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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 종말론과 거리의 전도자들
권혁률/새누리 신문 취재부 차장
10월 휴거의 진상
요즘 길거리를 지나다보면 피킷을 들거나 어 깨띠를 두르고 목청껏 외쳐대며 지나가는 행인에게 전도지'를 나누어주는 사람들을 흔히 접할수 있다. 아마 웬만한 사람들은 이들이 나누어주는 전단이나 소책자를 받아본 경험을 몇 번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들어서는 노상에 텔레비전 수상기를 갖다 놓고 비디오를 상영해 관중을 모으는가 하면 아예 집에가서 보라고 비디오테이프를 공짜로 안겨주기까지 한다.
봉고차에 '금년 10월에 예수님 공중재림하십니다!' '휴거' 오른손과 이마에
666 받으면 무조건 지옥행'등의 문구를 크게 써붙이고 돌아다니는 광경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지난 1992년 6월 5일 오후 3시 서울역 광장 시계탑 앞에서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92년 10월 28일 휴거-다미선교회'라 쓰인 어깨띠를 두르고 목청껏 “7년 대환란, 적그리스도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다른 한명이 "다미소식」 이란 유인물을 열심히 나눠주고 있었으나 지나가 는 사람들의 표정은 지극히 무표정했다. 이들에게 관심을 보이기는커녕, 건네는 유인물을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쳐 버리거나 설혹 받아들 더라도 전혀 눈길을 돌리지 않고 들고가다가 조금 지나쳐선 버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전혀 아랑곳 않고 외쳐대면서 유인물을 쉬지 않고 건네는 것이었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몇 년 전쯤에 정년퇴직했을 법한 노인이 와이셔츠에 때가 찌든 옷차림으로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라고 쓰여진 어깨띠를 두르고 행인에게 건네는 말인지 혼자 옮조리는 독백인지 도무지 분간하기 힘든 목소리로 연신 무언가 웅얼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앞에서 외쳐대고 있는 두 사람의 위세에 다소 주눅이 들었거나 아니면 자아도취 상태에 빠져 있는 듯했다.
서울역 광장에서 이날 연출된 장면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어느덧 영등포역, 신도림역 등 주요 지하철역이나 인파가 붐비는 웬만한 장소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풍속도가 되어 있다. 이처럼 거리로 뛰쳐나와 외쳐대는 '거리의 전도자들'의 주장은 대체로 비슷한데, 그 핵심은 올해 10월 28일 24시에 7년 대환란과 적그리스도의 시대가 시작되고 선택받온 사람들은 휴거(복-하늘로 들어올려짐) 된다는 시한부 종말론'이다.
지난 5월 말 다시 문을 연 교보문고에 광화문 지하도쪽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오른쪽에 제일 먼저 나타나는 곳이 종교서적 코너다. 종교서적 코너로 들어서면서 처음 마주치는 진 열대는 과거 교보문고가 문닫기 이전에 문학분야 베스트셀러들이 특별 진열되었던 곳, 그런데 이같은 '로열석'에 놓인 50여 권의 선택받은 책 가운데 12권이 바로 시한부 종말론관계 서적이다. 교보문고측이 기독교계와 사회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이들 '이단'서적을 이토록 용승히 대접하는 것은 그만큼 이들 서적을 찾는 수효가 만만치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다미선교회의 정체
길거리에서 보이는 일반 시민들의 냉담한 반옹과 서점가에서의 높은 관심.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이 야누스적 현상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이장림 신드롬'이라고 까지 불리기도 하는 시한부 종말론온 어떻게 형성됐고 그 근거는 무엇인가?
87년 5월, 당시 보수적 입장의 신앙서적을 펴내는 어느 출판사의 번역부에 근무하던 이장림이라는 사람이 계시를 받았다는 어린이들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그는 자칭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하방의군과 권미나양, 김현진군 등 어린이 세명의 계시 내용에 바탕을 둔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 라」는 책을 펴냈고 얼마 후에는 '92년 10월 예수재림, ‘99년 지구종말' 주장을 펼치기 위해 다미선교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책이 의외의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자 여기에 고무된 이씨는 연이어 ‘하늘문이 열린다’, ‘경고의 나팔’, ‘1992년의 열풍’, 등의 시한부 종말론 관계서적을 번역 또는 집필하였다. 이 책들도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그의 주장은 교계 내외로 크게 확산되었고 자연 이장림씨의 다미선교회는 상당한 세를 형성하게 되었다.
'장사가 잘되는’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유사단체들이 급격히 늘었음은 물론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1992년 10월 28일 종말 주장은 그 논거가 의외로 단순하다.
성경에 보면 로마가 분열해서 10개의 연합된 형태로 다시 부활하는데 그 신흥 로마왕의 출현이 주의 재림과 맞물린다는 내용이 나온다. 92년의 BC통합이 바로 이것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 시고 제7일째에 쉬셨는데, 하루가 천년 같다는 성경구절에 비추어 이는 인간의 역사가 6천년 으로 끝나고 그후 1천년간은 예수님이 직접 통치하는 천년왕국시대가 도래한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따라서 아담에서 예수까지의 4천년, 그후부터 예수의 지상재림까지의 2천년을 인류 역사로 보고 서기 2천년을 지구종말의 해이자 천년왕국이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므로 인류역사가 끝나는 시점인 1999년에서 성경에 나오는 7년 대환란 기간인 7년을 빼면 바로 1992년에 예수의 공중재림과 성도들의 휴거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스라엘 이 독립한 해로부터 따져 계산하는 등 몇 가지 근거를 더 제시하기도 한다.
한편 10월 28일 24시라는 시간이 나온 논거는 더욱 단순하다. 성도들이 공중으로 끌어올려져 사라지는 휴거는 나팔 부는 것과 관계가 있으므로 휴거 날짜는 당연히 나팔절(유월절, 오순절 등과 함께 유대7대 절기의 하나)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온, 유대력으로 7 월 1일인 나팔절을 양력으로 게산하면 금년의 경우 9월 28일이 됨에도 막상 시한부 종말론자 들은 그 한 달 뒤인 10월 28일로 휴거 날짜를 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처럼 휴거 날짜를 한 달 늦춰 잡은 근거로 성경에 성결 (聖潔)된 제사장이 부족하고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다 모이지 못했을때 유월절 제사를 한 달 연기했던 내용이 나오는 것을 예로 들고 있다. 이는 종말이 다가왔음에도 이를 알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한 성도들을 위해 그날을 한 달 늦춰 '온층의 유예기간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휴거시간이 24시 (자정)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스라엘에서 나팔 부는 시간인 오후6시가,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밤 12시 자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휴거론자들 사이에서도 예수 재림 일시를 서로 다르게 주장하기 시작해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1992년 5월 18일 오후 5시 서울 지하철 2호선인 아현역 출구앞에서는 휴거 어깨띠를 두른 20대 처녀와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년남자가 격렬한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언쟁내용을 들어보니 젊은 여인이 10월 28일 휴거를 주장하며 거리전도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중년남자가 휴거 일시는 그때가 아니라고 시비를 걸어 말다툼이 된 것이었다. 다미선교회와 그 유사집단들이 10월 28일 자정으로 휴거시간을 못박은 데 대해 그들 세계에서 선지자'로 통하는 하방의군(17) 의 다베라선교회와 권미나양(18)이 중심인 성화선교교회는 각기 10월 10일 이전과 92년 중 휴거를, 마라나타선교회에서는 10월 10일을 주 장하며 서로 상대방이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하기 때문에 그 추종자들간에는 종종 거리에서 이같은 언쟁이 벌어진다고 한다.
공상과학소설 같은 666이야기
이들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종말이 가까이 왔다는 시대적 징조로 삼는 가장 큰 증거는 666 표이다. 666이란 숫자는 요한계시록에서 짐승, 곧 악마의 수로 언급되고 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이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계시록 13장 16-18절) 이들은 컴퓨터와 신용카드, 특히 바코드의 사용확산을 종말 근거로 제시한다.
왜 컴퓨터가 666인가? 이들의 계산법을 보면, 영어 알파벳에 a=6, b=12, 0=18,••·•• 과 같이 6의 배수를 차례로 대입한 후 컴퓨터 스펠렁 c(18), 0(90), m(78), P(96), u
(126), t(120), e(30), r(108) 수을 모두 더하면 666이 나온다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전도용으로 나누어주는 비디오테이프의 내용을 통해 이들의 주장을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보 자.
갈릴리선교회라는 단체에서 만들어 뿌리는 ‘7년 대환란과 바코드 666 마귀의 음모'라는 비디오테이프는 핵폭발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어 중간중간 세계종말의 때가 다가왔다는 설교를 끼워 넣으면서 홍수, 전쟁 등의 화면과 불안감을 조성하는 음악과 함께 보여주고, 잘 알려진 공상과학영화 ‘로보캅’을 인용해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조만간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또 사람의 이마나 오른손에 바코드를 강제로 새긴 후에 이것으로 신분증이나 신용카드를 대신한 뿐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를 철저히 틍제, 조정하는 수단으로 삼는 가상화면을 보여주면서 이를 거부하며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성도들의 순교장면을 부각시킨다.
말세에 대한 설교와 자료화면이 교차되는 이런 장면이 1시간쯤 계속된 뒤에는 컴퓨터전문가라는 젊은 강사가 대중집회에서 인공지능을 가진 초대형컴퓨터가 자신에게 집중되는 정보를 이용해 어떻게 인간을 통제할 수 있는지를, 과학기술진보에 따른 인간의 소외감과 불안감올 자극하며 상당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 처럼 생각되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어느 연구기관의 전문연구원 같은 인상을 풍기는 이 젊은 '지성인’ 강사는 주민등록증과 신용카드 등 모든 증명서를 하나로 통합 하는 단계를 거쳐, 분실의 위협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증명서 대신 아예 인간의 몸에 전자문신 즉 바코드를 새겨 넣는 사회가 곧 도래한 것 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를 위한 음모가 이미 사탄에 의해 비밀리에 준비되고 있고 그 거점은 전인류에 대한 자료를 모두 수록할 수 있는 용량을 가진 브뤼셀에 있는 EC본부의 슈퍼컴퓨터라는'폭로'까지 덧붙인다.
이 모든 것이 종말이 임박했다는 증거이니 모든 사람들은 그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처럼 정보화시대의 도래에 따른 문명의 비인간화와 인간소외 현상을 교묘히 종말과 연결시키는 것 이외에도 이들은 유럽공동체의 통합을 또 다른 종말의 징조라고 강조한다. EC통합에는 바빌른이나 로마제국과 같은 대제국을 재건해 세계퉁일을 꿈꾸는 적그리스도의 숨은 음모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 사회주의권의 최근 변화와 관련, 북한과 공산권의 문이 열리고 상호교류가 되지만 곧 문이 닫혀 순교자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이미 기독교계에서는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날은 아무도 모른다’, ‘주의 날은 밤에 도적같이 임한다'는 성경말씀을 언급하면서 어느 날 어느 때라고 시한을 못박는 종말론을 단호히 거부하고 있는데, 그것은 참된 성서적 종말사상은 이들의 현실도피적 주장과는 판이하기 때문이다.
종교학자 장석만씨 (인하대 강사)는 ‘사회평론’, 3월호에 게재된 논문에서 종말론에는 기득권 체제를 종말의 열망으로 타파하려는 '천년왕국의 반란'과 '현실도피적 은둔으로서의 말세론'이라는 양면성이 존재하는데 시한부 종말론은 그중 후자로 경도되어 '폭발적 승부감에 휩싸인 단판승부'에 매달리는 꼴이며, 일시적으로는 해갈이 되나 결국은 더욱 목마르게 만드는 코카콜라적 갈증해소에 다름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연구에 관심을 기울여 온 김철손 박사(감신대 명예교수• 신약화)도 성서 나오는 숫자에 대한 공포증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666은 계시 기록 당시의 로마황제를 지칭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를 현대의 특정인물이나 특정물품(컴퓨터와 바코드 등)으로 해석하여 말세의식을 조장하고 시한부 종말른에 연결시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다.
666론'의 원류인 미국의 근본주의자들은 한 때 키신저의 철자 수치가 666이라 하여 그의 중동외교를 최후 심판을 앞둔 악마의 옴모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미국내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의 현실분석은 우리나라에 그대로 직수입되어 몇 년간 크게 풍미했으나 그의 은퇴 이후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은 예언이 어긋난데 대해 아무런 해명도 없이 사담 후세인, 전 교황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1세(이들은 상대적으로 진보적 • 개혁적인 인물로 평가되었다)등을 '악마적 상징조작'의 새로운 희생양으로 삼았다.
결국 세계기독교계에서도 악명 높은 미국의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의 비이성적 궤변이 여과없이 한국에 직수입되어 몇 가지 ' 양념'이 첨가되면서 오히려 원산지인 미국보다 더 큰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 한국의 시한부 종말론 선풍이라 하겠다.
보수적 이데올로기와 앵무새 같은 논리
물론 '거리의 전도자'들이 모두 이같은 시한부 종말론자는 아니다. 기성교회에서도 노방전도를 나서는 사례가 있으며, 광신적이라는 면에서는 동일하지만 접근방식이 다소 다른 집단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거리 전도자들의 대부분은 기독교인들이지만, 종로2가나 인사동거리에 종종 출현하는 대순진리회 신자들처럼 기독교가 아닌 종교집단의 노방전도행위가 가끔 목격되기도 한다.
앞에서 언급된 단체들 이외에 우리가 흔히 마주칠 수 있는 '거리의 전도자' 집단을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간혹 전철을 타고 가다보면 깨끗하게 차려입은 남녀들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부르는 광경을 볼 수가 있다. '당신의 참되고 영원한 행복을 위한’, ‘너 사랑아’ 등 그럴듯하게 꾸며진 컬러 팜플렛을 돌리면서 카세트 테이프를 판매하고
'사랑의 성금함’에 모금을 하기도 한다. 이들은 박명호씨가 이끄는 엘리야복음선교원 신도들로서 역시 기성교계로부터 이단으로 지목받고 있으며 청소년 가출과 학업중단, 부부이혼 등으로 상당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집단이다.
지난 1992년 6월 7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가져 눈길을 모았던 이초석씨의 땅끝예수전도단도 비슷한 부류의 집단. 신비적 열광주의에 기초해 현세적 • 물질적 축복관과 귀신축출을 강조하는 이들은 기실은 노동운동이 활성화 된 몇 년 전 부터 구로공단지역에서 상당히 논란이 됐던 전력을 갖고 있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 저녁 구로공단내 근로자복지관 앞에서 전세버스로 구백명의 여성노동자들을 잠실까지 실어나르면서 철야기도회에 참석시킨 것으로 유명한데, 이 집단과 관련된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이초석씨의 노동운동과 노조는 사탄의 음모라는 터무니 없는 발언을 맹종하여 이제 막 노조운동이 본격화되고 있는 구로지역 노동운동에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런 일은 이초석 집단뿐 아니라 모든 광신적 종교집단의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다. 광신적 보수신앙과 정치적 보수주의가 그 맥락을 같이함을 보여주는 반증이라고나 할까.
그러면 이들, 지구의 종말을 외치는 '거리의 전도자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얼마 전 토요일 오후에 신도림역 지하로에서 만난 20 대 후반의 청년. 그는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라는 피킷을 든 일행과 함께 '교회들아 성령의 말씀을 들으라'라는 시온교회 명의의 전도지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전도지를 건네받은 필자가 관심을 보이자 그는 자신들의 주장을 열심히 설명하려 했다.
그러다가 필자가 직업이 뭐냐, 기성교회에서 이런 교리를 이단으로 단죄한 것을 아느냐 등의 질문을 던지자 당혹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원래 여의도순복음 교회에 다니다가 군에 갔다 온 후 3년 전 부터 이 교회에 다니기 시작해 현재 직업도 없이 전적으로 거리전도에 매달려 있다는 이 청년은 얼마간 대화를 나누다 필자가 시은교회에 직접 찾아가 목사님을 만나고 싶다며 안내를 요청하자 머뭇머뭇거리다 거절의 뜻을 표했다. 우리는 굳이 우리 교회에 다른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자신들이 받았다는 계시를 널리 알려야 될 터인데 왜 교회방문을 거절하느냐교 반문하자 청년은 널리 알리는 것은 아직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우리는 단지 거리에서 외칠 뿐"이라고 궁색한 대답을 하고는 예의 계시내용을 반복하며 물러섰다. 아마도 그들의 설복에 완전하게 감동한 것 같지 않은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발동한 모양이다.
이처럼 길거리에서 광야의 예언자처럼 목청껏 외쳐대는 사람들에게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고 질문을 던졌을 때의 반응은 흥미로운 것이었다. 대부분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말세 주장 이외의 질문에는 당혹한 빛을 감추지 못하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회 여론이 결코 자신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 같기도 했고, 맹목적인 집단적 광신에 빠져 있음으로 인해 그들 스스로 남을 합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이성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사회병리현상으로서의 종말은종말론
이들 집단에 빠져든 사람들은 사회 각층의 다양한 부류에 속해 있지만, 대체적으로 부흥회적 신앙을 갖고 있다. '좀더 확실한'(=좀더 화끈한) 메시지와 분위기를 찾아온 기성교회 교인들과 실직 • 가정불화• 재수 • 직장내 스트레스 등으로 사회적 • 심리적 좌절과 방황끝에 찾아오는 유형으로 대별된다고 한다. 그리고 걸프전 처럼 뭔가 세상이 뒤숭숭할 때 새로운 신도가 급증한다고 한다.
이 처럼 어느 사회에 종말른이 횡행할 때 그것은 항상 그 시대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과거 세계교회의 역사를 둘러보아도 그렇고 한국교회사도 마찬가지다. 1920~30년대에 한국교회를 풍미했던 신비주의적 종말은 3• 1운동의 실패와 일제의 탄압, 세계적 공황이 겹쳐 있던 시기에 나타난 현상이었으며, 최 근 우리사회에서 종말론이 기승을 부리는 것도 시대적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 종교사회화자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김성건 교수(서원대)는 우리사회에 1992년 10월 시한부 종말른'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첫째, 산업화에 따른 급속한 사회변동의 부정적 결과물인 도덕성의 위기와 공동체의 파괴를 들 수 있다. 기성종교나 가치규범, 권위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능하다고 생각될 때 이 세상의 종말 같은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심리가 확산되는 것이다.
둘째, 정치적 무력감'의 또 다른 표현. 이 종말론이 유행하게 된 시점이 87년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얻어낸 6• 29선언에도 불구하고 야권분열로 인해 대통령선거에서 실패를 경험할 수 밖에 없었던, 대중의 정치적 무력감이 고조된 88년이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셋째, 최근 몇년간 국내외에서 잇따라 발생한 가공할 '떼죽음’ 사건들. 80년 광주학살사건, 83년 KA기 피격사건, 86년 체르노빌원전사고, 87년 오대양사건 등은 지옥을 묘사해 죽음의 공포를 생생하게 강조하는 종말론의 대두에 주요한 촉발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넷째, 최근의 세계사적 지각변동이 초래한 전 세계적 보수화 경향의 한 산물로도 볼 수 있다. 현실 사회주의의 좌절은 세계전반 특히 미국에서 보수주의가 판을 치게 만들었고 종교계의 보수화 경향도 두드러지게 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문화적 영향권 아래 놓여 있는 한국 교회의 근본주의자들 가운데 '시한부 종말론'이 급격히 확산되는 것은 이런 보수화 흐름의 일환 이라 할 것이다.
다섯째, 대다수 기성교회가 물량주의와 배금주의, 성장제일주의에 빠져 영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현실이 기성교회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이들 집단이 기성교인을 끌어들 일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직업까지 내버리고 재산도 팔아 말세를 외치며 거리전도에 나서는 시한부 종말론의 맹신자들, 또 이런 사람들의 현금을 모아 그들 스스로의 주장대로라면 불과 6개월 밖에 필요없는 교회 건물을 신축하고 호화저택을 사들이는 교주들 (이장림의 경우 서울 연남동 365번지에 대 지 148평, 시가 7억원의 저택을 구입해 물의를 빛기도 했다). 이들에게 단죄의 칼날을 휘두르지만 자신들도 별반 다를 바 없는 맹신적 신앙을 교인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한국교회. 이들이 서로 얽혀 과거 몇 차례 이미 빗나간 바 있 는 낡온 희극적 풍속도를 오늘도 거리 곳곳에서 새삼 재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맹신적 신앙 양태가 유독 우리나라에서 맹위를 떨치는 데에는 '병든 사회가 사이비신앙의 온상'(종교사회학자 이원규 교수의 말)이라는 지적대로 우리사회의 어두운 그늘이 투사되어 있다. 그러하기에 병든 말세론을 외치는 목소리가 거리에서 높아질수록 밝고 건강한 민주사회의 실현은 더욱 새삼스럽게 우리시 대의 절실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
<『말,지 7월호에서 전재)
199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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