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손무 편-제4회: 은둔 그리고 남겨진 <손자병법>
(사진설명: 손무의 좌상)
제4회 은둔 그리고 남겨진 <손자병법>
오 왕 합려가 영도에서 천하 제일 강국을 격파한 것을 경축하고 있는데 갑자가 초나라 대부 신포서(申包胥)가 진(秦)나라의 군사를 빌어 당나라를 멸하고 영도로 오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또 자신의 사촌 동생인 부개가 몰래 군사를 거느리고 고소에 돌아가 스스로 왕으로 자처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오 왕은 손무와 오자서에게 영도를 지키라 명하고 자신은 백비를 데리고 내란을 처리하기 위해 고소로 돌아갔다.
고소로 돌아간 오 왕이 내란을 평정한 후 부개는 송나라로 도주했다. 오 왕은 고소 도성의 창문(閶門)을 파초문(破楚門)이라 개명하고 오자서와 손무에게 철군하라는 어지를 내렸다.
이 때 오자서는 싸우지 말고 평화적으로 협상을 하자는 신포서의 편지를 받았다. 오자서는 신포서의 편지를 손무에게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오나라 군대는 3만 명의 병력으로 30만 명에 달하는 초나라 군대를 일격에 격파하고 초나라 종묘를 부셨으며 나의 원한도 갚았소. 예로부터 죽은 군주의 시체를 매질해서 통쾌하게 복수한 나 같은 신하가 어디 또 있겠소. 하물며 우리 오나라 군대는 큰 손실을 입지 않았소. 손 형의 병법에도 ‘이로울 것으로 보이면 나아가고(見可而進) 불리할 것으로 보이면 물러서라(知難而退)’고 하지 않았소? 지금 초나라는 오 왕이 철군하라는 어지를 내린 것을 모르니 조용하게 군사를 거느리고 물러가는 것이 어떻소?”
“빈 손으로 돌아가면 안 되오. 우리가 이렇게 철군하면 초나라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 우리는 초나라가 공자 승에게 봉지를 내리고 태사 건(建)을 새 왕으로 옹립하게 해야 하오. 그래야 우리가 영도를 공격한 명분이 서게 되오.”
“맞는 말이요. 영도 공격전은 천고에 길이 남는 전투요. 우리는 출병도 명분이 있어야 하지만 철군도 명예롭게 해야 하오.”
손무의 의견에 공감한 오자서는 신포서에게 보낸 회답편지에 이렇게 썼다.
“잔혹하고 무도한 평왕이 무고한 신하를 학살해서 더 없는 분노로 여기까지 왔다. 과거 제(齊) 환공(桓公)은 형(刑)나라의 존속과 위(衛)나라 군주의 옹립을 도와주었고 진(秦) 모공(穆公)은 세 번이나 진(晉)나라 군주의 옹립을 도왔지만 모두 그 나라의 땅을 탐하지 않아 지금까지 칭송을 받는다. 지금 태자 건의 아들 공자 승이 봉지 한 촌 없이 오나라에 머물고 있다. 초나라가 공자 승이 다시 초나라에 돌아가 봉지를 받고 태자 건의 뒤를 잇게 한다면 내가 어찌 철군을 행함으로 초나라를 회복하려는 당신의 큰 뜻을 이루게 하지 않겠는가.”
후에 초나라는 과연 오자서의 요구대로 사신을 오나라에 보내 공자 승을 데려다 언성(鄢城)을 봉지로 주고 백공(白公)이라 칭했다. 오자서와 손무는 체면 있게 철군해 초나라 국고의 온갖 보물을 가지고 오나라로 귀환했다. 또 철군길에 초나라의 만 가구를 오나라 땅에 이주시켜 땅이 넓고 인적이 드문 오나라의 변경지역을 충실하게 했다.
귀환 길에 손무가 오자서에게 말했다.
“오 형은 끝내 복수를 해서 인생에 유감이 없을 텐데 후에도 계속 오나라에 남아 오 왕을 보필할 생각이시오?”
오자서가 놀란 눈빛으로 손무를 쳐다보았다.
“손 형 무슨 말이오? 오 왕이 나의 원수를 갚아 주었으나 우리도 그가 중원의 패주(覇主)가 되도록 도와야지 않겠소. 앞으로 군주와 신하가 더욱 한 마음이 되어 오나라를 천하 제일의 강국으로 만들어 오래도록 중원을 제패하게 해야지 않겠소. 아니? 손 형 혹시 또 은둔할 생각이오?”
“오 형, 오 왕의 딸 승옥(勝玉)의 순장 사건을 기억하시오?”
“물론 기억하지 그럼. 오 왕은 막내 딸 승옥을 아주 사랑해 생선요리를 먹다가 하도 맛이 좋아서 남은 반을 딸에게 보내주었는데 승옥은 부친이 남은 생선 요리로 자신을 모욕한다고 여겨 분노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소. 크나큰 슬픔에 빠진 오 왕은 죽은 딸의 장례를 지내면서 영구 호송 행렬에 비단으로 학을 만들어 바람에 날리게 하면서 그 뒤를 따라 구경하라고 만명의 백성들에게 명을 내렸소. 그리고 그 만명이 묘실에 들어서자 묘실의 문을 봉해서 만명의 백성이 죽은 딸의 순장품이 되게 했소. 오 왕은 너무 잔혹하오.”
오자서의 말에 손무가 이렇게 말했다.
“오 형은 오 왕이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을 죽이는 잔혹한 사람임을 알면서도 왜 계속 그를 위해 일하려 하는 것이요? 때가 되었는데도 물러나지 않으면 필히 후에 우환이 따를 것이니 오 형 나하고 같이 물러 납시다.”
하지만 오자서는 손무의 말을 듣지 않았다.
고소에 돌아온 후 오자서는 상국(相國)이 되었고 손무는 모든 포상을 거절한 후 다시 은둔해 행방이 묘연했다.
손무는 오나라를 거쳐가는 기러기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잠깐만 보이고 표연히 사라졌다. 또 높은 하늘에 피여 오르는 불꽃처럼 눈부신 빛을 뿌리고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손무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손자병법>은 인류의 눈부신 보물이 되고 자자손손 전해지며 오늘날도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