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가 없는 로고스는 인플레이션에 빠진다
*(책)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데리다는 음성을 중시하는 이러한 백색신화가 스스로 붕괴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음성이 나타내고자 하는 진실 혹은 실체란 애초에 그 실체를 온당하게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사랑’이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사랑이라는 순수한 목소리는 과연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어떤 순수한 내면을 드러내는 것일까?
사랑의 목소리는 사랑 자체를 드러낼 수 없다.
이는 오로지 욕정, 순수한 희생, 평생의 동반,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정 등의 간접적인 은유로만 나타낼 수 있을 따름이다.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뚜렷한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백색신화를 이루는 가장 고귀한 가치인 로고스(이성, 내면의 목소리, 혹은 이데아라고도 부름) 또한 실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 목소리는 항상 과장되거나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이 절대적인 로고스는 자연스럽게 수많은 은유나 수사를 낳고 부풀려져서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데리다가 보기에 이러한 인플레이션 현상은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닌 상반된 두 측면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보통 수요의 증가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광범위한 유통 범위의 증대와 확산을 전제한다.
말하자면 신화의 인플레이션은 그것이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확산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위기가 그러하듯이 시장의 확장과 공급의 과잉은 위기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실체 없는 보편적 목소리의 확장 또한 그러한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데리다는 이러한 인플레이션의 과정을 고리대금(usure)에 의한 이자 증식에 비유한다.
고리대금은 데리다가 서구의 음성중심주의 신화가 지닌 가치 증식의 전개과정을 그대로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고리대금은 빌려준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받게 되는 가치 증식 과정으로, 그 차액인 이자(intérêt)를 전제한다.
적절한 이자를 기대할 경우 원금은 가치 증식으로 이어지지만 무리한 이자 증식을 추구할 경우 이는 곧 원금의 잠식이나 탕진으로 이어진다.
데리다가 강조하듯이 백색신화의 기반인 초월적인 진리 혹은 목소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기호로 나타나야 하며, 이 기호는 진리나 목소리 자체를 드러낼 수 없으므로 항상 은유의 방식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은유의 과잉이 나타나며, 이 과잉의 은유는 적절한 이자의 가치 증식 범위를 벗어나서 원금 자체를 잠식하는 고리대금의 운명을 피할 수가 없다.
데리다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는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딜레마와 일치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는 실체가 아닌 은유, 즉 교환가치로만 드러나게 되는데 이 교환가치라는 은유는 시장의 메커니즘을 통하여 무한 증식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상품 혹은 사물의 실체는 상품 가치의 전제가 되지만, 교환가치의 현상 형태인 가격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이는 곧 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상품의 가격, 즉 교환가치의 하락이 아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상품의 가치 자체에 대한 회의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상품이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면 상품의 교환가치는 전혀 의미가 없지만, 그렇다고 상품인 사물 자체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플레이션을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던 상품의 교환가치가 가치 자체의 실체, 즉 목소리는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나아가서 상품의 내재적인 가치의 존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가치의 실체로서의 ‘교환가치’라는 은유의 과잉이 가치 자체가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위기를 초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