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한 연결고리와 약한 연결고리의 문제 ]
야구는 투수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구기 종목입니다. 그래서 프로 야구팀은 좋은 투수를 영입하기 위해 아낌없이 돈을 씁니다. 인공지능과 같은 우수한 두뇌로 상대 타자의 장단점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가 있고 로봇팔로 시속 190㎞ 빠른 공을 원하는 곳에 꽂아 넣을 수 있는 난공불락의 투수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 투수를 보유한 야구팀은 그 투수가 등판한 경기에서만은 절대로 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농구에서 매 경기 30개 이상의 3점 슛을 성공시킬 수 있는 선수가 있다면 나머지 선수들의 실력이 별 볼 일 없어도 경기에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야구나 농구에서는 '강한 연결고리의 문제(Strong-link Problem)'가 중요합니다. 팀 내에서 가장 강한 연결고리만 강화하면 약한 연결고리가 있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야구나 농구의 대척점에 있는 경기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조정(漕艇)과 같은 경기는 노 젓는 여덟 명의 선수 가운데 한 명만 노 젓는 속도와 타이밍을 다른 선수들과 맞추지 못하면 목표 지점을 향해 최대의 속도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조정은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가 팀 성적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약한 연결고리의 문제(Weak-link Problem)' 입니다. 약한 연결고리의 문제에서는 가장 나은 부분은 무시하고 가장 취약한 부분을 개선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됩니다.
학문의 영역에서 강한 연결고리의 문제가 잘 적용되는 분야는 자연과학입니다. 자연과학에서는 기존의 엉터리 이론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새로운 이론으로 자연스레 대체됩니다. 아이작 뉴턴의 고전역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상대성 이론이 양자역학으로 보완 혹은 대체되어 가듯이 자연과학에서는 더 나은 이론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도하게 됩니다.
지금도 지구가 평평하고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의 사이비 지식이 우리의 장거리 해상 운송과 우주여행에 지장을 주지는 않습니다. 자연과학에서는 나쁜 가설들은 무시되고 합리적인 검증 과정을 거쳐 입증된 이론만이 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게 됩니다.
동일한 역학이 사회과학에도 적용되었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그렇지가 못합니다. 사회과학에서는 나쁜 아이디어들이 사멸되지 않고 오랜 기간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래퍼 곡선(Laffer Curve)'입니다. 197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감세 정책의 이론적 근거로 사용된 래퍼 곡선은 세율이 증가함에 따라 세수가 증가하다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세수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역 U자형 곡선을 말합니다.
래퍼 곡선을 제안한 미국의 경제학자 아서 래퍼(Arthur Laffer)의 핵심 주장은 세율이 너무 높아지면 근로 의욕이 상실되어 경제활동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세수가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세율 인하가 항상 세수 증가로 이어지지 않으며 이 이론의 현실적인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판합니다. 그럼에도 래퍼 곡선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부유한 사람들의 세금 감면이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정치적 주장의 이론적 근거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약한 연결고리가 정책화되어 경제 전반에 큰 혼란을 야기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소득주도 성장은 말할 것도 없고 소비 쿠폰의 지급에 대해서 주류 경제학자들은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비주류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정치적 목적에 의해 아무런 검증도 없이 정책화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자연과학과는 달리 사회과학에서는 복잡다단한 사회 현상을 실험실과 같이 완벽하게 통제된 상황에서 엄밀하게 검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특정 이론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경제적 합리성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이나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문제가 있는 이론이나 주장을 정책화할 수가 있습니다.
이번 주말이면 추석 연휴를 맞아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됩니다. 우리나라는 몇 년 전부터 명절 때 고속도로가 차량 정체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통행료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명절 기간에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학에서는 운전 때문에 생기는 모든 비용을 운전자에게 부과하는 것이 교통 혼잡을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를 제안한 사람은 캐나다 태생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비크리(William Vickrey)입니다.
경제학자들은 비크리의 주장이 이론적으로 더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시민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통행료를 절약하게 되어 좋다고 생각하는 국민도 있겠지만 공짜로 고속도로를 이용하려는 나들이 차량 등과 같은 새로운 교통 수요의 발생으로 인해 명절 고속도로 정체 현상은 개선되지 않을 것입니다.
약한 연결고리의 문제에서는 최악의 대안을 개선하거나 정책 리스트에서 삭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는 나쁜 대안들이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도 없이 스멀스멀 우리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가지 않도록 우리 모두 잘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사)지역산업입지연구원 원장 홍진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