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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빛의 뿌리☆]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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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뿌리]
이채민 시집 / 지성의 상상 시인선 002 / 미네르바(2016.10.10) / 값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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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뿌리
이채민
봄부터 식탁에는 꽃보다 모래알이 수북했다
현관에는 독버섯을 밟고 온 신발짝이 훌쩍거렸다
잠든 사이 꿈에서 걸어 나온 사자死者가
선명치 않은 발자국을 자주 남겼다
엄마의 부음을 들고 온 여름은
찐득하고 어두웠으므로
자주 바람을 불러들였다
꽃을 이고 태어난 딸의 팔자를 염려하던 엄마는
바람을 싫어했지만 나는 바람의 행적을 따라다녔다
그리고 바람이 소리를 걸어 둔 언덕에
활짝 핀 죽음을 꼭꼭 묻어 주었다
여름이 지나고
냉장고에서 세탁기에서 책상 위에서 찻잔에서
엄마는 꽃잎처럼 사뿐히 날아와 이것들과 나를 다듬는다
한 곳을 응시하다 틀어진 척추뼈를 만져 주고
바람의 발톱에 쓰러진 어느 날도 잘 일으켜 세운다
죽은 자의 눈동자에 빛의 뿌리가 있음을
여름을 지나며 알게 되었다
고래의잠
이채민
파도를 일으키고, 잠재우고, 때론 잠재운 파도 위에서 잠이 든다. 북태평양 어느 용궁을 꿈꾸는지 찰랑거리는 수초의 녹음이 숨소리에 묻어 나온다. 포세이돈을 호령하는지 미간에 주름도 잡힌다. 광년을 걸어도 닿을 수 없는 하늘 한 조각이 어떻게 내 품에 왔는가. 성냥갑만한 그 가슴에서 우주를 다스리는 심장의 고동소리가 들린다.
태초의 말씀 다음
태초의 기쁨을 안겨준 이여.
별 그대
이채민
커튼이 드리위진 주차장으로
검정 색바람이 미끄러지듯 빨려 들어가고
하얀 색바람은 허물을 벗듯 커튼 속을 빠져나온다
어느 별에서 왔을까
들어가고 나오는 바람의 라이트는 태양보다 힘이 세어서
지구인의 발걸음을 휘청이게 한다
열일곱 사춘기 때
눈과 귀가 멈춰 있던 곳
밤마다 빨간 알전구가 켜져 있는
명자언니 신방이 세상에서 가장 궁금했듯, 지금은
저 우주선 모양의 별궁이 궁금하다
어느 이름 모를 별에서 온 그대와
저 별궁에 들 수 있다면
발칙한 이빨자국 하나 남는다 해도
망설이지 않겠다
그 별 그대, 날 울리지 않는 바람이라면
서로의 시린 발자국 깊이 묻어주면서
지구와 우주의 깊은 슬픔도 다독이면서
적당히 휘파람도 불어 가면서, 그리하여
내 이름이 바람, 바람, 바람이면 또 어떠리
마흔 아홉의 선물
이채민
노을이 온통 내 것으로 안겨왔다.
심장 박동이 너무 커 바닥에 누울 수가 없었다 달이 풀어놓은 치맛자락에서 우우우 만월의 울음이 들렸는데 심상찮은 달울음소리와 심장의 박동 소리가 하나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젖내 풍기는 초승달이었으므로 자주 눈에 핏줄이 터지고 사랑니가 흔들렸다.
꽃비 징하게 내린 밤, 환부에서 샘솟는 눈물로 작은 샛강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생인 촛불 밑에서 아무 망설임 없이 노란 유서도 썼다.
아침이 오면 씨알 없는 글자들이 샛강에서 맑은 종소리로 딩동, 거렸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을까*
*도종환 시인의 시 인용.
아를의 노란 집*
이채민
내가 그곳에 당도했을 때, 벽은 온통 보랏빛이었다. 그 안에 담겨 있던 노란색 나무침대와 의자는 어떤 비밀 하나를 알고 있다는 듯 삐걱이며 웃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함께 덮었던 이불이 진홍색이었다는 것과, 함께 발을 씻었던 세숫대야가 파란색이었다는 것은 아주 즐거운 발견이었다.
―찬물은 항상 그가 끓였으므로 나는 유리창 너머의 불빛이 몇 개 인지 세어보곤 했다. 가끔은 누워서 론강 위에 뜬 별을 세거나 까미유 롤랭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는데……
나는 여기서 우리의 일기를 덧붙이였지만 더 이상 이어갈 수가 없었다.
날카롭지 않은 조명이 알고 있는 것처럼
좁지 않은 마룻바닥에 흩어진 가구들과
꽃병에 꽂히지 못하고
목이 잘린 채 절규하는
열네 송이의 해바라기가 그들의 사생아였음을
울음 없이 차마 읽어 내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고흐와 고갱이 함께 살던 집
사막의 열쇠
이채민
마두금 연주에 눈물 흘리며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낙타의 붉은 가슴이 꽃처럼 펼쳐져 있고
유성이 흩뿌려져 헤라의 젖이 흐르고 있는
환상이 둥지를 튼 유토피아, 별들의 소향입니다.
사막은 왜 가느냐고,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을 때
큰 숨을 몰아쉬던 아이가 늦은 답신을 보내왔다
차갑게 보내고 떠난 자리마다
온통 별밭이다
저 가슴, 사막의 밤에 얼마나 갇혔었기에
저토록 반짝이는 것일까
이쪽의 밤과 사막의 밤이 하나의 곡선을 만들며
낙타가시풀꽃을 피워내고 있다
거짓말을 조금 했을 뿐
이채민
거짓은 붉고 아름다운 것들의 속성을 닮았다.
붉은 꽃잎이 그랬고
붉은 입술이 그랬다.
올림픽 공원 정미정원, 입술을 포갠 꽃들이 너를 위해, 너뿐이야, 황홀한 몸짓으로 다가온다. 그 몸짓은 낮과 밤을 거리지 않는다. 어젯밤 꽃잎 같은 입술을 포개어 따뜻한 밤 한 그릇 나눠먹는 동안 붉은 혀끝에서 새싹처럼 돋아나는 거짓말. 가시처럼 서로의 몸에 깊숙이 박히는 거짓말은 요크 성벽의 핏빛 노을보다 진하게 꽃을 피웠다. 성벽에 깨진 언저리에서 발이 저려온 것처럼 심장 언저리가 저리고 뜨끔거렸다. 서로 못 본 척, 외면이라는 가면은 순간을 넘기는 데 요긴했지만 성벽 끝은 위태로웠고 가슴 켠켠은 붉은 빛으로 흥건했다.
내 입술 유난히 붉은 계절을 지나고 있다.
뒤바뀐 몸값
이채민
그것 끌고 세차장 갔는데
외부, 내부, 고광택 왁스…… 메뉴판 읽기도 전에
그 몸에 착 달라붙는 낙지 같은 세 남자
온수 샤워 마치고 거뭇한 내장가지 뒤져서 버블 샤워, 스팀 샤워
그리고 고광백 크림 마사지까지, 풀 코스 받으시는 동안
영하 13도 눈구덩이 옆으로 밀쳐진
저것의 주인인 아는, 민낯의 고드름이 되어 가는데
소한小寒 한파 아랑곳없이 열락悅樂에 드신 저 무량함
나 언제쯤, 꽃방망이 손길에 녹슨 관절마다 자근자근 볼까나
내장까지 절은 때 말갛게 씻겨주는
저 유토피아 티켓은 지구 어디쯤에 있나
배추밭에 무꼬랑지 같은 내 행색 살피던 아저씨
운전석 밑에 냉큼 신문지 깔아주고
그것 꽁무니에는 납죽 절까지 한다
나도 모르는 은밀한 부분까지 접촉하는 그들의 내통을
나는 수시로 지갑을 열며 봐야 한다
그것 찜했던 날부터 내 몸값은 바닥을 쳤다
뼈의 신음 1
이채민
원시림의 바람이 외눈박이 비목어비목어의 꼬리를 대신 흔들어주던 종탑이 보이는 언덕에 그녀를 뿌려주었다. 끝내 퍼지지 않은 다리로는 천국의 계단을 걸어갈 수 없잖아. 속이 훤히 보이는 변명이 꾸들꾸들 말라가는 동안 바람의 들을 타고 하늘로 오르던 나뭇잎들의 박수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신명나는 굿거리 판이라도 벌이려는 듯, 소리는 허공에 떠 있는 모든 생생한 웃음과 울음을 거두어 방울을 달고 날아올랐다. 요동치는 맥박과 신음과 비애가 뒤섞인, 개들도 주워 먹지 않을 소화되지 않은 어젯밤 젯밥이 컴컴한 위벽을 기어오르며 쏟아졌다. 내가 나를 확인하는 역겨운 순간이었다. 펄럭이던 울음도 고꾸라졌는데 빙빙 누가 내 머릿속을 휘젖는 것일까. 하늘과 땅이 붙었다 떨어지는 영하의 극점, 그 벼랑 끝에서 휘어진 뼈 마디 마디가 화살촉 같은 고드름으로 자라고 있었다.
우는 집
이채민
남자의 노모가 죽던 날 울음을 잃어버린 그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으로 느릿느릿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었다 그의 사타구니에서 빠져나온 늙은 고양이가 골목에 달라붙은 무성한 소문위에 찐득한 울음을 부려놓았다 줄장미 넝쿨을 잡고 골목을 따라 나간 울음들은 밤이 되어 돌아왔다 무채색의 울음을 벽에 걸어두고 그들은 정답게 둘러 앉아 고기와 술을 먹었다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울음들은 참이슬보다 빠르게 맑아졌지만 냄새는 역했고 고양이는 그들이 주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역겨운 울음의 냄새들이 하나 둘 떠난 뒤
허물어진 담장 밑에 느릿느릿 중독된 울음이 고여 있었다
등골나무 하얗게 꽃을 피운
구월 이었다
새야
이채민
처음엔 네가 앓고 있는
그리움이란 몹쓸 병 때문인 줄 알았다
일기장이 젖는다고 했을 때
바흐의 우울한 첼로를 듣는다고 했을 때
물안개 자욱한 강변을 서성인다고 했을 때
불면과 씨름하는 날이 늘어간다고 했을 때
출구가 없는 터널에서 그냥 서 있다고 했을 때
사랑이 흐르는 반대방향으로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매몰되어 가는 시간 속에서도 선명한 상처를 다독이고 있을 때
김광석이 왜 그렇게 일찍 죽었느냐고 물었을 때
간절한 소망이 단 하나뿐이라고 했을 때
그 하나뿐인 소망에 귀를 막은 우리는
통곡의 숲을 다스리는 새 주인이 되리라
그리움 때문에 죽은 영혼은 새가 된다고 했다
아직, 이름 없는 새야.
안면도 1
―할미바위
이채민
물끄러미
해당화보다 붉게
내가 아직, 당신을 보고 있는데
떨어진 해 조각의 붉은 피를 마시며
그날처럼
당신, 나를 보고 있나요
솔모랫길에
길게 누워 화석이 되어버린 사무침은
천년 물살에 조금 야위었지만
가시바늘에 살점 뜯긴 그날의 이별은
하얀 맨살로 천년을 건너와 떨고 있네요
백발보다 앞서 온 저승길에서
바다에 뿌려진 눈물이
바위가 되기까지
물끄러미
오늘도 열 잔의 커피를 마시며
내가. 당신을 보고 있듯이
두근두근
당신 아직, 나를 보고 있나요
묵향
이채민
간밤의 억수에
꽃 지고
꽃 진 자리 지키는
저 나비, 상한 날개쯤에서
뼛속까지 사무치는
투명한 어둠의 방생方生
다시, 사나사 1
―은행나무
이채민
가라 하지 않고 오라고 내어준 길을 따라
다시, 산에 오른다
풍경 소리마저 눈[雪]에 잠긴 산사山寺
적막을 다스리는 키 큰 은행나무가 반갑다
저 나무, 만삭의 몸으로
만월 같던 첫사랑 덥석 받아주었는데
몸엣것 다 내어준 지금
외딴섬 같은 눈물을 떨구고 있다
핑계만 있으면 울 준비가 되어 있는
내 몸의 상처들이
툭, 툭, 실밥을 터트리며 비집고 나온다
하나만은 남겨둬야 했는데,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서로의 물컹한 아픔을
이제야 바라보고 보듬고 있다
얼마만큼 아파야 꽃잎 같은 가벼운 생을 얻을 수 있을까
우듬지 하나 없는 절해고도
그 눈물 아래
산사의 얼룩으로 남은 내 사라그림자
미 큰 그림자의 적막에 서서히 돈다
애순이의 방
이채민
허공을 찢고 날아다니는 울음의 꼬리들과 편지 한 장 들이지 않은 레만호수의 시용城 지하감옥에 새겨져 있던 예리한 발톱자국이 옮겨와 있었다. 감자같이 순하고 착한 애순이는 시집살이 삼 년 만에 미친년이 되어 머리에 꽃을 꽂고 삼십 년을 살다 갔는데, 아무도 열어본 적 없는 그녀의 창틀에 돌멩이 같은 감자 몇 알이 남아 있었다
누구의 몸에 들어 잠들었는지
낙엽 한 장 들지 않던 그녀의 방에
꽃이었던 추억들이 수정처럼 맑게 찰랑대고 있었다
미련한 사랑
이채민
해마다 튼실한 꽃대 밀어올린
군자란이 아프다
정들었던 이웃이 이민 가며 주고 간 화분
생이별, 꿈틀대는 서러운 견뎌내고
생의 힘줄 꼿꼿이 세웠는데
홀로 된 아픔이 기어이 뿌리에 닿았는지
푸른 등줄기마다 누런 황토물이 차오른다
영양제 몇 개를 꽂아주어도
시들시들 반란하는 저 몸짓
잎과 잎 사이에 끼여 있는 붉은 꽃눈과
눈 맞추던 날
뭉클한 애처로움에
아침저녁 물을 주고
겨울바람 점근금지 시킨 것이 화근이었다
통하지 않아 다른 문만 두드리다
쓸쓸한 상처를 키우고
홀로 이별을 치른 것처럼
누가 보면 딱하고 야윈 사랑
내가 하는 사랑이 모두 그랬다
엄마야, 동강할미꽃으로 다시 피어라
이채민
할미꽃, 그녀의 보랏빛 꿈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우주와 교통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저 굳은 천년 바위 어디쯤에
한 뼘 이슬의 텃밭이 있어
휘어진 그녀의 생이
저토록 꼿꼿할 수 있을까
석등을 밟고 선 저 무량한 행진
을미년 초하룻날
순천향병원 응급실에 들어간
울 엄마 허리, 여직 쳐지지 않고 있다
홀로, 혹한을 건너는
물기 마른 그녀의 생에 엎드려
발목까지 내려오는 졸음에 기울다 온다
호흡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우중충한 풍경을 굽고 있는
내 병病이 더 깊다
아버지의 방 1
이채민
함경북도 길주군 영기리의
푸른 하늘과
탱자나무 울타리 빠져나온
저녁연기와
철책선 넘어온 눈 밝은 기러기떼
발자국만 빼곡했다
바벨의 봄 1
이채민
몇 달 삭은 홍어처럼 담요에 둘둘 말려 잘 썩고 있다
개미 한 마리 움직이지 않는 현관 바닥에는 마지막 배웅을 기억하는 신발짝과 주춤하다 놓쳐버린 시간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그리고 기다릴 필요 없는,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마지막 약속이 낙엽처럼 뒹군다
초경처럼 붉고 비린 시장기도
늑골 아래 삼 년 묵은 두엄에 버무려져 지나간다
연蓮
이채민
저 가난한 꽃잎이
허물어진 몸을 세우고
神의 발아래 공손히
탑을 쌓는 것은
일만 겁의 인연을 향한
늙지 않는 순백의 기다림이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입동
이채민
윙윙윙…… 잘 달구어진 목청으로
한 시절을 시끄럽게 흔드는, 크거나 작은 논 치고
오래 버티는 놈 없다지만
상강 지나 입동에 허리 잘록한 놈에게
어처구니없이 허연 속살을 물렸다
입동 지나 소설에 피는 꽃도 있으련만
갈밭에 누었어도 번득이는 짐승의 눈
본 적 없는 이 나이에
시름 같은 아랫도리가
마냥 불거지는 아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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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두 어머니가 떠난 자리에서
건져 올린 詩알들이
붉다
그러나
단단히 여물지는 못했다
절망과 희망으로 버무려진
세 번째 시집
2010. 11.11.
함께한 분들에게 바친다.
2016년 10월
이채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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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민 詩集 [※빛의 뿌리※]
[ 해설 ] -
투명한 어둠의 꽃
전소영 (문학평론가)
1.
“추억은 망각의 부정이 아니다. 추억은 망각의 한 형태다.”라고 한 밀란 쿤데라의 단언에 일순 항변하고 싶어지는 것은 이 손에 쥐어진 한 줌 추억 때문이다. 자비 없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삶은 지난 시간과 지나가야 할 시간의 선택지를 줄 뿐이고, 우리는 지나친 나날을 추억이라고 포장한 채로 종종 그 단호한 세월의 이분법을 견뎌내지 않던가. 그러고 보면 우리는 추억이라 발음하며 과거를 서둘러 과거 속에 붙들어 매놓고 얼마나 안전한 기분이 되었던가. 그러나 쿤데라는, 이 같은 위안이 모래로 만든 성과 같음을 저 완고한 파도의 문장으로 직감시키는 것이다. 추억은 과거의 보관법으로 온당한가. 이것은 기억 자체라기보다는 기억을 다루는 방식에 관한 유의미한 반론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추억이라 발음하며 과거를 서둘러 과거 속에 붙들어 매놓고 얼마나 안전한 기분이 되었던가. 가둬진 것이 차갑고 아린 기억일수록 말이다. 그렇다면 또한, 그 같은 과거를 추억으로 박제시키지 않으려는 시도는 얼마나 고된 일인가.
이제 마주할 이채민의 시집이 애틋하게 다가오는 이유를 우리는 여기에서 발견한다. 이 시집의 시들은, 지나온 길을 지나버린 길로 폐쇄시키지 않기 위해 자임한 노고를 주저 없이 감당해낸다. 단단히 매듭지어진 어제를 다시 풀어보고, 얼마간은 바래지도록 두어도 될 과거의 먼지를 닦으며, 아직 아픈 과거일지라도 그래야 한다면 얼마든지 돌이켜 가슴을 가져다 댄다. 흡사 튀어나온 기억에 마음 자락이라도 걸린 것처럼 시(인)는 지나간 시간을 자꾸만 재생한다. 닫힌 과거의 장면에 창을 내고, 그 순간의 자신까지 밖의 자리에서 낯설게 들여다보는 풍경을 떠올려도 되겠다.
결국 우리는 이 시집과 만나며, 스스로의 상처가 각인된 과거를 구태여 거듭 응시하려는 시인과도 조우한다. 해서 우리가 이 시집에서 헤아려 보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기도 하지만 ‘왜’이기도 한데, 시가 어떤 기억으로의 진입로가 된 방법과 연유 역시 간과할 수 없다면, 처음의 문장에 이렇게 덧대어도 좋을 것이다. '추억은 망각의 한 형태다. 그래서 추억일 리 없는 시만이 망각을 넘어선다.'
2.
삶의 모든 것은 가역작용 안에 놓인다. 영원할 것 같은 풍경들도 드문드문 닳아 명멸하고 깊게 패였던 상처도 시간의 더께 안에서 가뭇없어진다. 소중한 존재가 떠난 자리 역시, 메워질 수 없을 것이나 메워진 척 보여야 한다고 말해진다. 그래도 살 수 있고 그래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 어떤 시는 그저 살아있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것이 있다며 그와 같은 가역작용을 손사레 치기도 하는데, 적어도 이 시인의 시들이 그런 것이다. 시인은 방치되어 있던 서가를 단장하려는 사서처럼 조심스럽게, 다만 더함도 덜함도 없이 상실의 기억을 펼친다.
자기애를 제외한다면, 내가 나라는 경계 밖에 존재하는 누군가에게 친밀함을 가지는 일이 사랑의 시작일 것이다. 하여 사랑은 때로 나와 같을 수 없는 타자의 낯섦을 승인하거나 그것에 끝내 실패하는 행복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된다. 다만 그 타자가 가족일 때 사랑의 양상은 조금 달라지는데, 얄궂게도 가족은 나만큼이나 나와 밀착해 있어 타자(성을 존중 받아야 하는 존재)로 내게 인식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혹 나는 가끔 새로 만나는 숱한 낯선 이들보다도 더 가족을 알려 들지 않고 승인하려 들지 않는다. 거리 없음의 배신이라 해야 할까.
그러다 지극히 가까운 가족이 타자화되는 순간, 말하자면 덜컥 곁에서 떠나거나 낯모를 존재로 멀어져 버리면 나는 그제야 가족이야말로 섬세한 고려가 필요했던 타자임을 아프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의 내가 내 앞에 도착해서야 나는 내가 그 뼈아픈 진실을 피해갈 길이 없음을 알게 되는데, 예외 없이 시차증을 앓는 진실이 제때 우리에게 도착하기를 바라기라도 하듯 시인은 시를 닻 삼아 기억을 정박시킨다.
을미년 초하룻날
순천향병원 응급실에 들어간
울 엄마 허리, 여직 펴지지 않고 있다
홀로, 혹한을 건너는
물기 마른 그녀의 생에 엎드려
발목까지 내려오는 졸음에 기울다 온다
호흡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우중충한 풍경을 굽고 있는
내 병病이 더 깊다
- 「엄마야, 동강할미꽃으로 다시 피어라」중에서
일생, 지느러미를 흔들지 못한
외눈박이 비목어比目魚의 가슴은
텅, 텅, 텅
비어 있는 북소리로 가득했다
소리는 언제나 북쪽에서 차올랐고
우리는 아무도 그 소리에 들어갈 수 없었는데
슬픈 북소리와 잠언 속에서
여섯 개의 손가락은
환장하게 팔랑거렸다
-「아버지의 방3」전문
부모란 더없이 가까운 타자이다. 이 시에서는 생래적으로 친숙한 그 존재가, 낯모를 존재로 도래하는 슬픈 순간을 고스란히 그려낸다. 대개 그 순간은 상실이라는 계기로 열리는데, 내가 어디에 있건 닿으리라 여겼던 부모의 존재가 생이 끝나기 전까지 넘어갈 수 없는 선 바깥으로 물러선다는 사실이 부모와 나 사이에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 선 안쪽과 바깥쪽의 거리감에 관해 시인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개미 한 마리 움직이지 않는 현관 바닥에는 마지막 배웅을 기억하는 신발짝과 주춤하다 놓쳐버린 시간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그리고 기다릴 필요 없는,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마지막 약속이 낙엽처럼 뒹군다”(「바벨의 봄1」)
그 셈할 수도 건널 수도 없는 간격의 바깥에서, 전부는 아닐지라도 이해가 시작된다. 그 시점을, 옮긴 두 편의 시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읊조리는 중이다. ‘나’는 부모의 외로운 순간을 저의 외로움으로 주억거리기에 여념이 없다. 첫 시에서는 “홀로, 혹한을 건너는/물기 마른” 어머니의 생과 “호흡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우중충한 풍경을 굽고 있는/내 병病”이 맞물리는 자리가 곧장 묘파한다. 다음 시는 “일생, 지느러미를 흔들지 못한/외눈박이 비목어比目魚의 가슴”을 가진 아버지의 방이 “텅,텅,텅/비어 있는 북소리로 가득했”으리라 넘겨짚는 ‘나’를, 그 북소리만큼이나 텅 빈 고독의 감각으로 채워진 시 안에 서 있게 한다. 이채민 시인의 시는 이처럼, 사랑하는 존재들의 공허와 상실감을 '나'의 공허와 상실감이 알아차리는 순간에 점화된다.
3.
당신 떠나던 날
칸나가 쏟아낸 피의 얼룩, 아직 남아 있는 꽃밭에
‘어머니의 사랑’이란 꽃말을 달고
구절초가 한창입니다
저 홀로 피어
적막을 만들고 내 죄를 흔들어댑니다
어제보다 한 무더기 더 피었습니다
견디기 힘든 시간에 기대어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향해
이제, 꽃들이 박수를 칩니다
검붉은 염통까지 들어와서 박수를 칩니다
깜깜한 밤에도
찐득한 죽음과 범벅이 되어
꽃은, 피고 또 피어댑니다
- 「구절초」전문
누군가의 부재 후, "내 죄를 흔들어"대는 무언가를 느꼈다는 것은 놀라운 진술이 아니다. 그것의 정체라면, 다른 시에서 “살煞묻은 천 개의 눈빛이/내 안, 어디서 어떻게 자랐는지/안개 속이지만/찌르고, 찌른 만큼/스스로 찔리는 일인 것을/안개가 걷히면/욱신욱신 온몸이 알게 되더라.”(「후회」)라고 더 아름답게 그려낸 후회일 텐데, 상실과 후회는 언제나 예상 가능한 인과 안에서 연쇄되는 까닭이다. 이 시에서 차라리 더 욱신욱신하게 감각되는 부분은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향해” “박수”를 치는 “꽃” 들의 무리이다. 이것은 ‘나’의 과오에 대한 자기 징벌의 표상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시집에 넓게 개화한 꽃들의 지도를 짚어보면 ‘꽃의 박수’가 그저 ‘나’를 죄의식 안에 유폐시키려는 것만이 아님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까마득한 사막의 허공에 뜨거운 외로움이 꽃처럼 피어/핏빛으로 번져 있다”(「소식」)거나 “줄장미 넝쿨을 잡고 골목을 따라 나간 울음들”(「우는 집」), “설산雪山의 가슴 한 자락 붉게 물들일 수 있다면”(「너도부추꽃」)이라든지 “꽃사태에 파묻힌 나”(「그대가 꽃인 이유」)와 같은 구절들을 뇌리에서 꺼내보자(강조는 인용자). 이와 같은 행들은 '꽃'이 시인의 감정과 느낌, 희구를 발설하는 가장 돌올한 감각적 매개라는 것- 해서 종종 잊히지 않는 존재들, 시인 자신이거나 사랑하는 존재의 직접적 은유로도 드러나기도 한다는 것, 더욱이 시집의 미학이 '피어나는 꽃'이 아니라 '번져가는 꽃'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사실을 애틋하게 담보한다. 그리하여 거듭하자면, ‘꽃의 박수’는 하나의 점화다. 끝나는 자리에서 시작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어버린 ‘나’는 내 ‘염통’까지 장악한 후 “피고 또 피어”대는 꽃, 고통의 기억과 강도를 좌표 삼아 타자의 고통을 향해 가장 진실하게 또한 겸손하게 나아간다.
간밤의 억수에
꽃지고
꽃 진 자리 지키는
저 나비, 상한 날개쯤에서
뼛속까지 사무치는
투명한 어둠의 방생 方生
-「묵향」전문
그와 같은 마음의 자리에서 빚어진 시-시론을 옮겼다. 이 시 안에서 나비는 어쩌면 제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피어 있는 꽃에서 화분을 나르는 것이 그의 운명일진대 그는 그것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꽃 진 자리 지”킨다. 그러나 이 상처 입은 나비-시인이 “상한 날개”로 수행하고자 하는 것은 생물학적 운명이 아니다. 꽃 진 자리를 못내 떠나지 못하여 억수와 같은 삶이 미처 휩쓸어가지 못한 잔존을 지키는 것, 그것이 시(인)의 숙명일 것이다. 그의 날개로 이제 어둠은 방생放生“된다. 어둠이라 했으되 어디에나 겹쳐질 수 있는 ”투명한“것이고, 방생이라 했으나 놓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옮겨져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할 터이다. 번져가는 꽃의 일이 꼭 이와 같을 것이다.
4.
상흔이라면 가려두는 것이 마주하는 것보다 편안하겠으나, 그것을 기어이 두고 보려는 자만 헤아릴 수 있는 진실도 있는 것이다. 이채민 시인의 시들에 따르면 그것은 무지無地와 기지旣知의 틈에 주로 머무르는, 놓쳐버린 것들과 놓치면 안 되는 것들의 존재이다. 예컨대 주어진 생을‘ 견뎌갈 것’이 아니라 ‘살아낼 것’으로 강렬하게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은 죽음의 실물을 마주한 사람, 죽음으로부터 삶까지의 거리를 한번쯤 측정해본 사람인 것이다.
봄부터 식탁에는 꽃보다 모래알이 수북했다
현관에는 독버섯을 밟고 온 신발짝이 훌쩍거렸다
잠든 사이 꿈에서 걸어 나온 사자死者가
선명치 않은 발자국을 자주 남겼다
엄마의 부음을 들고 온 여름은
찐득하고 어두웠으므로
자주 바람을 불러들였다
꽃을 이고 태어난 딸의 팔자를 염려하던 엄마는
바람을 싫어했지만 나는 바람의 행적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바람이 소리를 걸어둔 언덕에
활짝 핀 죽음을 꼭꼭 묻어주었다
여름이 지나고
냉장고에서 세탁기에서 책상 위에서 찻잔에서
엄마는 꽃잎처럼 사뿐히 날아와 이것들과 나를 다듬는다
한곳을 응시하다 틀어진 척추뼈를 만져주고
바람의 발톱에 쓰러진 어느 날도 잘 일으켜 세운다
죽은 자의 눈동자에 빛의 뿌리가 있음을
그해, 여름을 지나며 알게 되었다
- 「빛의 뿌리」 전문
과거를 '닫힌 그날'로 만들지 않는 시(인)의 노고를 가늠하게 하는 시를 옮겼다. 어머니를 이 생에서 떠나보내는 과정이 재생된다. 빗장을 걸어 비밀로 남겨두어도 될 기억의 아픈 복기이다. 다만 뼈아픈 기억의 재현이 아니라 빛나는 기억으로의 재구축이다. 구축은 언어화가 아니라 감각화를 통해 진행되는데, 이것은 ‘나’의 상처와 연루된 풍경을 타인에게 전하는 가장 유효산 방식이기도 하다. 아픔만큼은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경솔하게 불러들여지는 단어들 안에서 쉽게 휘발되어 버리지 않던가. 시를 읽기보다는 시가 전하는 느낌의 순간들을 따라 걸어보자.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예감한 누군가가 있다. 그에게 하루하루는 사자死者의 발자국을 확인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나날이어서 생생한 삶의 현장인 식탁마저 저 불모지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종내 찐득하고 어두운 부음이 살갗에 닿았을 때, ‘나’는 그것을 떨쳐내거나 거기 사로잡히는 대신 뜻밖에 바람을 불러들인다. 그 바람의 발원지에는 떠난 사람의 기억이 있어, 바람이 불 때마다 과거는 돌아와 현재 곁에 나란히 선다.
이제 이 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걸어 들어간다. 생생해진 죽음이 삶을 삶답게 견인하는 풍경이다. 삶을 떠난 존재의 기척이 온화한 바람처럼, 죽음으로 자꾸만 기울어지려는 살아있는 존재의 아픈 구석을 쓰다듬는다. 틀어진 척추뼈를 곧추세우고 쓰러진 나날들을 일으켜준다. 이렇게도 들린다. 삶은 별수 없이 죽음 쪽으로 길을 내지만, 죽음이야말로 삶의 확신이다.
이 삶eros과 죽음thanatos의 은밀한 내통과 비의를 이채민 시인은 (“누구의 생이 저토록 처절해서/죽음 같은 피를 뿌리고 있는가”(「소식」)라든가 “죽은 듯 살아있구나/살아서는 늘 죽을 만큼 견디는구나”(「너도 부추꽃」). “생일 촛불 밑에서 아무 망설임 없이 노란 유서도 썼다”(「마흔아홉은 선물」)는 표현 안에 자주 유려하게 접어 넣는다. 그러고 보면 이 시집에 점묘된 죽음들은, 고통 깊은 곳에서도 꿈틀거리는 삶의 약동을 말하기 위한 은유였을 것이다. 때로 상실이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의 빛나는 가치를 새삼 알리기 위해 가정되는 수사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 시를 떠나기 전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우연이 아닌 필연의 씨앗에서 시작된 것임을 다시금 떠올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바람이 소리를 걸어둔 언덕에/활짝 핀 죽음을 꼭꼭 묻어주었다”고 했다. 죽음을 바람의 언덕에 두기로 한 것은, 스스로 바람의 행적을 뒤쫓기로 결정한 ‘나’의 의지인 것이다. 이와 같은 의지로 ‘나’의 사적이고 은밀한 기억과 통증은 내 안에 마냥 고여 있는 대신, 바람만은 닿을 수 있는 세상의 구석들을 향해 한없이 투명해진 어둠처럼 방생된다.
5.
지난 봄, 꽃사태에 파묻힌 나를 일으켜 세우고
꾸짖지 않던 그대처럼
이 가을, 위태롭게 흔들리는 그대 마음을
나 또한 한 떨기 꽃으로만 바라보리라
- 「그대가 꽃인 이유」 부분
그렇다고 해서 이 시집의 시들이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감당한다거나 해결해주겠다는 무리한 약속의 증표인 것은 아니다. 그 같은 자만, 시의 ‘나’는 “꽃 사태에 파묻힌 나를 일으켜 새우고/꾸짖지 않던 그대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는 그대 마음을/나 또한, 한 떨기 꽃으로만 바라보”려는 마음의 자리로 나아간다. 이것은 또한 시심詩心의 무늬이기도 할 것이다.기꺼이 상처를 내보이며 내가 그것을 가졌음을 알아차리는 것, 우리 모두가언제고 쓰러지거나 위태로워질 수 있는 여린 존재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와 같은 다짐이 흩어진 꽃잎마냥 팽목항에도 광주에서도 임진강에도, 타 아픔이 감지되는 곳마다 사뿐히 내려 앉아 시화詩化한다. 떠났으되 잊히면 안 될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이 추억이라는 시든 말로부터 생생해진다.
그리하여 이채민 시인이 어둠/죽음을 깎아 적은 빛/삶의 시들은, 찬란한 빛(삶)의 뿌리가 곧 어둠(죽음)이며 고통으로 굴절되지 않은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일 수 없다는 오래된, 자주 희미해지는 진실을 우리 앞에 선명하게 당도시킨다. 또한 그래서 이 시집은 詩이자 寺이고 言이다. 상처를 지닌 이가 드나들 수 있는 열린 장소(寺)이면서 상처에 대해 함부로 발설하지 않으려는 이들만이 할 수 있는 말(言)들의 군락. 여기 머무른 채로 우리는 세월의 해파에도 휩쓸리지 않은 상흔을, 두려움도 모르는 꽃처럼 아득한 망각에서 피워 올리고 오래, 들여다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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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이채민 시인은 외롭고 쓸쓸하고 슬픈 소리를 잘 듣는 예민한 귀의 소유자이다. 그 소리들과 교신한다. 그래서 이채민 시인의 시는 고독의 바다에 하얀 등대처럼 서고, 암흑의 밤에 별처럼 선다. 꽃을 이고 태어난 딸이여, 시인이여. 시인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빛으로 채워주는 만월의 사랑을 노래하는데 그러할 때에 이채민 시인의 노래는 벅차게 뭉클하다.
- 문태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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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채민 시인∥
∙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 2004년 계간 『미네르바』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시집으로 『기다림은 별보다 반짝인다』『동백을 뒤적이다』가 있으며,
∙ 현재『미네르바』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 제7회〈미네르바작품상〉과 제2회 서정주문학상(시집『빛의 뿌리』)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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