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충남문학시절
김영훈
나는 충청인이다. 조선 중엽에 조상님이 낙향해 충청도 한복판에 위치한 찰갑산 기슭에 보금자리를 편 이후로 대대로 살아온 김씨 집안의 혈통을 이어온 충청인이다. 그런 연유로 뼛속까지 충청인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의 문학은 충청의 얼에 기반을 둔다. 신라 불교정신이 깃든 문화와 조선의 유교적 문화, 거기다 신식 기독교 정신이 혼재한 채로 다종교를 추앙하고 있었던, 5일장이 서는 마을 <장평면 미당리>가 내 고향이다. 그런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기에 나의 문학 혼은 지금도 충청도 언저리를 맴돈다. 그래서 충남은 내 문학의 산실이다.
그렇게 이 나라 중부권에서 자리를 잡은 충청권 문화에 젖어 사는 나는, 멀게는 백제권의 문화를 형성하던 둥지에서 살아왔고, 가깝게는 청풍명월의 고장이요 온화한 기운 속에서 조선 시대 양반문화를 이루며 수백 년을 살아온 탓에, 그 충청의 핏줄이 몸속에 흐른다.
1981년 대전으로 이주해 40년이 넘는 세월을 살고 있지만, 내 의식은 여전히 충청인이다. 현재는 충청권에 영호남 문화가 뒤섞인 채로 발달한 도시 대전에서 나의 문학이 둥지를 틀고 있다. 하지만 문학의 뿌리는 여전히 도시가 아닌. 충청도에 자리한 두메산골 마을이다. 아직도 문학의 산실은 칠갑산 기슭이며 정서는 습작기를 보낸 그곳에 머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삶의 뿌리가 있듯이 예술문화도 뿌리가 있다. 그 뿌리는 근원이 깊고 시작이 분명해서 쉽게 갈라놓기가 어렵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이지만 서로 어울려 오래도록 관계를 맺으며 상호작용하는 동안 역사가 빚어지듯이 나름의 내 문학도 유년의 삶을 통해 형성되었다. 인간이 이 땅에서 발을 딛고 살아가는 경험 속에서 느끼고 생각한 바를 상상력을 빌어 문자로 표현하는 행위가 문학이다. 정서를 표현하는 감동적인 글이 문학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나도 예외일 수가 없다
나는 1947년에 청양에서 태어나 칠갑산을 배경으로 청양에 유·소년기를 거치면서 성장했다. 청소년시절부터 백제의 옛 서울인 공주에서 학업에 열중하면서 문학으로 자신의 삶을 실현하려는 꿈을 꾸며 살아온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학업을 마치고 한 귀퉁이에서 이 나라의 초등교육을 맡아 후진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다시 홍성에서 가서 살았지만 나는 문학을 떠나 산, 적은 없다. 문학의 길은 교육의 길과 함께 나를 지켜준 두 축 중에 하나이다.
나는 직장을 대전으로 옮겼고, 그때부터 충청권의 문화, 경제, 교육의 중심지였던 대전에서 살면서 소설 대신에 동화를 쓰기로 작정했다. 장르를 바꾸면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어 온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욕심으로 인해 깨끗하고 맑은 동심을 잃어버린 성인들을 대상으로 해 스스로를 돌아보게도 하는 글도 열심히 쓰면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때가 나의 충남 문학시절이었다.
그렇게 보면 난 한 번도 충청권을 떠나본 적이 없는 충청도 사람이요, 충청문학인인 이다. 역량이 부족했지만 충남아동문학회장까지 맡아가면서 충청권 아동문학 발전을 위해 치열한 삶과 문학 발전에 온 힘을 바치기도 했다. 한국문협 충남문인협회에 가입을 해 회원으로서 창작과 함께 문학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고, 여러 권의 동화집을 출간하면서 해강아동문학상도 수상한 실적도 쌓았다. KBS·2에서 작품 「달섬에 닻을 내린 배」가 극화되어 방영되기도 한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충남 문학 시절은 기억에 남을 만큼 왕성했다.
당시 문학을 함께 한 이로는 대전 쪽에는 한상수, 구진서, 정만영, 박진용 동화 작가, 전영관, 김영수 시인, 변상호 동극작가 등이 있다. 그리고 충남 쪽에는 지금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을 맡은, 구재기 시인과 현 한국문협 충남지회장인 김명수 시인 그리고 최정심, 안학수 시인, 김정헌 동화작가 등이 함께 활동했다. 원워들은 충청권역의 명승지 및 고찰은 물로 대천해수욕장 등을 돌면서 소재를 찾는 문학 기행을 했고, 그때마다 세미나를 개최해 문학 이론도 다지면서 서로 화합과 친목을 도모하기도 했다.
그랬었는데 1989년 정부에서 인위적으로 충청도와 대전을 갈라놓았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예술문화는 뿌리기 깊어 행정적으로 금을 그어 놓는다고 갈라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충남아동문학회는 두 광역단체가 갈라선 이후에도 10여년 간 한솥밥을 먹었다. 그 무렵에 사무국장을 맡았던 구재기 시인은 회에서 탈퇴했지만, 공주에서 오철석 시인, 홍성에서 김정헌 동화작가가, 서천에서 최정심 시인, 천안에서 소중애 동화작가, 대천에서 안학수 시인이 달려와 함께 범충청권역의 아동문학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그 기운이 공주의 계룡산에서, 청양의 칠갑산에서. 광천의 오서산에서, 홍성의 용봉산에서 뻗어 나와 대전으로 향했던 충남문학 시절이 지금도 나는 많이 그립다
지금은 장르를 확장해 처음 시작했던 소설로 복귀했고, 평론도 얄심히 쓰면서 일간지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지만, 500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대전문인총연합회장으로서 역할도 하고 있지만, 동화를 쓰면서 나의 문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충남뿌낙 시절, 그때가 여전히 그립다. 한국문인총연합회 이사. 국제펜 한국본부 이사. 한국소설가협회 교육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동화 쓰기 집중했던 그때가 그립다. 나의 문학의 고향은 여전히 충남문학 시절이다.
그래서 글쓰기가 막힐 때는 선뜻 고향 미당으로 향한다.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잠들어 계신 선영을 찾아 성묘하면서 내 유년의 꿈이 서려 있는 뒷동산에 올라가 사는 동안 마음에 켭켭이 쌓였던 찌든 때를 닦아낸다. 그럴 때마다 조상님들이 새 힘을 주신다. 역시 내 문학의 고향은 300을 넘게 살아온 칠갑산 기슭 그 마을 뒷동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