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백담사(百潭寺)
백담사는 서기 647년 신라 28대 진덕여왕 원년에 자장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한계사를 창건하고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하였으며
한계사로 창건 후 1775년(영조51년)까지 운흥사, 심원사, 선구가, 영취사로 바뀌다가 1457년(세조3년)과 1783년(정조7년)에 최붕과 운담이
백담사라 개칭하여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한다.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백담사라는 사찰의 이름은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이 100개가 있는 지점에 사찰을 세운 데에서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백담사는 내설악의 아주 깊은 오지에 자리잡고 있어 사람들이 좀처럼 찾기 힘든 수행처였는데 1905년 만해 한용운께서 백담사에서
머리를 깍고 입산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어 〈님의침묵〉시를 발표하여 불교유신과 개혁을 추진하여, 일제의 민족침탈에 항거하여
민족독립운동을 구상하였던 독립운동의 유지지로서 더욱 유명해졌다.
10여분을 구비진 백담계곡을 따라서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백담사 정류장에 내리니
먼저 백담계곡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수심교(修心橋)가 눈에 들어 옵니다.
수심교 돌다리를 건너미 금강문이 먼저 보이네요.
금강문은 보통 앞면 3칸, 옆면 1칸의 직4각형 평면을 이룬 단층집으로 중앙문은 앞뒤 모두 아무런 창호를 달지 않고 개방하여져 있네요.
금강문 왼쪽에는 왼팔을 들고 있는 금강역사상과
흰색 코끼리에 타고 자비를 상징하는 보현동자상이 있습니다.
내부에는 오른쪽에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있는 금강역사상과 해태위에 있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동자상이 있습니다.
금강문안쪽에는 천왕문이 없고 조금만한 문이 있고 백담사라는 편액이 있네요.
문 오른쪽에는 종을 매달아 놓은 곳으로 종루(鍾樓)가 있습니다. 북을 매단 곳을 고루(鼓樓) 또는 고각(鼓樓)이라 하지만 대개 절의 사물(四物)이 함께 안치되어 있어 통칭하여 종각이라 부릅니다.
종각 옆으로는 만해 한용운 스님의 업적과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 만해 기념관으로 만해 기념관은 만해 선생의 민족사랑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1995년에 2년 6개월 만에 완공되었습니다.
만해 기념관 앞에 있는 만해 한용운선생의 흉상입니다.
흉상아래에 있는 "님만이 님이 아니라 기룬것은 다 님이라"라는 만해 선생의 글귀가 마음속으로 들어오네요.
오른쪽은 종무실로 사용되는 법화실이고 왼쪽의 건물은 전두환이 2년간 기거했다는 화엄실 입니다.
화엄실 앞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을 대웅전이 있습니다.
백담사 대웅전은 주불로 아미타불을 모셨기 때문에 극락보전이라고 합니다.
협시로 좌측으로는 관세음보살이고, 우측으로는 대세지 보살 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의 자비를 상징하는 지혜로써 중생을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지혜를 상징하는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중생을 널리 비추어 삼도의 고를 없애고 끝없는 힘을 얻게 합니다.
극락보전 뒤에 그려진 탱화에는 흰소를 타고 가는 아기 동자승의 이야기를 담은 심우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심우도는 불교의 선종에서는 자신의 본심을 발견하고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을
야생의 소를 길들이는 데 비유하여 10단계로 나누어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 입니다.
극락보전 뒷쪽에는 우리나라의 토속신인 산신과 호랑이를 모신
산신각이 조그만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산신각 안에는 산에 사는 영물로 호랑이를 산군으로 모시기 때문에
산신은 언제나 호랑이를 거느리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산신각 앞에서 바라본 극락보전에는 4월초파일을 맞아서 연등이 가득 걸려 있네요.
극락보전 오른쪽에 있는 나한전의 모습입니다.
나한전 내부의 모습으로 자그만한 부처상들이 가득 놓여져 있는게 참 특색있네요.
대웅보전 왼쪽으로는 스님들이 거처하시는 만복전과 연결되어 있는 돌담이 있습니다.
백담사는 전각들은 많지만 개방한 전각은 반도 안되네요.
돌담 앞쪽에는 기념품과 따뜻한 차한잔을 드실수 있는 헌다실이 있습니다.
150여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인 만해 교육관 앞에서 바라본 헌다실 방향의 모습입니다.
만해교육관 앞에 있는 마루는 상당히 길어서 멋진데요.
만해기념관 옆에 있는 돌담입니다.
커다란 돌을 사용해 만든 돌담이 너무 멋져 찍었는데 사실 담 옆은 해우소 입니다.
여기는 만해도서관과 스님들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길 입니다.
목조아미타좌불
1748년 조성되었으며 보물1182호이다.
그후 백담사가 다시 한 번 유명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전두환 전대통령 때문이었다. 지금도 전대통령이 머물렀다는 조그마한 방이 공개 되어 있는데, 이 또한 백담사를 유명하게 만든 원인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전두환 전대통령이 머물던 곳
극락보전 바로 앞 매우 협소한 공간에 그 때 당시 사용되던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백담사가 유명한 이유는 만해 한용운선사 때문일 것이다. 만해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불교유신론’등을 집필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백담사는 온통 한용운스님에 대한 것으로 가득찬 듯하다. 만해스님의 동상이 있는가 하면, 만해시비, 만해기념관등이 있어서 만해스님을 추모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사 동상
불교승려이자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이다.
또 하나 관심있게 본 것은 시비에 관한 것이다. 만해스님이 독립운동가이자 불교개혁가인 동시에 유명한 시인이었기 때문에 만해스님이 지은 시비가 이곳 저곳에 있는데, 이와 더불어 타 시인들의 시비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작가의 시부터 옛적 시인에 이르기 까지 매우 다양한 시비를 볼 수 있는데, 백담사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그런 시인들의 시비와 시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만해스님 시비
“님만님이 아니라 기른 것은 다 님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만해스님의 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
당신은 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이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느면 나를 돌어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어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어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行人
찻집앞 조주스님시비
문 : 불도가 무엇입니까?
답: 차나 한잔 들고가게!
고은 시비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이성선 시비
오세영 시비
김구용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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