을 뿌리고 하여 명문을 조사 하였다.
명문을 풀이 하면 다음과 같다.
군수 이후휘정영세불망비
德威幷濟 덕과 위엄을 함께 하시니
謙明我侯 청렴하고 밝으신 우리 원님
奬學結甲 학문을 장려하고 갑옷을 수선하여
武尊厥猷 무예와 법도를 존중하고 준수 하였네
完逋薄歛 포흠을 정산하고 세금을 줄이시니
弊局維修 폐단의 시국을 바로 잡으셨네
不磷者石 마멸되지 않는 비석에다
永世載謳 영원토로 새겨 노래 하리라
숭정기원후 4 임술 십일월일 각 면립
좌수 유학 신석진
유학 나상록
감역겸 서사 鄭曦
행수군관 지계환
마지막으로 퇴계의 후손인 이만도의 선정비 이다.
이만도는 우국충정으로 단식을하여 순직 하였다. 그의 충정을 만 천하에 알렸지만 그의 선정비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양산군수를 역임하여 선정비가 남았는데 이 비는 가야진사와 관계되는지
가야진에 있다.
양산에서 멀리 낙동강변에 있어, 있는지 아는 이는 드물다.
첫댓글
감사 합니다,
귀한 자료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