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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위해 오시는 하나님과 부르심(1-6)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하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고 예배하는 것이 제일 주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무턱대고 예배하는 것을 전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도 말씀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습니다.
1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2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비추셨도다 3우리 하나님이 오사 잠잠하지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삼키는 불이 있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4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판결하시려고 위 하늘과 아래 땅에 선포하여 5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6하늘이 그의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셀라)(1-6)
시인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기를 예배할 자들을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곧 모든 세상에서 부르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공간적으로 모든 땅에 속한 것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는 의미이며, 시간적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즉 모든 시대에 속한 피조물들이 다 부름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1) 빛으로 시온에 오시는 하나님(1-2)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1a)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여호와가 ‘엘 엘로힘’으로는 데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에레츠)을 부르셨습니다(1bc).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14절의 ‘지존하신 이’(엘욘)와 어울려 출애굽의 하나님과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가르침을 주신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하나님께서 그때처럼 오셔서(출 19장) 시온으로부터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빛나셨습니다(2). 위대하신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 시온은 아름다움 그 자체가 됩니다. 빛을 비추시는 것은 일반적으로 구원을 상징하지만, 시인은 심판을 위해 오시는 하나님을 말하려 합니다.
(2) 언약백성을 부르시는 하나님(3-6)
시인은 하나님께서 오시는 광경을 묘사합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오셔서 잠잠하지 않으십니다. 그분 앞에는 삼키는 불이, 그분 사방에는 광풍이 붑니다(3). 하나님께서는 다른 곳에서 맹렬한 불 또는 소멸하는 불로 그려집니다(신 4:24; 9:3; 히 12:28). 하나님의 오심은 옛적 시내산에 강림하실 때와 비슷합니다(출 19:1-6,8,16,18). 그가 위의 하늘을 부르시고 백성을 판결하려고 땅을 부르십니다(4).
자기 백성을 재판하시려고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호출하시는 것입니다(참조. 신 32:1; 사 1:2; 미 6:1-2). 하나님께서 증인을 호출한 후 말씀하십니다. ‘나의 성도들을 내 앞으로 모으라/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을 맺었다’(5). 시편에서 성도들은 주로 ‘헌신된 자’로 언급되지만, 문맥상 이들은 언약 백성의 후예들로서(출 24:1-11), 새롭게 갱신된 언약에 참여하는 백성 모두를 가리킵니다.
이제 성도들을 향해 ‘하늘이 그의 공의를 선포할 것이다/이는 하나님, 그가 재판장이기 때문이다’(6). 하나님의 법정에서 증인으로 호출된 하늘이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는 주체가 됩니다. 6절 시행은 하늘에 사무치는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인격화한 엄숙한 표현입니다.
재물보다 하나님 언약 백성의 재물 경고와 참 예배(7-15)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자기 백성에 의해 세상에 공의가 선포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배의 이유를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저 매주 예배만 참석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자들을 통해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가 선포되어야 합니다.
7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8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9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10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11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7-15)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제물을 드리지 않아서 책망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드리는 번제가 항상 하나님 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형식만 남고 중심이 빠져 버린 데 있습니다.
(1) 재물에 대한 왜곡된 생각(7-12)
성도들의 잘못을 꾸짖는 하나님 말씀은 계속됩니다. ‘들어라 나의 백성아, 내가 말하겠다/이스라엘아,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겠다/나는 하나님, 너희 하나님이라’(7; 참조. 신 6:4). 이후에 하나님은 ‘내가’를 반복하여 이스라엘의 재물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증거를 제시하듯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희생제물 때문에 책망하시는 것이 아닙니다(8).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었다’(8b)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백성들은 제사에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네 집의 수소나 네 우리의 숫염소가 필요 없다’(9)라고 하십니다. 수소나 숫염소는 값나가는 제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값비싼 제물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그 이유를 밝히십니다. 산의 모든 새들도 짐승들도 하나님께서 아시고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11). 여기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설령 내가 굶주려도 네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왜냐하면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이기 때문이다’(12).
이는 하나님이 고대 근동 세계의 여러 신들과 다름을 표명한 것입니다. 바벨론 홍수 신화에서 신들은 배고파하며 바쳐진 제사 음식을 먹으려고 파리 떼처럼 몰려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도 다른 신들처럼 물을 먹는다고 생각했다면 오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것을 ‘나의 것’이라고 세 번이나 반복하십니다.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2) 참 예배에 대한 교훈(13-15)
풍자성이 강한 하나님 목소리입니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고,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13). 하나님께서는 다른 신들처럼 배고파하며 피에 굶주려 인간들로부터 먹거리를 요청하는 신이 아닙니다. 12절처럼 하나님께서는 매우 익살스럽고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질문으로 제사에 대한 오해를 교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제사는 무엇입니까? ‘감사를 하나님께 바치라/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라’(14). ‘감사’와 ‘서원’ 제사는 예배자의 자발성에 기초한 자원 예물입니다.
감사 제사의 동물 제사 자체를 부정하는 뜻은 아닙니다(참조. 대하 29:31; 렘 17:26-27). 제사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강조한 것입니다. 제사의 본질은 물질적 희생보다 자발적인 마음에 있습니다. 제물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제물을 바치는 사람을 위한 것이 됩니다. 제사와 성전은 예배를 위한 수단이지 본질이 아닙니다. 본질은 다른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구원할 것이고,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할 것이라’(15) 약속하십니다.
마치 시인의 요청에 응답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난의 순간에 당신을 부르라고 격려하십니다. 이처럼 언약 관계 안에서 결합된 상호 신뢰는 하나님을 부르는 성도의 부름에서 시작됩니다. 성도의 부름은 구원이며, 구원받은 이후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감격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부르는 것, 그것이 성도들에게 요청하신 제사이며 예배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