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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사례를 보면 원전 개수가 많은 나라에서 사고가 날 확률이 높다. 원전 1등 국가는 미국, 2등이 프랑스, 3등 일본, 4등 러시아, 5등 한국이다. 미국과 러시아에서 사고가 났고, 이번에 일본에서 사고가 났다. 우리도 번호표 따놨다고 봐야 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 비상임위원인 김익중 동국대 교수는 한국에서 반드시 원전 사고가 발생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노후된 원전은 '시한폭탄'과도 같다"김 교수는 "노후된 원전은 시한폭탄과도 같다"고 거듭 강조했다.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에서 첫 원전이 가동된 건 1978년(고리 1호기)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월성과 영광, 울진에서 차례로 원전 가동이 시작됐다. 지난해 7월 상업 운전을 시작한 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를 포함해 현재 운전 중인 원전은 총 23기. 이 중 운전 기간이 25년 이상인 노후 원전은 8기(고리 1.2.3.4, 월성 1, 영광 1.2, 울진 1호기)다.
이 중 고리 1호기는 이미 2007년 설계수명이 만료됐지만, 당국은 수명 연장 운전을 고집하고 있다. 환경단체는 물론 인근 주민들까지 강하게 반대하고 있으나, 전력난 등을 핑계삼아 재가동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월성 1호기 역시 '발전정지→정비→잔여 설계수명 발전재개→수명연장'의 절차를 밟고 있다.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의 수명을 점검 후 연장 가동시키는 건 타당한 일일까?
우선 원전당국은 전세계 가동 원전 436기 중 67기(15.3%)를 심사를 거쳐 수명을 연장했다는 사례를 들면서 수명 연장이 이미 검증된 안전 절차라고 주장한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근거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다. 후쿠시마 사고 역시 수명이 오래된 순서와 일치한다는 것.
환경단체들은 또 지난 2005년 고리 1호기 금속시편 실험결과에서 노후 원전의 취약성이 드러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실험에서 원자로 제작 당시 넣어뒀던 금속 조각에 대한 파괴 실험 결과 금속 강도가 현저히 약화된 사실이 확인됐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케이블을 비롯해, 각종 부품들, 원자로 자체도 핵분열을 통해 중성자를 쬐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 수록 약화된다. 이번에 영광 2호기에서는 냉각재 순환펌프가 멈췄다"며 "그게 지속되면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익중 교수는 "전세계 442기 중 6기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1기당 사고 확률이 1.36%다. 한국에는 23기가 있는데, 그 사고확률은 27%가 나온다"라며 "불량 부품까지 들어갔고, 감시할 수 있는 법적 시스템이 안 움직이니 확률이 아주 높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입 초기부터 '안전불감증'...결함.사고 잦아원전에 대한 당국의 안전불감증 문제도 골칫거리다.
특히 국내 원전에서 발생하는 고장 중 절반 가량은 원자로를 포함한 핵심계통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3일 원전안전운영정보시스템(OPIS)에 따르면 지난 2004년부터 올해 8월까지 최근 10년간 발생한 원전 고장 건수는 총 152건으로, 월 평균 1.31건을 기록했다.
이 중 원자로를 포함해 핵반응으로 열을 생산하는 부분인 1차 계통에서 발생한 고장은 72건(47.4%)에 달했다. 이는 2차 계통의 고장 80건(52.6%)과 비슷한 수준이다. 1차 계통의 고장은 2차 계통에 비해 상대적으로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한다.
원전별로는 한울 45건, 한빛 36건, 고리 35건, 월성 21건, 신고리 11건, 신월성 4건 순이다.
1994~2003년 사이 1차 계통 고장 비율이 34.1%였던 데 비하면 핵심계통의 고장 비율은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노후된 원전의 비율이 증가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1일 정지한 한빛 6호기도 원자로 냉각재 펌프(RCA)에 문제가 생긴 1차 계통에서 고장이 발생했었다.
최근 국내 원전이 고장으로 인한 가동정지가 잦다는 점도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2002~2012년 국내 원전이 고장으로 가동 중단된 경우는 95건이며, 가동 정지 일수는 총 573일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아무래도 원자로가 있는 1차 계통 고장이 심각할 수도 있다"며 "현재 우리 원전은 고질적인 비리와 잘못된 수급예측, 과도한 전기다소비 구조로 인해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성적위조 부품 1천여개를 적발하고도 쉬쉬한 채 원전을 계속 가동한 사실이 드러났고, 아직까지도 비슷한 사례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또 얼마 전에는 한빛원전 2호기의 부실정비 사례도 밝혀졌다.
우리나라가 원전 도입 초기부터 심각한 안전불감증에 빠져있었음을 보여주는 대외비 보고서가 31년만에 공개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미국의 안보·환경·자원분야 정책연구 민간기관인 노틸러스연구소는 지난 6월 '대한민국의 핵 발전 프로그램의 안전 측면 업데이트 리뷰'라는 대외비 문건을 31년만에 공개했다. 이 문건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제3자에 의한 독립적인 품질 및 안전 감사는 최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몇몇 사례에서 안전·품질 담당 인력이 일정을 연장하지 말도록 조직적인 압력을 받는다는 인상을 받았으며, 또 다른 몇 사례에서는 필수사항인 자세한 안전성 분석과 품질 보증 문서화가 귀찮은 일이며 필요 없는 일이라는 태도가 있었다"는 내용도 있었다.
부산-울산 인구 밀집된 월성.고리원전 사고 난다면?만약 국내의 노후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환경운동연합, 반핵부산대책위원회, 경주핵안전연대 등이 지난해 12월 대표적인 노후 원전인 월성 11호기와 고리 1호기에 사고가 났을 경우를 가정해 모의실험을 한 결과 장기적인 인명피해가 72만명, 피난 등에 따른 경제적 피해가 최대 1천19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에 대한 사고 시물레이션.ⓒ환경운동연합
이 모의실험은 일본의 원전 사고 평가 프로그램인 세오 코드(SEO code)를 이용해 경제적 피해를 추정한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피해액 계산'을 한국 원전에 적용한 것이다.
모의실험 결과에 따르면 월성원전 1호기의 경우 거대사고가 발생했을 시 울산으로 바람이 부는 경우를 가정하고 피난을 하지 않을 경우를 산정하니 2만여명이 급성사망하고, 70만3천명이 암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관측됐다. 피난을 했을 경우 15일 정도가 걸리고, 급성사망자는 4천313명, 암사망자는 9만1천명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고리원전 1호기에서 대사고가 발생했을 때 남풍이 불어 북쪽으로 바람이 부는 경우를 가정하면 급성사망자는 발생하지 않고 암사망자는 2만2000명 가량 발생하고, 경제적 피해는 12조5000억 원 가량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급성사망자가 발생하지 않는 건 가까운 도심인 울산시까지 거리가 25km가량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울산으로 바람이 부는 경우를 가정하면 급성사망자는 889명까지 발생하는 것으로 관측됐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바람이 부는 방향에 위치한 지역의 주민은 인접한 정도에 따라 방사능 피폭이 일어나게 되고, 피폭량이 크면 급성사망 또는 급성장애에 걸리게 된다. 급성장애를 피한다 하더라도 장기 피폭선량에 따라 암에 걸리거나 암으로 사망하게 되며, 집단 피폭에 의한 유전적 장애가 발생할 요인도 크다.
양이원영 처장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인명피해와 경제피해가 예상되는 근거다. 대형사고가 아니라도 소량의 방사성물질만 노출된다고 하더라도 도심은 마비가 된다"며 "평소에 정보제공을 받지 못하고 훈련받지 못해서 발생할 수 있는 끔찍한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사전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