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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비밀 (눅 16:19-26) 24. 7. 14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아멘. |
[서 론]
할렐루야! 오늘 여러분은 복된 자리에 오셨습니다. 옆 사람과 함께 인사를 나눕시다. ‘반갑습니다. 참 잘 오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이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치료해 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오늘 설교 제목은 ‘인생의 비밀’입니다. 따라해 보십시오. ‘인생의 비밀’ 지금은 의학과 의술의 발달로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70세가 되어도 노인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 나이에 노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나’를 포함하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정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면 살아가는 방법이나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내가 어떤 존재이냐?’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열심히 돈 벌어서 열심히 돈 쓰다고 죽으면 인생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죽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삽니다.
이 시간에는 ‘나’라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 론]
1. 나(사람)은 어떤 존재일까요?
⑴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우리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22절을 읽어볼까요?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22절) 병든 거지 나사로도 죽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면서 살던 부자도 죽었습니다.
이처럼 내가 아무리 세상을 떠나기가 싫어 발부둥을 치고, 죽기 싫어서 소리를 쳐도 우리 인생은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게 정하신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히 9:7)
사람은 돌이나 쇠나 보석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흙으로 지어진 존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그래서 의술과 약의 도움으로 나의 생명을 좀 더 연장시킬 수는 있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흙에서 왔기에 흙으로 돌아가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평등한 것입니다. 노인만 죽고, 가난한 자만 죽고, 병든 자만 죽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도 죽고, 부자도 죽고, 건강한 자도 죽습니다. 그래서 ‘왜 나만 죽느냐’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억울해 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죽는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마치 자신은 죽지 않고 오래 살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죽어야 할 인생이요, 잠시 이 세상에 살다 가는 나그네임을 잊지 마십시다. 그래서 인생을 <‘꽃’과 ‘안개’와 ‘바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언젠가 나도 이 세상을 떠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바울>은 자신의 죽음이 다가옴을 부정하지 않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딤후 4:6)
나는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합니까? 이것은 삶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죽음을 부정하려고 발부둥을 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나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드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나는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⑵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죽음이 언제 나에게 찾아올지 모릅니다. 물론 중병에 걸린 환자는 죽을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대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환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자기가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자기가 몇 살에 죽을지, 어디서 죽을지, 어떻게 죽을지 모릅니다. 점쟁이나 무당도 나의 죽을 날을 알려 줄 수 없습니다.
각 사람이 죽는 때는 하나님이 감추어 둔 비밀입니다. 만약 사람이 자기가 죽는 해와 날을 안다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은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먹고 마시며 즐기자고 할 것이고, 다른 쪽에서는 슬퍼하고 걱정하고, 괴로워할 것입니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오늘)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 27:1) 오늘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처럼 죽음은 보통 내가 예상하지 못하고 있을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 큰 부자 농부가 있었습니다. 몇년 동안 농사가 잘 되어 창고를 크게 짓고 거기에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두고 자신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눅 12:19) 그런데 하나님이 그 부자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눅 12:20)]
이 부자 농부는 자기가 죽을 날이 바로 자랑하던 그날 밤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 부자가 그날 밤에 죽는다면 그가 자기를 위해 쌓아둔 많은 소유는 누구의 것이 되겠습니까? 그는 자기가 쌓은 것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죽고 마는 것입니다.
이처럼 죽음은 세상에 태어난 순서대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도둑처럼 내게 찾아옵니다. 도둑은 내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니 세상에 너무 쌓아두려고 하지 마십시다. 언제라도 하나님이 나에게 오라고 부르면 아쉽지만 내가 힘들게 쌓아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빈손으로 떠나야 합니다.
나는 언제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까? 아직 몇 십년 남았다고 생각합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내가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오늘 하루가 나의 마지막일 수도 있음을 알고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라도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면 ‘나의 남은 모든 일들은 주의 손에 맡깁니다’하고 미련없이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살아가도록 하십시다.
⑶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비록 내 육체는 썩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지만, 나의 실체인 영혼은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습니다. 내 영혼은 나의 육체를 자기의 집으로 삼고 살다가 내가 죽으면 육체에서 나오게 됩니다.
<예수님>은 죽으실 때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눅 23:46) <스데반>도 죽을 때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행 7:59)
육체는 죽어도 영혼이 살아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내가 죽는다고 해서 ‘나’라는 내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종종 사람들은 ‘죽으면 그만이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죽음으로 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육체는 썩어 없어져도 나의 실체인 내 영혼은 살아남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죽은 육체는 땅으로 가지만 죽지 않는 내 영혼은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죽은 사람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죽은 육체가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자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어떻게 심판을 받습니까? 그가 살아있을 때 행한 모든 행위를 기록한 책(=행위책)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평생동안 행한 모든 언행을 기록하십니다. 그것이 가능할까요? 우리의 과학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컴퓨터에 있는 작은 디스켓 하나에 수천 권의 책의 내용이 저장됩니다. 그러니 나의 평생에 행한 모든 것을 다 기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나의 모든 언행을 날마다 기록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기록된 나의 모든 행위를 따라 심판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내 좋을대로, 내 마음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은 후에 그 행한대로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은 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내가 죽으면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죽은 후에 심판이 있음을 알고 아무렇게나 살지 말고 올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⑷ 내세에 갑니다.
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 20:15) 불못에 던져지는 자도 있고, 불못에 던져지지 않는 자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후에는 다른 곳으로 갑니다. 우리는 그 다른 곳을 가리켜 ‘내세’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현세’라고 부릅니다.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눅 18:30)
내세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심판의 결과에 따라 그의 영혼은 천국이나 지옥에 갑니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 9:47)
사람이 죽으면 모두 같은 곳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22-23절을 읽어볼까요?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22-23절) 두 사람이 죽은 후에 서로 다른 곳으로 갔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은 서로 다른 곳입니다. 25절을 읽어볼까요?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거기서) 괴로움을 받느니라.”(25절) 거지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이라는 낙원, 곧 천국에 가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반면 부자는 음부에 가서 뜨거운 불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부자가 간 음부, 곧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그곳은 나라가 아니라 죄인들을 가두는 옥(감옥)입니다. 그곳은 마귀가 있는 곳입니다. 그곳은 꺼지지 않는 불로 고통을 받는 곳입니다. 그곳은 죽지도 않고 항상 괴로움을 받는 곳입니다. 그곳은 한번 가면 다시 나올 수 없는 희망이 사라진 곳입니다.
반면 거지 나사로가 간 아브라함의 품, 곧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그곳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그곳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천사들과 영물들이 있는 나라입니다. 그곳은 위로를 받는 나라입니다. 그곳은 어둠이 없고 빛만 있는 나라입니다. 그곳은 슬픔과 고통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곳은 영생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천국과 지옥은 서로 왕래할 수가 없습니다. 음부에 빠진 부자가 불로 고통을 겪다가 낙원에 간 나사로를 보고 자기 혀를 서늘게 할 물을 요청했습니다. 24절을 읽어볼까요?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24절)
그때 낙원에 있는 아브라함이 그에게 서로 왕래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26절을 읽어볼까요?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26절)
그러므로 내가 죽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세가 간다는 사실을 알기 바랍니다. 내세에 간다면 나는 어느 곳에 가야 합니까? 불로 고통을 받는 지옥이 아니라 위로와 안식을 누리는 천국에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2. 어떻게 준비할까요?
하나님이 언제라도 나를 부르신다면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항상 죽음을 준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까? 그를 믿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여기서 ‘심판’이란 불못에 던져지는 심판을 말합니다. 그런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요 3:18)
왜 예수님을 믿으면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일까요? 그가 우리 죄를 없애주고자 자신을 화목제물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그의 피가 믿는 자의 죄를 씻어 죄사함을 받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예수님을 믿으면 내가 지은 모든 죄가 사함을 받으니 형벌의 심판을 받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에 오기 전에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언제 내게 죽음이 오더라도 고통받는 지옥이 아니라 위를 받는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⑵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합니다.
천국에 가면 내가 살았을 때 행한대로, 심은대로 상을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마 6:20) 하늘에 보물을 쌓으면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으면 그것이 장차 내게 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선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8-19)
① 소유와 재물을 갖고 선한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부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마 19:21)
② 이웃에게 선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4-36)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장래(죽음 후)를 위하여 날마다 하늘에 보물을 쌓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결 론]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는 ’나‘라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입니까? 아무리 오래 살아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존재요, 죽음 후에 심판을 받을 존재요, 심판에 따라 내세에 가는 존재입니다.
내게 죽음이 오기 전에 준비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형벌의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를 믿으면 나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상을 받기 위해 생전에 하늘에 보물을 쌓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 주와 이웃을 섬기는 선한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이제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