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잔인했던 히틀러의 오른팔은 누구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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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잔인했던 히틀러의 오른팔은 누구였나?
기록된 역사상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돌프 히틀러만이 아니다.
나치 독재자는 믿을 만한 부하들로 구성된 범죄 집단을 지휘했고,
그들 중 대부분은 유대인이었으며, 홀로코스트로 알려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살해한 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
제3제국이 무너지면서 히틀러와 그의 측근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러한 전쟁 범죄에 책임이 있는 많은 다른 사람들이
뉘른베르크에서 재판을 받았고 그 후 처형되었다.
그러나 몇몇은 정의를 피해 자유인으로서 삶을 마감했다.
그렇다면 잔인했던 히틀러의 오른팔들은 누구였을까?
사진을 통해 나치의 가장 악명 높은 범죄자들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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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는 1933년에 독일의 수상이 되면서
나치당의 지도자로서 권력을 얻었다.
그의 지도력과 강한 이념 아래, 나치당은 제3제국 전역에 테러, 파괴,
그리고 잔혹한 공포를 가했다. 수많은 잔학 행위가 총통에게 충성하는
그의 오른팔들의 명령 아래 행해졌다.
삶과 죽음에 대한 전례 없는 권력을 부여받은 사람들,
그들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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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힘믈러
하인리히 힘믈러는 나치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히틀러에 의해 국가지도자로 임명된 그는 강제 수용소를 설치하고
통제하는 책임이 있었고, 홀로코스트의 주요 설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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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헤스
부총통 루돌프 헤스는 1923년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편집했으며,
나중에 그의 개인 비서가 되었다.
헤스는 1935년 악명 높은 뉘른베르크 법을 포함한
정부의 많은 법안에 서명한 책임이 있다.
이 법은 독일에서 효과적으로 유대인들의 시민권을 박탈했다.
1941년, 헤스는 연합국과 평화 협정을 협상하기 위해
남몰래 스코틀랜드로 날아가 나치 정권을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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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괴링
훈장을 받은 제1차 세계대전 조종사 헤르만 괴링은
나치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 되었다.
1934년 힘믈러에게 양도한 게슈타포 창설을 감독한 후,
괴링은 루프트바페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괴링은 히틀러가 인정한 후계자였고,
보안 경찰국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에게
"유대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조직하고
조정하라고 명령한 사람은 바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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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괴벨스
제3제국의 선전부 장관으로서, 요제프 괴벨스는
엄청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했다.
연설의 대가인 괴벨스는
그의 강령을 사용하여 반유대주의를 방송했고,
후에 유대인들의 박멸을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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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보어만
루돌프 헤스의 영국행 이후 히틀러의 개인 비서직을 맡은
마르틴 보어만은 당수직도 맡았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경계하는 힘믈러, 괴링 같은 사람들과 함께
음모, 조작, 정치적인 싸움의 달인임을 증명했다.
아돌프 아이히만에게 유대인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한
사람은 보어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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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아이히만
아돌프 아이히만은 홀로코스트의 주요 조직자 중 한 명이었다.
1942년 1월, 그는 유대인 문제에 대한 대량학살이 계획되었던
악명 높은 반제 회의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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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유대인 말살 계획을 만든 반제 회의에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의장을 맡았으며,
이 기간 동안 독일이 점령한 유럽에서
모든 유대인의 추방과 대량학살을 마무리할 계획을 제시했다.
프라하에서 하이드리히의 암살은
리디체 마을과 레자키 마을을 파괴하는 것을 포함한
체코인들에 대한 살인적인 보복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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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슈트라이허
히틀러의 가장 잔인한 오른팔 중 한 명은 율리우스 슈트라이허였다.
독실한 반유대주의 신문 데어 슈튀르메르의 창립자이자 발행인인
슈트라이허는 헌신적인 사회주의자였으며 우익, 초국가주의, 반카톨릭,
반유대주의 원칙을 열정적으로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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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카이텔
1938년부터 1945년까지 국방군 최고사령부의 수장으로서
빌헬름 카이텔은 히틀러의 정책을 충실히 지지했다.
그는 많은 피를 손에 묻혔고, 수많은 전쟁 범죄로 이어진
많은 범죄 명령과 지시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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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멩겔레
"죽음의 천사"로 알려진 요제프 멩겔레는 아우슈비츠의 공포를 대표한다.
수용소에서 일한 의사로서, 멩겔레는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의학 실험을 수행하고 가스실에서 처형할 죄수들을 개인적으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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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 바르비
비시 프랑스의 게슈타포의 수장으로서, 클라우스 바르비는
수천 명의 유대인과 프랑스 레지스탕스 당원들을 강제 수용소로
추방하는 것에 개인적으로 책임이 있었고,
"리옹의 도살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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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룀
에른스트 룀은 나치당 초기에 중요한 인물이었다.
히틀러의 측근이었던 룀은 당의 폭력 민병대인
슈투르마브테이룽(SA)을 공동 설립했다.
하지만 1933년 이후, 룀과 총통의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경쟁자로서 그를 두려워했던 히틀러는
룀을 수십 명의 다른 반 히틀러 세력들과 함께
장검의 밤으로 알려진 사건을 통해 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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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뮐러
게슈타포의 수장인 하인리히 뮐러(맨 오른쪽)는
또 다른 반제 회의 참석자였으며
홀로코스트 계획과 실행의 중심에 있었다.
사진 속에서 그는 하인리히 힘믈러, 프란츠 요제프 후버(비밀 주 경찰),
아르튀르 네베(범죄수사국),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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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딜로 글로보츠니크
오스트리아 나치인 오딜로 글로보츠니크는
라인하르트 작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라인하르트 작전은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최소 150만 명을 조직적으로 섬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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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어 아이케
강제 수용소 개발의 핵심 인물인 테오도어 아이케는 후에
동부와 서부 전선 무장친위대 SS 사단 토텐코프의 사령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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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칼텐브루너
오스트리아 친위대의 지도자이자 나치 독일의 모든 경찰력의 지도자인
에른스트 칼텐브루너는 열성적인 반유대주의자이자 광신적인 히틀러 충성주의자였다.
그는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 유대인들을 몰살하기 위한 행정 기구를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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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프랑크
한스 프랑크는 점령당한 폴란드 영토의 총독으로서 그의 임기 동안
그는 수십만 명의 유대인을 대량 학살하는 데 직접적으로 관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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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어 자이스잉크바르트
아르투어 자이스잉크바르트는 안네 프랭크와
그녀의 가족이 암스테르담에 잠적한 기간 동안
독일이 점령한 네덜란드의 제국 위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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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이스 브루너
알로이스 브루너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오른팔로서
오스트리아, 그리스, 마케도니아, 프랑스, 슬로바키아를 점령한
유대인들을 체포하고 추방했다. 브루너는 적대 행위가 중단된 후
가까스로 체포를 피했고 결국 시리아에 도착했다.
2001년에 다마스쿠스에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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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회스
루돌프 회스는 약 100만에서 250만 명의 수감자들이
사망한 아우슈비츠의 최장수 지휘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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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스탕글
프란츠 스탕글은 소비보르와 트레블링카 말살 수용소의 책임자였다.
그는 비자발적 안락사에 의한 대량 학살 캠페인인 T-4 안락사 프로그램의
일원으로서 잔혹한 살인행위를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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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라머스
수상으로서, 한스 라머스는 제3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직책 중 하나를 맡았다.
SS의 명예 회원인 라머스는 마르틴 보어만과 함께
히틀러에 대한 접근을 점점 더 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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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볼프
카를 볼프는 이탈리아에서 추축국 군대의 조기 항복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야망이 있는 SS 장교로서, 그는 이탈리아 유대인들의 추방에도 연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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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자우켈
독일 나치 정치인이자 친위대 장교인 프리츠 자우켈은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5백만 명의 노예 노동 추방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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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로트 브랙
프란츠 스탕글과 마찬가지로 빅토르 브랙은
안락사 프로그램 T-4의 조직자 중 한 명이었다.
또한 브랙은 오딜로 글로보츠니크와 가스 사용에 대해 협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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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라우프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보좌관인 월터 라우프는
중위 계급의 SS 지위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대전 동안 거의 10만 명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대부분의 희생자들에게 이동식 가스실에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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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크라머
요제프 크라머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와
베르겐-벨젠(그가 "벨젠의 야수"라고 불렸던 곳)을
지휘한 명예를 가졌다.
그는 수천 명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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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블로벨
역사상 가장 많은 학살을 자행한 사람 중 한 명인
시허하이츠 다이엔스트(SD) 사령관 파울 블로벨은
1941년 9월 바비 야라빈에서 일어난 제2차 세계 대전의
가장 큰 학살인 바비 야르 학살을 조직하고 실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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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리브케
SS 장교 에리히 프리브케는 1944년 3월 24일 로마에서 335명의 이탈리아
민간인이 사망한 아르데아티네 학살을 책임진 부대를 지휘했다.
나치 독일의 패배 후, 프리브케는 재판을 받기 위해 이탈리아로 인도되기 전에
거의 50년 동안 살았던 아르헨티나로 도망쳤다.
출처: (History) (BBC) (HistoryNet) (Britann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