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꿈 - 오탁번
평균 수명 채우려면 앞으로 10년,
살아온 날 생각하면
10년이야
눈 깜짝할 사이인데,
참 이상하다
겨우 10년밖에 안 남은 세월이
무한대(無限大)로 느껴진다
백수(白壽)하고 싶니?
참 뻔뻔스럽다
그렇다 뻔히 보인다
짧고 굵게!
젊은 날의 숱진 맹세 죄다 까먹고
흐지부지 살아온 나는
앞으로 어느 날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또 이럴 것이다
곧 사윌 목숨인 줄도 모르고
무한대로 남아 있는 내 생애가
은하수 물녘까지 뻗칠 거라고
개꿈을 꿀 것이다
뻔하다
*시집/ 시집 보내다/ 문학수첩/ 2014
#지난 주에 오탁번 시인께서 먼 곳으로 떠났다. 내가 오매불망 좋아하는 시인은 아니었어도 그의 천진난만하면서 기발한 표현과 해학적 문장에 탄복했던 시절은 있었다.
어떤 평론가는 그를 문학 천재라고도 했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아도 수긍한다. 어쨌든 범상치 않은 국문학자가 세상을 뜬 것은 애석하다. 오탁번 선생이 1943년 출생이니 향년 80세다.
위에 언급한 개꿈에서도 그랬듯이 평균 수명은 채우고 떠난 셈이다. 그래도 치매 안 걸리고 오랜 병치레로 가족들 큰 고생 안 시키고 떠난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
문학 천재답게 소설도 여러 권 썼다지만 나는 그의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다. 그래도 그가 낸 시집은 빼놓지 않고 다 읽었을 것이다. 평소 그를 좋아했던 박제영 시인이 선생의 추모시를 썼다.
탁본, 오탁번 - 박제영
오탁번 선생님 뵈러 장인수 시인과
애련리 원서문학관 갔던 건데
성과 속을 오가며
시와 문학과 우리말의 정수를 회 뜨시는
선생의 강의를 들으며
우리는 시종 울다 웃다 취했던 건데
햄릿의 그 유명한 독백
<투비 오어 낫 투비>를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요렇게 해석하는 놈들은 죄다 가짜여
웃기고 자빠질 일이지
<기여? 아녀? 좆도 모르겠네>
요게 진짜여
이 대목에서는 그만
배꼽을 잡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는데
돌아오면서 생각하는 거다
탁본을 뜨려면
詩알이
오탁번 정도는 돼야지
아무렴
알 만한 이는 다 아는
공공연한 이 바닥의 비밀
어탁語拓을 뜨려면
詩붕語,
시붕어 중에서도
오탁번이지 암만
*출처/ 박제영 시인 SNS
##위의 시 개꿈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에 오래 눈길이 간다. <곧 사윌 목숨인 줄도 모르고 무한대로 남아 있는 내 생애가 은하수 물녘까지 뻗칠 거라고 개꿈을 꿀 것이다 뻔하다>.
인생에서 오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고 했다. 60 넘은 사람이라면 누군들 내일 아침 건강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고운 햇살을 볼 수 있다고 장담할 것인가.
개의 평균 수명은 12년, 흔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한다. 평소 나는 이렇게 표현한다. 인생은 길지만 예술은 더 길다. 오탁번 선생은 떠났으나 그의 시는 오래 내 곁에 머물 것이다.
낙천적이고 모나지 않은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시가 있어 옮긴다. 같은 시집에 실린 시다. 선생의 명복을 빈다. 혼술을 부르는 저녁이다. 이런 날일수록 술은 꿀술이다.
시인과 소설가 - 오탁번
어느 날 거하게 취한 김동리가
서정주를 찾아가서
시를 한 편 썼다고 했다
시인은 뱁새눈을 뜨고 쳐다봤다
— 어디 한번 보세나
김동리는 적어오진 않았다면서
한번 읊어보겠다고 했다
시인은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우는 것을……
다 읊기도 전에
시인은 무릎을 탁 쳤다
— 기가 막히다! 절창이네그랴!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운단 말이제?
소설가가 헛기침을 했다
— '꽃이 피면'이 아니라, '꼬집히면'이라네!
시인은 마늘쫑처럼 꼬부장하니 웃었다
— 꼬집히면 벙어리도 운다고?
예끼! 이사람! 소설이나 쓰소
대추알처럼 취한 소설가가
상고머리를 갸우뚱했다
— 와? 시가 안 됐노?
그 순간
시간이 딱 멈췄다
1930년대 현대문학사 한 쪽이
막 형성되는 순간인 줄은 땅뜀도 못하고
시인과 소설가는
밤샘을 하며 코가 비뚤어졌다
찰람찰람 술잔이 넘쳤다
첫댓글 멋집니다.
제법 긴 글인데..
단숨에 읽고..다시 한번 읽습니다.
멋지다고 해서 고인께는 죄송하지만..
그래도 이리 알리는 이가 있으니 좋은 일 아니겠는지요.
김동리님과 서정주님의 만남..
"꼬집히면..벙어리도 우는 것을"..
현대 문학사 탄생의 순간 이였네요.
간만에 찾아 주셨습니다..
종종 뵙겠습니다.
여기까지 찾아 주셨군요.^^
미당 선생의 아쉬운 이력을 생각하면 늘 마음 한쪽이 걸리지만
오탁번 선생이 가르키는 손가락보다 달을 쳐다보기로 했습니다.
천재 시인은 떠났어도 시가 남아 있어서 다행입니다.
김포인님을 오프에서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오탁번 시인의 시는
딱 한 편 '폭설'만 압니다
남도의 걸쭉한 언어가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그 멋진 시.
그 분이 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싶습니다.
몸이 안 좋아 긴 글 다 읽지는 못했지만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오탁번 선생의 폭설을 아신다니 시를 좋아하는 분이시네요.
생각보다 선생의 시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풍류방에 몇 번 정도 선생의 시에 얽힌 사연을 쓸 생각입니다.
본문은 다 안 읽었어도 노래는 들으셨쥬?^^
문학의 문 자도 모르지만
유현덕님의 시인 사랑은 가늠하고도 남습니다.
워낙에 글 재주가 없어서 늘 작가를 동경만 합니다.
추모글 잘 읽었습니다.오탁번 시인님은 잘모르지만 찾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노래도 처음 들어봅니다.
문학의 문자도 모른다는 말씀 겸손으로 받아들입니다.
닉을 보면 정체성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지요.
저 또한 작가를 동경만 하다 평생을 보낸 사람입니다.
처음 듣는 노래와 함께 고운 밤 되세요.^^
@유현덕 제 닉을 알아 보시네요.^^
@리진 하모요.
단박에 들어오는 멋진 닉입니다.
시인을 사랑하는 저의 마음을 알아주시니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오탁번시인님
뵈러 예전에 화성문협에서 다녀왔습니다.
고인이 되실 줄 꿈에도
몰랐답니다.
저도 타계 소식에 깜놀했습니다.
미주님도 오탁번 선생님과 인연이 있는 모양이군요.
저도 몇년 전에 대학로에서 시인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당신 시를 알아보는 찐독자라면서 엄청 잘 해주셨다는,,^^
아까운 별이 지다
맞습니다.
큰 별이 져서 하늘이 너무 무거울까봐
시들은 남기고 떠났습니다.
ㅎㅎㅎ
웃으면 안되는데
기여?
아니여?
참 기발하죠?
딱
제 성향에 맞는 시를 써 주셔서
볼 때마다
친정집 마당처럼 한 눈에
쏙 들어왔던
오탁번 시인 ᆢ
먼길 떠나셨다니
멍해집니다ㆍ
아울러
유현덕님 글을 다시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ㆍ
오탁번 시인님을 사랑하는 윤슬님의 마음이 저와 같습니다.
하여 우리는 한마음입니다.^^
기여 아니여 좆도 모르겠네를 저는 무지 성스러운 싯구로 생각합니다.
오탁번 시에 나오는 비속어는 전혀 상스럽지가 않습니다.
상스러움과 성스러움은 점 하나 차이, 때론 점 하나에 우주가 담기기도 하지요.
우리, 앞으로도 풍류방에서 격조 있는 비속어를 사랑하면서 놀자구요.ㅎ
찰랑 찰랑 술잔이 넘쳤다.
딱 풍류방에 제격인 글 반갑습니다.
오랫만에 이렇게 풍류방에 납시니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반갑습니다.
어젯밤 뭔 꿈속이 그리도
요란 하더니
저도 개꿈에 휘둘렸나 봅니다.
시인들의 술 마시는 자세!!!
딱 본 받겠습니다.
기여?? 아니여?? 좇도 모르겠네??
이건 자주 자주 어느 자리에서건
써 먹구요
ㅎㅎ
오 탁번 시인의 명복을 빕니다.
찰랑찰람 효주님의 댓글이 넘쳐 좋습니다.
며칠 전 삶방에 누군가 점잖지 못한 표현을 썼다고 댓글창이 시끄럽던데
그탓에 저도 글을 쓰면서 나도 모르게 자기검열을 하게 되네요.
제 글이 워낙 근본이 없다보니 직설적이고 날것인 채로 표현되서요.
그래서 이 방이 저의 해방구로 보입니다.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을 듯해요.
효주님이 방장으로 있는 풍류방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ㅎㅎ
하고 저도 웃음이 나는 걸 어찌할 수 없네요.
시인님 명복을 빕니다.
오탁번님은 귓전으로 스치듯 뵌 이름..
기발한 시어들 ..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우는 것을..
꼬집히면을~~ㅎㅎ
시인이 마늘쫑처럼 꼬부장하니 웃었다는 표현도 참 기발합니다.
다시 찾아볼 기회 주셔 감사합니다^^
저도 꽃이 피어 우는 줄 알았는데 꼬집혀서 울었다는 문구에 탄복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탁번 시인을 천재라고 했나 봅니다.
작년 봄에 출간되어 마지막 시집이 되어 버린 <비백>을 추천합니다.
오탁번 시인님을 사랑하는 임가희 님의 마음을 응원합니다.
뜬금없는 댓글 달려니....좀...머뭇거려지긴
합니다만....장난처럼....
친구들과....노상방뇨를...할 때....
누가 멀리 나가나 볼까?...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오탁번 시인의 <잠지>를 대했을땐
외할머니가 걸핏하면
남동생들의 꼬추를 따먹겠다 시늉을
했던 모습이 눈시울 붉어지게 그립습니다.
"절창이요~"
울 회원분들이 멋진 말을 할때마다
효주방장이 잘 외치는 소리기도 합니다~
오탁번님의 명복을 빌며
일요일 아침을 풍요롭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몽연님의 댓글도 절창이라 생각하렵니다.^^
하교길에 노상방뇨를 하면서 누가 멀리 가나 시합을 했던 더벅머리 아이가 저였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아내와 근처 둘레길을 걷고 돌아온 평화로운 일요일 오훕니다.
몽연님의 남은 일요일도 평온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