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앉은 어둠만큼이나 퇴근길이 질퍽하다. 지난밤에 푸지게 내린 눈을 다 쓸어 내지도 않은 채 차를 운행했더니 벌집 속에서 꿀을 먹다가 막 나온 곰처럼 차 행색이 우스꽝스럽다. 밤 기온이 차고 차 꼴도 우스운데 텅텅 빈 냉장고를 생각하면 어깨 마져 무겁다. 빈곤한 식탁에 둘러앉은 허기진 식구들의 표정을 생각하면 좀 귀찮다싶어도 빈손으로 집에 가지는 못할 일이다.
할인마트를 향해 달렸다. 뱃속에서도 한랭전선이 몰아치는 것을 보면 저녁 먹어야 할 때가 한 참 지난 것이다. 급하더라도 객기를 한번 부려 보기로 했다. 가까운 대형마트를 지나 시내로 진입하여 평택에서 제일 큰 통복 재래시장으로 갔다. 날씨가 춥고 어두워서인지 시장 안은 한산하다. 마트를 자주 이용하다가도 한번씩 재래시장을 들리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저렴한 가격과 비교 선택해서 신선한 것을 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스티로폼과 비닐 포장지가 없으니 쓰레기도 줄일 수 있어 좋다. 가격이 싸니 이웃과 나누기도 부담스럽지 않다.
싱싱한 물미역을 다발로 틀어 주시는 아주머니 솜씨가 보통 아니다. 물오징어를 깔끔히 다듬어 장바구니에 넣는 생선가게 주인의 환한 웃음이 멋스럽다. 가지런한 달랭이며 하얀 뿌리 냉이도 욕심을 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왕족발도 하나 챙겼다.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욕구가 밀물처럼 밀려와 뱃속에서 파도를 치고 있다. 온갖 것들이 나를 유혹한다.
충동구매를 한 셈이다. “며칠은 시장을 안가도 될 것이야” 스스로 변명을 늘어놓는다.
물건 많이 샀으면서 자신의 물건은 하나도 안 팔아 준다고 얼굴 모르는 나에게 하소연하는 할머니도 정겹다. 겨울바람이 사람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시장가운데서 장사할 생각은 않고 작은 의자에 몸을 실은 채로 졸고 있는 여인의 피로함이 중년의 내게 겹쳐온다.
시장바구니에 담은 것은 돈 주고 산 물건뿐만이 아니다. 바구니에 가득한 반찬거리보다 수가 더 많은 시장사람들의 정감 있는 표정과 보람인 것이다. 어떤 이는 작은 체구로 장사하여 가정의 생계를 이어 갈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유학 간 자식들의 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한 것일 지도 모른다. 저들의 삶을 보면서 그루터기처럼 빼꼼 내밀고 있는 오늘의 불만들을 거스름돈으로 받아 주머니 속으로 쑤셔 넣었다. 이렇듯 시장은 나에게 주는 것이 풍부하다.
집과 거리가 멀고 주차하기 힘들어 자주 들리지는 못하는 재래시장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마음속에서 고향처럼 나를 향해 손짓하니 모질게 외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이른 시간인데도 군데군데 파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질퍽한 길바닥 위에는 정성스럽게 저녁식탁을 준비하려는 설레는 발자국들이 상현을 갓 지난달의 조명을 받고 뒤따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