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가 달린다면
강지인
꼬리가 달리면
신나나 봐!
기둥에 꼬리 달린 음표들
악보 위를 뛰어다니며 랄랄라
살랑살랑 꼬리 흔드는 강아지들
제 꼬리에 신이 나서 랄랄라
누가 달아 주었을까?
그 꼬리
방구석에 웅크린 내게도
꼬리가 달린다면 랄랄라
그 꼬리 신나게 흔들며
친구들을 불러 모을 텐데!
꼬리 달릴 꼬리뼈는 잘 있는지
슬쩍 더듬어 본다
-《동시 먹는 달팽이》 (2022 여름호)
반성문
박선미
향유고래의 뱃속에서 나온
밧줄
그물
페트병
비닐봉지
플라스틱 컵
100kg
우리가 써야 할
반성문의 무게
-《한국아동문학》 (2021 제38호)
목련
백우선
이건 바로
밥숟갈 꽃잎 꽃
구름구름
피어오른
살구꽃밥
벚꽃밥
자두꽃밥
푹푹 떠
먹으라는
숟갈숟갈
밥숟갈 꽃잎 꽃
-동시집 『염소 뿔은 즐겁다』 (2022 고래책빵)
작은 꿈
선 용
만져도
깨어지는
여린 꿈이 있습니다
내일이면 만날까
설레며 기다리는
찔레꽃
덤불 속 둥지
오목눈이 작은 알
작은 꿈
다섯 개
-동시집 『바람의 손』 (2022 세종출판사)
우와! 우와!
오원량
항아리 뚜껑을 열자
항아리가
입을 크게 벌리고
우와!
우와!
오랜만에 보는
하늘이 너무 좋다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우와!
우와!
-《한국동시문학 회보》 (2023 제51호)
독립 만세
장서후
양파가 일냈어요
보란 듯 푸른 줄기 뻗어
만세를 하고 있어요
엄마가 내준 물컵 위에서
양파는 홀로
꿈을 알차게 이루고 있던 거죠
맵고 동그란 틀을 깨고
스스로 길을 만들어
푸른 줄기, 하얀 뿌리 일구는
화초가 되었어요
-동시집 『독립 만세』 (2022 보림출판사)
내 약점
전지영
숟가락도
젓가락도
아니야
나는 포크란다
밥은 아슬아슬 퍼 올리고
빵은 콕 찍어 올리고
국수는 돌돌 감아 쏙
못하는 거 하나 있지
국물 떠먹는 거
뼈도 살도 없는
물 앞에서는
꼼짝 못하지.
-《아동문학평론》 (2022 겨울호 제 115회 신인문학상 당선작)
분홍색 머리핀
정광덕
엄마, 내 분홍색 머리핀 어딨어?
- 얘는, 네 방에 있겠지. 그게 손이 달렸니, 발이 달렸니!
내 방 서랍장이랑 침대 밑이랑
다 찾아봤는데 없다.
손이 달린 거다.
발이 달린 거다.
날개까지 달린 게 분명하다.
분홍색 나비가 된 머리핀은
내 방 반쯤 열린 창문 밖으로 빠져나와
팔랑팔랑 담장을 넘어
팔랑팔랑 골목길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팔랑팔랑 혼자 흙장난하는 아이 머리 위에도 앉았다가
팔랑팔랑 꽃밭에 들러 꽃들의 안부도 물었다가
어둑어둑해지면
나보다 먼저 내 방으로 돌아와
잘 두고서 깜빡 잊어버렸던 곳에
시침 뚝 떼고 얌전히 앉아 있을지 모른다.
-《아동문학평론》 (2022 겨울호)
비밀처럼 숨겨줄래?
최영동
하늘 향해 뻗은
나의 여린 가지 끝에
딱따구리 한 마리
날아왔어
딱따다다다다
날 두드리는 소리
부탁이 있다고
잠시 숨어지내고 싶다고
딱따다다다다
너의 속처럼
단단하고 깊은 곳이
필요했다고
빨간 점 박힌
이마를 비비며
울부짖는 딱따구리
네게
내 품 내어주던 날
내 안으로
딱
따
다
다
다
다
바람길이 열리던 날
깊은 터널이 생겼지
커다란 숨도
뿜어져 나왔지
네가 내게
숨어 들어와 잠든 밤
나의 가장 안쪽 모퉁이
한 점의 체온이
번지기 시작했어
작은 비밀 하나
생긴 것처럼 말이야
-《열린아동문학》 (2022 겨울호)
거미의 소소한 생각
한상순
난 집을 크게 지을 테야.
기둥은 이쪽에서 저쪽 나무까지
길게 눕혀 받칠 테야.
방을 많이 만들 거야.
천정은 안 얹을 테야.
집이 완성되면 가운데 방에 누워 하늘을 볼 테야.
구름에게도 말을 걸어볼 테야.
바람에 몸을 맡기고 낮잠도 자볼 테야.
그러다 이슬비가 살짝 내려 준다면?
이슬구슬을 꿰어 방마다 달아 놓을 테야.
어쩌면 구슬마다 무지개가 들어 있을 지도 몰라
그 무지개 길을 가만가만 걸을 테야.
깔따구야, 하루살이야.
오늘 하루만 우리 집 좀 비켜 갈래?
-동시집 『거미의 소소한 생각』 (2023 섬아이)
첫댓글 감사히 잘 읽었어요^^
소심 샘, 고마워요.
다 읽고 나니
마음이 맑고 밝아진 느낌입니다.
잘 읽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