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 몇번을 건너뛰고 나가는 산행의 아침은 언제나 부산하기 마련인가보다.
배낭에 코펠을 집어넣으려다 말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꺼내보니...
아뿔사~
아니나 다를까 닦여지지않은 채로 고추가루며 커피자국같은 낯설지않은 모습들이
아주 오래된 친구인양 의미심장한 미소(^^;)로 나를 올려다보며 한마디 하는 듯하다.
"아이구 이 화상아~~~ "
그래 나 이렇게 사는데 뭐 도와준 거 있냐?
성질같아선 발루 밟아 옥떨메를 만들어 고물상에다 팔아치우고 싶었지만
그래도 그럴 수 없는 것이 벌써 5년 가까이 정이 든 놈이라 깨끗이 닦아서 배낭에 챙기고 만다.
라면은? 커피는? 버너는? 손수건은? 수첩은?
아띠~ 왜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이 많은 거야?
이 것들이 단체로 가출을 했나?
배낭에서 꺼내지않고 가끔씩 바꿔주기만 하는 구급약품들 외에는 눈에 제대로 띄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
에이~ 나 오늘 산에 안갈래... 바다로 갈래... 히히
입동入冬 지나 겨울의 문턱에 성큼 들어선 지금
산행에 나선 내 발밑에서 말라비틀어져 수북히 쌓인 낙엽들이 비명을 지르고
낙엽들의 그 비명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가슴이 철렁... 철렁... 내려 앉는 것같다.
불과 한달여전에 산행에 나서서 그들을 바라보았을 때에는 나는 그들을 너무 부러워했었던 기억이 난다.
가장 아름다울 때 선뜻 떠날 줄 아는 그들을 몹시도 부러워했었다.
그리곤 또...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되는 것처럼
대지大地를 포근히 내려덮어 겨울잠 자는 곤충들의 따뜻한 이불이 되어주고,
그 것도 모자라 자신의 몸을 삭혀
새잎을 움틔우는 자양분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희생을 노래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낙엽 밟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머릿속이 터엉 빈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무얼까?
저 깊은 심연으로부터 내 가슴을 저며오는 이 아픔은...?
무언가 아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같은 이 허전함의 근원은?
항상 곁에 머물던 무엇인가가 홀연히 떠나버린 듯한 이 아련함은?
계곡을 벗어나 능선으로 접어든 곳에 다다르니
춘천을 돌아 청평을 지나 두물머리까지 구비구비 흐르는 북한강 줄기도 보이고
유명산, 명지산, 용문산...... 우뚝 우뚝 솟은 봉우리들이 나를 향해 팔을 벌려 반겨주는 듯하다.
내 작은 눈에까지 들어오는 저~~ 먼 데 풍경에 나도 모르게 심호흡 한 번!
따악!
바로 그 때 내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듯한 허공중의 목소리
"야 임마 여유餘裕를 가져 여유를..... 엉!"
......
......
......
그래 아까 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었던 낙엽들의 비명은... 아니 외침은
나의 조급함을 일깨워주는 깨우침의 목소리였어!
축령산 정상 너머 펼쳐진 점심자리
별 거 아닌 라면 다섯개, 커피 일곱봉, 만두 세개에 흡족해하던 산우山友님들...
주차장 콘크리트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아 서로 더 먹으라며 나눠 마시던...
커피 세봉지의 행복감 ^^
오늘 나는 내 가슴속 작은 여백餘白 한 구석에
여유의 공간을
조.금. 아.주. 쬐~끔 장만했다. ^^
첫댓글 그날 라면에 커피 글구 휴게소에서 나눠주신 아스크림까지 .... 덕분에 기분좋은 산행 할수 있었습니다. (__)**
다음 산행에는 혼자 오지 마시고 '그레텔'님과 꼭 동행하시길... ^^
잘 지내시죠? 축령산 산행일지 잘 봤습니다^^
넵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스크림 사주세요
덕분에 마음의 여유(=독감예방백신?) 저두 조금 얻어갑니다.^^
이런 이런... 얻어가는 분 계실줄 알았으면 쬐끔 더 장만할 걸 그랬습니다. ^^
산행후기 잘 읽었읍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윽 몇 안보는 사이에 많이 컷구만... 촌한테 오빠라니
오랫만에 반가운글이 보여서요^___^ 인사하고 갑니다..건강하시고..복많이 받으세요...언제나~~^____^
제가 알고 있는 그 옛날의 그 [초보산행]님 맞나요? 맞다면 정말 반갑군요 ^^ 아님 말구.. ㅎㅎ
따~악! 노스님의 죽비 내리치는 소리인가요. 허겁지겁 산행만 할 게 아니라 마음의 여유를 찾아야 한다는 계시를 새삼 보고 갑니다.
'여우' 찾으로 산에 갔다가 '여유' 찾아온 산행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