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땅굴 이야기/ ilman의 판문점 견학(2)
작년에 견학한 제2땅굴에 이어 오늘은 판문점 근처에서 발견된 제3 땅굴을 보러 한국콘텐츠창작가 협회(KCCA)' 따라 왔다. 통일부 산하 ‘남북사회통합연구원’ 행사에 함께 하다 보니 서울서 왕복 버스에 점심마저 일체 무료이니 우리들은 나라 덕분에 오늘은 호강을 하는 날이로구나.
제3땅굴이 있는 곳은 DMZ 구역이다.
DMZ(demilitarized zone)란 군사적 비무장지대(非武裝地臺)를 뜻한다.
군사적 직접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 상호 일정 간격을 유지하자고 설정한 완충지대로 군사분계선(軍事分界線)으로부터 각기 각 2㎞씩 후퇴한 완충지대다.
그 국가적, 국제적 협약을 어긴 것이 북한이 파 놓은 땅굴이다.
제3땅굴 입구 DMZ 전시관 앞에는 남북 화합을 평화통일로 구축하자는 조형물이 있다.
그 반원 각각 단면 안쪽에 한국지도가 보인다. 일행이 서두르는 바람에 멀리서만 보고 왔지만 아마도 그 안의 한 쪽에는 남한 지도, 또한 쪽에는 북한 지도가 그려 있는 것 같다.
그 둘로 갈라진 원형 기구가 남북한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 양쪽을 북한과 남한 사람들이 하나로 만들려고 서로 밀고 있는 것이 통일을 위한 우리 민족의 몸짓을 형상화한 것 같다.
남한에서 발견된 땅굴에는 그림과 같이 4개가 있다.
제1땅굴은 임진강 고랑포(74.1.5), 제2 땅굴은 철원 북방(75.3.19), 제3땅굴은 판문전 남방(78. 10, 17), 제4땅굴은 양구 동북방(90.3.3)에서 발견 되었다니 그 발견한 순서로 이름을 매긴 것일 테니 제3땅굴은 세번째로 발견된 땅굴이렷다.
제3 땅굴은 다른 땅굴과 달리 북한 귀순자의 제보에 의해 발견하게 되었다.
- 1974년 9월 5일 북한 귀순자 둘이 비무장 지대의 커다란 미루나무를 보고 자기들이 땅굴을 측량한 측량기사라고 아군에게 제보하였습니다.
이 제보로 우리 군(軍)은 남침 예상 방향을 찾아 수년 동안 시추공 107개나 설치하여 땅굴을 찾던 끝에 1978년 6월 10일 그중 하나의 시추공에서 폭발음과 함께 물이 솟아오르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적이 파내려오던 남침용 땅굴을 시추공이 관통한 것입니다.
이 땅굴은 지하 75m에 위치하는 둥근 아취형 땅굴입니다.
남북 군사 분계선을 기준으로 북으로 1,200m, 남으로 435m를 남침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파 내려오다가 관통 위치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현재 견학하는 사람들은 북한군이 파다만 남침 땅굴은 265m만 도보로 견학할 수 있고 265m 지점부터 군사분계선까지170m응 차단벽을 설치하여 더 이상 견학을 할 수 없습니다.
북한 귀순자 김부성 씨(북한노동당소좌대우)와 김대윤(북한군 소위)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 군수뢰에게 명령한 김일성의'9.25교시'에 의하여 착수된 것이란다.
"남조선을 해방시키기 위한 속전속결전법을 도입하여 기습전을 강행할 수 읶게 하라"는 교시였다.
그 무렵이 1972년 '7, 4' 남북공동성명'으로 남북적십자 회담 등 우리나라에 통일과 평화 무드가 한창 무르익을 때 북괴는 음흉하게도 남몰래 남침용 땅굴을 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목적은 첫째로 전면전이 발생할 때 시간당 무장 병력을 3만명 이상 남한으로 신속히 침투를 위한 것이었다.
둘째로는 남한에 4.19와 같은 사회 혼란이나 무장 폭동이 일어났을 경우 '특수8군단'이나 '경보병부대'를 침투시켜 남한 전복을 획책하기 위함이며, 셋째로는 대남간첩의 침투와 남한 종북파와 같은 불순세력이 봉기할 경우 그들에게 무기를 공급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제3 땅굴 견학은 어느 곳보다 안보가 철저하였다.
입구에 비치된 사물함에 카메라는 물론 휴대폰까지 넣어두고,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노란 색의 파이바를 써야만 갱도에[地道]에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여기에 쓰인 제3땅굴 이미지는 파주 홈페이지에서 인용한 것이다.
지구의 온난화 탓인가 6월 초순인데도 3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가 굴속에 들어와 보니 에어컨을 켠 것보다 시원하다.
가파른 경사길을 내려 가니 350m 지점인 지상으로부터에 73m 지점에 이르니 북괴가 파다가 만 작업 중단 지점이 나타난다.
거기에 우리 군이 마련한 거북이 모양의 통일약수가 있어 손바닥으로 마셔 본 냉수는 시원하기 그지 없다.
그 부근이 우리 군의 시추공이 관통하여 적의 남침 갱도를 발견한 지점이었다.
북을 향하고 있는 갱 좌측의 2 개의 산소 주입 파이프를 따라 고개를 숙이고 힘들여 가다보니 약수터에서 265m 지점에 제3차단벽이 나타난다. 거기서 170m의 군사통제선까지 2차, 1차 차단벽이 있다지만 제3 차단소에서 우리는 되 돌아와야 했다.
돌아가는 길에도 머리를 숙이고나 옆으로 제치고 걷다보니 어린 학생들도 견학이 견학과서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그 떠드는 소리가 시냇물 흐르는 소리 같이 상삽하다. 키 작은 어린이들이 화이파를 쓰지 않고 활보하는 것이 부럽기까지 하다.그러다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북한군은 자랄 때 못살아 못 먹어서, 왜소한 그들 키에 맞게 땅굴 높이를 파 놓은 것이로구나 하는.
이 제3땅굴은 임진강서 판문점을 향한 1,635m 지하 73m에 너비와 높이가 편균 2m의 아치형의 땅굴로 북괴는 남북 군사통제선을 무려 435m나 DMZ를 침범하여 남침한 것이다.
이런 땅굴이 4개나 발견되었는데도 북한군은 모로쇠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 모두가 남한이 북한을 모략하기 위한 자작극이라고 하고 항변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식의 오리발 이야기다.
Kal기 폭파, 아웅산테러 심지어는 6.25도 북침이 아니라 남침이라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그런 사람들도 우리 민족이라니 그들이 북한 국민의 지도자라니 이를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 세계에 부끄러운 일이다.
형제가 함께 살다가 생각이 달라져서 서로 남북으로 나뉘어 살다가, 남쪽 형제는 부지런히 노력하여 자수성가(自手成家)하여 부자로 살고 있고, 그런 남쪽 형제를 향해 항상 으르렁 거리던 북쪽 형제는 그러지 못하여 가난뱅이가 되었다.
그런데 북쪽에 사는 형제가 남쪽 형제를 시기하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어서라도 함께 살자 위협하는 격이니 그런 통일은 해서 무엇하며 아세아에서도 최빈국이라는 그 가난을 공평히 나누어 가지는 통일이 말이 되는가 말인가.
북한의 국민소득은 2011년 현제 506달러로 남한의 2,3067 달라에 비하면 1/4 밖에 안되는 아세아 최빈국이고, 한국 국민의 평균수명이 81세에 비해 69세인 북한으로 통일하자는 어거지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