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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진달래꽃 6(소설)
/김상호
고견사에서
경란에게서 식당을 폐업하고 레코드 가게를 열었다는 말을 들었다. 남편이 학교에서 전교조 활동으로 잘리면서 시작한 가게였는데 무슨 일이든 대를 이어 물려진 직업이 아니면 오래 존속하기 힘든 법, 경란의 남편은 다시 학원으로 나가고 본인은 레코드 가게를 열었다고 하니 안쓰럽다.
원래 식당 개업하고 1년 후까지 생존확률이 80%를 조금 상회한다고 하니 2년 동안 가게를 꾸려온 경란은 그래도 장사를 잘한 편이라 생각되기도 했다.
전직 학교선생님과 공무원이 무슨 수완이 있어서 장사를 잘할 것인가? 가슴 한 편으로 걱정과 함께 동대구역에서 내려 약속장소인 대구 서부터미널로 택시를 타고 갔다.
대구 서부 터미널에서 만난 경란은 지난번에 만날 때 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보였다. 얼굴 표정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조금은 작위적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어쨌든 우리가 대학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어 나도 기분이 좋았다.
경란은 우리가 중학교 때 입었던 체육복 색깔 비슷한 검은색에 가까운 진 붉은 흑장밋빛 투피스를 입고 구두를 옷에 맞춰 같은 색으로 신은 정장차림이라 몹시 보기 좋았지만 겨울날씨라 춥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철아! 옛날 생각이 나네?”
“응, 예전에 내가 가난한 대학생이었고 너는 직장인이었지, 물주였고.”
“물주는 얘, 네가 학생이었으니 그랬지, 그런 소리 마. 근데 오늘 쉬는 날인데 이렇게 나오면 뭐라고 하고 나와?”
“나야 서울에 노조 땜에 간다고 하면 되지, 내가 노조위원장을 맡고 있거든.”
“난 네가 노조 말만 하면 가슴이 덜렁거려, 노조 활동 조심해 철아.”
“걱정 마, 난 항상 맨 뒤에 섰다가 튀는데 선수니까.”
기다리던 거창 가조면으로 가는 버스가 들어왔다. 경란이 먼저 버스에 오르고 나도 뒤이어 따라 올라갔다. 오십대로 뵈는 스포츠머리에 청바지, 하늘색 셔츠를 입은 버스기사는 버스 밖에 내려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바람이 없는지 담배연기가 버스기사의 손에서 수직으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버스기사의 운전석에서 세 칸 뒤의 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약간의 먼지 냄새가 나는 실내공기는 그렇게 싱그럽지 않았다.
우리는 버스 안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시간을 보냈다. 무심히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차 안에는 많은 사람이 타고 있었다.
마침내 버스는 우리를 가조에 내려놓고 사라져 갔다.
몇몇 시골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내려 바쁘게 걸어가고 우리처럼 고견사를 찾는 사람들은 다시 그곳에서 택시를 탔다.
택시는 우리를 고견사 입구에 내려주었다.
그곳엔 방한복을 두둑하게 입고 시골 노파 너덧 명이 약초를 파느라고 추위도 잊고 앉아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옛날 같이 소풍 왔던 추억에 잠겨 조금은 과장된 목소리로 웃고 떠들며 고견사로 향하는 길을 따라 즐겁게 걸었다. 날씨는 겨울임에 비추어 화창하고 따뜻한 편이었다.
이윽고 절에 도착하여 산문을 들어서는데 무서운 형상의 사천왕상이 굵은 퉁방울 같은 두 눈을 부릅뜨고 한 손엔 칼을 들고 다른 이는 비파며 창을 들고 갑옷에 검고 흰 수염을 휘날리며 금강역사 같은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며 우리를 겁박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에게 죄를 지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어르는 모습 같았다.
나는 벌써 겁에 질린 경란의 권유에 못 이겨 두 손을 합장 배례하고 산문을 들어섰다.
우두산 고견사, 창건설화의 원효와 의상대사가 수도하였다는 의상봉, 최치원의 전설이 깃든 거창 가조의 고찰이다.
고견사로 여행을 가게 된 것은 경란이 처녀시절 우리가 그곳에 놀러 갔던 것을 추억하기 위해서였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고, 고려를 멸망시킨 이성계가 전지를 내려 고려왕조의 명복을 비는 수륙대제를 지내게 하였다는 고견사는 최치원이 심었다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절 입구 산문 안 오른 편에 서서 천 년의 풍우를 견디며 서 있었다. 나무는 수고가 무려 28미터에 둘레가 6미터를 넘었다.
오랜 역사와 거대한 은행나무를 보니 마음속에 두려움이랄까 세월 앞에 한 점 먼지로도 남지 않을 내 자신을 보고 기분이 한없이 움츠러들게 되었다.
나는 경란의 손을 끌어 대웅전으로 갔다. 그 안에는 금빛 찬란한 부처님 세 분과 탱화가 모셔졌고, 복전 함이 좌우로 있었다.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경란은 지극히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가 지성으로 삼배를 드리고 나서는데 눈가에 이슬이 조금 맺혔다. 무슨 복을 지어 달라고 빌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 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경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철아, 부처님에게 너와 나 또 우리 가족들 다 잘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네 눈빛이 그걸 물어보고 있었거든?”
나는 이 말을 듣고 경란이 독심술을 하는가 생각하며 깜짝 놀랐다.
“나도 네 마음과 꼭 같아 단지 무신론자라서 절을 올리지 않을 뿐, 너하고 내 마음은 꼭 같아 경란아.”
경란은 미소를 지어 대답했다.
우리는 그곳을 나서자마자 약사전이며 스님이 기거하는 곳과 범종, 마애석불 등을 차례로 보았고, 한껏 착한 마음이 되었다.
범종에는 종소리로 삼도의 고뇌를 여의고 일체중생이 함께 정각을 이루라고 씌어 있었다. 읽고 보니 가슴 속에 뭔가 뜨끔한 게 느껴졌다.
“철아! 예전에 왔을 때 생각나?”
“응”
“저녁 무렵 저기 은행나무 밑에서 아무도 없을 때, 우리 포옹했던 거?”
“기억하지, 하고말고. 내가 얼마나 그리워서 했던 포옹인데.”
“맞아! 나도 그랬어. 그때 키스를 잘 할 줄 몰라 입술끼리가 아니고 이와 이가 서로 부딪쳐서 당황했었지? 하하!”
“아이! 얘! 그만 해!”
“그러다가 나중에는 나 대문니가 부러졌었지!”
“어머! 그랬었지. 미안해. 그땐 내 시계가 너무 커서. 네가 갑자기 달려든 탓도 있었어, 얘.”
“맞어! 숲속에 아마 폭포 근처 바위에서 둘이 앉았는데 내가 없는 용기를 내어서 키스를 하려고 다가갔는데 네가 팔을 휘둘러 뿌리치는 바람에 네 차고 있던 시계가 하필이면 커다란 쇠뭉치의 남자시계여서 그게 내 대문니에 맞았지. 갑자기 입 안에 뭔가 버석거리는데, 대문니 안쪽이 부서져 떨어져 나갔었지. 하하하!”
“얘는 참! 정말 미안하게 만드네?”
“그래서 치과에 가서 이를 갈고 손을 보았지. 근데 그때 왜 여자가 커다란 남자 시계를 차고 다녔어?”
“몰라, 젊은 기분에 환자들 맥박 잴 때 남자 시계가 숫자도 크고 초침이 잘 보여서 차고 다녔지. 그 이야긴 그만해 이제.”
경란은 말이 끝나자 또 자지러지게 웃기 시작했다. 웃는 모습이 여전히 아름다웠다. 품고 싶은 생각이 문득 충동적으로 들었다.
그게 그렇게 오래 전의 이십대의 일인데도 어제 일처럼 선명한 기억이 되살아나 가슴이 아팠다.
절에서 때맞춰 점심공양을 하려다 말고 우리는 절을 나서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걷다가 예의 폭포 근처 그 사고 친 평상처럼 생긴 바위 위에 우리는 또 앉았다. 경란이 아무 거리낌 없이 내 품에 기대어왔다. 나는 망설였다.
머뭇거리며 경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경란은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경란의 뜨거운 거친 숨결이 향기로운 체취와 함께 얼굴에 닿자 온몸에 뜨거운 전류가 요동치며 흘렀다. 나는 경란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거의 참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었다. 피가 파도처럼 역류하기 시작했다. 절 밑에 있는 러브호텔이 뇌리에 떠올랐다.
경란은 바위 위에 뒤로 누워버렸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숲속에서 나는 경란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겁도 없이, 대낮에 대자연의 품속에서...
파도가 한 차례 휩쓸고 간 뒤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경란아, 우리 내려가자.”
“어디?”
“저기...”
“저기 어디?”
“.......”
나는 차마 러브호텔에 가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미 불붙은 몸속의 피는 어떻게 잠재울 수도 없었다.
“철아! 그 뒤엔? 그리고 그 뒤엔 우린 어쩔 거야?”
“.......”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한숨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마도 경란의 눈엔 내 눈빛이 발정 난 수퇘지의 그것으로 보였으리라.
“경란아, 나는 뒤에 일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설사 우리 사랑 때문에 구속되거나 내가 죽는다고 해도 두렵지 않아!”
“그것뿐이야?"
“그럼 어떡할 건데? 이혼할까? 각자 이혼하고 재혼하자고? 그건 어려워!”
나의 이 말에 경란이 갑자기 싸아한 표정이 되었다. 경란의 돌변한 모습에 난 당황했다.
“미안해 경란아!”
“.......”
경란이 표정을 바꾸고 얼굴을 돌려 먼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나, 오늘이 결혼기념일이야.”
그 말에 난 깜짝 놀랐다.
“왜 하필 결혼기념일에 나왔어?”
얼굴을 들여다보니 란의 눈엔 굵은 이슬이 맺혀 있다. 그리고 이슬은 곧 바로 물방울을 만들더니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 내렸다.
그 모습에 가슴이 또 찌르르하게 아파왔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또 나의 어리석기 짝이 없는 대사가 나왔다.
“미안해 경란아! 내가 바보야! 내가 죽일 놈이야!”
경란이 내 품에 안겨왔다. 그리곤 울었다. 나도 울었다. 가슴이 몹시 아팠다.
경란은 내가 이혼하고 재혼하자고 말하길 원하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절대로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죄 없는 아이들과 가족들과 처가의 가족들에게 상처를 줄 수 없는 일이기에, 그 상황에서 내가 더 노련한 바람둥이였더라면 상대가 무얼 원하든 다 해준다고 속이고 호텔로 끌고 갔을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거짓말을, 내가 실행할 수 없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주워섬기는 짓을 할 줄 몰랐다.
경란은 몹시 분한 듯 화난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한참을 사과하고 또 포옹하고 키스가 이어졌다. 그렇게 점심은 건너뛰고 오후 네 시가 지나서야 우리는 그곳에서 일어섰다. 내려오다가 수월산장에서 점심을 산채비빔밥과 파전, 동동주로 대신했다.
며칠 뒤 사무실에서 받은 경란의 편지다.
가로등도 졸음에 겨운 시간에
너는 남쪽으로 향해 떠나가고 참담한 미소로 배웅하고 돌아선
난 서쪽으로 떠나왔다.
우리가 가는 길이 이렇게 확연한데
어떤 인연의 끈으로 난 너에게 넌 나에게 이만큼의 고통을 안겨주는 것일까?
너무 쓸쓸해 보이는 너와 흰 고무신의 강력함이
왜 내 가슴속에 각인되었던지.
무언으로 그냥 흘려버릴 수 없는 그 무엇이 어린 가슴을 쳤을까?
그때도 모르고 지금은 더 알 수 없을 뿐이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문득문득 생각날 때 그저 그것은 너의 고독한 삶의 무게이려니,
또한 너의 질곡한 인생의 고뇌이려니 했는데
그것이 넘쳐서 이제 나에게 고해로 돌아옴을 느낀다.
내가 받아야 할 업이라면 안을 수밖에.
우린 전생에 서로에게 무엇이었을까?
흰색을 가슴 밑바닥에 묻고
빨강색 덧칠을 했더란다.
세상이 빨갛다 빨갛다 여기며
삐에로처럼 살았더라.
세월에 씻기고 닦이어 바래진
덧칠 틈 사이로
아,
흰빛이 칼날을 세우고 있었구나.
경철아!
고향에 가거든 그 산등성이에 다시 한 번 가볼래
무엇이 있을까? 허공, 바람, 나무, 고독, 그리움, 기다림.......
그곳에는 나의 꿈과 미래의 희망이 촛불처럼
불 밝히다 꺼져간 곳.
옛날 옛적에 넌 나에게 올 때 화려하지도 않았고, 난 그런 환상을 바라지도 않았다.
우리는 항상 가난하게 만났고, 난 담담히 그날을 기다렸다는 것. 그날이 왔을 때
너의 간결한 말 한 마디에 난 가슴을 닫아버렸다.
내 결혼 16주년 그날에
그때의 그 말을 들으니 참 이것이 인생인가 싶었어.
그날 그때,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했었는지
아직도 내 가슴에 묻어두고 하지 못했던 말
오랜 세월을 만났고 또 헤어져 다시 만나도
넌 날 모르고 난 널 모르더라.
이게 바라지도 않던 나의 환상이 아닐까?
설날 잘 보내렴.
난 서울에 간다.
세상 속으로.
2월 10일 멍청이
. 쉬리
그날은 업무 차 대구의 법원에 출장 갔다가 열 시에 법정에 나갔다가 오전에 특송우편물을 중앙우체국에 가서 부치고 시간이 남아서 경란을 만났다. 물론 대구로 가게 되었으니 만나자고 먼저 전갈을 보냈다. 우리는 시내에서 만나 아구찜으로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 나서 봉무동에 있는 아시아극장에 영화 ‘쉬리’를 보러 갔다.
우리는 어두컴컴한 조명의 극장 실내에 들어서 뒤에서 세 번째 줄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평일 오후 2시 상영인데도 영화관엔 우리 말고도 관객이 아주 많았다.
경란은 극장 구내매점에서 파는 팝콘을 사서 부지런히 얘기하고 열심히 먹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즐거워하는 경란을 바라보면서 이게 작은 행복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저번의 만남이 자꾸 뇌리에 떠올랐다.
극장 복도 모서리에 있던 거대한 노란 색 곰 인형들이 실내의 무대 아래에도 어미곰 한 마리에 새끼곰 세 마리가 전시되어 있어 아이들이 보면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넌지시 경란의 손을 잡았다. 부드럽고 사랑스런 전율이 전해져 왔다.
영화는 비밀정보기관 특수요원 한석규와 송강호가 최민식이 이끄는 북한의 특수 8군단의 테러 음모에 맞서 싸운다는 이야기로 흔한 할리우드 액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강재규 감독은 액션에다 사랑과 배신을 넣어 비빔밥을 만들었고, 미스터리 기법까지 동원해 예측 불허의 반전을 준비하였다.
긴박감 넘치는 영화는 몹시 감격적이었지만 아직도 한국영화 특유의 지나친 설명적인 부분과 사건전개의 속도가 느슨한 것이 거슬렸다. 영화는 ‘99년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을 수상한 한국영화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한 편이라고 했다.
저녁 시간이 되어 우린 그곳 극장 근처의 횟집에 들어갔다. 넙치회를 시켜두고 둘이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나와서 근처 노래방에 들렀다.
“언젠가는 너와 함께 하겠지, 지금은 헤어져 있어도, 네가 보고 싶어도 참고 있을 뿐이지 언젠가 다시 만날 테니까~”
나는 마이크를 잡고 김종환의 노래 ‘존재의 이유’를 목을 놓고 불렀다. 그렇게 불러봐야 노래는 노래일 뿐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인데도 유치하게 그 노래를 불렀던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경란은 나의 이 어설픈 신파조의 노래에 눈물을 흘렸다.
컴컴하고 어두운 노래방 안에서 우리는 노래를 부르다 말고 서로 포옹하고 키스를 나누었다. 그렇게 또 이야기를 했다. 아무리 해도 끝이 없는 이야기,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밤이 깊어 경란을 보내고 동대구역에 도착하여 열차에 몸을 실었다.
영화를 보고 며칠 뒤의 일이다.
경란은 내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 도중에 우연히 그 영화를 남편과 또 보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머리에 몽둥이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사무실 유리창 밖 화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초점도 없는 눈초리로. 배신감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적어도 나를 만나고부터는 남편과의 어떤 거리를 두는 것이 내게 대한 예의가 아닌가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경란은 내 기대와는 정반대로 나와 다정하게 보았던 영화를 남편과 같이 가서 또 봤다니 그 행위 자체로 심각한 상처가 되었다.
이럴 거면 우리 만남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설령 남편이 영화를 가자고 하여 따라갔다고 하더라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토록 나를 사랑했다면 남편과의 다정한 시간들은 또 무어란 말인가? 나를 만나면서 또 여전히 남편의 품속에서 사랑하고 행복해 한다면 나의 존재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경란이 지금이라도 남편과 이별하고 내게로 돌아올 수 있다고 굳게 믿었는데 나와 같이 갔던 극장에 남편과 또 같은 영화를 보러 갔다는 그 사실이 나를 몹시 괴롭혔다.
영화 때문에 심한 내상을 입은 나는 우리의 관계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우리 둘 다 강산이 두 번 변하도록 헤어져서 각자 다른 사람과 살았다. 사랑하고 행복해하고 정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무엇에 이끌려 서로를 잊지 못하고 다시 만났을까? 미련? 결국은 결혼을 하고 나서는 서로가 다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단 말인가? 옛사랑도 좋고 현재 사랑도 좋고 둘 다 좋단 말인가? 아니면 지금 사랑이 싫증나서 옛사랑을 찾았단 말인가?
17년이나 배우자로 믿고 자식 낳고 가족으로 살아온 현재의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았을 턱이 없고, 사랑하지 않을 이유도 없는데, 그래도 옛사랑을 찾은 것은 나이가 들면서 차마 잊을 수 없는 미련 때문이었을 것이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면 즉, 쉽게 말하면 배우자와 애인이 물에 빠졌으면 누굴 건지겠냐고 물으면 누굴 택할 것인가?
다시 만나 그 흔한 중년의 불륜을 저지르고 싶어서는 아니다. 헤어질 때 너무 억울하게 어처구니없이 헤어졌던 때문에 그 안타까운 사랑을 마음으로나마 확인하고 친구로 지내고자 하는 정도의 마음일 터다. 그게 분명한 것이 저번에 경란이 고견사에서 만나 나의 모텔 이야기에 펄쩍 뛰며 완강히 거부한 것을 봐도 분명한 사실이다.
사랑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굴레, 각자가 가정이 있다는 사실, 경란은 절대로 선을 넘을 만큼 타락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옛사랑을 영영 외면하고 싶은 심리도 아닌 모양이다.
그런 만큼 지금의 남편에게도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다. 경란은 나도 사랑하고 남편도 사랑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 유가사
일요일 아침 8시에 집에서 나섰다. 역시 아내에겐 노조 일로 상경투쟁 간다고 하였다.
밀양역에 가서 완행열차를 탔다. 열차에는 대구 쪽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탔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일단의 학생들도 무리지어 타고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싱그러운 젊음이 부러웠다. 이미 사십을 훌쩍 넘긴 나의 모습이 그들과 비교되어 차창 밖으로 얼굴을 돌렸다. 열차는 터널을 지나 청도역에 도착하고 있었다.
46분 만에 열차는 대구역에 나를 내려주었다. 대구역에서 경란을 만나 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고생 끝에 유가사 주차장에 내렸다. 시계는 오전 11시를 지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절을 향해 걸었다. 대강 오백 미터 정도 걸어가니 개울을 건너가는 극락교가 우릴 맞이하고 있었다. 벌써 11월이라 그런지 완연한 가을 풍경을 보면서 울긋불긋한 단풍에 우리는 기분이 한껏 고조되었다.
가다가 길 우측에 주변 지형에 대한 안내도가 있었다. 그 지도를 보고 절을 향해 걸어가다 보니 길가에 도로공사에 쓰일 보도블록이 가지런히 여섯 무더기가 쌓여 있고, 그 뒤로 연이어 산불감시초소가 있었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환갑을 넘긴 듯 한 남자가 붉은 모자에 검정색 야전잠바 모양 유니폼을 입고 88오토바이에 휴대용 수동 물 펌프를 싣고 세워두고, 자신은 초소 밖의 양지바른 곳 걸상에 앉아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우린 부부 마냥 자연스레 그 앞을 지나갔다. 버스에서 내린 시골 사람들 틈에 섞여서.
절에 들어가기 전에 우린 끼때가 되어 절 근처 즐비한 식당 중 한 곳에 들어가서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밥을 먹고는 근처 커피숍으로 자리를 이동하여 커피까지 마시고 나서 비슬산 유가사란 글이 뚜렷한 산문을 지나서, 우리는 유가사 경내를 둘러보았다. 그곳 경내는 시문이 적힌 비석들과 소나무 숲이 울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경내에서 올려다보는 비슬산 정상 천왕봉과 병풍바위에 감싸인 신라 시대에 창건된 유가사는 무척 아늑해 보였다. 이 비슬산은 봄철이면 진달래꽃이 만발하는 곳이다.
경란은 대웅전에 들어가 정성을 다해 부처님께 예를 올렸다. 꿇어 엎드려 두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정성껏 펼친 경란의 모습을 법당 밖에서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경란이 좋아하는 상아빛 투피스에 너무 뚱뚱하지도 날씬하지도 않은 균형 잡힌 중년의 경란은 절을 올리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부처님에게 무엇을 저리 간절히 애원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부부가 되려면 전생에 이억 이천만 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했던가? 경란과 나는 한 때 거의 확실하게 우리는 부부가 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럼에도 결국은 서로 헤어져서 남남이 되고 만 이 현실, 우리는 전생에 서로 무엇이었을까 하던 경란의 물음이 되살아났다. 어쩌면 이억 이천만 겁에서 한 겁이 모자랐던 것은 아닐까?
기도하고 나서서 구두를 신는 경란을 향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말 우리는 서로 전생에 무슨 사이였을까?”
“그걸 알았으면 지금 우리가 이러고 있겠니?" 경란이 되물었다.
경란의 얼굴 뒤로 놋쇠로 만든 처마 끝의 풍경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바람이 조금 부는 모양이었다. 그 너머로 멀리 한낮의 겨울 햇살 아래 산 정상의 천왕봉이 보였다.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곳이다. 언젠가 산악회를 따라 아내와 같이 올랐던 일이 생각났다.
우리는 경내의 정자에서 앉아 쉬었다. 그곳에서 바로 멀지 않은 곳에 범종각이 있어 커다란 범종이 시야에 들어왔다.
“예전에 어떤 부잣집 부부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어.”
“응” 경란이 어린애처럼 나를 쳐다보며 대꾸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부인이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사라졌어.”
“어머? 왜 그랬을까?"
“그러니 남편이 애가 타서 미친 듯이 부인을 찾아다니다가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깊은 산 속에서 아내를 찾아냈어.”
“응, 그래서?”
“그런데 그 부인은 산속의 어떤 숯 굽는 총각과 살고 있었다고 해. 자신과 잘 살던 아내가 갑자기 집을 나가 숯 굽는 총각과 살며 고생하는 것을 보고 남편은 하도 억울해서 돌아오다가 절에 들어가 도사를 만나 물었거든?”
“응”
“도사가 말하길 전생에 남편은 소금장수, 부인은 이, 숯 굽는 총각은 멧돼지였다고 해.”
“호호! 그래서?”
“소금장수가 하루는 소금을 지고 무겁게 고갯길을 오르다가 가려움에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이를 잡았어. 그런데 그게 몸에서 나온 거라 불쌍해서 죽이지는 못하고 길에다 버렸는데 그 이가 얼마 후 거기에 앉았던 멧돼지에게 붙어서 옮겨 가 살다가 죽었다는 거야.”
“그래서?”
“그래서 이생에 와서 이들이 각각 부잣집 아들, 딸로 숯 굽는 총각으로 환생했고, 전생의 인연으로 부잣집 아들딸이 잠시 부부가 되었다가, 이가 멧돼지에게 옮아갔던 것처럼 부인이 숯 굽는 총각에게 찾아 간 거라고 했어.”
“아이! 철아, 그런 게 어딨어? 완전 엉터리 같애.”
“하하하! 그냥 이야기지, 그게 맞겠니?”
경란이 잠시 멍하니 딴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세월이 17년이나 지나가도 못 잊어 다시 만난 걸 보면 우린 전생에 예사 인연이 아닌 게 분명하겠지? 우리는 다음 생에 다시 만나게 될까?”
나는 별로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 깨어진 사발인 현실이 지금 우리의 처지였다.
“경란아! 해가 기웃한 걸 보니 벌써 저녁이 가까운 모양이야. 우리 저녁 먹으러 가자.”
“응, 그런데 저기 봐! 햇살이 옆으로 비쳐 드는데 바닥에 깔린 은행잎이 정말 아름답지 않아?”
과연 거길 바라보니 거대한 은행나무 아래 샛노란 은행잎이 거의 종아리가 잠길 만큼 쌓여 기우는 햇살을 받으며 빛나고 있었다. 그 뒤로 시방루가 우뚝한데 우린 그 은행 낙엽 속에 가서 사진도 찍고 같이 드러눕기도 했다. 그렇게 누워 뒹굴다가 나는 경란의 몸에다 낙엽을 한 아름 안아다 덮어주었다. 경란은 비명을 지르며 즐거워했는데 그때였다. 내 머리 속에 얼핏 경란이 죽은 사람처럼 보이면서 내가 덮어주는 이 노란 은행잎이 흙으로 연상되었다. 나는 놀라 손을 멈추고 일어섰다.
“경란아! 가자, 낙엽이 아름답긴 해도 밤에 들쥐며 다람쥐가 낙엽 속에 돌아다녔을 수도 있어, 들쥐나 다람쥐에게서 기생하는 이나 벼룩에게 물리면 유행성출혈열 알지?"
나의 이 말에 놀란 경란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낙엽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멧돼지 몸에 붙었다던 이를 털어내듯.
오후 네 시 경에 우리는 극락교 근처 감색 바탕에 큰 글씨로 우뚝한 입간판에 쓰인 만물식당에 들어섰다. 식당 안에는 산삼이며 더덕, 도라지 등의 술을 담근 거대한 유리병이 즐비했다. 우리는 이 식당 최고의 메뉴라는 한방백숙을 주문하고 방에 들어섰다.
관광지라 그런지 늦은 오후의 방 안엔 아무도 없었다. 해는 서산에 기울어 비스듬히 비쳐들고 큰 방에 손님은 달랑 우리 둘 뿐이었다.
방 안에도 약술을 담근 술병들이 선반 위에 즐비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어디서 구했는지 어떤 작가의 작품인지는 모르지만 거대한 비슬산의 진달래 사진을 걸어두었다. 겨울 사진도 있었다. 눈꽃이 만개한 해발 천 미터가 넘는 천왕봉의 정상석에 어린 상고대 모습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아름답고 싱그럽게 보였다.
백숙을 기다리며 우린 방 안 구석에 쌓아놓은 방석더미를 기대고 앉았다. 백숙은 금방
나올 턱도 없고 주인도 보이지 않는 넓은 독방에서 나란히 앉아 경란을 곁에 두고 보니 그 옛날의 대학시절로 되돌아간 듯 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경란의 어깨를 팔을 둘러 감싸고 당겨 안았다. 그리곤 입술을 찾았다.
두 시간 정도 지난 시간, 이야기가 재미있어 그랬는지 헤어지기 싫어 그랬는지 몰라도 한방백숙과 동동주에 흥이 났던 우리는 그만 막차를 놓치고 말았다.
식당주인에게 물어본 막차 시간은 아직 20분이나 남아있었는데 버스는 정류장에 사람이 보이지 않자 기다리지 않고 그냥 돌려서 나가버린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린 그곳에서 25리길이나 되는 5번 국도까지 걸어가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택시를 불렀더라면 그 고생을 않았을 텐데, 우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말았다.
해는 지고 잿빛 하늘에 박명 속에 바람이 마구 몰아치더니 기어코 진눈깨비가 휘날리기 시작했다. 나는 옷을 얇게 입은 경란에게 내 오리털 외투를 벗어서 입혀주었다. 설상가상으로 길은 도중에 비포장이었다. 나중엔 다행히 포장길로 바뀌었다. 시골길이라 가로등도 없었다.
그 눈보라가 몰아치는 비포장 시골길을 우린 구두를 신고 반쯤 얼어서 실성한 사람처럼 말없이 걸었다. 25리길이면 10킬로미터이다. 운동화도 아닌 굽 높은 구두를 신은 경란이 더 걱정되었다. 우리는 지금 천벌을 받고 있는 거야 하는 생각이 자꾸 뇌리에 스쳤다.
길은 띄엄띄엄 마을이 있고, 가로등도 없는 내리막길에 비포장도로와 포도가 섞인 길을 추위와 미끄러움과 두려움 속에 혼신의 힘을 다해 걸어서 겨우 5번 국도변의 정류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땀에 젖은 몸에 몹시 떨면서 기다리다 마침내 창녕 대구간 막차를 타고 대구로 올 수 있었다. 며칠 뒤 또 사무실로 경란의 편지가 왔다.
경철아!
필을 들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창문 밖의 세상은 저렇게 찬란하게 빛나는데
자연이 그립다
고색창연한 계곡에 무심히 흐르는 물을 보고 싶다.
잠 못 드는 밤에 대해
우리가 같이 했던 시간들에 대해
암울한 미래에 대해
자연에게 묻고 싶다.
넌 잘 있니?
한 잔의 커피 향으로 풀릴 것 같지 않은
외로운 가슴으로 보고프다고 바람결에 전하면
네가 프린트해 준 시이지
우리 커피 한 잔 할까?
너의 눈빛이 그립고 목소리가 그립다
보고 싶어......
멍청이
(계속)

첫댓글 나의 진달래꽃 6 (소설)
좋은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머실님!! 시도 쓰시고 소설도 쓰시고 종횡무진으로 탁월하신 달란트가 작품을 통해서 세상을 향해 큰 울림을 주시고 계시네요.. 건필하시길 응원드리며 추천합니다
에구 졸필에 너무 과찬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