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청(造淸)과 조포(造泡) 연포(軟泡)
조청은 묽게 곤 엿을 가리키고, 조포는 두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조포는 경상도 사투리로는 조피라고 한다.
어린 시절 조청과 조포를 만드는 날은 작은 잔칫날과 같았다. 이 음식을 만들려면 어른들은 일도 많았지만, 아이들은 평소 먹지 못하던 엿밥과 달디단 엿, 그리고 맛 좋은 비지와 두부를 맛보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널따란 구운 떡에 어머니가 조청을 발라 둘둘 말아주는 것을 베어 먹던 그 맛이야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 배고프던 시절에 비지를 김치 국물에 비벼 먹던 그 맛이나, 연두부를 퍼먹던 그 맛이야 지금도 잊힐 리가 없다.
그러면 이러한 조청과 조포에 대한 말의 됨됨이를 한번 알아보기로 하자.
조청(造淸)이란 말은 ‘청(淸)을 만든다(造)’는 뜻이다. 그러면 ‘청(淸)’이란 무엇일까? ‘청’은 ‘벌이 만든 꿀’을 가리키는 한자어다. 원래는 궁중에서, 꿀을 가리키던 말이다. ‘청’ 자는 맑은 술이나 음료를 뜻하는 바는 있지만, ‘꿀’이라는 뜻은 가지고 있지 않은 글자다. 그러므로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꿀’이라는 뜻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이 청(淸) 자를 ‘꿀’이란 뜻으로 사용하는 글자다. 그러니 조청이란 말은 꿀을 만든다는 뜻이다.
석청(石淸)은 벌들이 돌 틈에 서식하며 거기서 만든 꿀을 가리키며, 목청(木淸)은 고목의 파인 구멍에 벌들이 서식하며 거기서 만든 꿀을 가리킨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유자청(柚子淸)이나 매실청(梅實淸)도 그러한 과일에 꿀을 저려 만든 음식의 이름이다.
그리고 생청(生淸)은 벌집에서 떠낸 후 가공하거나 가열하지 않은 그대로의 꿀을 가리키고, 생청을 떠내고 불에 끓여 짜낸 찌개 꿀은 화청(火淸)이라 한다. 숙청(熟淸)은 찌꺼기를 없앤 맑은 꿀을 가리키고, 백청(白淸)은 빛깔이 희고 품질이 좋은 꿀을, 황청(黃淸)은 누렇고 질이 좋은 꿀을, 흑청(黑淸)은 빛깔이 검은 조청과 같은 꿀을 각각 가리킨다.
그리고 약청(藥淸)은 약으로 쓰는 꿀을 말하고, 즙청(汁淸)은 과즙 따위에 꿀을 바른 뒤 계핏가루를 뿌려 재워둔 꿀을 말한다. 강청(强淸)과 교청(膠淸)은 된 꿀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시중에서 돌고 있는 무, 사과, 생강, 고구마, 호박, 배, 천연초, 도라지, 대추 등으로 만든 조청은 다 쌀 조청처럼 무 조청, 사과 조청, 생강 조청, 고구마 조청 등으로 부른다.
다음은 조포에 대하여 알아보자.
경상도 일원에서는 두부를 조피라고 한다. 조피는 조포에서 온 방언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 말이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조선조(朝鮮朝)에서는 ‘조포사(造泡寺)’라는 절이 있고, ‘조포소(造泡所)’라는 기관이 있었는데, ‘조포사’는 능(陵 왕과 비의 묘)이나 원(園 세자 세자빈, 세손, 왕의 생모 묘)의 제사에 쓰는 ‘두부’를 맡아 만드는 절이었고, ‘조포소’는 관가(官家)에 두부를 만들어 바치던 기관이었다. ‘조포’는 ‘두부를 만든다’는 말이다. ‘조(造)’는 만든다는 말이고 ‘포(泡)’는 두부라는 뜻이다. ‘포(泡)’ 자는 ‘거품 포’ 자로 보통 알고 있지만, 이 글자에는 ‘두부, 성하다, 물 흐르는 모양, 작은 샘, 물을 붓다, 여드름’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포(泡)’ 자는 두부를 뜻하는 한자로 ‘두부 포’ 자다. 이 ‘포(泡)’ 자도 두부를 뜻하는 글자로 쓰이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다. 궁중에서 두부를 만들던 사람을 가리켜 포장(泡匠)이라 하였다. 두부 만드는 장인이라는 뜻이다.
두부를 만들어 왕릉의 제사와 관청에 납품하던 당시의 ‘조포’ 기관의 이름을 따서 당초에는 두부를 ‘조포’라고 했다. 이 조포란 말이 세월이 흐르면서 ‘조피’로 변한 것이다.
임금이 죽어 산릉(山陵)을 모시면, 그 곁에는 임금의 극락왕생을 위한 절을 두었는데 이를 승원(僧院)이라 하였다. 그리고 각 능에서 제례 행사가 있을 때는 이 승원에서 제수와 두부를 만들어 바치게 했는데, 그러한 절을 조포사(造泡寺)라 하였다.
연포(軟泡)의 포(泡) 자도 두부라는 뜻이다. 얇게 썬 두부를 꼬치에 꽂아 기름에 지진 다음 닭국에 넣고 끓인 음식을 말한다. 그러니까 ‘연(軟)’ 자는 ‘얇게 썰다’는 뜻이고, ‘포(泡)’ 자는 두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얇게 썬 두부라는 뜻이다. 연포는 주로 연포탕(軟泡湯)이란 말로 많이 쓰인다. 이는 원래 두부와 닭고기 따위를 넣어 맑게 끓인 국을 가리킨다. 초상집에서 발인(發靷)하는 날 흔히 끓였다.
그런데 연포탕을 발인하는 날 상가(喪家)에서 먹는 장국이란 뜻에 이끌려 한자로 염폿국(殮布_)이라고도 썼다. 염포란 염습할 때에 시체를 묶는 베라는 뜻이다.
또 이 연포탕을 요즘은 연폿국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두부를 넣어 끓인 이 연포탕이 요즘은 두부는 없고 낙지가 주재료가 되었다. 낙지 연포탕이 되었다. 게다가 쭈꾸미 연포탕, 전복 연포탕, 갈비 연포탕 등도 등장하게 되었다. 세월의 흐름에 연포탕도 그 재료가 변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어느 당 대표로 선출된 분이 당선 소감을 말하면서, 당이 연포탕이 되도록 실제로 실천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연포탕에 들어간 재료들이 서로 잘 조화가 되어 맛을 내는 것에 비유한 것이라고 보인다. 연포탕은 그 안에 들어간 재료들도 재료지만 그 재료들이 한데 어울려 빚어내는 시원한 국물맛이 으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물을 유달리 좋아한다. 텔레비전에서 음식을 소개하는 장면을 보면 장면마다 사람들이 나온 음식의 국물을 마시면서, ‘아, 시원하다’라는 말을 하나같이 외치고 있다. 대통령과 함께 어느 재벌 총수가 시장을 돌다가 어묵국을 사 먹는 장면에서, 어묵 국물을 마시고는 ‘아 좋다’라는 말과 함께 ‘사장님 국물 좀 더 주세요’라고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일본 관동 대지진 때 일본 사람들이 한국인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고 거짓 선전을 하면서 한국인을 가려서 죽이는 희대의 살인사건이 있었다. 이때 한국인을 가려내는 방법 중 하나가 음식을 먹을 때 국물을 잘 마시는 사람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설이 있다. 그만큼 우리는 시원한 국물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일전에 어느 의사가 혈압과 관련한 강의를 하면서 음식을 먹을 때 젓가락만 사용하라는 말을 한 것을 들은 일이 있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먹기 때문에 염분을 많이 섭취하게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무래도 한국인에게 저 말은 먹혀들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 국물의 시원한 맛을 버리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첫댓글 맞습니다. 국 없이 밥을 먹기가 저도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 먹으러 갈 때도 국이 맛있는 식당을 선택하게 됩니다.
저도 퇴직 후 농사를 조금 지으면서 생산한 모든 것들을 청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설탕으로 만들었으니 가치는 없는 것들이죠.
어릴 때 조포라는 말을 많이 들어 보았습니다. 포가 두부를 뜻한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