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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燒紙)
이 창 동
“할머니, 할머니. 큰일 났어.”
타는 듯이 붉은 갑사(甲紗)* 옷감에 오래도록 눈을 박고 있어서인가, 바느질감을 손에서 놓고 고개를 든 그녀는 눈앞이 휑하게 비워지는 듯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우리 아파트 앞에 수상한 사람이 와 있어. 수상한 사람이 삼춘 잡으러 왔어.”
그녀는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베란다를 타 넘고 들어온 햇살이 아이의 등 뒤에서 바늘 끝처럼 눈을 찔러왔던 것이다. 아래층에서부터 한달음에 뛰어와 가쁜 숨을 씨근대는 아이의 얼굴은 어두운 그림자처럼 눈앞에서 어른거리기만 할 뿐 얼른 시선에 잡히지 않았다.
“……그기 무신 소리고?”
“나보고, 너 402호에 살지 하고 묻더니, 니네 아빠 이름 김성국이지. 그러구, 니네 삼촌은 김성호지 하고 물었어. 그러더니 삼춘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묻잖아. 이리 와 봐, 할머니. 베란다로 내다보면 보인단 말야.”
아이가 홍분해서 그녀의 팔을 잡아 일으키고는 먼저 베란다로 달려가 쇠난간 사이로 눈을 붙였다. 세발자전거만 끌어도 따글따글 소리가 날 만큼 온통 시멘트로 덮인 아파트 길바닥에는 그러나 초가을 오후의 약간 기운 햇살이 눈을 쏘고 있었을 뿐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너 거짓말했제? 늙은 핼미 놀릴라꼬.”
“거짓말 아냐, 진짜야. 아까까지 있었단 말야. 그 사람 형사가 틀림없어, 할머니.”
“벨소리 다 한다. 형사가 와 오노. 누가 무신 죄가 있다꼬.”
“어떤 애가 그러는데, 그 사람 주머니에 수갑 들어 있는 거 봤대. 수갑이 뭔지 알아, 할머니?”
“암만캐도 우리 식이가 테레비를 너무 많이 봤는갑다.”
그녀는 버릇처럼 바느질감을 끌어당겼다. 그러나 베란다 아래로 얼핏 내려다본 아파트 길바닥의 부신 햇살이 눈이 아리도록 박혀 사라질 줄 몰랐다. 참말로 벨일이대이, 그녀는 속으로 혀를 찼다. 연탄가스에 취한 것처럼 사정없이 뛰기 시작한 가슴이 두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눈앞에 어둡고 깊은 구멍이 뚫린 듯했고, 자신의 몸이 그 속으로 가무룩하게 빠져드는 것 같았다. 그녀가 놀란 것은, 자신을 집어삼키는 그 아득한 두려움이 오랜 세월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그러나 한 번도 자신의 몸 한구석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처럼 너무나 생생하고 낯익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거봐, 할머니, 그 사람인가 봐.”
그때 초인종이 울렸고, 아이가 겁먹은 얼굴로 그녀에게 매달렸다.
“누구로?”
꽉 작긴 목안옛소리로 물었으나 대답이 없였었다. 문은 잠겨 있지 않은데도 연거푸 초인종만 울려댔다. 그녀가 현관문의 렌즈 구멍에 눈을 붙이고 들여다보려 할 때에야 문이 비시시 열렸다.
“할마씨가 죽었나 살았나.”
열린 문 틈으로 낯익은 허여멀쑥한 얼굴이 웃고 있었다.
“내가 못 올 데를 왔나. 와 산 사람을 송장 보듯 하노.”
아닌 게 아니라 문을 열고 나타난 얼굴이 시누이가 아닌 다른 누구라 하더라도 그렇게 놀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 달이면 두어 번은 찾아오는 시누이이지만, 입 한쪽이 흘러내리듯 헐거운 웃음을 띠고 있는 시누이의 얼굴은 오늘따라 이승의 것 같지 않게 섬뜩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아이고 형님도. 안죽도 이런 걸 들고 앉았나.”
방바닥에 두 다리를 뻗치고 퍼질러 앉으며 발치에 널린 바느질감을 보고 시누이가 말했다. ’
“이웃집에서 며느리 보는 혼수 옷이라고 부탁을 하길래 놀고 앉았으모 뭐 하나 싶어 들고는 앉았네만.”
“인제는 이런 궁상 안 떨어도 되겠구만. 성국이 체면도 있고.”
“안 그래도 성국이가 보믄 야단이 난다네. 인젠 늙어빠져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걸 며칠째 손때만 묻히고 있고마는.”
큰아들은 그녀가 바느질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 이십 년을 계속 해오던 삯바느질을 그녀는 이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그만두었다. 그러나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가끔 옷감을 들고 찾아오는 이웃이 있었다.
“와 큰방에 기시지 않고. 넓고 밝은 델 놔두골랑 이런 콧구멍 같은 데서 무신 바느질을 한다꼬. 손가락에 실 꿰겠네, 원.”
사실 그녀도 이 방이 관 속처럼 어둡고 답답하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그녀가 거처하는 작은방은 창문이 조그맣게 서향으로 나 있어서 늘 침침하게 어두운 편이었다. 그녀는 그 방을 둘째아들인 성호와 함께 쓰고 있었다. 13평의 좁은 공간에 아흡 자 여섯 자짜리 방 하나와 마루, 부엌을 쪼개어 내었고, 거기에다 그저 입내*로 조그맣게 붙은 방이라 낡은 옷장 하나와 대학에 다니는 성호의 책을 놓고 나자 모자가 돌아누울 틈도 없었다.
그녀는 며느리가 집을 나간 뒤로 큰방을 거의 쓰지 않았다. 그곳에 있으면 베란다로 난 넓은 문으로 햇살이 막힌 데 없이 쏟아져 들어와서 한결 속이 트이는 듯했지만, 성국이 출근하고 없는 낮 동안에도 그 방에선 엉덩이를 붙이지 않으려 했다. 며느리가 없는 방에 앉아 며느리의 손때가 묻은 화장대며 이불장 같은 세간들을 보고 있기가 싫었던 것이다.
“이눔 새끼야. 니는 우째 나만 보믄 피하노.”
시누이는 아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자 고모할매한테 와봐라. 촌수가 달라서 그렇제 고모할매도 할매대이.”
그러나 아이는 제 할미의 치마꼬리만 쥐고 있을 뿐, 걸음을 떼려하지 않았다. 낯가림을 하는 아이는 아닌데, 이상하게도 제 고모할미만은 싫어하고 무서워했다. 시누이가 손가방을 열었다.
“이거 보이제? 우리 식이, 고모할매가 한분 안아보자. 빨리 오믄 이 돈 준대이.”
그제야 아이는 비척비척 다가갔다. 돈을 받아들고 제 고모할미에게 안겨서도 쓴 약을 삼키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시누이가 뺨에 얼굴을 들이대고 쩍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자, 아이는 입이 찢어져라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 수상한 사람이 있다고 떠들어대던 일은 까맣게 잊었는지 아이는 돈을 쥐고 신이 나서 뛰어나갔다. 계단을 쩌렁쩌렁 울리며 멀어지는 아이의 고함 소리에 귀를 맡기고 있다가 시누이가 입을 열었다.
“안죽도 소식이 없는 모양이제?”
“요새 젊은 사람들은 참 알 수가 없네. 저런 자식을 내던지 놓고 우째 잠이 지대로 오까. 무신 호강할 일이 있다꼬.”
시누이는 소리 내어 혀를 찼다. 며느리는 성국이 일 년 남짓 지방근무를 가 있는 동안 사귀었다며 데리고 들어온 여자였다. 밥을 대어먹던 부산의 어느 식당집에서 알았던 모양인데, 이미 배가 볼록하게 불러 있었다. 그녀는 기가 막혔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없는 살림에 절차 없이 들어와 살 며느리를 얻은 게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 이미 배가 부른 뒤라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나 낳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별소리 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몸만 들어온 며느리인지라 이쪽에서 해줄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었다. 아껴두었던 이불 한 채와 큰 방을 내어주고, 성호와 함께 건넌방 거처를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진작부터 집 안에 박혀 오래 살림을 할 여자가 아니었던지, 아이가 젖을 채 떼기도 전에 집을 나간 뒤 지금까지 소식이 없었다.
“그래도 아가 소견이 멀쩡한지 한 분도 지 에미 이야기를 꺼내는 법도 없고…….”
대꾸가 없어 돌아보자 시누이는 어느 틈에 앉은 채로 졸고 있었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턱을 괴고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는데, 이미 정신이 나간 얼굴이었다. 그녀는 혀를 찼다.
“가만 좀 있그라 보자.”
시누이가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남우 집에까지 와서 졸라대모 우짜노. 염치는 무당집 떡자룰세.”
반쯤 벌린 입술을 달싹거리며 중얼대고 있는데, 짜증스런 소리이긴 하지만 제 살붙이에게 하듯 허물없는 감정이 배어 있었다.
“그게 무신 소린가.”
바늘귀에 꿰었던 실 끝이 자꾸 어긋나기만 해서 침침한 눈을 꿈벅거리고 있자, 어느새 깨어났는지 바늘을 빼앗아 드는 시누이를 항해 그녀가 물었다.
“자네한테 뭘 졸라대기에 그러노.”
“밥 달라꼬 그러잖나. 걸구신들이라 따라댕기며 졸라대는 통에 귀찮아 죽을 지경이대이.”
실 끝에 침을 묻히며 시누이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버릇없는 제 자식 얘기하듯 했다.
“묵어도 묵어도 만족을 모르이 우얘노. 밥 풀라고 주걱을 들고 앉았으모 엉머구리* 떼맹키로 몰려드는 통에 얼매나 성가신동 말도 못하제.”
시누이가 이상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삼 년 전부터였다. 죽은 사람의 혼백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귀신들이 산 사람과 다름없이 똑똑하게 보이고, 수작도 걸어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시누이는 때 없이 졸기를 잘했다. 밤낮 가리지 않고 더위 먹은 닭처럼 비실비실 앉아 있으면 앉은 채로, 누워 있으면 누운 채로, 심지어 길을 가다가도 졸았고 잠꼬대 같은 헛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럴 때가 귀신들과 수작을 나눌 때라고 했다.
세상에 웬 귀신이 그렇게 많은지 아침에 일어나 부엌문을 열면 부뚜막에 귀신들이 빼꼭이 앉아 있고, 변소문을 열어도 귀신들이요, 대문을 나서도 귀신들이 발길에 차일 듯이 에워싸고 장난질하며 따라 다닌다는 것이었다. 밤에는 머리맡에 몰려 앉아 있어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고 했다. 못 견디는 것은 본인뿐만 아니었다. 밤중에 자다가 보면 두런두런 얘기를 하고 있거나, 젖 투정하는 어린애에게 하듯 짜증을 내거나 해서 자식들도 제 어미 곁에서 자기를 꺼려했다.
기도원이란 데를 들어가서 일주일 동안 금식 기도도 했고, 요양원에도 가 있어봤지만 차도가 없었다. 병원에 얼마간 입원을 하기도 했지만, 의사들은 병 명조차 제대로 대질 못했다. 언젠가 미아리고개에 용한 무당이 있다고 해서 불러다 굿을 하려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 무당이 방 안에 들어서서 자리보전을 하고 누워 있는 시누이를 바라보자 대뜸 한다는 소리가 “나 굿 못해여”였다. 왜 그러냐니까 “나보다 더한 무당인데 내가 그 병을 어떻게 고쳐” 하고는 쫓기듯 가버리더란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못 견뎌하던 시누이 자신이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눈앞에 보이는 헛것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대하게 된 것이었다. 몸은 여전히 부대끼는지 잦아들 듯 자주 졸음에 빠지곤 했지만, 이젠 그 귀신들에게 산 사람 보득 익숙해진 것이었다.
“참 내 정신 보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형님, 오늘은 내가 꼭 할 말이 있어서 왔다.”
“무신 말인데?”
“근데 우선 내 말을 꼭 믿어야 한다. 안 믿을라믄 나 말 안 할란다.”
“답답하기는. 무신 이야긴지 들어봐야 믿고 안 믿고 할 거 아닌가.”
시누이는 선뜻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래도 오늘 따라 시누이의 태도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눈빛부터가 뭔가 흥분해 있는 듯 이상스레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왠지 아까부터 자신을 감싸고 있던 아득한 두려움 같은 것에 가슴이 떨려왔다. 눈이 시리도록 화사한 옷감의 빛을 받은 허여멀쑥한 시누이의 얼굴은 진하게 분바른 늙은 무당의 그것처럼 섬뜩하게 느껴졌고, 그 입에서 무슨 불길하고 무서운 이야기라도 시작할 것 같았다.
“나 어젯밤 오라부지 만났대이.”
한참 만에 무슨 점괘라도 읽듯이 시누이가 입을 열었다. 자칫하면 알아듣지도 못했을 낮은 목소리였다. 그 말이 무슨 뜻인가를 깨닫기 전에 먼저 눈앞이 아득해지고 손이 떨려오면서 그녀는 바느질감을 바싹 끌어 당겼다.
“오라부지라이?”
“이년한테 오라부지가 어디 또 있는가. 내 오라부지믄 형님하고는 촌수가 우째 되제.”
“무신 소린지 모루겠네.”,
“어젯밤에 오라부지가 날 찾아 안 왔나. 귀신 되어서 왔더라. 세상 뜬 지가 벌써 삼십 년도 넘었다 카데.”
“참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삼십 년이 넘도록 뜨신 밥 한 그릇 못 얻어묵고, 남의 집 제사상 찾아다니미 동냥밥 한술씩 얻어묵었다 안 카나.”
바늘을 쥔 손을 제대로 놀리려고 애를 썼지만 번번이 허공만 찔러댔다. 뭐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입을 열 수가 없었고, 손은 자꾸만 떨려왔다. 시누이는 느릿느릿 아무 감정도 억양도 없이 계속 지껄였다.
“니 올케한테 이얘기해서 그저 밥 한 그릇에 숟가락 하나 걸쳐 놔달라 캐라, 내 부탁일다…… 그라더라. 모르문 몰라도 그런 말 듣고 우째 가만있겠노. 형 님, 오늘이라도 당장 제(祭) 를 지내야 안 될라.”
“제는 무신. 공연한 소리 말게.”
입 안이 바싹 타들어 가는 것 같아서, 그녀는 간신히 말을 뱉어내었다. 시누이가 공연히 이야기를 꾸며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시누이는 전에도 몇 번 행불〔行方不明〕*로 올라 있는 호적을 고쳐 사망신고를 하고 제사를 지내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그녀는 번번이 거절해왔다.
“형님, 제발 부탁일다. 어젯밤에 내가 오라부지한테 철석겉이 약속을 했다. 형님한테 이얘기해서 제사 지내겠다고.”
“자네가 헛거를 봤제. 자네 눈에 보이는 기 헛거라는 걸 와 모리는고.”
그녀가 냉랭하게 말을 받자, 시누이는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갑자기 그녀는 입 한구석이 무엇으로 찔리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다.
입 안 오른쪽 가장 깊은 곳에 하나 남아 있던 어금니일 것이다. 지난봄 왼쪽 어금니가 빠지고 난 뒤 음식을 씹을 때면 아쉬운 대로 그놈이 미덥고 든든했는데, 이제 그것마저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나씩 썩어 부스러져 가면서 이빨들은 잊어버릴 만하면 쑤셔왔다. 이빨이 빠지면 통증도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또 어느 샌가 새로운 통증이 시작되는 것이다.
“안 그래도 오라부지가 그러대…….”
한참 만에 시누이는 남의 것처럼 거칠고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천고만고에 니 올케겉이 모질고 박절한 사람 없을 끼다. 아무리 없이 살아도 그래 개다리소반에 젯밥 한 그릇 못 올린다 말이가. 귀신 박대하모 집안 망하는 줄도 모리나.”
비록 남편의 말을 빌려서 하고 있긴 하지만, 시누이 자신의 가슴 어느 구석엔가 파묻어 두었던 말을 내뱉는 것이 틀림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 툭상스러운* 말투는 마치 그녀가 처음 시집을 갔을 때 공연한 일로 시비를 걸고 골을 부리던 그 여드름투성이의 열여섯 살 난 처녀 때와 같았다. 그녀가 아무 대꾸도 않자, 시누이가 다시·입을 열었다.
“어미는 글타 치고, 아 새끼는 와 그 모양인고. 나이가 그만하고 인자 성인이 됐으모 지 애비 우찌됐능가, 죽었능가 살았능가 생각해볼 때도 됐구마는.”
“성국이 욕하지 말게. 내가 못하게 했는데 아가 무신 죄가 있고. 지 아부지 제사는 안 된다꼬 내가 벌써부터 못 박아논 기라.”
“글씨 말이다. 성국이가 얼매나 진실하고 효심이 깊은 놈인데.”
시누이가 그녀의 눈치를 살피더니 금세 목소리를 풀어서 말했다.
“그래서 내가, 아이고 오빠, 그거사 참 애문 소리시더. 세상에 우리 형님이나 성국이 겉은 이도 없니더. 형님은 이날 이때꺼정 오빠가 이 하늘 밑 어딘가에 살아 계시거니 생각하고 있잖니껴. 오빠가 이승 사람 아닌 줄 알고서야 우째 그랬겠니껴. 돌아가신 아부지 어매 제사도 한 분 안 거르고 지내는데.”
“하여튼 쟈들 듣는데 그런 말 입 밖에도 꺼내지 말게.”
“나는 형님이 와 고집을 부리는지 도무지 모르겠대이. 오라부지가 대구 형무소 앞에서 도라꾸*에 실리서 떠날 때 우리가 가서 만났지 않능가. 그때 도라꾸 타고 떠났던 사람들 한구뎅이에서 다 죽었다는 소문도 나중에 들었고.”
“만나기는 누굴 만나. 사람들이 형무소 앞에 몰리서 서로 지 서방 지 자식 찾느라고 밀치고 소리소리 질러대는데 자네나 내나 무신 정신이나 제대로 있었나. 얼굴이 길고 턱끝이 뾰족한 사람이 얼핏 보이길래 성국이 아부지요, 하고 소리 질러도 돌아보지 않던데. 안죽도 나는 그 사람이 긴지 아닌지 몰라.”
“안죽도 내 말을 못 믿나. 어젯밤에 내한테 찾아왔을 때 오라부지는 국방색 바지에 긴팔 와이샤쓰를 입고 있었대이. 마지막에 입고 나갔던 그 옷이 맞을 거로. 바지에는 허리띠도 없고, 와이샤쓰는 때가 묻은 건지 피가 묻은 건지 새까맣기 얼룩이 져 있고.”
“지발 그 입 좀 다물지 못할라!”
자신도 모르게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바느질감을 옆으로 밀쳐버리고는 쓰러질 듯 벽에 몸을 기대었다. 바늘을 물고 있는 것처럼 이빨이 사정없이 쑤셔 왔다.
“내사 무신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고마는. 지 오래비 잡아묵은 년이라 캐도 좋고.”
시누이가 넋두리하듯 훌쩍 거렸다. 땀인지 눈물인지 번질거리는 눈두덩을 손수건으로 연신 찍어눌렀다. 저 나이에 아직도 눈물이 남았나 싶어, 그녀는 혀를 찼다. 삼십여 년 동안 미우나 고우나 서로 의지하며 살았고, 지지리 고생 끝에 이제 밥술이나 뜰 만하니까 정신까지 온전치 않아 밤낮으로 귀신들에 둘러싸여 사는 시누이이지만 가끔씩 이렇게 속을 뒤집어놓을 때가 있었다.
사변 나기 한 해 전 봄인가 시누이는 혼인을 했는데, 하필이면 그 상대가 경찰관이었다. 시부모가 돌아가시자 그녀는 남편을 따라 고향인 안동을 떠나 대구 대봉동 방천둑 곁에서 방 한 칸을 얻어 살고 있었다. 오랜만에 시집살이를 벗어나 따로 살림을 내었지만 남편은 거의 집을 비우다시피 했고, 대신 고향에 있던 시누이가 양말 공장엔가 취직을 하겠다고 올라와 있었다.
나간다는 공장에는 가지 않고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시누이는 매일 밖으로만 나돌아 다녔다. 아침부터 숱 많은 머리를 감고 세수하는 데만 두 시간은 걸렸고. 다시 거울 앞에 앉아서 분 바르고 입술연지를 칠했다 지웠다 하면서 한바탕 법석을 떤 뒤에야 집을 나서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렇게 야단스럽게 차리고 나가서 몰래 만나던 상대가 그 경찰관이었던 모양이었다. 키는 작았지만, 눈매가 가늘게 찢어지고 어깨가 딱 벌어져서 남자다운 데가 있는 사람이었다.
경찰이라 해서 나쁘다 할 이유는 없었다. 어떤 의미로는 가까운 곳에 경찰관 한 명쯤 있어서 결코 해로울 것이 없는 세상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녀는 그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인 줄로 알았던 남편이 나쁜 사상을 가졌다 해서 늘 경찰에게 쫓겨다녀야 하는 신세라는 것을 결혼 후에야 알았다.
그러나 그녀가 보기엔 남편은 그저 평범하고 차라리 감정이 여린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보도연맹 (保導聯盟)*이란 데에 가입하고부터 남편은 더 이상 쫓겨다니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시누이의 남편을 누구보다도 고맙게 생각했다. 남편이 보도연맹에 가입하도록 권유하고 일을 봐준 사람이 바로 시누이의 남편이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자네가 무신 죄가 있다고 그러나. 다 팔자소관이제.”
“와 죄가 없노. 구천에 가서도 못 갚을 죄가 많제. 오라부지 잡혀가게 한 것도 서방 잘못 만난 이년의 죄고. 저 불쌍한 성호한테 죄를 지은 것도 이년이고.”
“참 벨일이대이. 성호 이 얘기는 와 끄집어내는고.”
“내가 그 천하에 날강도 겉은 사기꾼만 만나지 않았더 라도…….”
“어허 참!”
그녀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머리가 어질어질한 것이 아파트의 구석방이 풍랑에 떠내려가는 일엽편주*이기나 한 것처럼 심한 멀미 같은 것을 느꼈다.
“형님 제발 부탁일다. 어데 가까운 절에라도 가서 제를 올리주자. 조우*라도 태우미 극락왕생 빌어주모 오라부지도 얼매나 좋아하실로.”
“인자 이야기 다 했으문 돌아가 보게. 애비가 퇴근할 때가 됐으이 더 붙들지도 못하겠구마는.”
그녀는 바느질감을 걷어치우며 잘라 말했다. 기가 막힌 듯한 얼굴로 할 말을 잃고 쳐다보다가 마침내 시누이가 일어섰다. 갑자기 더 늙고 지친 얼굴이 된 것 같았다. 시누이가 막 문을 열고 나가려 할 때 그녀가 말했다.˙
“우리 성호는 저그 아부지 닮았대이. 누가 뭐라 캐도 성호는 저그 아부지 천생으로 닮았는 기라. 자네도 그걸 꼭 명심하라꼬.”
말을 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가 떨려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성호는 원래가 하관이 빨고* 턱끝이 뾰족한 얼굴인데 요즈음은, 아니 군대에 갔다 오고부터는 광대뼈까지 불거져 더 야윈 얼굴이 되었다. 제 형하고는 딴판인 얼굴이었다. 큰놈인 성국은 입을 꽉 다물면 양쪽 볼에 밤톨을 깨문 듯이 턱뼈가 튀어나오는 것이 차라리 그녀 자신을 닮았는데, 작은놈은 어릴 때부터 선이 길고 가름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성호는 너그 아부지 닮았다. 너그 아부지 우째 생겼나 궁금하거든 니 동생 보믄 된다. 참말로 씨도둑은 없다 카더이 닮아도 닮아도 우째 그리 닮겠노”라고 큰놈에게 입버릇처럼 되뇌이곤 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닮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그것이 놀라움이 라기보다는 두려움이었다.
“헛거를 보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형님이요. 언제까지 자식을 속이고 자기 자신까지 속이미 살라능고.”
시누이가 그 말을 뱉어놓고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나 그녀는 벽에 몸을 기댄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어디선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손주 아이의 소리가 아닌가 하여 그녀는 귀를 모았다. 이빨의 아픔은 점점 더 날을 세우고 있었다. 그녀는 그 아픔의 끝이 몸 안 아주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아픔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문득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것은 이미 감각을 잃어버린, 삼십여 년 동안의 두꺼운 굳은살을 덮어쓴 어떤 아픔의 기억을 날카롭게 일깨운 것이었다.
그러니까 삼십여 년 전 그날 저녁에도 그녀는 이빨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사변이 터졌다는 소식과 함께 전세가 점 점 급박해져 간다는 소문으로 뒤숭숭하던 그 며칠 동안 그녀는 지독한 이앓이에 시달리고 있었다. 성국이를 배고부터 시작한 이앓이는 날이 갈수록 더 심해졌지만, 진통제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은 때라 그저 제풀에 물러가기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녀는 달구어진 바늘 끝으로 찔리는 듯한 그때의 아픔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좁은 마루 끝에 앉아 그렇게 아픔을 참고 있을 때였다. 담 밖으로 수상스러운 발소리가 들리더니, 나무판자로 된 문을 누군가 세차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일어나 다락문으로 붙어 섰다. 사변이 터졌다는 소식이 있자 남편은 다시 불안에 쫓기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바깥에 누군가 찾아온 기척만 나도 다락으로 뛰어 올라가는 것이었다. 캄캄하고 좁은 다락은 뒤쪽으로 장정의 허리통이 겨우 빠져나갈 만한 조그만 들창이 있어서 그것을 통해 옆집의 지붕 위로 기어 나갈 수가 있었다. “형님 계세요? 나예요, 나.” 검게 콜타르칠한 판자담 너머로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왔고, 아마 다락 속에서 엿듣고 있던 남편의 귀에도 그 소리는 들렸을 게 틀림없었다. 그녀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어깨가 딱 벌어지고 땅딸막한 몸집의 낯익은 모습을 보았다. 그가 목소리를 낮춰 물어왔다. “형님 계시죠?” 채 대답을 하기 전에 그녀는 문 옆 담장에 붙어 선 두어 사람의 윤곽을 보았고, 동시에 다락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녀는 온몸을 경련하듯 떨고만 있었을 뿐 소리를 지를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그 어둠 속의 그림자들이 한없이 커져서 그녀를 짓눌러오는 것을 가위로 늘린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할머니, 할머니……”
계단을 뛰어오르는 발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아이가 문을 차고 쫓아 들어왔다.
“그 사람이 와. 지금 우리 집으로 오고 있단 말야. 아빠하고 같이……”
시누이가 떠난 뒤 넋을 놓고 앉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미 방 안이 어둑어둑해 있었다.
“내가 뭐랬어, 그 사람 경찰이 틀림없다고 그랬잖아. 아빠가 집으로 들어오는데 그 사람이 아빠한테 김성국 씹니까, 그러더니, 나 이런 사람인데요 하면서 주며니에서 신분증을 척 보였어. 진짜 경찰 신분증…….”
손짓으로 흉내까지 내면서 신나게 주워섬기던 아이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멎으며 문이 열렸던 것이다. 성국의 얼굴이 보였고, 그 뒤로 낯선 사내가 서 있었다.
“실례합니다. 성호 군의 어머니 되시죠?”
“누…… 누구로?”
그녀는 갑자기 힘이 빠져 달아난 듯한 무릎을 두 손으로 붙들고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아들에게 물었다.
“저…… 그러니까…….”
핼쑥하게 창백한 얼굴로 성국이 더듬거리자 사내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서에서 나왔습니다, 할머니 .”
“서라 카모…… 경찰서란 말인데. 대체 무신 일인고…… 우리네사 경찰서하고는 인연을 맺을 일이라꼬 없는데……”
“아무 일도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잠깐 얘기를 드릴 일이 있어 왔으니까요. 이게 성호 군의 방인가요? 좀 들어가 봐도 괜찮겠습니까?”
대답도 듣지 않고 사내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찌른 채 방 안을 둘러보고는 성호의 책상으로 가 손에 잡히는 대로 책 한 권을 빼내어 들으란 듯이, “우리네야 이런 어려운 책은 알 수가 있어야지” 하며 건성으로 책장을 넘겼다.
“대체 무신 일로 오신지는 몰라도, 우리 성호는 참말로 착한 놈이시더. 책 보는 취미밖에는 없니더. 어릴 때부터 누구한테 맞고는 들어와도 때릴 줄은 모르는 놈이었다꼬요.”
“요즘은 너무 착해도 탈이에요. 책을 너무 봐도 탈이고요. 자아 김 선생. 잠깐 얘기 좀 할까요?”
성국이 사내를 데리고 큰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더니, 곧 다시나와 그녀를 부엌으로 불러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어머니, 전번에 양주 한 병 갖다둔 거 있죠? 그걸로 술상 좀 보세요. 과일도 좀 깎아놓고.”
“대체 무신 일이고? 성호가 무신 일을 저질렀는갑제?”
“걱정마세요. 별일 아니니까.”
“별일 아닌데 형사가 와 집으로 찾아오노.”
“글쎄 어머닌 가만계세요.”
그녀는 아들의 눈자위에 하얗게 핏기가 가신 것을 보았다.
할 일을 잊은 사람처럼 그녀는 한참 동안 부엌 싱크대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로지 이빨의 아픔만이 더욱 심해져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은 이빨에 매달린 듯했다. 그것은 이제 단순한 이빨 하나만의 아픔이 아니라 온몸이 커다란 아픔의 덩어리가 된 것 같았다.
그녀는 문득 머리 위로 곤두박질쳐 쏟아지던 삼십여 년 전 그 여름밤의 깜깜한 하늘을 기억해냈다. 남편이 시매부와 함께 온 몇 사람의 억센 팔뚝에 결박되어 가던 그 순간에도 그녀는 견딜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을 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은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예상했다는 듯이 사내들에게 두 팔을 순순히 내어맡기고 있었다.
“곧 무사히 나올 겁니다. 이건 순전히 보호조치니까…… 나만 믿으시고 아무 걱정 마세요.” 시매부가 전에 엾이 싹싹한 말투로 그렇게 말했을 때도 그녀는 마루 밑에 쪼그리고 앉은 채 양손으로 턱을 싸쥐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때 어떻게 알았는지 시누이가 뛰어들지 않았으면, 남편의 그 길을 친구와 잠깐 외출하는 것을 보듯 그냥 그대로 떠나보냈을 것이었다. 시누이는 다짜고짜 제 남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안 된대이. 우리 오라부지 델꼬 가문 안 된대이.” “이거 왜 이래. 여편네가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와 모리노. 다 알고 왔는데 내가 와 모리노. 못 델꼬 간다. 델꼬 갈라모 날 죽이고 가거라.” 시누이는 아예 땅바닥에 드러누워 악을 썼다. 그러면서 몸이 질질 끌리면서도 제 남편의 바짓가랑이는 놓지 않았다. “아이고, 이 일을 우짜믄 좋을꼬. 내가 죽일 년이제. 서방 잘못 만난 이년 때문에 우리 오라부지 죽는갑네…… 이 일을 우짜믄 좋을꼬.” 마침 내 시누이가 발길로 차이듯 그들을 놓치고 나서 땅바닥에 자빠진 채로 악을 쓰며 통곡을 할 때에도 정작 그녀는 마루 끝에 그대로 앉아 떨고만 있었을 뿐이었다. 마치 다른 모든 감각은 죽어버린 듯 그저 이빨의 미친 듯한 통증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하면 아프던 것도 잊어버려야 할 텐데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그 무서움에서 도망치고 싶었는지 몰랐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서 도망쳐 차라리 그 이빨의 아픔에나 매달리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방문이 열린 것은 한 시간이 넘어서였다. 둘 다 얼굴이 벌겋게 되어 있었고, 낯선 사내는 신발을 꿰어신을 때까지 찢은 오징어포를 입에 물고 있었다.
“그럼 선배님만 믿고 갑니다. 좋은 술도 마시고.”
“알고 보니.”
성국이 사내가 내민 손을 잡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술기운이 올라서인지 아들의 얼굴은 아까보다도 좋아 보였다
“이 양반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종종 만나자구. 밖에서 보리술이라도 한잔 하던지.”
“날 종종 만나서 뭘 하시려우. 우리 같은 사람 되도록 안 만나고 사는 게 신수가 편한 거요.”
둘은 똑같은 크기의 소리로 웃었다. 그러나 사내가 나가고 나자, 그녀는 성국의 얼굴에서 웃음이 재빨리 걷히면서 얼굴 근육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보았다.
“미친 자식.”
그것이 방금 나간 형사에게 하는 말인지 제 동생에게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그녀는 다시 가슴이 덜컥했다.
“할머니, 그 사람 갔어. 가는 거 보고 왔어.”
“삼춘은? 삼춘은 아직 안 보이제?”
“넌 쬐끄만 녀석이 밤중에 어딜 돌아다니니? 방구석에 박혀 있잖고!”
아들이 갑자기 고함을 지르자 아이가 놀라 그녀에게 매달렸다.
“아가 무신 죄가 있노. 내가 나가 있으라고 보냈다. 그 사람 있는데 성호가 멋모르고 들어오까 봐. 대체 무신 일인동 알 수가 있어야제.”
“어머닌 걱정하실 것 없다고 그랬잖아요.”
성국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치마꼬리를 붙드는 아이를 떼어놓고 아파트 문을 열고 나왔다. 바깥은 벌써 어두워져서 휑하게 비어있었다. 그녀는 아파트 건물 앞에서 서성대며 큰길 쪽 더 짙은 어둠을 바라보았다.
이제까지 집 안에서는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던 성국이었다. 원래가 말수가 적고 제 속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 성미여서, 제 속으로 나온 자식이건만 서먹하고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어릴 때부터 못 먹고 고생만 하고 자랐는데, 고등학교를 간신히 마치고 사관학교에 응시했다가 떨어지자 대학은 스스로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곧장 공무원이 되어서 지금까지 말단으로 있는 모양이지만, 지금 살고 있는 시영 아파트도 제 손으로 장만했고, 동생을 대학에도 넣었다. 제 처가 집을 나간 뒤에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었는 숙직을 제외하곤 퇴근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 집으로 돌아왔고, 일곱 시 십 분 전철을 타기 위해 아침이면 날이 밝기 전에 집을 나섰다. 식전에 방 안에서 하는 맨손체조도 거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체조를 하는 아들의 모습을 자주 보았다. 어려서 제대로 못 먹여서인지 메리야스 바깥으로 드러난 유난히 마르고 긴 팔을 흔들어댈 때,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붉게 충혈된 얼굴로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것을 볼 때 그녀는 왠지 터지기 직전의 풍선을 보는 것처럼 답답하고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여기서 뭘 하세요?”
깜짝 놀라 돌아보자, 어느 틈에 왔는지 성호가 세상모르고 웃고 있었다.
“인제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니 밖에서 무신 짓을 저지르고 다니노? 집에 형사가 다 오고.”
“그게 정말이요? 지금 안에 있어요?”
“니 형이 술 멕이서 보냈다. 들어가거든 조심해라. 심기가 안 좋으께네.”
“제법 인데요. 앞뒤가 막힌 양반인 줄 알았더니.’:
“니 술 마셨구나.”
“정신은 말짱해요.”
그러고 보니 녀석은 어깨에 웬 라면 상자 같은 것을 메고 있었다. 그것이 무거워서인지 녀석의 발걸음이 조금 비틀대고 있었다.
“도둑질하러 나간 놈겉이 밤중에 뭘 메고 다니노?”
“도둑질이요? 하, 하. 이건 책이요, 책.”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성국이 문간에 버티고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성호는 비틀거리며 신을 벗으려 애쓰면서도 어깨에 멘 상자를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신발에서 발이 뽑히지 않자 그냥 발목을 흔들어 뿌리며 비트적대는 동생의 모습을 팔짱을 낀 채 말없이 보고 있던 형이 상자를 빼앗아 마루 위에 팽개친 뒤, “네 손으로 열어라”고 말했다. 형의 서슬에 눌렸는지 성호가 순순히 상자를 풀었다. 그녀는 상자 속에 든 것이 책이 아니라 금방 인쇄된 글자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어지럽게 펄펄 뛰고 있는 종이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너 도대체 정신이 있는 놈이냐?”
성국이 그중에 한 장을 꺼내어 꼼꼼하게 읽은 뒤에 입을 열었다.
“이해해주십시오, 형님.”
“이해를 해? 이런 걸 겁도 없이 만들고 다니는 놈을 이해하란 말이냐?”
“형님은 이게 무슨 폭발물인 줄 아세요? 이건 그냥 글이고, 생각이에요.”
“넌 폭탄만 사람을 상하게 하는 줄 아는 모양이구나. 폭탄이야 너 한 놈만 끌어안고 자폭이라도 하지만 이건 여러 사람 다치게 한다.”
“형님을 다치게 하진 않을 테니 걱정마십시오.”
“뭐라고?”
“난 그 말이 싫지만, 이게 다치는 거라면 다른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내가 다칠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넌 이 종이에 담긴 생각을 위해서 경우에 따라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로구나.”
“죽을 수밖에 없다면, 또 경우에 따라서는, 죽을 수도 있겠죠.”
“에라, 이 사기꾼 같은 놈아.”
“뭐요?”
“똑똑히 알아뒤. 난 너 같은 놈을 제일 미워해. 알았냐? 너같이 말 잘하는 놈. 말로는 뭣이든 다 하겠다는 놈들. 제 부모 형제 제 새끼에게 피해를 주고 못살게 하면서 입으로는 온갖 고상한 소리를 다 하는 놈들. 무엇을 위해 죽겠다는 놈들. 그런 놈들은 무엇을 위해서 남을 죽일 수 있는 놈니야. 니들은 한마디로 빨갱이야.”
“말씀 함부로 하십니다. 형님!”.
“왜, 빨갱이라고 종자가 다른 줄 아냐? 너나 나나 빨갱이의 자식들이야, 임마. 그러니 니라도 대물림을 해야지.”
“야야, 그기 무신 소리고? 마른하늘에 베락 맞을 소리따. 누가 빨갱이란 말이고.”
“내가 모르는 줄 아세요? 다 알고 있어요. 나가 왜 사관학교에 떨어졌게요. 승진 시험에서 왜 번번이 미역국인 줄 아세요? 그 잘난 아버지 때문이죠. 이념과 사상을 위해서 처자식까지도 헌신짝처럼 미련 없이 던져버릴 수 있었던 그 위대한 아버지 말예요.”
“니가 뭘 알아봤는동 몰라도…… 그, 그기 아니다. 니 아부지가 처자식을 버리다이…… 참말로 죄 받을 소리대이.”
“그렇지 않으면 왜 나타나지 않죠? 아버진 아직도 행불로 되어 있어요. 도대체 어디로 가셨어요? 남들처럼 육이오 때 실종이 된 것도 아닐 테고, 차라리 그게 더 나을 뻔했지만, 적어도 성호가 세상에 나올 때까지는 살아 계셨어요. 그런데 난 한 번도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이 없어요. 내 기억 속엔 아버지에 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단 말예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어디서, 무슨 위대한 사업을 하신 거예요?”
그녀는 무엇엔가 머리를 호되게 얻어맞은 듯 눈앞이 아득해졌다. 뭔가 속에서 휘딱 뒤집히면서 어지럼증이 온몸을 마구 흔들어놓고 있었다. 무슨 말인가 하긴 해야 할 톈데 말라붙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그 입이 떨어져 자신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견딜 수 없는 무서움에 빠지고 있었다.
자유당 말기의 한창 어수선하던 때였다. 어느 날 시누이가 오라버니가 살아 있다고 흥분해서 찾아왔다.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 만날 수도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그녀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남편이 그렇게 끌려가서 행방불명이 된 뒤 시누이는 때도 없이 곧잘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어디 가서 점을 쳐보았더니 틀림없이 살아 있다더라, 어떤 도사가 그러흔데 다른 여자와 새장가를 들어 어디어디에 살고 있다더라는 등 별소리가 다 있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어떤 사람이 남편의 전갈을 갖고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가까운 곳에 숨어 있는데 직접 올 처지가 못 되니 모일 모시에 만나러 오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돈 이십만 환을 준비해 오라고 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겐 절대 비밀로 해야 된다고 했다. 그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무슨 귀신이 씌어 믿게 되었는지 그녀는 어렵사리 구한 이십만 환을 신문지로 싸고 다시 보자기로 찬찬 묶어서 가슴에 품은 채 시누이와 함께 그 남자를 만났다. 그 후에 아무리 기억을 하려고 해도 약간 매서운 듯한 눈매와 별로 말이 없으면서도 간간이 내비치는 북쪽 사투리 외에 이상하게도 도무지 윤곽이 잡히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를 따라 대구 근교의 동화사 입구까지 갔다. 초겨울이라 날씨가 매우 추웠다. 사내가 시누이는 남아 있어야 한다고 해서 절 입구의 어느 식당에 기다리게 하고 그녀만 따라 나섰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뭔가 감추는 듯하고 남의 눈을 조심하는 태도가 의심 없이 따르게 했는지도 몰랐다. 밤바람에 솔숲이 무섭게 울어대고 있었다. 그녀는 시종 이빨을 소리 내어 떨면서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걸어가는 사내를 놓치지 않으려고 몇 번이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야 했다. 인적이 없는 숲 속으로 따라가면서 그녀는 점점 목에까지 차오르는 무서움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어데 계시니껴, 어데…… 그녀가 막 그렇게 소리쳤을 때 그 사내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 또 한 사람의 그림자가 천천히 일어서는 것을 보았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 그것은 남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뭔가 목구멍을 꽉 틀어막고 있는 것 같았고 두 다리는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녀에게서 쉽게 돈을 빼앗아갔다. 아주머니같이 착한 사람들이 있어야 우리네가 먹고살지……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라요. 억센 힘이 그녀의 허리를 꺾었을 때, 그녀는 비로소 소리치기 시작했다. 커다란 손바닥이 입을 틀어막았고, 옷이 거칠게 찢기는 소리가 났다. 왜 이러시나, 재미 좀 보자는데. 사내의 입김이 얼굴을 훅훅 쏘았다. 듣자 하니 과부라는데 잘됐지, 뭘. 솔바람이 시종 몸서리치며 울어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자신의 숨이 곧 끊어져서 이 모든 것에서 놓여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니가 뭐를 잘못 알아도 크게 잘못 알고 있대이. 니 아부지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이따.”
그녀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에미는 이날 이때꺼정 니 아부지 기다리미 살아왔다. 우짜든동 어데든동 살아 계시겄제 하는 그 희망으로 살아왔대이.”
“내겐 아버지가 없어요. 아버지란 사람이 지금 당장 살아서 저 문을 열고 걸어 들어온다 해도 난 일없어요. 난 사관학교 떨어지고, 대학 포기하고, 동사무소 서기 하면서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내 손으로 아버지를 파묻어 버렸어요.”
“참 대단하시군요.”
그때까지 목뼈가 부러진 듯이 무릎 사이로 고개를 처박고 있던 성호가 번쩍 얼굴을 쳐들었다. 형을 바라보는 눈이 쇠꼬챙이처럼 날카로웠다.
“형님이야말로 무엇이든 죽일 수 있는 사람이군요. 사관학교를 위해, 승진을 위해 모든 것을 아버지까지도 죽일 수 있는 사람이군요.”
“뭐라고, 이 새끼야.”
성국이 벼락같은 소리로 동생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너 말 잘했다. 아버지를 죽일 수 있는 놈이 너 하나 못 죽이겠냐? 너 나한테 죽어봐라.”
말려야 한다는 생각뿐, 그녀는 온몸이 풍이라도 걸린 듯 와들와들 떨려왔다. 그리고 그녀는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했던가를 알았다. 그녀는 문득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한쪽 벽에 쪼그리고 앉은 채 눈을 감고 두 손으로 힘주어 귀를 막고 있었다.
“야아들 애 이ㅡ”
갑자기 그녀의 입에서 느닷없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자신의 입을 통하여 무엇이, 저 배 속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는 오장 깊은 곳에서부터 견딜 수 없이 뒤틀리며 뻗쳐오르려고 애쓰던 것이 순식간에 튀어나와 버린 것을 깨달았다. 아들놈들이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보았다.
“싸워래이. 치고 박고 물어뜯고 싸워래이. 한 놈만 죽을 기 뭐 있노. 니 죽고 내 죽고 다 죽어쁠 때까지 싸워래이. 에미 애비가 어딨고, 형제가 어딨노. 요놈들아 와 그래 앉아 있노. 힘이 모자라나 미움이 모자라나. 싸워래이, 얼릉 싸워래이一”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자신은 넋을 놓고 앉아 있는데 자신의 속에서 무슨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것이 저절로 빠져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다 빠져나왔을 때, 그녀는 속이 텅 비어버린 것처럼 허전했다. 방 안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문득 작은놈의 어깨가 허물어지더니 낮은 흐느낌 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어깨의 움직임과 흐느낌이 점점 격렬해지면서 걷잡을 수없이 커져가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았다. 성국이 쩝 혀를 차며 담배를 피워 물었고, 그것이 신호인 양 성호가 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울음을 그치지 못한 채로 거칠게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현관문이 아들의 뒤에서 요란하게 닫히는 소리가 무거운 정적으로 가라앉을 때까지 그녀는 미동도 않고 앉아 있었다. 아이가 그녀에게 울먹이며 다가왔다.
“할머니, 삼춘 어디 가, 응?”
“식아, 니 할매하고 이거 들고 나가자.”
그녀는 착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제깐에도 무슨 눈치를 아는 듯 아이는 상자를 문밖으로 끌고 나서는 그녀를 순순히 따라왔다. 그러나 상자는 늙은이와 여섯 살 난 아이가 들기엔 너무 무거워서 사 층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에 몇 번이고 쉬어야 했다.
밖은 캄캄하게 어두웠고, 바람이 아파트 앞 광장을 쓸며 지나갔다. 아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아파트 뒤쪽에 있는 공터를 생각하고 있었다. 되도록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어야 했다. 이빨은 여전히 쑤셔왔지만, 늙고 지친 잇몸은 이제 감각을 잃었는지 아픔조차 무디어진 것 같았고, 반쯤 뿌리가 뽑힌 이빨은 녹슨 못처럼 헐거워져서 혀끝에 닿을 때마다 흔들거렸다. 마른 잡초가 발목을 찌르는 아파트 뒤 공터에 오자 그녀는 상자를 풀고 그 속에 가득 담긴 종이들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쏘서개 삼아 몇 장의 종이를 쌓아 올리고 성냥불을 그어댔다.
불길은 금방 살아 올랐다. 종이는 가장자리에서부터 거멓게 타기 시작했다. 흰 종이에 선명하게 찍힌 검은 글자들은 불길 속에 먹혀들어가 몸을 뒤틀고 비명을 질러대면서도 결국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는 그 글자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마치 오랜 세월을 두고 벼르던 일을 이제야 하는 것 같은 후련함이 있었다.
그날 밤 사내들에게 욕을 당하면서 그녀는 그저 죽는 것만을 원했었다. 그처럼 끔찍하고 무서운 순간에 저절로 숨이 끊어지지 못하는 질기고 더러운 목숨이 한심하고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을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남편의 체온을 너무나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등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남편은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그녀는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남편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남편이 보도연맹에 들어가고부터 그들은 처음으로 안정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남편은 금융조합에 직장을 구했고, 출퇴근을 위해 자전거도 마련했다. 어느 날 저녁 그녀는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보았다. 한사코 타지 않으려는 그녀를 남편은 허리를 가볍게 안아 뒷자리에 태우고 방천둑으로 나갔던 것이다. 자전거가 둑을 달리기 시작할 때 그녀는 남편을 두 팔로 안았다. 남편의 허리통이 그렇게 든든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남편은 휘파람을 불었고, 수성천이 흘러가는 쪽으로 저녁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눈을 감아도 저녁노을이 눈 가득히 밀려와 있었다.
사내들이 물러간 뒤에도 그녀는 오랫동안 찢긴 몸으로 누워 있었다. 뺨에 와 닿아 있던 남편의 훈훈한 체온도 물러가 버렸다. 바람이 그녀의 몸을 사정없이 할퀴며 지나가도록 몸을 맡긴 채 그녀는 누워있었다. 성국이 아부지…… 그녀는 작은 소리로 남편을 불렀다.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된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이듬해, 그녀는 성호를 낳았던 것이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불길은 몸을 일렁이며 타고 있는 종이들을 허공으로 밀어올렸다. 하얗게 형해(形骸)*만 남은 종이들은 허공으로 빨리듯 떠오르다가 바람결에 바스러져 흩어지고 말았다.
더 올라래이. 높이높이 올라래이. 그녀는 문득 자신이 그렇게 되뇌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고향에서 당제(堂祭)*를 할 때는 이렇게 종이를 태워 올렸다. 죽은 혼백의 명복을 빌기도 하고 소원을 빌기도 했는데, 종이가 잘 살라져서 높이 올라갈수록 좋다고 했다. 헛거를 보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형님이요. 언제까지 자식을 속이고 자기 자신까지 속이미 살라능고. 시누이의 목소리가 귓전을 두들겼다. 갑자기 그녀는 오랜 세월 두 눈을 덮씌우고 있던 비늘이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그래, 인자는 모든 거를 털어놓아야 될 끼다. 성
국이도 성호도 앉혀놓고 저그들 아부지에 대해서 이야기할 끼다. 더 이상 숨기고만 있을 수도 속여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곰곰 다지고 있었다.
“식아. 할매 이빨 좀 빼다고.”
그녀는 아이 앞에 입을 크게 벌렸다. 아이가 찡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할매가 아파서 안 그라나. 우리 식이는 할매 아픈 거 싫제?”
그녀는 아이의 손을 이끌어 금방 빠질 듯이 흔들리는 이빨을 두 손가락으로 잡게 했다. 아이는 미간을 찡그린 채 망설이는 듯하더니 눈을 꼭 감았다. 이빨이 뽑히는 순간, 그녀는 아아 비명을 삼켰다.
믿어지지 않는 듯이 더러운 줄도 모르고 내려다보고 있는 아이의 손에서 그녀는 뽑힌 이빨을 빼앗았다. 그것은 흉측한 모습으로 뿌리까지 검게 썩어 있었다. 그러나 아픔은 금세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도 작은 아픔의 덩어리인 것만 같은 신체의 일부를 불길 속으로 던져 넣었다.
“할머니, 우는 거야? 아파서 그래?”
“울기는, 연기가 매바서 안 그러나. 핼미겉이 늙으모 울지도 못한대이.”
그녀는 치마꼬리로 눈두덩을 찍었다. 그리고 쉼 없이 불길 속으로 종이를 집어넣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식아. 니도 소원 있으모 빌어라. 지금 소원을 말하모 무신 소원이래도 다 들어주신 대이.”
알아들었는지 어쨌는지 아이는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얼굴로 잠자코 불길을 지켜보고 있었다. 제 어미가 돌아오기를 빌기라도 하는 것일까. 입술을 꼭 다물고 있는 아이의 두 눈이 불빛을 담아 이글거렸고 그녀는 아이를 와락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실천문학』 6호(1985년 봄); 『소지』 (문학과지성사 2003)
이창동(李滄東)
1954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전리(戰利)」 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해오다
1993년 영화계에 입문하여 감독으로 활동했으며,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했다.
전쟁과 분단으로 말미암은 이념과 사상의 대립·갈등이 현재까지 어떤 형태로 재현되면서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밀도 있게 형상화했다.
소설집 『소지(嶢紙)』 『녹천 에는 똥이 많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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