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상자 밑바닥의 희망처럼
팔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나는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를 끝으로 학업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 뒤 공장에 들어가 일을 했고, 스물 한 살에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당시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웠던 터라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남편의 직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남편은 졸지에 실직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배운 기술도 없어 무얼해서 먹고 살지 막막했습니다.

고민 끝에 우리는 농사라도 지을 생각에 시골 시부모님댁으로 내려갔습니다.
살림에 보탬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시댁에 짐처럼 눌려앉은 우리 부부가 못마땅하셨겠지요.
아이를 낳은 다음 날, 나는 미역국을 얻어 먹지도 못한 채,
시어머니 손에 이끌려 농사 일을 하러 나가야 했습니다.
시부모님과 식사할 때마다 따가운 눈총을 받을 뿐만 아니라,
수 없이 욕설도 들어야 했지요.
이런 내가 오죽 불쌍했으면 다섯 살 난 둘째가 엄마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도망가자고 했을까요.
힘들기는 남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아버지는 남편이 밥을 먹고 있으면 등이나 어깨를 때리며 어서 나가라고 구박을 하셨지요.
어느 날은 남편이 너무 괴로워 나무에 목을 맸는데,
그만 줄이 너무 길어서 살아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1985년, 드디어 우리에게도 희망이 보였습니다.
750만원의 농어민 후계자 자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돈으로 어떤 일을 시작할지 한껏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러자 그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시름시름 앓으시더니 병원에서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병원비로, 많은 날에는 하루 치료비가 50만원 가까이 나왔습니다.
결국 750만원을 다 쓰고도 치료비가 모자라 우리는 여기저기 빚을 내 가면서 돈을 마련했습니다.
시어머니 말만 듣고 온갖 험담으로 나를 흉보시던 시댁 식구들은 어머님이 병에 걸리자 보이지도 않더군요.
그동안 우리는 몸에 좋다는 선약을 구하러 방방곡을 찾아 다녔고,
아기를 등에 업고 과수원에서 달팽이를 잡아 시어머니께 삶아 드리기도 했습니다.
날마다 돌절구에 잡곡을 찧어서 죽을 쑤어 드린 끝에,
2개월을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됐던 시어머니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의사 선생님들도 모두 기적이라고 입을 모으셨지요.

그 뒤 우리는 엄청난 빚을 갚기 위해 새벽부터 밭에 나가 고추와 열무를 심는 등
밤낮으로 채소를 가꾸었습니다.
하루는 배추를 트럭에 싣고 서울로 올라 가던 중 교통사고가 나 남편과 두 딸..
그리고 농사 일을 도와준 여동생까지 죽을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악착같이 일하며 빚을 거의 갚아 갈 즈음, 남편은 젖소를 키워 보자고 했습니다.
시설자금 지원을 받아 만삭의 젖소 열두 마리를 샀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난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우유를 짜낼 수가 없어 모두 헐값에 되팔아야 했습니다.
빚은 배로 늘어 났고, 나는 축사 모퉁이에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후 나는 낙농에 관한 책을 사서 일고 또 읽었습니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다시 소를 사 들여서 철저히 관리하니 조금씩 살림이 나아졌습니다.
그리고 몇년 뒤 새집으로 이사하는 기쁨도 누릴수 있었습니다.
삶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더니 얼마 안 가 또 다시 불행이 찾아 왔습니다.
소들이 결핵과 유방암에 걸리는 바람에 결국 다 잃고 말았지요.
하지만 나는 오똑이처럼 일어나 다시 시작 할 것입니다.
절망 속에 또 다른 절망이 웅크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판도라의 상자 맨 밑바닥에 희망이 있었듯이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찬란한 빛을 볼 수 있겠지요.
앞으로도 나는 그럼 마음 가짐으로 꿋꿋하게 살아가렵니다.
첫댓글 눈물이 핑도네요 우리 주위에 이렇케 힘든 분이 계신다니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겠지요
판도라 상자속의 희망은 마지막 순간에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그 순간이 내일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지라도 그리 믿고 싶군요. 내일의 태양이 어김없이 떠오르기에 우린 내일을 또 기다리며 힘든순간을 참고 또 기다리기도...감사합니다.
글속에 뼈아픔 사연이 소설로 끝났으면 좋을까 싶네요 .현존하는 사실이라면 희망과꿈은 향상 곁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두들이면 열릴것이다 .그러면 찬란한 영광에 빛을 볼것입니다 .서로 슬픔을 나누는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오늘 아침에 문득 초원의 빛이 떠 오르더군요." 한 때는 빛나던 그 영광이 이젠 영영 살아졌는가. " 삶도 리듬을 타는 것 같아요. 산을 오르면 내리막이 있고, 또 다시 산등성이가 나타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