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기차답게 기적을 울리고 개는 이따금 개처럼 짖어 개임을 알리고 나는 요를 깔고 드러눕는다 완벽한 허위 완전 범죄 축축한 공포,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 이성복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래,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나는 피해가고 싶지 않았다. 그 구덩이에 내가 함몰된다 하더라도 나는 만져보고 싶었다, 운명이여.
- 최승자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이미 대답이 정해진, 대답과 똑같은 물음은 묻지 않는 쓰라림으로 물거품처럼 밀려가 닿는 곳은 그 어디? 자꾸 덧나는 기억, 긁어 신 생즙을 흘리며 어느 모르는 사이 아물어지는 곳은, 항상 이곳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 어느 곳, 어느 때.
- 김휘송 <항상 이곳이 아니라고 말하는>
아으 의미 없음이여 그러나 아으 느낌의 폭포여 아으 빈 중심이여 그러나 아으 소용돌이여
- 성기완 <불러내기>
나는 몸 밖으로 물방울을 밀어내었다, 모든 힘을 다하여, 밀어내었다 물방울 밖으로 나를
- 송찬호 <물방울, 기우뚱거리는 어느 삶의 기록>
머언 길을 간다. 앓는 자, 유괴당한 혼백을 네가 찾느냐,
- 김정환 <황색 예수전 1> 중의 제목없는 시
어느 날 문득 무심코 받아먹은 말에 가슴이 찔렸을 때, 거울을 보고 튀어나온 기억에 머리를 다쳤을 때, 억지로 침을 삼켜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것을 눌러 막았을 때, 식은땀은 더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김기택 <병에 대해서>
가장 무서운 방향을 택하여 제 스스로 힘을 겨누는 그대, 기쁨을 숨긴 공포여, 단단한 확신의 즙액이여
- 기형도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지운 흔적은 흔적을 포함한다.
- 김중식 <비애>
더 깊이 더 깊이 서서히 빠져드는 이 처참한 늪의 이름은 무엇인가
- 곽재구 <늪에 대하여>
무엇에 우리는 갇히고 있는가, 무엇이 우리를 황폐하게 일으켜 살아 있게 하는가
- 조은 <전원일기 3>
술래는 남고 떠날 자는 떠나고 그림자 되어 그림자로 꿈꾸며 그림자에 취하는 우리는 술래입니다.
- 윤중호 <그림자 속에서 그림자로 숨으면>
욕망은 허기를 먹고 허기는 눈먼질투를 먹고 맹목은 맹세에 걸었던 손가락을 먹고
- 이상희 <내 뜻이 내 존재에 맞지 않으니...>
부디 다음 생애에는 만나지 말자 더 이상 덧날 상처는 만들지 말자
- 장석주 <후생>
다시 시작해보자. 더러운 추억의 힘이여.
- 이연주 <겨울 석양>
없는 것들이 보인다 진작부터 있었던 없는 것의 둘레가 보이기 시작한다 없는 것의 둘레에 있는 것들이 달려 있다
- 이갑수 <없는 것들을 보다>
마치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안다는 듯 완벽한 하나의 선으로 미끄러지는 새
- 최영미 <살아 남은 자의 배고픔>
너, 나, 갈 길은 아직 시작도 안 했음을 똥누거라 추우면 더 추운 곳으로 가고 싶은 이 질투 안의 불투명한 밖을 나여, 지금 이곳에서 객혈하라
- 박용하 <겨울 들판 속, 빈 들판>
여기는 입구가 아니라 다름아닌 맨 처음의 출구라고 중얼거리는 마지막 황홀
- 이문재 <타클라마칸>
이정표는 자꾸 내게 어디 가냐구 묻는다 달은 붉게 물들며 제 길을 가고 내겐 잃은 길도 잃은 그 자리에 있지 않다
- 장석남 <달의 길>
지금 내게 구체적으로 주어져 있는 삶, 그 쓸쓸한 한계, 그 끈질긴 욕망,
- 엄원태 <내 병, 욕망의 아이러니>
어디에서 길을 잃었던 것일까 이를테면 삶이 어디로도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게 된 때에 발등에 떨어지는 무거운 침묵 같은 것 그렇다면 누가 왜 나를 몹시 불러댔는지
- 김갑수 <불가능한 일기>
그러나 사랑은 어쩔 수 없이 늘 긴급 소환인 것을
- 임동확 <잃어버린 우산>
오 결핍은 작열하는 사막에 솟는 불기둥인 양 아무데서나 불타오르고
- 고진하 <천국엔 아라비아 숫자가 없다>
원래 선택이란 좋은 잔을 마련하고 결정을 요구하지 않는 것
- 장정일 <석유를 사러>
저 빌어, 배라먹을 놈의 거울 저 망할놈의 반시 세계, 아무래도 나는 저 거울 속으로 걸어들어가야만 하겠느냐
- 박남철 <다시 거울 앞에서>
이야기는 이야기끼리 스스로 엉켜 집을 짓고 과연 희한한 집짓기를 마쳤을때 자신은 어느새 집 속에 갇혀 있다
- 최두석 <누에 이야기>
오, 저 연기의 그림자(저 하늘은 이상하게 수상하다) 시님, 그림자에도 그림자가 있습니까?
- 함성호 <붉은 꽃>
우물가에 가지 마라 우물 속에는 우물 속을 상상하는 그대가 있다
- 심재상 <상상의 힘>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내 가슴에 끓어오르던 벌레들,
- 나희덕 <뿌리에게>
안녕 존재여 비참한 흔적이여 그러나 끊임없는 말들이 그것에 대한 지겨운 욕망이 여전히 벌레처럼 살아남아 있었다
- 김정란 <프롤로그, 입구, 아니 출구>
존재라는 말이 이미 어둠이고 구멍인데 존재의 이유에 대해 생각했었지
- 최승호 <개의 날>
세상에서 가장 큰 눈을 한 공포여, 강물도 목을 죄던 어둠이여, 허옇고 허옇다던 절망이여, 내 너에게로 가노라, 질기고도 억센 밧줄을 풀고
- 이진명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침묵은 불덩어리다, 나는 오랫동안 침묵을 가두고 참아왔다. 걸어온 길이 끊어지는 곳. 가뭄의 염전이 눈앞에 펼쳐놓는, 아픈 순간들...
- 이윤학 <판교리 3>
여기가 땅 끝인가 전망대인가
- 김태동 <그것은 흐르는 비이다>
선생님 낮에는 왜 별이 안 보이지요 여기가 너무 밝아서 그렇지요 선생님 낮에 별이 보인다면 어떻게 보일까요 어둡겠지요
- 김혜순 <기다림에 관하여>
축제와 죽음이 한몸으로 만나는 각도에서 지상의 모든 눈부심이 내 청춘의 나머지를 지워버렸으므로
- 유하 <그 옛날의 어린 눈빛>
이 세상 침묵의 가시는 내 살 속에 녹아버려 빼낼 길 없네 어찌할거나, 불은 안에서 밖으로 타오르는데
- 정인섭 <당신의 초월로>
정신이 몸을 치는 치열함으로 혼신을 쥐어짜 소리를 질렀지만, 허망한 입구멍에서 혓바닥만 새까맣게 타버렸다. 절벽 저 밑 정적의 깊은 아래로 빨려들 듯 몸을 던졌지만, 발 밑에 그림자만 털썩 떨어졌다.
- 채호기 <거품의 노래>
모래 구멍엔 낙지들이 살고 있습니다 수많은 다리로 머리를 감추고 또한 머리와 다리가 무슨 양성처럼 엉기면서 먼 저녁의 구멍을 지탱하고 있었는데요 그 구멍마다 저 또한 어둠이겠지만 엉겨붙어 살아남은 것 들이여
- 허수경 <남해섬에서의 여러 날 밤>
치열한 외출이여 검은 사막을 넘어라
- 차창룡 <행군의 아침, 깨구락지>
먼 길을 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먼 길을 왔다는 생각으로 나는 기다린다
- 장경린 <길>
내게 그녀는 죽음의 한 방식이었다 이제 막 생명나무는 불붙기 시작한다
- 박청호 <집 없는 꿈>
나는 해골의 소년 무덤처럼 엎드려 첫사랑을 나눈다
- 박상순 <달팽이>
그래 어둠의 끝은 언제나 둥근 빛의 일부와 아릿하게 맞닿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정화진 <안쪽으로 부는 바람>
그냥 가는 거다. 흔들리지 말고 빛 속으로 빛 속으로 어둠이 젖은 빛 속으로 물방울의 아우성처럼 사라지는 거다. 이유가 없다
- 이영유 <사슬 6>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 아니면 어째서 그랬단 말이냐
- 황인숙 <바닷가에서>
치욕의 지느러미를 움직여 나는, 삶의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 하재봉 <비디오/시간이 없다>
...... 깊은 곳에 드리운 그물은 무거워 다신 거두어들일 수 없다
- 남진우 <깊은 곳에 그물을>
나는 건넌다 다리는 곧 없어질 터이다 사라진 다리로 돌아올 테다 그림자 다리를 건너 빛의 나무에 오르겠네
- 진이정 <꺼꾸로 선 꿈을 위하여 8>
그날이 오면..., 그렇게 웅엉대던 입을 틀어막고 만 마디 침묵을 위해 찍는 몇 개의 검은 점들 그날이 오면..., 그러나 말없음표는 스스로 검게 빛날 것인가
- 김수윤 <우리의 말없음표>
슬픔은 왜 독인가 희망은 어찌하여 광기인가
- 황지우 <눈보라>
카페 게시글
wild flower
존재와 시간 카페에서 퍼온 글들.
af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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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1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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