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봉공(奉公) 제2조 수법(守法)
3. 무릇 국법이 금하는 것과 형률(刑律)에 실려 있는 것은 몹시 두려워하며 감히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한 일을 당할 적마다 반드시 국전(國典)을 상고하되, 만약 법을 범하고 율에 어긋난 것이 있으면, 절대로 시행해서는 안 된다. 만약 전임 수령의 범법한 것이 그대로 전해 오면서 내게 뒤집어 씌워진 것이 있다면, 마땅히 편지로 주고받아 바로잡기를 강구하고, 그래도 저쪽에서 듣지 않으면 감영(監營)에 보고해야 할 것이요 그대로 용서해서는 안 된다.
한 일을 당할 적마다 반드시 속으로 ‘감사(監司)가 들으면 이것으로 나를 폄하(貶下)하지나 않을까, 어사(御史)가 들으면 이것으로 나를 탄핵하지나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아서, 그런 걱정이 없는 다음에야 행하는 것이 좋다.
일체 법만 지킨다면 때에 따라서는 너무 구애받게 된다. 다소 융통성을 두더라도 백성들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옛사람들도 변통하여 처리하는 수가 있었다. 요컨대, 자기 마음이 천리(天理)의 공정에서 나왔다면 법이라고 해서 고집스럽게 지킬 필요는 없으며 자기 마음이 인욕(人慾)의 사정에서 나왔다면 조금이라도 법을 범해서는 안 된다.
법을 범하고 죄를 받는 날, 위로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다면, 법을 범했더라도 반드시 백성에게 이롭고 편한 일일 것이니, 그런 경우에는 다소 융통성이 있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마영경(馬永卿)(주1)이 벼슬살이하는 도리를 유원성(劉元城)(주2)에게 물으니 유원성은, “《한서(漢書)》에 ‘관리는 법령을 스승으로 삼아 틈만 나면 법조항을 보는 것이 좋다.’ - 〈설선전(薛宣傳)〉에 나온다. - 하였는데, 이는 사람을 다스리는 데뿐만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는 데도 좋을 것이다.” 하였다.
유원성은 마영경이 처음으로 과거에 올랐으므로 몸가짐이 혹시 법을 범하거나 이속들에게 속아 넘어갈까 보아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
[주-D001] 마영경(馬永卿) : 송(宋)나라 양주(揚州) 사람으로 자는 대년(大年)이다. 진사 출신으로 영성 주부(永城主簿)를 지냈고, 유안세(劉安世)가 박주(亳州)로 귀양 가 영성(永城)에 우거할 때 26년 동안 그에게 수학하였다. 저서에는 《원성어록(元城語錄)》ㆍ《나진자(懶眞子)》가 있다. 《宋元擧案 20》
[주-D002] 유원성(劉元城) : 유안세(劉安世)를 가리키는데 그가 원성(元城)에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자는 기지(器之),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벼슬이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이르렀고, 저서에는 《진언집(盡言集)》이 있다. 《宋史 卷345》 《宋元學案 20》
凡國法所禁。刑律所載。宜慄慄危懼。毋敢冒犯。
每遇一事。必考國典。若犯法干律者。斷不可行。若前官犯法。傳流冒我者。宜往復求正。彼猶凝然不動者。但當報營。不可饒也。
〇每遇一事。必內自思念曰。監司聞之。不以是貶我乎。御史聞之。不以是擊我乎。知其無憂。然後乃可行之。
〇一直守法。有時乎太拘。小有出入乃可。以利民者。古人亦或有達權。要之。此心出於天理之公。則法不必膠守也。此心出於人慾之私。則法不可微犯也。犯法抵罪之日。仰不愧俯不怍。則其犯必利民便民之事。若是者。容有出入焉。
馬永卿問立身仕宦之道於劉元城。元城曰。漢書云。吏以法令爲師。有暇可看條貫。薛宣傳。 不獨治人。亦可以保身。先生以永卿初出場屋。行已或犯法。且爲吏所欺。故有此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