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띄우는 편지 / 아버지의 등)
시골에서 오신 아버지를 모시고, 아들까지 3대가 목욕탕에 간 건 처음인 듯싶다.
여름철 동네 앞 시내에서 멱 감는 것을 빼고 목욕이라는 이름으로 몸을 씻는 경우
란 1년에 명절 때 한두 번이던 어릴 적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쇠죽을 쑨 후 다시 물을 부어 데우고, 짚단을 포개 자리를 만든 다음 발을 불리며
때를 밀던 시절, 물에 뜬 여물 찌꺼기로 얼마나 힘껏 밀었던지 나와 보면 살갗이
벌겋게 달아 있었고, 그건 깨끗하게 씻었다는 증표로 여겼다.
아버님의 등은 아들놈의 등보다 그리 넓게 여겨지지 않았다. 스무 마지기 넘는 논
을 경작하시느라 언제나 무거운 짐을 져 나르시던 그때의 모습은 찾을 길 없었다.
피부색이 검게 바래고 쪼글쪼글해진 등을 밀던 나는 갑자기 북받치는 슬픔을 억누
를 수 없었다. 출가해 여러 곳에 흩어져 사는 우리 여 섯 남매들. 그 어려운 농촌
살림 속에서도 모두 대학까지 마치게 하신 부모님의 고통과 열정.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얼마나 그 은혜를 기억하며 효도하고 있는가. 날로 크는 자식
에게 쏟는 내 정성의 반이라도, 왜소해져 가는 부모님께 바쳐 마음 편하게 해 드려
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