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도[蘆花島]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읍에 속하는 섬.
완도군의 서남부에 위치하여 완도항에서 31.5㎞ 떨어져 있다. 동경 126°40′, 북위 34°10′에 위치한다. 보길도·소안도 등과 함께 소안군도(所安群島)를 형성한다. 면적은 25.01㎢, 해안선 길이는 41㎞, 최고점 148m이다. 인구는 1,701가구 4,555명(2010년)이다. 노화읍 신리에는 바로 앞의 노록도와 연결되는 신비의 바다길이 1㎞에 걸쳐 펼쳐져 있다.
염등리 앞 300ha에 달하는 갯벌에 갈대꽃이 피면 장관을 이룬다고 하여 갈대 ‘노(蘆)’, 꽃 ‘화(花)’자를 써 노화도라 하였다고 한다. 또는 윤선도가 이 섬으로 올 때 어린 종을 데리고 왔다 하여 노아도(奴兒島)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노화도는 조선 시대부터 노도(露島) 혹은 노아도(露兒島)로 불린 것으로 전해진다. '해동지도'(영암)에는 '노아도(露兒島)'로 기재되어 있으나 '해동여지도'(영암)에는 '노아(老兒)'로 되어 있어 두 지명이 함께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완도와는 14.5㎞ 떨어져 있으며, 보길도·소안도 등과 함께 소안군도를 이룬다.
섬의 북쪽과 서쪽은 비교적 험준한 산지로 되어 있으나 동남쪽은 구릉성산지를 이룬다. 암석은 주로 중성화산암류·반암류이다. 해안선의 드나듦이 심하며, 만입부의 넓은 간석지가 염전과 농경지로 이용된다.
온난한 해양성기후로 연평균기온은 14.5℃이고, 1월 평균기온은 0.1℃ 내외, 8월 평균기온은 25.3℃ 내외, 연강수량은 1,285㎜이다. 동백나무·후박나무·곰솔·팽나무 등의 상록활엽수 250여 종이 자란다.
고려·조선시대에는 보길도, 소안도와 함께 영암군에 속하였으며 조선 중기까지 무인도였으나, 약 400여 년 전에 전주 이씨가 처음 섬에 들어와 염등리에 살면서 제염업을 하였다고 한다. 조선 시대 목마장과 봉산이 있었다. 1864년(고종 1) 이후 영암군의 관할에 속하여 궁감(宮監)이 매년 조세를 징수하여 왔으며, 1870년에 면민들의 청원으로 방진(防鎭)을 설치하여 삼도진(三島鎭)이라 하였다. 1895년 혁파되었다. 삼도진(三島鎭)은 노화읍 도청리에 있었으며 조선 시대 군진 관할로는 어란진에 속해 있었다. 지명은 삼도를 관할한 데에서 유래되었다. 1896년완도군이 설치되어 노화면, 보길면, 넙도면으로 분리되었으나 1916년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3개 면이 노하면으로 통합되었고, 1980년노화읍으로 승격되었다.
주민 대부분은 반농반어에 종사한다. 농수산업의 비중이 80% 이상이다. 2007년 말 현재 토지 구성은 현재 3.76㎢, 밭 6.03㎢, 임야 14.19㎢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를 비롯하여 콩·감자·고구마·참깨·마늘 등이 있다. 수산물로는 연안 일대에서 도미·멸치가 잡히며 특히 굴·김·톳 양식과 수산물가공업이 활발하다. 또한 구목리와 석중리에서는 납석이 채굴되어 내화벽돌과 타일의 원료로 일본과 대만에 수출하여 동양 최대의 납석광산을 형성하였다. 지금도 2개소의 광산에서 생산이 이뤄지고 있다.
이포리에는 예전에는 염전이 많아 2000여 톤의 천일염을 생산하였으나 지금은 대부분 폐업하고 폐염전을 이용하여 새우를 양식하고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대당리에는 1884년에 세워진 관찰사 조강하송덕비(趙康夏頌德碑) 등과 7기의 고인돌이 있으며 이포리에는 시대를 알 수 없는 조개더미가 있다. 염등 마을은 노화도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로 알려져 있다. 민속으로는 농악놀이와 함께 매년 정월 초하룻날 당제를 지내고 있다.
교육 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개교(노화중앙초등학교, 노화초등학교, 노화동초등학교, 노화북초등학교), 중학교 1개교(노화중학교)와 고등학교 1개교(노화종합고등학교)가 있다. 병원, 보건진료소, 우체국, 농협, 수협지소 등이 있다.
교통은 완도 황흥포항·노화 동천항간 여객선 운항되고 있고, 해남군 땅끝마을(토말)에서도 여객선이 운항한다.
노화읍[蘆花邑]
전라남도 완도군 남서 해역에 있는 읍.
도서(島嶼)로 이루어진 읍으로, 10개 리에 유인도 13개, 무인도 30개가 있다. 비교적 규모가 큰 섬은 노화도(蘆花島:25.01㎢)·보길도(甫吉島:32.8㎢)·넙도(芿島:2.08㎢)·서넙도(西芿島:1.8㎢) 등이다. 1018년(고려 현종 9) 영암군(靈巖郡)에 속하였고, 1896년(고종 33) 완도군 창설에 따라 노화, 보길면(甫吉面) 등 2개 면으로 구획되었다가 1914년 노화면(蘆花面)으로 통합되었으며, 1980.12.1 읍으로 승격하였다. 1986년 보길면이 분리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포리(梨布里)를 비롯하여 19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잉도 출장소가 설치되어 있다. 한편, 면 소재지인 이포리 지명은 향토지에 이목리(梨木里)로 소개되어 있다. 현대지형도에는 이곳에 이목리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동일한 곳을 지칭한 지명으로 사료되나 언제부터 이포리로 기재된 것이지는 확실하지는 않다. '조선지형도'에 이목리와 이포리 지명이 함께 기재된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초기 지도 제작과정에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목리 지명은 마을 동쪽에 큰 배나무 두 그루가 있어 유래되었다고 향토지에 소개되어 있다.
경지면적은 논 448ha, 밭 1,176ha이며,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고구마·참깨·마늘 등이다. 온화한 기후를 바탕으로 귤나무의 시험재배를 하고 있다. 연안의 바다에서 도미·멸치 등을 어획하며, 각 도서의 해안에서는 해태양식이 성하다. 이포리(梨布里)·도청리(都廳里)에 염전이 있어 소금을 생산하며, 내화벽돌과 타일의 원료가 되는 납석(蠟石)을 채석하여 수출하고 있다.
문화재로는 노화도 고인돌군(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