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무서워 망명도 한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프랑스 올랑드 전대통령도 부유세(75%) 실시 하다가 지지율이 단 4%로 떨어져 차기 대선을 포기했다. 또 국민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벨기에로 떠났고, 수퍼 갑부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도 벨기에 국적을 얻었고 알랑드롱은 스위스로 튀었고 금융 엘리트 5만여 명은 런던으로 떠났다.
포뮬러 1 드라이버 루이스 해밀턴은 스위스와 모나코, 몬테카를로 등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프로 골퍼 로리 맥길로이도 미국에서 1년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 숀 코네리는 바하마로 이주하면서 ‘국민배우’라는 명성을 잃었다.
(포뮬러 1 드라이버란 포뮬러 1(F1) 머신에 의한 세계 선수권 시리즈를 말한다. F1 그랑프리(GP)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자동차 레이스의 최고봉으로 군림한다. 1950년 6전의 시리즈로 시작되었고, 최근에는 전 세계 16개국을 돌며 왕좌를 가린다. 드라이버와 컨스트럭터(팀의 주체인 머신 제조업자)의 선수권을 모두 가리는데, 드라이버 선수권 쪽에 좀 더 중점을 둔다. 컨스트럭터 선수권전이 추가된 것은 1958년부터이다.)
세금 망명(Tax Exile)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높은 소득세율 때문이다. 지난해 영국의 중앙정부 소득세 최고세율은 45%.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6.5%를 크게 웃돈다.
영국은 소득세를 최초로 도입한 나라다. 처음엔 나폴레옹 전쟁에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할 목적으로 1799년 도입했다.
그 후 소득세는 미국이 1913년, 프랑스가 1914년 잇따라 도입하면서 20세기 이후 각국에서 중요한 세금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1934년에 처음 개인소득세가 부과되기 시작해 8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49년 7월 소득세법이 제정했다.
당시 일반소득의 면세점은 3만원 미만으로 하고 소득의 크기에 따라 16계급으로 나눠 1.6%부터 65%까지 세율을 적용했다. 최고 세율을 적용하는 과표는 연간 소득 2000만원 초과분이었는데 1949년 7월 한 신문 기사에 쌀 한가마니의 시장 가격이 1300원대라고 한 것을 보면 최고 세율은 ‘초고소득자’에 한정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70년대∼80년대까지 소득세 최고 세율은 70%에 달했다.
미국은 1980년 레이건 정부 초기만 해도 개인소득세율이 최고 70%였다. 미국은 이후 세율을 낮추면 세수가 증가할 수 있다는 공급주의 경제학의 영향으로 세율 인하가 이뤄졌다. 우리나라는 1989년 50%로 낮아진 후 1994년 45%, 1996년 40%로 인하됐다.
2000년대 들어 소득세만 놓고 본다면 진보 정권인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감세가, 보수 정권인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증세가 이뤄졌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최고세율이 40%에서 36%로 떨어졌고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엔 35%로 다시 인하됐다. 2007년엔 최고세율 적용 과표 기준을 8000만원 초과에서 8800만원 초과로 올려 세금 부담을 줄여주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소득세율 인하가 추진됐지만 국회동의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임기 막판인 2012년 초엔 세율이 기존 4단계에서 5단계로 늘어나면서 3억 원 초과 소득에 대해 38%의 최고세율이 신설됐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엔 38% 최고세율 적용 구간이 3억 원 초과에서 1억5000만원 초과로 조정됐고, 2017년부터 5억 원 초과분에 40%의 최고세율이 신설됐다.
소득세는 지난해 70조1000억 원이 걷혔는데 전체 국세 233조3000억 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소득세 가운데 월급쟁이들이 내는 근로소득세는 31조9740억 원으로 절반 가까이 된다.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 최고세율만 놓고 보자면 한국은 낮은 편이 아니다. 2016년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최고 소득세율은 36.2%다. 오스트리아(55%)나 네덜란드(52%), 벨기에 이스라엘, 슬로베니아(각 50%) 등이 소득세 최고 세율이 높은 국가 축에 속한다.
우리 경제에서 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세의 비중은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이 4.00%로 OECD 평균 8.42%의 절반 이하다. 2015년 들어 한국의 이 비율은 4.40%로 올라갔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영국은 소득세가 GDP 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06%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세금 망명’ 논란이 있었다. ‘선박왕’으로 불리는 권혁 시도그룹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국세청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권 회장이 국내 거주자임에도 국내에 소득신고를 하지 않았다며 종합소득세 2774억 원과 지방소득세(지자체 관할) 277억 원을 부과했다. 그러자 권 회장은 홍콩 등 해외에서 거주해 한국엔 납세를 할 의무가 없다며 국세청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법원은 권 회장이 세금 납부를 해야 하는 ’국내 거주자‘에 해당한다며 국세청의 손을 들어줬다. 정부는 권 회장의 경우와 같은 해외 거주를 통한 탈세 또는 절세 논란을 없애기 위해 2015년 소득세법상 국내 거주자 판정기준을 ‘2년 중 1년 체류 이상’에서 ‘2년 중 6개월(183일) 체류 이상’으로 대폭 강화했다.
정부와 여당은 초고소득자에 대한 명목세율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초고소득자‘에 대한 증세가 단순히 그들만의 부담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을 지낸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높은 소득을 올리는 이들은 대부분 기업체 임원 등 ’힘 있는‘ 사람들인데 세금이 오르더라도 가처분 소득은 기존대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세금 부담을 협력업체 납품 단가를 낮추는 등의 방식으로 전가하면 그 부담은 전체 사회가 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높은 율의 세금은 내면서도 조국을 등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앤디 머레이(Andy Murray)는 영국이 자랑하는 테니스 스타인데 세계 랭킹 1위로 그랜드 슬램을 3번, 올림픽 우승을 2번 달성했다. 그의 재산은 7700만 파운드(약1119억 원)로 추산된다.
영국의 유력지 인디펜던트는 머레이를 ‘국가적 영웅(national hero)’이라고 칭했다. 단순히 테니스 경기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 아니라 머레이가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 오픈 경기 도중 “세금 때문에 영국을 떠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머레이는 “세금을 내지 않지만, 동시에 주변에 가족과 친구도 없는 곳으로 이주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하자 국민이 열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