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할 때 신는 신발의 굽과 무게, 폭과 질감은 생각보다 중요하고 치명적입니다. 자동차에 탈 때는 드라이빙슈즈를 신어주세요.
전 세계를 누비며 호화롭게 여행 다니는 사람들을 1950년대에는 제트족(jet set)이라 불렀습니다. 카레이싱에 열정을 보이며 페라리나 알파로메오로 경제력을 드러내는 부유층이었죠. 이들은 일반인이 넘볼 수 없는 그들만의 전유물을 자랑 삼았습니다. 드라이빙슈즈가 처음 탄생한 것도 이 즈음이었습니다. 화려한 스포츠카를 타는 부자들을 위한 수제화가 만들어진 겁니다.
드라이빙슈즈는 1963년 지아니 모스틸레(Gianni Mostile)가 설립한 이탈리안 브랜드 카슈(car shoe)에서 내놓은 운전자용 수제화에서 시작됐습니다. 바닥의 고무 돌기가 카슈의 시그니처였죠. 좀 더 다양한 형태로 범주가 넓어진 1970년대에 들어서는 운전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드라이빙슈즈가 고급 패션화로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존 F.케네디 등 유명인사가 신으면서 마침내 대중성을 얻었고, 일반인들에게도 상용화됐죠. 지금은 어떤가요? 드라이빙슈즈는 현재까지 캐주얼하고 패셔너블한 디자인 덕분에 스타일링하기 좋은 패션화의 지위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탄생 배경처럼, 드라이빙슈즈는 장식과 치장 자체에만 의미가 있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운전할 때 드라이빙 슈즈의 역할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때로는 생명과 직결되기도 하죠. 드라이빙슈즈가 도대체 무엇을 위한, 어떤 신발인지,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죠.
기본은 밑창
드라이빙슈즈가 갖춰야 할 가장 우선적인 것은 신발 밑창이 기능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드라이빙슈즈인 카슈의 제품만 봐도 바닥의 고무돌기가 상징적인 역할을 하죠. 밑창 즉 아웃솔은 탄력적이고 부드러워야 합니다. 너무 딱딱하면 발 모양대로 신발이 페달에 접지하기 어렵고, 의도한 만큼 힘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조준을 잘못해 급가속을 하거나 급정지할 위험이 있죠. 고무 바닥은 발의 지지력을 탄력적이고 부드럽게 전달할 뿐 아니라 마찰력도 뛰어납니다. 미끄러질 위험이 적죠. 페달과 매트에서 발이 미끄러지는 경우, 페달을 밟는 시점을 놓치거나 다른 페달을 잘못 밟을 수 있습니다. 유연하고 질긴 속성을 가진 고무 아웃솔은 드라이빙슈즈가 최우선으로 갖춰야 할 특징입니다.
가까이 있어야 전해진다는 거
발의 조정력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발과 페달이 가까이 접지돼야 합니다. 그래서 드라이빙슈즈는 굽이 낮습니다. 굽이 높으면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오가는 방향 전환에 방해가 되니까요. 두툼한 키 높이 깔창을 덧대거나 밑창이 두꺼운 구두도 발의 감각을 떨어뜨리고요. 하지만 밑창이 너무 얇아도 문제입니다. 내구성이 떨어져 오래 신지 못하기 때문이죠. 또, 운전 외의 일상생활에서 신기 힘든 단점이 있습니다.
무거우면 더뎌진다
힘 들이지 않고 페달을 밟으려면 최대한 가벼워야 합니다. 무거우면 발의 피로도가 커지고 움직임이 더뎌집니다. 운전할 때 신기 편한 캐주얼화는 모두 가볍다는 특징이 있죠. 로퍼, 모카신, 스니커즈는 걷고 뛰기에 부담 없는 신발들입니다. 끈이나 지퍼가 없어 신고 벗기 쉬운 로퍼는 ‘게으름뱅이(loafer)’라는 의미로 이름이 붙었을 만큼 편한 신발이죠. 사슴가죽 또는 그와 비슷한 연한 가죽으로 밑바닥부터 발등까지 U자형으로 둘러싼 모카신의 경우 과거 운동량이 많은 부지런한 사람들을 위한 신발이었습니다. 북미의 사냥꾼이나 장사꾼, 유럽 이주민들이 즐겨 신었죠.
가죽, 스웨이드, 고무
드라이빙슈즈에 적합한 소재로는 가죽과 스웨이드가 꼽힙니다. 높은 통기성과 신축성이 그 이유인데요. 우선 가죽은 외력에 잘 견디면서 장시간 운전한 발의 땀까지 흡수해줍니다. 다른 소재는 습기가 차면 바닥이 미끈해져서 제어력이 떨어지거든요. 흔히 ‘세무’라고 알려진 스웨이드 역시 부드럽고 공기가 잘 통하는 소재로 겉감이나 안감 모두 적용되기에 적합합니다. 특유의 고급스러운 질감이 디자인적인 만족도를 높이기도 하죠. 하지만 가죽처럼 습기를 흡수하는 성질은 없어서 안감으로는 덜 선호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미끄럼 방지나 질기기로 따지면 러버슈즈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고무는 잘 긁히지 않으면서 모양 유지, 방수에도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드라이빙슈즈에 필요한 조건은 이 밖에도 더 있습니다. 힘이 고루 분산되도록 바닥은 평평해야 하고, 움직임을 제한하지 않게 발목을 덮지 않아야 합니다. 페달 사이에서 발이 거슬리면 안 되니 볼이 너무 넓어서는 안됩니다. 뭘 그렇게까지 신경 써야하나 싶겠지만, 안전 운전은 발목의 움직임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발 한 번 까딱하는 것으로 1톤이 넘는 기계가 멈추거나 질주하니까요. 오른발의 미묘한 오작동이 가져올 파급력을 생각해보면 굉장히 중요한 지점입니다.
무심한 선택의 결과
신발이 가볍고, 유연하고, 페달과도 가까워야 한다면, 차라리 맨발로 운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밑창은 발이 미는 힘을 분산시켜주기 때문에 신발을 신어야 고른 압력으로 페달을 밟을 수 있어요. 맨발로 운전 시 통증이 생길 수 있고, 레그룸 주변에 떨어진 이물질이 발바닥에 상처를 입힐 수도 있죠. 최악의 경우 쥐가 나거나 경련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만에 하나 사고 발생 시, 깨진 유리나 파편에 노출되는 위험도 고려해야 합니다.
2016년 5월, 영국에서는 신발 관련 교통사고가 두 건이나 있었습니다. 버밍엄에 사는 스물네 살 여성이 플라스틱 슬리퍼를 신고 고속도로를 달리다 가속 페달 조준에 실패해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거죠. 함께 탄 두 친구는 중상을 입었는데, 한 친구는 차 밖으로 튕겨 날아가 다른 차에 다시 부딪히는 심각한 부상을 당했습니다. 서부 그레이트맨체스터에서는 운전자의 조리가 페달 사이에 끼는 바람에 자동차가 벽쪽으로 돌진했고 그 자리에 있던 9살 소녀가 숨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2013년에도 조리를 신은 운전자가 노인들이 탄 미니버스를 들이 받았고, 같은 해 50대 여성은 케밥집으로 돌진했었죠.
영국의 한 보험사가 시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운전자의 3분의 1이 조리를 신고 운전한 경험이 있고, 열 명 중 하나가 신발 때문에 사고가 나거나 사고가 날 뻔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국내에서는 2001년, 샌들이 미끄러지면서 브레이크 대신 가속 페달을 밟은 운전자가 앞서가던 트럭을 받고 한 명이 숨진 일이 있었습니다.
KBS뉴스 팀은 지난 2015년 신발 굽에 따른 제동거리 차이를 실험했습니다. 운동화와 하이힐을 신은 실험자의 제동거리 평균을 내보니 각각 54미터와 57.9미터로 4미터나 차이가 났죠. 실제 도로에서는 정지거리가 1,2미터만 길어져도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주행 시 신발의 굽과 무게, 폭과 질감은 생각보다 중요하고 치명적입니다. 나가기 전에 신발을 확인해주세요. 슬리퍼, 통굽, 부츠, 하이힐을 신고 있다면, 여분의 신을 챙기세요. 물론 제일 좋은 건 차량 안에 드라이빙슈즈 한 켤레를 늘 챙겨두는 것입니다. 오른발의 미묘한 움직임이 운전자는 물론, 보행자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사고는 늘 순식간에 일어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