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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세례 축일’과 세례성사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주님의 옷’ 입은 자녀 되어라
교회는 주님 공현 대축일(1월 5일) 다음에 오는 주일을 ‘주님 세례 축일’로 지낸다. 올해 주님 세례 축일은 전례력에 따라 1월 12일이다. 이날은 주님께서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을 기념한다. 이 축일로 성탄 축제가 막을 내리고 다음 날부터 연중 시기가 시작된다. 따라서 이날 저녁 구유를 비롯한 모든 성탄 장식을 치운다.
주님 세례는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심을 세상에 공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그래서 힐라리오 성인을 비롯한 여러 교부는 “그리스도는 이미 하느님의 아들이시지만 세례를 통해 새로운 임무를 받은 성자로 다시 태어나셨다”고 고백한다. 또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저서 「나자렛 예수」에서 “주님 세례를 통해 그분 안에서 인류는 새로 시작하고 또 최종 목적지에 도달한다”고 설명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님 세례 축일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진실로 마음의 눈을 뜨게 해준 성령을 주신 날”이라고 했다. 가톨릭교회 신앙의 진리를 체계화한 「가톨릭교회 교리서」 내용을 토대로 주님 세례 축일의 의미를 정리했다.
복음서는 주님의 세례를 다음과 같이 장엄하게 증언한다.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로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1-22)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공생활을 시작하셨다. 루카복음 3장 1절은 요한 세례자가 세례 운동을 전개한 때는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가 즉위한 지 15년째 되던 해라고 밝히고 있다. 환산하면 서기 27년경이다. 요한은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있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가셔서 죄가 없으신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굳이 자청해 세례를 받으신다.
주님의 세례는 당신의 ‘비우심’을 나타낸다.(1224항) ‘비움’은 주님의 구체적인 존재 양식이다. 참 하느님이신 분이 성탄을 통해 참인간이 되시어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비우셨다. 또 세례를 통해 죄 없으신 거룩한 분이 당신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시고 비우신 것이다. 이는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이 비움의 절정은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이른 하느님께 대한 순종이었다.
주님의 사명은 ‘죽음의 세례’로 완성된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예루살렘에서 겪으셔야 할 일 곧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당신이 받아야 할 ‘세례’라고 이미 말씀하셨다.(마르 10,38 참조) 이 죽음의 세례는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죄인들을 위해 수난을 겪고 죽어야 한다는 아버지 뜻을 수락하신 것이기도 하다.(536항 참조)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다”(필리 2,6-8)고 고백한다.
세례를 통한 주님의 순종에 천주 성부께서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고 화답하신다. 또 성령께서는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시어 머무르신다. 하늘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고 성령께서 예수님께 내려오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자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다시 한 번 드러내 주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주님의 세례를 “이스라엘의 메시아요 하느님 아들로서 드러난 예수님의 공현” 사건이라고 한다.(535항)
아울러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는 성부의 말씀은 주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와 어떤 관계인지를 명확히 드러낸다. 성부께서 예수님을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밝히신 것이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아들’로 불린 것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죄 많은 인간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셔서 인간의 죽을 운명, 비천함과 나약함을 온전히 당신 것으로 받아들인 그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과 닮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세례는 또한 그분께서 장차 선포하실 하느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미리 알려준다. 주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하느님의 뜻은 인간을 들어 높여 신적 생명에 참여하게 하시는 것이다.(「교회헌장」 2항)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으심으로써 이를 행하신다. 이 모임이 바로 교회이며, 이는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싹과 시작이 된 것이다.”(541항)
주님의 세례로 모든 사람은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도록 불림을 받았다. 이 나라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느님 나라는 가난하고 미소한 자들, 곧 겸손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구유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참여하셨다. 가난한 사람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시고, 그들에 대한 실천적 사랑을 당신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삼으셨다.(마태 25,31-46 참조)
아울러 주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자비와 함께 ‘회개’를 요구하신다. 주님께서 모든 의로움을 이루시고자 죄인들을 위한 요한 세례자의 세례를 자청하셨듯이, 죄인인 우리에게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라고 하신다.(요한 3,5)
주님의 몸인 교회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태 28,19)고 하신 주님의 명에 따라 성령 강림 때부터 지금까지 거룩한 세례를 베풀어 오고 있다. 교회의 세례는 언제나 ‘주님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그리스도 예수님께 대한 신앙과 결부돼 있다. 그래서 교회는 “세례성사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고, 성령을 받아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다시 태어났다”고 선포한다.(1227항 참조)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례 덕분에 우리가 ‘주님의 옷을 입은’ 새로운 창조물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를 공격하고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가난한 이의 얼굴을 한 주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게 한다”고 주님 세례 축일의 의미를 설명했다.
[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시핑크는 성모님의 방석, 금어초는 아기 예수님의 신발
성모님의 방석이라 불린 시핑크
소금기 많고 건조한 바닷가 황무지에서 자라는 식물들의 이름에는 흔히 그 첫머리에 ‘갯’ 자가 들어간다. 그 중에 갯질경이과 식물이 있다. 갯질경이과 식물은 10여 개 속(屬)의 풀과 관목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 세계 곳곳의 바닷가에서 자란다. 그리고 그 중에서 몇몇 종류는 원예용 또는 관상용으로 사랑받는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유럽 원산의 재래품종들이 개량되어 널리 재배된다.
특히 아르메리아 속에 속한 식물들이 그러한데, 아르메리아 속의 식물들 중에서 시핑크(Sea Pink)라고도 불리는 아르메리아 마리티마(Armeria Maritima)는 유럽 대륙의 서쪽, 그러니까 대서양에 면한 바닷가의 바위 많은 고지대나 절벽 위, 소금기 있고 건조한 모래밭 등지에서 흔히 자란다. 시핑크는 우리말 이름으로는 너도부추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핑크가 카네이션의 변종 중 하나로(2019년 5월호 필자의 글 참조) 우리나라의 야생화 패랭이에 가까운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바, 꽃의 색깔이며 생김새를 볼 때 시핑크는 말 그대로 옮겨서 바다패랭이 또는 갯패랭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여러해살이 늘푸른식물인 시핑크는 가늘고 기름한 끈 모양의 잎들이 지표면 가까이에 도톰하고 다보록하게 뭉쳐서 자란다. 그리고 거기에서 10∼15cm 정도의 꽃줄기들이 솟아오른 다음 그 끝에서 주로 밝은 분홍색의 잔 꽃들이 둥글게 모여 달린 형태로 핀다. 더러는 연한 자주색과 흰색 등의 꽃들도 있다.
이 식물과 관련해서 교회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헤로데 왕은 베들레헴과 그 일대의 어린아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을 내렸다. 그리하여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은 어린 예수님을 데리고 황망히 이집트로 피난길을 떠나셔야만 했다. 성 요셉은 예수님을 품에 안으신 성모님을 나귀 등에 태우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그 와중에서 성모님이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앉아서 가실 수 있도록 성 요셉은 깔개 하나를 만들어서 나귀 등에 얹었는데, 이 깔개가 바로 시핑크 잎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중세 때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식물을 일컬어서 성모님의 방석 또는 깔개(Lady’s Cushion)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아마도 시핑크 포기들이 지표면 가까이에 뭉쳐서 자라는 도톰하고 다보록한 모습을 보면서 방석이나 쿠션을 연상했던 모양이다. 다르게는 성모님의 바늘꽂이(Lady’s Pincushion)라고도 불렀는데, 이 또한 시핑크 포기의 모양새에서 연상된 이름이었을 것이다.
아기 예수님의 신발 금어초
인기 높은 화초류 중 하나로 금어초가 있다. 한때는 현삼과 식물로 분류되었다가 질경이과 식물로 개정 분류된 금어초는 흔히 여러해살이풀로 여기지만, 관상용으로 화단에 심는 원예종은 한해살이풀 또는 두해살이풀에 속한다. 남부 유럽과 북아프리카 원산으로 품종에 따라 높이는 20cm에서 80cm 정도까지 다양하며, 추위에 비교적 강하고, 바위가 많은 암석 지대에서도 잘 자란다. 파종 시기에 따라서 가을에 파종한 것은 4∼5월에, 봄에 파종한 것은 5∼7월에 꽃이 피며, 품종에 따라서 빨간색, 흰색, 노란색, 주황색 등의 꽃이 핀다.
이 식물에는 그 꽃의 생김새를 따라 여러 가지의 재미있는 이름들이 붙여졌다. 동양에서는 이 꽃을 보면서 금붕어의 입 또는 금붕어가 헤엄치는 모습을 연상했다. 그래서 금어초(또는 금붕어꽃)라고 불렀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용의 대가리(특히 입 부분)을 연상했다. 그래서 스냅드래곤(snapdragon)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리스에서는 이 꽃의 모습에서 동물의 코를 연상했던 모양이다. 이 꽃의 학명 안티리눔(Antirrhinum)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름인데 ‘코처럼 생긴 꽃’이란 뜻이 있다(사람의 코처럼 오뚝하게 솟은 코가 아니라 납작하고 콧구멍 두 개가 뻥 뚫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돼지코를 연상하기 바람). 그런 식으로 이 식물은 사자의 입, 송아지의 코, 두꺼비의 입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그런가 하면 꽃이 시들고 난 뒤 열매가 맺히는데 그 모양이 해골처럼 생겼다고 해서 용의 해골 또는 해골꽃이라고도 불렸다.
이 식물은 이름이 다양한 것만큼이나 그 품종도 다양해서 40여 종에 이른다. 그리고 그만큼 예로부터 사람들에게 흥미와 관심의 대상이었다. 특히 로마인들은 금어초를 사랑해서 로마뿐 아니라 제국의 영토 전역에 퍼뜨렸다. 놀잇감이 많지 않던 예전에는 사람들이 자연사물에서 즐길 거리를 찾곤 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상상력을 자아내는 금어초는 상당히 흥미로운 꽃들 중 하나였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메시지를 은밀하게 전하고 싶을 때 꽃을 이용하는 관습이 있었다. 가령, 연인에게 자신의 진심 또는 진실을 전하고 싶은 사람은 히아신스를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히아신스와 함께 금어초를 보내는 것은 그 꽃들을 보내는 사람이 잘못한 실수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을 전한다는 뜻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금어초는 바위가 많고 척박한 곳에서 자라는 식물이기에 고유한 상징성을 가진다. 특히 여성이 불리하고 열악한 처지에 있던 시절에, 어려운 여건과 불리한 조건에 대응하고 극복하며 살아가는 이들(여성들)이 지니는 내면의 강인한 힘과 그들이 나름대로 누리는 은총을 상징했다. 그런 점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존재인 여성에게 금어초를 주는 것은 그 여성을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중세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꽃을 보면서 아기 예수님의 발에 신겨 드릴 신발을 연상했다. 그리하여 그 이름을 아예 아기 예수님의 신발(Infant Jesus’ Shoes)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생각해 보면, 성모 마리아께서도 여느 예비 엄마들처럼 아직 아기가 태중에 계실 때 배내옷이며 갖가지 출산용품들을 준비하시면서 예쁘고 앙증맞은 신발까지 미리 준비해 두셨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달콤한 기대감과 소소한 행복감은 산산이 날아가 버렸다. 느닷없이 아기 예수님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머나먼 타향으로 허둥지둥 피신하셔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 성모님을 위해, 그리고 아기 예수님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없는 예쁜 신발을 다시금 챙겨 드린 것이 아니었을까.
[성모님 마음으로 전례를] 전례에 참여하는 신자들의 자세
레지오는 성모신심의 중심역할을 하며, 본당 안에서도 사목적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성모님의 군대입니다. 레지오는 본당 안에서 자모이신 성 교회의 모성의 모델이신 성모님 현존의 가장 탁월한 표지입니다. 그러한 레지오의 기도와 선교, 봉사의 보고를 나누는 훌륭한 잡지 레지오 마리애지에 앞으로 1년간 전례에 대해 투고할 수 있어서 참으로 은혜롭게 생각합니다.
교회 활동의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자 정점인 전례는 ‘올바른 마리아 신심의 원천이며 정점’이기도 합니다. 이 원고가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전례에 보다 합당하고 기쁘게 능동적으로 참여고, 특히 성모 마리아의 마음과 정신으로 전례에 참여하고 전례를 사랑하며, 그 안에서 성모신심이 올바르게 발전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들어가는 말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혈육을 취하신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어 성자 다음으로 모든 천사와 사람 위에 들어 높임을 받았으며, 그리스도가 영위한 지상 생활의 신비에 깊이 참여하여 아들의 구원 사업에 뗄 수 없도록 결합되어”(전례헌장, 103) 있는 분으로서 ‘상경지례’(上敬之禮)로써 공경 받으신다.
마리아 신심에 있어서 그 공경의 내용은 하느님의 어머니인 거룩한 동정녀 마리아를 존경하고 자녀다운 사랑을 드리며 성자께 전구(轉求)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고, 하느님의 구원경륜 가운데 마리아가 수행한 특별한 역할에서 드러나는 마리아의 탁월한 덕행을 본받는 일이다.
그런데 마리아 신심은 그리스도로부터 그 기원과 효력을 취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표현되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로 향하는 것이어야 한다. 교회헌장 66항도 “마리아 공경은 특별한 것이기는 하지만 혈육을 취하신 말씀의 성자가 성부와 성령과 더불어 받으시는 흠숭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그 흠숭에 오히려 큰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교회가 인준(認准)한 성모 신심의 여러 형태는 시대와 장소의 조건이나 신도들의 기질과 품성에 따라 다양하였으나 그 모든 형태는 성모가 공경을 받으심으로써 성자가 옳게 이해되시고 사랑과 영광을 받으시며 성자의 계명이 준수되도록 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교회헌장, 66).
그런데 성부와 성령과 더불어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는 흠숭에 도움이 되는 올바른 마리아 공경은 무엇보다도 전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쇄신의 근본 목적이 잘 이해되고 올바로 적용되게 함과 동시에 전례를 더욱 합당하게 부흥시키고자 심혈을 기울였던 교황 바오로 6세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의 올바른 방향과 발전을 위해 사도적 권고 ‘마리아 공경(MARIALIS CULTUS)’ 을 내놓았는데, 그 서문에, 교회의 참된 신심으로서 발전되어야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은 마땅히 ‘그리스도적’이라 불리는 단일한 예배 안에 위치해야 해야 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바오로 6세에 의하면, 교회가 영과 진리 안에서(요한 4,24)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는 흠숭을 합당히 바쳐 올리고, “하느님의 모친 복되신 마리아께는 비범한 애정으로 공경을 드리며”(전례헌장, 103항), 순교자와 다른 성인들을 경건하게 기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전례 안에서이다.(‘마리아 공경’, 8)
바오로 6세는 그리스도적 예배의 올바른 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주님의 어머니께 대한 신심도 바르게 증진될 것임을 확신한다. 사실 신심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건전한 정통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 교회가 인준한 성모 신심의 여러 형태들은 그리스도께 드리는 예배에 조화 있게 종속, 의존하면서 발전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먼저 전례가 무엇인지, 전례의 본질에 대해 살펴본 후, 교황 바오로 6세, 권고 ‘마리아 공경’(MARIALIS CULTUS)*를 바탕으로 전례 안에 마리아의 위치와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I. 전례의 본질
1. 전례에 참여하는 신자들의 자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헌장에 의하면 “모든 전례 거행은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 몸인 교회의 활동이므로 탁월하게 거룩한 행위이다. 그 효과는 교회의 다른 어떠한 행위와 같은 정도로 비교될 수 없다.”(7항)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10항) 따라서 “신자들은 올바른 마음 자세로 거룩한 전례에 참석하여, 자기 마음을 목소리에 맞추어, 천상 은총을 헛되이 받지 않도록 은총에 협력하여야 한다.”(11항)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전례는 성직자에게 집중돼 있었고 신자들은 수동적 자세로 임했다. 그러나 공의회 이후 달라져 성직자 중심에서 벗어났다. 헌장은 모든 신자가 의식적이고 능동적인 완전한 전례 참여를 강조한다.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는 전례 자체의 본질에서 요구되는 것이요, ‘세례의 힘으로’ 믿는 이들에게 권리이고 책임이다. 신자들에게 있어 전례에의 능동적 참여는 그리스도 정신을 길어 올리는 첫째 샘이며 또 반드시 필요한 샘이다.(14항)
온전한 능동적 참여를 위해서는 내적 이해가 우선돼야 하며 그런 다음 표현, 즉 활동적 참여로 유도해 주어야 한다. 전례는 제대로 알지 못하면 무미건조한 형식주의로 흐르게 된다. 예수님의 구원 업적을 전례 안에서 현실적 사실로 실현시키는 것이 말, 동작, 사물 등 인간 사회에서 사용하고 통용하는 감각적 표지들이다.
이것들의 의미를 잘 알고 전례에 임해야 능동적 참여가 이루어 질 수 있다. 의미 이해와 내면적 준비가 충실해야 환호와 같은 외적 표현이 진실로 터져 나온다. 그런데 미사 때 신자들을 보면 입도 제대로 벌리지 않는 신자들(벙어리 신자)이 있는가 하면, 내적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형식적으로 따라하는 신자들(앵무새 신자)이 있어 안타깝다. 레지오 단원들의 전례 참여 자세는 어떠한가?
주님 공현 대축일은 어떤 날?
예수님께서 모든 민족들의 구세주이심 널리 드러내
해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이 돌아오면 성탄 구유에 동방박사들의 형상을 추가한다. 아기 예수와 그를 보호하고 있는 마리아와 요셉 곁에 동방박사들이 들어가면서 구유는 완성되고, 그리스도의 빛이 온 세상에 비춰짐이 드러난다.
이처럼 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따라 아기 예수를 찾고 경배 드린 것을 경축하는 날이다. 아울러 이방 민족을 대표하는 동방박사들의 방문으로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의 빛으로 계시됐음을 나타낸다.
기원과 유래
주님 공현 대축일의 기원은 오래 전 동방교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방교회에서는 1월 6일에 예수의 탄생과 공현을 함께 기념함으로써 그리스도가 참 빛임을 드러냈다.
2세기 초에는 동방 지역의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자들이 예수가 세례를 받는 순간 하느님의 아들로 입양됐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1월 6일에 예수의 세례를 기념했다. 하지만 이는 예수가 인간으로 태어나기 이전부터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정통 신앙과 상반되는 것이었다. 동방교회는 이들 이단에 맞서 같은 날 예수의 세례를 기념하며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심이 드러났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동방교회는 공현 축일에 예수의 세례도 함께 기념하고 있다.
서방교회가 주님 공현을 기념한 것은 4세기부터이며 동방교회의 공현 축일이 서방교회로 전파되면서 의미가 변화됐다. 오늘날과 같이 동방박사들이 구세주를 경배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온 것을 기념한 것이다. 곧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의 탄생에 ‘이방 민족들 모두에게 드러내 보이셨다’(공현·Epiphania·公現)는 의미가 강조됐다. 여기에 ‘예수의 세례’와 ‘카나의 첫 기적’을 덧붙여 기념했다. 1960년에 이르러, 부활 시기가 ‘성령 강림 대축일’로 완성되는 것과 같이 ‘주님 세례 축일’을 성탄 시기의 성령강림이라는 차원에서 따로 설정해 지내도록 했다. 곧 공현 축일과 세례 축일이 분리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주님 공현 대축일은 1월 6일에 기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모든 교우가 이날을 경축하도록 1월 1일 다음에 오는 주일에 지낸다.
전례
이날 전례 역시 그리스도께서 이방인의 빛으로 널리 계시됐다는 주제를 갖는다
제1독서(이사 60,1-6)는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모일 것이라는 희망을 예견한 이사야서를 봉독한다. 시간 전례에서도 같은 내용을 읽고 복음에서도 반복하며 이스라엘을 넘어 구원에 대한 약속을 확인한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마태 2,6)
같은 맥락에서 제2독서를 통해 사도 바오로는 자신을 비롯한 이방인들도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약속의 상속자가 됨을 밝힌다.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에페 3,5-6)
즉 구약의 독서를 통해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불러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지만, 신약에 와서 유다인들에게 약속된 복음 선포가 이방인들에게도 전파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곧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는 베들레헴의 별빛은 그리스도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갖가지 어둠 속에서 구원을 염원하는 모든 이를 위한 빛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이방인들의 대표, 동방박사
하느님은 세상의 많은 백성 가운데 이스라엘의 구원자라는 선민(選民)사상이 지배적이었던 교회의 구원관은 동방박사의 방문으로 인해 이방 민족들의 구원에까지 확장됐다. 그리스도의 빛이 온 세상에 비춰지게 되는 것이다.
동방박사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마태오 복음서에 따르면, 동방박사들을 ‘마고이’(magoi, 단수 마고스(magos)의 복수)라고 표현한다. 현자 또는 꿈의 해석자라는 뜻인 이 용어는 후에 점술이나 마술 등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일반화됐다. 예수 활동 당시에는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성향을 지닌 이들과 사기꾼 마술가로 구분됐는데, 마태오 복음사가는 천문학적 지식을 지니고 있던 이들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사용했다.
한편, 서방교회의 첫 교부인 테르툴리아누스는 ‘마고스’를 왕이라 설명했고, 6세기 유럽에서는 이런 전통을 계승하고 보완해 ‘마고스’를 왕으로 추대했다. 이후 발타사르, 멜키오르, 가스발이라는 삼왕의 이름까지 붙여져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복음에서는 이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마태 2,11)고 전한다. 동방박사를 다룬 많은 작품들에서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마태오 복음서에는 숫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지만 3세기 교부 오리게네스가 아기 예수에게 황금과 유향, 몰약 세 가지 예물을 드렸다는 기록에 준해서 이들의 숫자를 셋이라고 간주했다. 완전함을 상징하는 숫자 ‘3’은 이들 동방박사가 전체 인류를 대표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동방박사의 예물봉헌은 임금께 드리는 경의의 표현이며, 이들이 가져 온 선물은 그리스도 신비의 세 가지 요소를 가리킨다. 황금은 만왕의 왕인 예수의 왕권을, 유향은 대사제로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몰약은 장례예식에 쓴 약물로 예수 수난의 신비를 의미한다. 세 가지 봉헌물은 당시 이방인들이 태양신에게 바치는 예물이었다. 그런 면에서 ‘세상을 비추는 참된 빛이 떠오른 것’이라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빛을 따라서
구세주 탄생을 알아보고 별을 따라 아기 예수를 찾은 동방박사들의 모습은 큰 의미를 지닌다.
“동방박사들은 계속해서 하늘을 관찰하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그리스도에게 줄 선물을 갖고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찾기 위해서 우리는 위험에 대한 공포와 자기만족, 인생에서 무엇인가 더 찾지 않으려는 나태함을 이겨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8년 주님 공현 대축일 미사에서 한 강론 내용이다. 교황은 2019년 주님 공현 대축일 미사 강론에서도 “예수님을 찾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여정을 시작해야 하며 선택의 길, 그분의 길, 겸손한 사랑의 길을 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곧 그분의 빛이 우리를 비추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여정 안에서 가난한 베들레헴의 빛나는 별을 찾아 떠날 용기를 지녀야함을 시사한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마태 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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