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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문학평론가
2014년이 어느덧 막바지인 12월에 들어섰다. 올해도 우리는 행복해지기를 바랐고, 행복해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마치 정답이 틀린 문제를 만난 것처럼 힘들었고, 정답을 모르는 문제를 풀 때처럼 지쳤으며, 정답을 알아도 실천할 수 없는 문제를 대할 때처럼 답답했다. 분명한 것은 '누군가 울었다'는 사실뿐인 듯 비탄에 빠지기 쉬운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최근에 영화로도 개봉된 소설 '나를 찾아줘(원제: Gone Girl)'의 제목은 절묘하다. 소극적 대응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절박한 절규와 그 배면에 도사리고 있는 음모를 동시에 전달함으로써 소설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환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완벽녀 에이미'는 '매력남 닉'과 낭만적 결혼을 한다. 하지만 점차 마음이 떠나 젊은 내연녀를 두게 된 남편을 자신의 살인자로 만들려는 에이미의 복수가 시작된다. 실종을 가장했던 에이미는 결말에서 '가짜 영웅'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완벽한 괴물'이다. 이로써 '악(惡)의 평범성'보다 더 무서운 것이 '악의 지속성'임을 알려준다.
촘촘한 줄거리의 흡인력과 아울러 소설 곳곳에서 의외의 성찰거리도 찾을 수 있다. 요즘 이슈가 되는 '독친(毒親)', 즉 자녀 인생에 독이 되는 주인공들 부모의 억압성, 예쁜 여성에게 가해지는 이익과 불이익의 이중성, 상대방이 특별하다는 착각으로만 시작되는 연애의 나약성, 진정한 자아를 속여야만 유지되는 결혼의 허구성, 내밀한 일기나 독백의 인위성, 줏대 없는 언론의 선정성 등이 독자를 아프게 한다.
하지만 가장 문제인 것은 악의 근원인 에이미의 성격이다. 에이미는 언제나 옳아야 하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 최선을 다해 잘해줬는데 자신을 싫어하면 용서하지 않는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어야 하므로 신(神)처럼 자신을 떠나려는 사람들을 벌준다. 그래서 에이미는 자신의 미움을 절대 포기할 줄 모른다. 남편 아닌 죄수처럼 된 닉은 그런 에이미를 불쌍하게 여기며 그 이유를 "당신은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당신이 되어야 하니까"라고 말한다.
인간이 행복해지려면 타인이 자신을 미워해도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심리학 책 '미움받을 용기'에 따르면 에이미는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만 집착하기에 자아(自我)가 없다. 모든 것을 자신이 결정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타인에게 좌우된다. 타인이 자신을 싫어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자신을 싫어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 아님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런 선택은 자신이 아닌 타인의 영역임을 인정하는 것이 패배가 아니라는 것을 모른다. 그녀에게는 미움받을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는 이런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기 위해서는 '자기 긍정'이 아닌 '자기 수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기 긍정은 60점짜리 자신에게 이번에는 운이 나빴지만 진정한 자신은 100점짜리라는 주문을 거는 것이다. 자기 수용은 자신이 60점임을 받아들이고 100점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기 수용을 위해서는 '긍정적 포기'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려는 노력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패배나 허무와는 다르다.
이 책에 따르면 '포기'라는 말에는 원래 '명확하게 보다'라는, 즉 '만물의 진리를 단단히 확인하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단다. 이와 연관된 유명한 기도문이 바로 "신이여, 바라옵건대 제게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시옵소서"이다. 오늘 수능 성적표를 받게 될 수험생을 포함해 중요한 선택을 앞둔 모든 이들에게 이런 자기 수용과 긍정적 포기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14년의 시간이 아직 한 달 가까이 남았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