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의 왕건, 비타협무력의 견훤 이미지는 잘못 알려진 이미지로서 후백제에게도 삼한일통할 기회는 몇 번 있었습니다.
예컨대 왕건 정권에 대한 궁예 정권 잔당의 저항이 보다 오래 갔거나 조직화되었을 경우,
혹은 견훤이 공산 전투에서 왕건을 패사시켰거나 발해 유민들의 내투가 늦어졌거나, 후계 다툼이 없었다든지 등등.
일단 여기서부터는 후백제가 일단 기어코 소백산맥 일대 방어선을 굳혀 옛 나제연합을
복원한 후 신라 왕실을 완전 폐지하거나 유명무실화시킨 다음 삽시간에 개성까지 치고 올라가 패서 일대를 완전 장악하여 후삼국통일한 이후 가상 시나리오에 대해 적어 봅니다.
1. 통일백제는 실제 역사의 고려처럼 북진 정책을 펴지 않습니다.
딱 통일신라가 차지했던 강역까지만 밀고 올라가고 거기서 끝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사실 삼한일통 이데올로기는 통일신라 강역 바깥 고구려-발해 영토 없이도 정상적으로 기능한 게 이윱니다.
왜냐하면 통일신라가 하는 말은 발해는 고려가 아니고 말갈이 세운 나라니까 고구려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려가 지속적으로 북진을 추진했던 건 발해도 고려 맞으니까 발해땅도 고려땅이라는 단순한 논리 때문입니다. , 고려의 발해관은 신라의 발해관과는 완전히 달랐고 애초에 같을 수가 없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hopeater/222207522248
하지만 후백제는 굳이 통일신라랑 달리 발해도 고려라고 주장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게다가 후백제가 만약 발해도 고려라고 인정하는 순간 적어도 후백제가 삼한일통한 세계관에서도 삼한일통했다는 전제 조건이 무너지기에, 후백제 또한 통일신라처럼 발해는 고려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면 거란하곤 안 싸우고 지냈겠고 백제-거란 전쟁은 없습니다.
백제와 거란 사이에는 평화가 찾아옵니다!
하지만 이후 한반도인들의 강역은 딱 통일신라가 차지했던 거기서 멈추고 말았겠죠.
1-2. 단 이렇게 되면 여진족의 성장까지 다소 나비효과가 커진다
여진족이 고려와 거란이 서로 싸우는 바람에 샌드위치 격으로 얻어터졌고 고려와 거란 관계가 정상화된 이후에도 고려는 여진 기병이 고려 거란 전쟁에서 나름 맹활약했던 걸 결코 잊은 바 없었고 거란은 아다시피 여진족에게 무리한 출병을 강요했었습니다.
그러한데 고려-거란 전쟁이 횡 하니 통짜로 삭제되면 여진족이 거란과 고려에게 품을 악감정도 대폭 삭제됩니다. 고로 여진족도 거란 밑에서 성장을 추구할 요인이 사라집니다.
1-3. 이 경우 거란이 엉뚱하게 국력 소모할 일 없이 북송에게 전력 투구가 가능해지는데. 북송이 거란을 어느 정도까지 이겨냈을지가 문제가 됩니다.
여기서부터는 예측불허입니다.
2. 수도는 딱 전주에 두고 옛 통일신라 강역을 경영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통일백제의 지배층들은 주로 듣고 보고 배운게 신라식 통치였고, 그 실제 역사 고려도 굳이 개성을 수도로 정한 건 거기가 한반도 중부여서가 아니라 그냥 거기가 패서 호족들 근거지였다능 이유가 답니다 .
다만 달구벌로 천도하는 것도 못한 통일신라와는 달리 통일 백제는 그 정도까진 아니라서, 아마 익산-부여 권역으로 제2수도 두거나 천도하긴 했을 것 같네요.
어쩌면 옛 백제 역사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한성 일대도 중시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암만 봐도 전주가 경주보다 약간 낫다 싶지 치우쳤다는 건 부정하기 어려우니까요.
또한, 어떤 경우에든 신라 흉내내서 곳곳에 부수 중심지들 재설치하긴 했을 것 같습니다. 견훤 자신이 그렇게 후기 신라가 설치했던 종심 방어 진지들을 어렵게 모두 부수었던 만큼 그런 게 쓸모가 없다는 걸 모르진 않았을 것 같거든요.
다만 통일신라와는 달리, 한주 일대의 위험성을 인지한 이상
한주와 패서 일대에 보다 촘촘하게 부수도들을 박아놓긴 했을 것 같습니다.
3. 골품제 자체는 없앴을 겁니다. 후백제 시절에도 딱히 없었으니까.
그러나 패서가 문제!
비슷한 상황에 있었던 유송의 유유는 일부러 형주 일대에 반란을 유도한 다음 여러 차례 진압하여 저항 역량을 무력화시켰습니다.
견훤도 마구잡이로 일부러 직접 지배 체제를 더 공고히 하고 감시 제체를 운용하다가 말 안 들으면 진압했을 겁니다.
아니면 궁예 흉내내서 청주의 친백제계 호족들 도로 거기다 심어버렸을 가능성도?
4.다만 이 통일백제는 어느 경우든 그야말로 통일신라의 재현이 예상됩니다.
게다가 엉터리 고려 초기 사극 "신라계"가 실존하는 세상!
견훤도 사실 막판에 궁예 흉내낸 게 있습니다.
920년대 후반부터 전주를 비롯한 전북 서부 일대에 서라벌 상주 문경 주민들을 무작대기로 대규모 이주시켜서 신라화해버렸습니다 ;;
이는 최근에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었죠.
이건 원성왕계 왕실은 물론 백제를 멸망시킨 그 무열왕계 왕실도 하지 못했던 폭거였습니다. 그들이라고 할 수 없어서 못한 게 아니라 했다간 반란 터질 거 뻔하니까 못한 건데 견훤이 해치워버린 게 정말 큰 아이러니입니다.
다만 견훤은 궁예와는 달리 백제 부흥이 지상목표인 전주-광주 호족에게 밀려나진 않았었죠. 왜냐하면 서라벌 함락은 적어도 전주 호족들에겐 오랜 숙원을 해소한 대쾌거였고 견훤은 그들의 대영웅이었으니까....
궁예는 한 것도 없는데 지멋대로 하다 망했지만 견훤은 얘기가 다름 궁예 같이 관심법 쓴 적도 없으니까 경우가 다릅니다.
물론 서라벌인들에게 견훤이 원수 중의 원수가 맞지만,
이들이 서라벌에 대해 별 좋은 감정이 없었던 전주 일대로 끌려갔던 걸 생각해야 합니다.
견훤에게 복수를 시도한다? 그러면 견훤 입에서 나올 말은 전주에 있던 백제인들에게 노예화 혹은 대량학살되게 보호해주지 않고 내버려두겠다는 것 밖엔 없습니다.
그래서 전주로 이식된 서라벌인들은 마치 자동 로봇처럼 견훤 말만 들을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철원으로 이식된 청주계 호족들도 이렇게까지 궁예의 유닛 자판기로 전락하진 않았던 걸 볼 때 견훤이 궁예보다는 단수가 높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드라마에서 나오는 고려 초기의 신라계는 캐구라지만, 통일 백제에 있었을 신라계는 진짜로 허튼 소리가 아닌 실체 있는 존재였습니다.그마저도 927년 당시 신라의 액기스만 쏘옥 빼놓은 자들이었죠.
때문에 후백제는 골품제 없고 수도권이 부여-익산-전주며, 패서 일대에 보다 촘촘한 통제와 직접 지배를 하는 것 외엔, 그냥 통일신라 Ver 2가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5. 일본(왜)하고는 대단히 외교 관계는 좋아졌을 것 같습니다.
고려는 왜하고 서로 소닭 보듯 했지만 견훤이 백제와 왜의 친밀도를 알고 있었기에
이 관계를 부각했을 것이고, 한반도를 통일한 백제의 존재를 왜가 마냥 거부하긴 힘들었을 겁니다.
<<<<후백제 통일 대역 요약 >>>>
한국사 전체로 나쁜 점 - 북진을 딱 통일신라 선까지만 하고 포기한다
좋은 점 - 거란, 왜 와의 외교 관계가 엄청나게 좋아진다.
거란과 전쟁할 일이 없어진다
왜-백제 간 교류 관계가 복원되면 어떤 식으로든 두 나라 사이에 크게 나쁠 일은 없어 보입니다.
애매한 점 - 거란 VS 북송 및 여진족 성장 결과가 예측불허인데
별 영향 없을 수도 클 수도 있다
ps. 미리 말씀드리는데, 댓글에 본문 주제와도 연관 없는 "수달이가 죽었어! " 드립은 제발 사절 부탁드립니다.
-_- 유독 후삼국시대 관련 글에서만 본문 주제와 관련 없는 얘기들의 향연만 나오는데 정말 절망스럽습니다.
첫댓글 ...차라리 고려가 통일한게 다행인것 같다는 생각이...
고려-거란 전쟁의 참화가 무시무시하긴 했죠. 그리고 통일백제 시나리오의 경우 통일신라 윗 영토가 다 중국땅 되었을까 그것도 변수가 좀 있어 보입니다.
@마법의활 그런 생각도 없진 않았지만 그런 생각한 큰 이유는 외교관계가 좋아진들 결국 몽골 제국의 등장이 역사대로 이루어진다면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것 같아서요
@paul1117 금나라의 등장이 의문시되는 상황에선 몽골 제국의 등장도 그다지.....미지수의 영역이죠.
@마법의활 북송은 대외 변동이 있든 없든 취약한 군사력(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저질 군대까진 아니었다는 말도 있습니다만)이었기에.역사대로 몇번 막거나 공세를 취할수 있어도 크게 역사 자체를 흔들수 있었을것 같지는 않아 보이거든요.
결국 둘이 싸우는 사이에 여진족이 성장할 기반이 생기고 금나라가 세워지는등은 시기의 차이가 있을수는 있어도 크게 변동되지는 않을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거란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남아있어보입니다
거란 입장에선 만약 송나라를 공격하려는데 백제가 비협조적이라면 단속해야 하겠다며 예방전쟁을 벌일수도 있는등 거란이 아예 백제를 안칠 가능성이 없어보이지도 않고.
백제가 북벌 의사가 없었냐면.해석과 의도 추측에서 차이가 날수도 있겠지만 전 견훤이 왕건한테 "나는 평양 성루에 내 활을 걸고, 대동강의 물로 내 말의 목을 축이게 할 것이다!"라고 한걸 보면 아예 없지도 않았던것 같아서요.
이리 될 경우 결국 금 건국->몽골 등장->대몽항쟁으로 이어지는 뿌리와 그후 일본 원정->이후 일본 내부불안->왜구 급증
이런 흐름이 시기를 늦출뿐 큰차이는 없을것 같더라고요
물론 제가 역사 자료를 엄청 뒤져본 사람은 아니기에 오류가 있겠습니다만.
@paul1117 1. 거란이 고려에게 투자했다가 날려먹은 군사적 자산과 인재 소모, 시간 낭비는 크나큰 수준이었습니다. 그게 그렇게 별 영향 없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때문에 상당히 납득이 힘듭니다.
2. 여진족 또한 거란-고려 전쟁이 삭제되면 거란에게 악감정 느낄 일이 없어지게 됩니다.
3. 이른바 '예방 전쟁'을 하려면 통일백제와 거란 사이에 전쟁할 건덕지가 있어야 하는데, 통일신라 선에서 멈춘 백제하고 부딪힐 일이 없습니다.
평양과 대동강 선이 바로 통일신라 북진 선입니다.
통일백제와 고려는 입장차가 상당히 큰 데 이 부분 더 생각해주심이 좋겠습니다.
@마법의활 1.그럴 경우엔 북송이 더 빨리 무너질지언정 북송이 요나라를 막아낼것 같지는 않아보이는데
2.근데 고거전 하나만으로 악감정이 생겼다라고 할수 있는 일인가요?그거 외에도 갈등 요소가 없는건 아닐텐데
거란이 자기들을 위협할수 있다고 판단하고 억압하는 방식을 쓸 가능성은 없나요?
3.부딪힐일이 없다고 전쟁 자체가 벌어지지 않는다라고 하기엔 현실에서 걸프전 같은 경우(지들 딴엔 " 자신들의 석유를 훔쳐가는 건 물론 석유를 과잉 공급하여 이라크 경제를 위협한다"는 명분으로 공격 걸었지만 현재까지 다들 왜 일으켰는지 모르는듯)등을 생각하면 장담할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물론 여기에 추가로 고거전이 없어서 소모를 안한 요가 금나라 처럼 화북을 정복하든지 아님 아예 원나라처럼 중국 전역을 평정하든지.일본이 역사대로 혼란이 벌어져(물론 여기선 일본원정이 없었기에 포상문제가 없었겠습니다만.고다이고 덴노의 존재나 막부 직계가 단절되 싯켄 체제가 수립되는등 했던지라 가마쿠라가 얼마나 갔을지 의문) 왜구의 출몰도 나오겠지만 깊은 상상이니 패스.
근데 마활님 말이 다 맞다 해도 이후 역사분쟁이 문제겠네요.고려랑 달리 고구려 계승을 내세운것도 아니고 발해도 남인거니까
@마법의활 그리고 평양 부분도.1차 거란전쟁 당시 거란이 고구려를 언급했던걸로 아는데 그게 맞음 평양-대동강선에서도 충돌 가능성이 없진 않았을것 같은데.마활님은 다르게 보고 있으신가 보네요
@paul1117 1차 거란전쟁 당시 그건 그냥 드립성입니다. 알면서도 날린 거지 평양-대동강까지 뱉으란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paul1117 1번은 이게다 휘종때문 아닌가요?
분명 수세에 몰리긴 했지만 당대의 북송황제들이 군사적 압력을 막으려고 노력을 하지만 휘종 즉위이후부터 사치랑 외정을 둘다 하고 정강의 변 전개과정을 보면 아주아주 대단하신 판단력을 보여주잖아요.
@시추공 휘종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긴 이미 그전에 전연의 맹을 맺은것등도 있어서 말이죠
@시추공 1. 그건 금나라와의 대치 상황입니다. 고려에게 말아먹은 자원을 잃지 않고 보유한 가상 거란 VS 북송 상황과는 다른 얘기입니다.
사실 고려왕조가 줄기차게 북벌을 한 덕택에 현 한반도전체가 한국계왕조의 지배아래 들어갔죠.
아니였으면 함경도는 일단 컷당하고 평북도 마찬가지엔딩이 나죠. 으으 요동을 수복하지 못한건 아쉽지만 일단 국내성-환도성일대부터 수복했어야 했는데 이제 준비가 다 되었는데 하필 타이밍이 명나라가 건국된 타이밍이였죠.
혹시모를 다음북벌때에는 반드시 환도-국내성일대를 수복하고 거점으로 육성한 다음에 요동으로 진격한다면 성공확률이 높아질겁니다
요동 수복 못했다고 고려고 조선이고 한소리 듣는 경우가 있는것 같은데.
그게 말처럼 쉬운일이 아닌데...
@paul1117 요동수복에 있어 평북과 함경도일대를 거란과 여진으로부터 지켜내고 수복하기에 노력한것은 다 잊어먹었죠.
@마카롱 걍 오늘날 한반도 영토를 기준으로 삼으니까 그런말 하는거 같습니다.
무슨 수복이고 전쟁이고 거기 투입될 자금,병력 물자들이 다 게임처럼 무한정으로 나오는줄 아나
전혀 긍정적인 기대가 안되는 후백제...
그래도 통일신라보다는 낫습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부분들도 쉽사리 무시할 순 없죠.
잘 읽었습니다. 고대사는 잘 몰라서 이런 사고실험은 한적이 없었네요.
그리고 우리나라외국국명은 코리아가아닌 다른 그 무엇이됐겠죠
고구려는 온전히 우리역사가 못됐을거고
발해같은 상황됐을듯
신라의 삼한일통은 고구려도 우리 역사다라는 자신감이었고 통일백제도 그렇게 주장했을 겁니다.
다만 엄연히 고려가 통일한 상황에서도 멍청한 일부 한국인마저 고려는 신라 묻었으니 고구려 아니고, 고구려는 한국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상황이니 더 어렵게 얘기는 돌아가게 되었겠죠.
발해유민들도 대규모로 귀부하지 못했을거고
네 아마 그렇게는 되었을 겁니다. 다만 어쩌면 덕택에 발해가 잠깐 더 오래 거란의 발목을 붙잡아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발해부흥운동은 더 격렬하게 되었을 것 같고요.
왕건 포용 비타협 견훤조차 만들어진 이미지에 불과하면 경애왕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 거지
견훤의 엄청난 기동전 능력을 전부 예측하지는 못했다, 그게 답니다. 그냥 군사작전상 이유지 꼭 경애왕이 술 퍼먹은 놈, 견훤은 비타협불포용이 되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그건 그냥 고려 왕조의 프라퍼갠다에 불과합니다.
@마법의활 그럼 공산전투 이후 호족들의 대거 귀부와 같은 상황은 어떻게 봐야하는거임
@너클 그것도 포용 넋두리와 무관합니다. 군사적으로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거죠. 그 일대 호족들은 정작 왕건이 집권한 직후에 견훤에게 귀부했었습니다. 왕건의 포용 내러티브는 사실이지만 대단히 과장된 바가 큽니다.
신검이 호해나 양제처럼 되버려서 이대만에 망해버렸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럼 고려, 신라, 기타호족들은 부활한 6국처럼 다시 재각축을 벌이는거고..
그럴 가능성은 대단히 적습니다. 신검의 정치적, 군사적 능력에 대한 검증은 이렇다하게 이뤄진 게 없습니다. 그저 견훤이 대단했을 뿐입니다.
흥미롭네요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군요
전라도 지역이 수도이니 그 지역을 중심으로한 해상 교역권이 좀 더 활성화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