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촌호수 한 바퀴
‘겨울은 절대 봄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처음 듣곤 이 무슨 망발인가 싶었다. 그러다 슬며시 웃음이 배어나왔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대자연의 계절 변화를 누가 제법 철학적으로 읊는다고 그렇게 말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구 기후변화로 지난겨울은 유달리 폭설과 북극한파가 한반도까지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 바람에 봄은 좀처럼 찾아들지 못할까봐 걱정되었다.
하지만 엊그제, 한반도의 허리에 걸친 한강의 인근 호수를 둘러싼 수양버들 가지들엔 바늘 침처럼 뾰족한 연두색 새싹이 삐져나오고 있었다. 그 옆에 선 고목에 가까운 벚나무들도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는 형국이었다. 도심에 위치한 호수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거대한 안경알처럼 둘로 나뉘었고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도 바로 옆에 우뚝했다.
기온변화가 심한 탓에 긴 패딩으로 몸을 감싼 젊은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거대한 물결을 이루어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한 방향으로만 걷도록 한 것은 오늘처럼 탐방객이 많을 때 혼잡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인파 물결은 중간지점 카페가 들어선 곳에서 끝났다. 카페엔 ‘에델바이스’란 간판에 맞게 설산 그림이 나붙었고 수제맥주와 잔에다 따라서 파는 포도주도 있었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카페는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청춘남녀들로 빼곡한데 전철 안에서처럼 그들은 대부분 휴대폰에 집중하고 있었다. 휴대폰 중독은 MZ세대들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호수에서 반달 모양의 보트에 올라 뱃놀이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딱 한팀인 것은 아쉬웠다. 호수 주변 주민을 사람들은 부러워할 것 같은데 혼잡한 주말엔 나오지 않는 듯했다. 탐방객 중엔 관광객으로 보이는 피부색이 다른 남녀도 눈에 띄었다.
오늘 호수 옆 A호텔 결혼예식에 초대해준 혼주는 식장비용이 1억이란 사실을 우리에게 믿고서 털어놓은 것 같았다. 열손가락을 펴서 아무리 꼽아봐도 그 숫자를 맞추긴 어려웠다. 대신 하객들은 예식장을 치장했던 꽃다발을 하나씩 선물로 받았다. 버리면 쓰레기가 될 터이니 그렇게 하나씩 안기는 것 같았다. 그 바람에 꽃다발을 든 채 호수를 돌았으니 사진을 찍어준 젊은이들은 우릴 어떻게 생각했을까.
한국 제일 빌딩은 호수에 잠겨 환상적인 풍광을 연출하고 있었다. 빌딩은 불꽃놀이로도 널리 알려져 친숙하게 다가왔다. 혼주가 열차표를 예매한 탓에 타워에 오르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웠다. 호수를 돌면서 빌딩을 여러 컷 카메라에 담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20년 전 늦가을비가 추적대던 날 우리 부부가 찾았을 때완 호수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은 빌딩이었다. 부산 영도대교 옆에도 지금 초고층빌딩이 올라가고 있어 세계적인 명소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