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수십억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물이며 살아남기에 유리했던 것들만이 수대를 거쳐 선택되어 면면히 이어져온 결과물이다.
지난 세대들이 스스로 살아남으려 몸부림쳤고, 그 중 자연으로부터 선택되어진 자들의 후손...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이어받은 본성, 즉 '살아남으려는 힘'을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생존본능들은 우리 삶의 가장 깊은 근본에 자리한 법칙이다.
이 본능은 우리가 가진 모든 감정과 행동의 근원에 깔려있다.
인간이 살아남으려는 행위는 사랑, 평화, 공감력과 같은 고귀한 가치로 포장되기도 하고 탐욕, 분노, 거짖, 선동, 축재 등으로 때로는 노골적 행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는 선악을 구분하는 도덕적 잣대를 넘어 단지 생존본능의 단순하고도 본질적인 충동일 뿐이다.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으로 규정된 일체의 가치, 의미라는 이름으로의 드러남이 사실은 생존하기 위한 여러 얼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함은 우리가 인간을 넘어서 자연의 일부일 뿐임을 상기하게 한다.
자연속에 존재하는 자기조직화나 항상성 같은 법칙에서 가치, 의미, 선악, 미추 따위등은 찾아지지 않는다.
자연은 그냥 그렇게 있을 뿐이다.
자연은 그냥 그렇게 할 뿐이다.
우리 내면의 뿌리깊은 살아있고자 하는 본성은 '단순한 하나의 자연에서 부여받은 본능'이고 이 본능은 의지로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모든 것에 깊이 새겨진 원초적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맹목적 본능에 다양한 색을 입혀 이 세계를 그려낸다.
이 단순한 진실을 마주할 때 우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그저 생존을 위한 여정을 이어가고 있음을 깨닫에 된다.
나아가 그렇게 꽃핀 생존조차 결국 자연을 구현할 뿐인 맹목적성의 허망한 현상의 일환이라면 우리는 그 허망함이 드러내는 다양한 그림들에서 일체 의미 없음을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선악미추가 맹목적 생존본능이 만들어낸 허상임을 안다면 그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은 바람에 날려버릴 수 있지 않을까?
우리라는 존재는 자연이 그려낸 그림일 뿐이며, '나'라는 말조차 자연의 법칙이 그려낸 생존본능의 소산으로 거기에 '나'라는 말은 합당치 않다.
'나'라는 단어에 '자연'이라는 말을 넣어라.
'나의 생존본능'이 아니라 '자연에 내재된 본성'......
내가 그려낸 세계는 고유한 내가 만들어낸 그 어떤 것이 아니다.
그 세계에서 오로지 살아남고자 하는 맹목을 보라. 아름답게 채색된 그 세계안에 존재하는 허망함을 보라.
그 허망함을 보고, 내것 아닌 것에 모든 집착을 떨치고, 그 어떤 가치에도 물들지 말고, 그저 자연이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것을 보라.
"자연의 강이 흐르는구나"라고 중얼거리며....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결국 살아있음이라는 단 하나의 기초위에 서 있다.
이 단순한 진실을 마주할 때 우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그저 생존을 위한 여정을 이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여정에서 삶을 채색하되 그 채색의 근원을 파악하며 그려나간다면 이 생을 마치는 그날까지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하게될 수 있지 않을까?
저 강물은 왜 흐르는가....?
물이 있기에 흐른다!
첫댓글 이왕 흐르는 거 험한 데는 피해서 흘러가가를..
가끔 이상한데 가더라도 버틸 수 있는 힘을 가지기를..바래봅니다 -()-
험한 데 피하지 못하면
고통스러운 순간순간 노려보면 될 거 같아요.
사띠. 기억...을 놓지 말고 살아야죠.
기억된 '앎'
그 앎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알아요.
'앎'. 고귀한거죠.
개인적으로는.. 제가 소화하기 버거운 조건들은, <제행무상>이 거진 해결해주더라구요.. 스스로 붙잡고 있지만 않다면요.. 제행무상 덕분에 살고 있습니다 ㅎㅎ
인간이 꾸는 꿈은요. (자연)과학이냐 아니냐를 떠나 비슷합니다.
예로, 샹키아의 교의에서요.
'자연(프라크리티, 질료)'이, 결국에는 '창조(들뜸 상태)'가 있기 전의 절대 평형 상태로 진행합니다.
좀 비슷하죠?
연결점도 좀 보이는 거 같고...
물론 불교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불교에선 우주 즉 세계가 성주괴공합니다.
결국 거시적으로 비어버립니다. 그리고는 또 다시...
미시적으로, 과거 적었듯, 양자화 상태...
개념적으로, 찰나생멸은 양자화와 유사합니다.
문득 들뜸이 발생하고, 그것이 소멸하고... 그 들뜸의 추진력으로 소멸을 가로질러 문득 또 들뜸이 발생...
이것 저것 접하며, "인간의 꿈이란... 최소 수만년 이상 그 범주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꿈, 불타오르는 것...
와~~
방문객님 글 읽고 있노라니
우주라는 것이 마치
가마솥 속에 끓고 있는 팥죽 같다는 생각이 떠오르네요.
찰나생멸하는 것 같은 양자화 상태.
들뜸-소멸-들뜸-소멸-들뜸...
<<< 꿈, 불타오르는 것 >>>
에로스(생을 향한 충동)와 타나토스(죽음을 향한 충동)가 떠오릅니다.
우주의 말단으로서..인간 기저의 두 욕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