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구신문 <좋은 시를 찾아서 > 2026년 2월
줄넘기
장이소
산에 올라 산이 담을 넘는 것을 본다
산을 보여줄 때마다 산을 취소하는 것
손안에 꼭 들어오는 손목이 있어
넘을수록 사라지는 선을 본다
짐을 지고
선이 선을 지우는 파도를 본다
파도를 보여줄 때마다 파도를 취소하는 것
우산 목이 손목처럼 잡히는 날
너를 보여줄 때마다 너를 취소하는
빗속에서
걸어 나오는 너를 본다
무지개
다리가 산을 넘는 것을 본다
손안에 꼭 들어오는 손목이 있어
산이사니살아서 선이서니서서
계속 만나게 되는 것일까
담도 짐도 다 버리고
▶약력: 202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등단, 끌 동인, 부산미협 · 부산작가회의 회원
시집 『사탕 막대로 이루어진 막대사탕』
.▶해설: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시인에게는 “담도 짐도 다 버리고”가 그 답일 것이다. 가로막는 담은 현실의 여러 현상일 것이고, 짐은 책임의 다른 말일 것이다. 산에 올라 보는 산들은 넘실대는 파도의 연속성과 같은 것이면서 손안에 꼭 들어오는 손목이 있어, 넘을수록 사라지는 선은 일종의 유혹이기도 하지만 또한 시인에게는 “우산 목이 손목처럼 잡히는 날/너를 보여줄 때마다 너를 취소하는/빗속에서/걸어 나오는 너를 본다” 산과 파도와 너는 일종의 지울 수 없이 너울지는 갈증이다. 갈증은 결국 취소라는 단어들 만나 오히려 더 증폭되고 있으면서 원인은 손목 때문이기도 하지만, 산과 파도처럼 중첩되는 삶의 현상들을 희망의 암시적 상관물인 무지개를 통해 또는 줄넘기로 돌려지는 반원, 그 선의 세계를 시인은 온몸으로 뛰어올라야 할 꿈의 목적지로 두고 있다는 생각을 얼핏 해본다.-<박윤배 시인>
--------------------------------------------------------------------------
복화술은 언제 배웠니
허은희
공들여 망친 꽃밭을
누군가 비밀의 화원으로 돌려놓았다
꽃밭은 헤프고
비밀은 성급해
누구나 알 것 같지만
아무나 알 수 없는
전략의 미로지
잡초로 위장한 화원의 입구는 들키기를 기다리며 숨겨놓은 연애편지. 풀잎을 들추며 몸을 숙인다. 꽃들의 소란을 들이키는 발바닥. 입 다문 나무와 흙과 이끼들. 토막 낸 지렁이를 뿌리며 울던 아이는 눈먼 개미를 끝내 찾지 못했다는데
제 몸보다 더 큰 먹이를 물고 둘 곳을 찾지 못해 떨던 개미는 어젯밤 꿈에 죽었다
▶약력 : 2003년『시사사』로 등단. 제 28회 인천문학상 수상. 제 3회 시사사작품상 수상. 시집 『열한 번째 밤』, 『손톱이 자라는 속도』가 있다.
▶해설 : “꽃밭은 헤프고/비밀은 성급해/누구나 알 것 같지만/아무나 알 수 없는/전략의 미로지” 기가 막힌 경구를 행 구분으로 호흡을 조절하면서 한 연으로 한 편의 시 안에 멋진 방으로 세를 놓고 있는, 이 시의 집은 꽃밭에 대한 어떤 몸의 비유임을 암시하면서 “공들여 망친 꽃밭을/누군가 비밀의 화원으로 돌려놓았다”라고 하니, 또한 놀랍지 않은가? 그 이면의 이야기를 3연에서 진술하면서 4연에서는 내면 심리가 반영된 또 하나의 단정을 “제 몸보다 더 큰 먹이를 물고 둘 곳을 찾지 못해 떨던 개미는 어젯밤 꿈에 죽었다”라고 내리고 있다. “공들여 망친/들키기를 기다리며 숨겨놓은 연애편지”는 비상식의 문장이면서도 그 어감이 주는 느낌은 복화술腹話術(입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마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기술)을 구사하는 시인 만의 일종에 전략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시인의 이야기는 “복화술은 언제 배웠니”라는 제목에 맞닿아 있기에 한층 더 사유의 깊이와 재미가 동시에 느껴지는 시인 것이다.-<박윤배 시인>
---------------------------------------------------------------------
어머니는 칼날을 잡는다
이용일
할머니는 십여 년째 치매를 앓고 계신다
어머니는 뒷바라지로 청춘을
평범한 여자의 삶을 잃으셨다
그런 어머니가 폐암 말기란다
찢는 듯한 통증을 옅은 미소로 감추고
돌아가는 자식들을 배웅하곤 했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할머니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려 했단다
자식들에게 폐 끼치기 싫다며
알리지 말 것을 눈물로 호소했다고 한다
경찰서를 나서는 길
경찰관의 말 한마디가 가슴을 깊게 찌른다
“어머니는 칼자루가 아니라 칼날을 잡는다네요”
▶약력: 국문학.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원(SPARC). 2007년 『문학세계』 등단.<두레문학상> 2022. 강원일보<DMZ문학상> 2025 수상. 시와비평<두레문학> 동인. 전 회장. 시집 『달팽이, 괄호에 젖다』 『어머니는 칼날을 잡는다』 외
▶해설: 칼의 손잡이를 잡는 게 아닌 칼날을 잡는다는 행위를 통해 모성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실체 있었던 사건을 차분하게 기술하고 있는 이 시는 마지막 한 문장에서 그 비유가 섬뜩하게 독자의 감정을 찌르고 있다. 사건인즉슨 십여 년째 치매를 앓는 할머니가 있고 며느리로서 엄마는 뒷바라지로 청춘을 잃는다. 그런 세월을 살다가 불치의 병을 얻는다. 그러면서도 자식들에게는 차마 고통을 감추려는 그런 엄마다. 놀라운 모성이다. 그런 엄마가 어떤 사고를 일으키게 되고 알고 보면 어머니가 “할머니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려 했단다“라는, 것인데, 그 이유가 자식들에게 폐 끼치기 싫다는 것, 결국 보호자인 자식이 경찰서를 찾게 되고 경찰관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가 ”“어머니는 칼자루가 아니라 칼날을 잡는다네요” 이다.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희생을 먼저 생각하는 모성을 그린 시다. 요즘 주변에 흔한 치매와 췌장암을 소환하고 있어, 담담하지만 울컥하게 하는 시다.-<박윤배 시인>
-----------------------------------------------------------------------------
미안하다는 말의 집은 어디일까요
연명지
십이월 잠 속으로 누군가 다녀갔다
살아서 겸손했던 날들에게
기억 속에 저장된 미소를 삭제해달라는 메모를 두고 갔다
푸른 미소를 오래 기억하겠다는 기일
염려로 묶일 대화에 대해서
먼 훗날 낯선 골목에서 우연히 스쳐가자고 했다
구부러졌던 손가락을 펴며 환하게 웃던 잠이었다
뒤통수를 치고 혹으로 전언을 남긴
당신의 세계는 자주 물방울이 흘러내린다
입술을 벗어나 허공에 떨어져도 도착하지 않을 말
미안하다는 말의 집은 어디일까
둥그렇게 무언가를 감싸고 있던
십이월의 겨드랑이에서 깃털이 날아가고
버려야 채워진다는 문장은
빈집의 골목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호박넝쿨 뿌리를 깊숙이 묻어달라던 말
귓가에 남아 미어지는 첫 기일이다
가족의 가장자리 여백으로 살던 아버지
잠 속을 드나들며 하얀 국화를 흔드는
이 얼마나 속 깊은 뒤통수의 혹인가
▶약력: 2013년 미네르바 시선으로『가시비』를 출간하며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사과처럼 앉아있어』『미안하다는 말의 집은 어디일까』전자시집『열일곱 마르코 폴로 양』여행 에세이『차곡차곡 걸어 산티아고』가 있다. 호미문학상,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상,항공문학상을 수상했다.
▶해설: 가족의 가장자리 여백으로 살던 아버지의 첫 기일을 바탕에 두고 생전의 아버지와 꿈속에 다녀간 사후의 아버지를 그물망처럼 모자이크하고 있다. 12월의 잠 속으로 다녀간 누군가는 아마도 아버지일 것이고 살아서 겸손했던 날들에게 남긴 말은, 기억 속에 저장된 미소를 삭제해달라는 메모였다니! 알고 보면 첫 기일의 화두는 푸른 미소인데 그는 그 푸른 미소를 염려로 묶일 대화에 대해서 “먼 훗날 낯선 골목에서 우연히 스쳐 가자고” 하는 아버지를 시인은 겸손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 내막에는 가족의 가장자리 여백으로 살던 아버지가 어쩌면 남겨진 자식을 향해 어떤 용서를 구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면서 한층 더 그리움을 흔드는 애틋함을 보여주고 있다. 잠 속을 드나들며 하얀 국화를 흔드는 아버지였고, 그런 아버지는 이 얼마나 속 깊은 뒤통수의 혹인가? 결국 미안하다는 말의 집은 깃털이 머물던 자리일 것이다 -<박윤배 시인>
------------------------------------------------------------------------
빗속의 장場
양현근
여기 한 장이 있다
아니, 없다고도 말할 수 있는,
젖고 미끄러운 장
세종대로, 간판들이 번지고
빛바랜 장판 같은 저녁 바닥 위로
속보처럼 비가 쏟아진다
웅덩이는 말을 모아 깊어진다
차선 위 물보라 한 획,
구호를 외치듯 불빛이 후려갈긴다
손등을 펴면 물이 길을 세우고,
말아쥐면 길은 주먹 속으로 접힌다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아래,
배수구의 흐름을 더듬는다
돌계단 밑, 사람들 어깨가 퇴근 중이다
작달비는 계속 쏟아지고,
비의 언어가 다 닳을 때까지
젖은 손으로 오늘의 장을 맞춘다
▶약력:1998년 『창조문학』으로 등단했다. 2011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을 받았고, 2024년 《시선 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시집 『수채화로 사는 날』 『안부가 그리운 날』 『길은 그리운 쪽으로 눕는다』 『기다림 근처』 『산벚나무가 있던 자리』 『별을 긷다』 『시간의 우물』 등을 펴냈다.
▶해설:이 시 속의 “속보처럼 비가 쏟아진다/웅덩이는 말을 모아 깊어진다” 두 행이 주는 묘한 이미지는 장에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막간의 효과를 극대화 시킨다. 場은 연극 등에서, 한 막 가운데 무대 정경은 변하지 않은 채 바뀌는 장면을 세는 단위인데 아니, 없다고도 말할 수 있는, 젖고 미끄러운 장을 세종대로에 두면서 장의 실체를 고백하고 있다. “차선 위 물보라 한 획,/구호를 외치듯 불빛이 후려갈긴다/손등을 펴면 물이 길을 세우고,/말아쥐면 길은 주먹 속으로 접힌다/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아래,/배수구의 흐름을 더듬는다/돌계단 밑, 사람들 어깨가 퇴근 중이다“ 이처럼 비의 언어를 다루고 있는 이 시는 동적인 구호를 외치듯, 손등을 펴면, 말아쥐면, 접힌다, 등 생생한 동작이 비를 노래하고 있어서 독자로 하여 현장감 있는 빗속에 든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오늘이 결국 그 하나의 場이 되고 있다.-<박윤배 시인>
----------------------------------------------------------------------------
달맞이꽃
박재홍
나는 생의 어귀 노루목에 살아요 가끔, 노루 대신 사슴 발목이 잡히곤 하지요 강 건너 당신의 집에 들으면 노루인지 사슴인지 알 수 없지만 아득한 슬픔이 척추의 등선을 밟고 허리를 편 달을 향해 꽃대 밀어 올리는 어둠 속에 있는 달맞이꽃 설핏 비켜 앉은 나뭇등걸에 드리운 그림자
당신 거기 있나요
▶약력:1968년 전남벌교 生. 한남대학교 대학원 석•박사통합과정 재학 중. 시집 『도마시장』 외 19권 상재. 세종도서문학나눔 3종 선정/ 동인지 1종 선정. 중소출판콘텐츠창작지원사업 1종 선정.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 국무총리표창. 전문예술단체「장애인인식개선오늘」 대표반년간지 『문학마당』 발행인
▶해설: 노루목에 사는데 그것도 생의 어귀라고 하니, 왠지 절절한 느낌이 든다. ”노루 대신 사슴 발목이 잡히곤 하지요“ 라는 고백이 감정 이입된 달맞이꽃의 말을 그대로 받아적으면서 시인은 꽃과 혼연일체가 되어 강 건너 당신의 집에 들고 있다. ”노루인지 사슴인지 알 수 없지만“은 일종의 반전인데 ”아득한 슬픔이 척추의 등선을 밟고 허리를 편“은 생의 어귀라는 상황과 맞물리면서 어느 것 하나 허물 수 없는 완벽한 건축물 한 채를 언어로 짓고 있다. ”허리를 편 달을 향해 꽃대 밀어 올리는“은 달맞이꽃의 정황이면서 자신인 것이고 ”설핏 비켜 앉은 나뭇등걸에 드리운 그림자“는 달빛 아래의 세밀한 관찰로 드러난 자신에 삶의 실루엣이다. 슬프기도 하다가 외롭기도 하다가 동시에 느껴지는 쓴맛과 단맛은 목이 마른 눈 맑은 짐승을 위해 강물 한 자락 펼쳐놓고 있다. 목을 축인 후 고개를 쳐드는 순간, 그 강 건너 당신 거기 있을까? 따라서 독자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꽃이 된다. -<박윤배 시인>
---------------------------------------------------------------------------
유령게처럼
장옥근
무심한 얼굴들 긴 돌담길 돌아
낙엽 숲길을 걸었어요
돌고 돌아도 내가 머물 곳은 없고
뒤따라오는 사람들 돌아볼 사이도 없이 앞으로만 나갔어요
소리 없이 우는 새 말없이 따라오는 늙은 어머니가 있는 저녁
낮게 떠 있는 달 큰곰 작은곰 카시오페이아 별자리
선명한 밤하늘 흙냄새 나는 검푸른 길
어린 딸과 낯선 사람들과 죽어간 이들과 함께 걷는 소금밭
열려있는 길을 따라갔어요
밀물이 들어오기 전까지만 살아있는 흔적 남아 있는
▶약력: 2013년 시와경계 등단. 시집 『눈많은그늘나비처럼』『가을살청』이 있다
▶해설: 이 시는 ”밀물이 들어오기 전까지만 살아있는“ 흔적 남아 있는 그 길을 통해 어떤 풍경을 그리고 있는데, 마치 이승을 떠난 혼령이 다른 세계에 든 듯 ”죽어간 이들과 함께 걷는 소금밭“을 유령게의 눈으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느낌의 시다. ”무심한 얼굴들 긴 돌담길 돌아/낙엽 숲길을 걸었어요/돌고 돌아도 내가 머물 곳은 없고/뒤따라오는 사람들 돌아볼 사이도 없이 앞으로만 나갔어요“ 이 같은 장면은 몸이 몹시 허약할 때 꾸던 꿈속에서 내가 마치 이승을 떠난 혼령이 되어 다른 세계를 경험하듯 꾸던 꿈과도 유사한 장면 같아서 섬뜩한데, ”소리 없이 우는 새 말없이 따라오는 늙은 어머니가 있는 저녁“은 ”낮게 떠 있는 달 큰곰 작은곰 카시오페이아 별자리/선명한 밤하늘 흙냄새 나는 검푸른 길“ 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또 다른 어느 사후의 도착지 행성은 아닐지.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와도 마음이 불안하지 않은 건 그래도 그곳에 어머니가 기다리는 저녁이 있음이 아닐까? 여기까지는 내 생각이고, 유령게가 지나간 그 흔적과 우리가 살다가는 한 생이 별반 다르지 않음이여!-<박윤배 시인>
-----------------------------------------------------------------------------
작은 새
김점미
작은 새가 폴짝이네
물기 잔뜩 머금은 봄바람에
가볍게 살랑거리는 숲에서
갈빛 깃털 나폴대며 겨울 낙엽 사이로
소생하는 모든 생명 틈에 서서
오랜 명상을 마친 시간인 척
사람과 사람 사이 바람인 척
햇살을 쫓아왔던 청춘인 척
작은 새가 폴짝이네
세상은 보려는 자의 것
나의 새가 되려는 저 새는
오직 내게만 작은 새인 저 새는
이 숲을 오래 지켜온 떡갈나무 분신인 저 새는
긴 겨울 지나온 봄 물고서
내 속의 깊은 겨울 떠나서
향기로운 새싹으로 돌아오네
▶약력: 부산 출생. 2002년 『문학과의식』으로 등단. 부산대 독어교육과와 동대학원 졸업 후 한국해양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시집으로 『한 시간 후, 세상은 (2013)』, 『오늘은 눈이 내리는 저녁이야 (2021)』가 있으며, 교육서로 교육부 인정교과서 『2009개정 고등학교 독일어권 문화 (2013)』 등이 있다. 제7회 요산창작기금(2015), 제43회 이주홍문학상(2023)을 수상했다. 부산작가회의, 한국시인협회 회원.
▶해설: 시 속에 등장하는 새는 그냥 중의적인 새도 아니고 큰 새도 아닌 작은 새인 걸로 보아 왠지 연민의 냄새, 보호본능의 냄새가 난다고 할 수 밖에, 아무튼 시인의 새를 보는 마음이 도입부에서부터 궁금함을 자아낸다. 내 속의 깊은 겨울을 떠나서 내 속의 봄으로 돌아오는 저 새는 ”오랜 명상을 마친 시간인 척/사람과 사람 사이 바람인 척/햇살을 쫓아왔던 청춘인 척“척하는 그런 새다. 소생하는 몸의 새로 돌아오길 바라는 그런 새는 나에게만 작은 새인 것이며 ”이 숲을 오래 지켜온 떡갈나무 분신인 저 새는“결국” 세상은 보려는 자의 것“이라는 직관과 맞물리면서 시인 자신이 세상을 보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새가 폴짝거리는 동작을 연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시인의 연민은 겨울 얼었던 땅을 열고 막 솟아오르는 새를 식물적인 새싹(식물)과도 동일화시키면서 기다리는 봄의 갈망을 더 증폭시키고 있음은 아닌지.-<박윤배 시인>
----------------------------------------------------------------------------
나는 과자예요
이미산
함부로 깨물거나 천천히 녹이거나
당신의 취향이면 좋겠습니다
공글리고 희롱하다 단박에 삼켜도
당신으로 피어나니 다행입니다
모르는 사람이여
오늘은 심심하고 내일은 궁금한가요
내가 있잖아요
버려지고 구겨져도 애인처럼 바스락거리는
심야의 환한 편의점
변신을 기다리며 가지런히 배열된
나는 과자예요
▶약력: 2006년 《현대시》 등단. 시 집 : 『아홉 시 뉴스가 있는 풍경』, 『저기, 분홍』 『궁금했던 모든 당신』, 『우리의 수다는 다정해서 쓸쓸해』
▶해설: ”오늘은 심심하고 내일은 궁금한가요“라고 던지는 물음은 얼마나 신선한가. 그런데 이 말 앞에 ”모르는 사람이여“ 는 더더욱 오늘이 심심하고 내일은 궁금하다. 궁금하니까 깨물어야 한다. 무엇을 ? 과자를, 이때 과자는 시인이다. ”함부로 깨물거나 천천히 녹이거나“ 해야할 과자인데 과자를 먹는 방식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글리고 희롱하다 단박에 삼켜도/당신으로 피어나니 다행입니다“ 는 결국 본질의 맛은 같은 과자인 것. 심야의 환한 편의점에서 변신을 기다리며 가지런히 배열된 과자의 말을 시인은 충실히도 옮겨적고 있는, 이 방식은 편의점 이란 장소와 공간을 순간 이동시켜서 시라는 언어 예술로 옮겨놓으면서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은 마르셸 뒤샹적인 놀라운 반전이다. ”내가 있잖아요/ 버려지고 구겨져도 애인처럼 바스락거리는“ 이 말은 과자의 말이다. 오해 없기를 -<박윤배 시인>
---------------------------------
켤레
김설희
무엇을 집으려면
숟가락보다 젓가락이 좋대요
막대는 기다란 것도 짧은 것도 끝이 있지요
마주칠 수 있는 셈법은 하나 이상일 때 생겨나죠
탁, 소리가 나지 않으면 마주치는 걸 모를 때가 있어요
젓가락 끝이 마주쳐 감자볶음을 집을 때
한 켤레가 태어나는 시간이죠
켤레는 두 축의 만남이죠
축은 이곳과 저곳이 중심이에요
양말을 신고 걸어가는 두 개의 생각이에요
철길 맷돌 신발 지퍼 심벌즈 ......
켤레로 생겨난 이름들이 줄을 서네요
꽃잎은 켤레가 될 수 없는 것을 아시나요?
한 몸에 붙은 척 따로따로 입술을 내밀고 있죠
피보나치 수로 무한 생겨난다는 것도 아시죠?
하나하나 따로인 젓가락을 생각해 보신 적 없다고요?
▶약력: 2014년 리토피아 등단. 아라문학상 수상. 경북여성문학상 수상. 난재채수문학상 수상
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발표지원 수혜. 시집 『산이 건너오다』. 시집 『흐엉 씨의 두부』
▶해설: 켤레로 생겨난 이름들이 세우는 줄에는 철길 맷돌 신발 지퍼 심벌즈 ......아! 시인은 ”무엇을 집으려면/숟가락보다 젓가락이 좋대요“라는 전제를 슬그머니 깔아두면서 발랄하게 시를 끌고 가고 있다. 켤레라는 두 축의 한쪽은, 자신이 되고 싶은 것 아닐지? 아무튼 하나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시인은 탁, 소리가 나지 않으면 마주치는 걸 모를 때가 있다면서 ”막대는 기다란 것도 짧은 것도 끝이 있지요/마주칠 수 있는 셈법은 하나 이상일 때 생겨“난다는 진술을 서슴지 않는다. 또한 ”젓가락 끝이 마주쳐 감자볶음을 집을 때/한 켤레가 태어나는 시간이죠“ 라고도 진술한다. 그렇게 자신 생각을 상황과 연결하면서 시말로 풀어가는 시인의 화법은 켤레가 되는 것에 비해, 켤레가 되지 못하는 것을 꽃잎(한 몸에 붙은 척 따로따로 입술을 내밀고),(피보나치 수로 무한 생겨난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끝끝내 젓가락에 대한 경우를 놓지 않는다
----------------------------------------------------------------------------
봄
―응시의 가면
최형일
봄은 메두사의 가면이다
한 톨 씨앗이 우주를 들어
나와 무수한 나를 벗는다
봄은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다
길은 가면 뒤를 따르는 것으로
맺히는 것과 흘러내리는 것으로
둥글어진 것과 찌그러진 것으로
죽음과 소멸이 그리는 가면이다
죽음이 한 송이 꽃으로 핀 것처럼
보는 것이 보임으로
보임이 보는 것으로
풍경이 풍경으로 무수한 내가 나로 났다
▶약력:구례에서 태어나 충남에서 자라고 창원에 살고 있음 ‘90 『시와 의식』으로 등단. 시집 『밤비가 파두에 젖는다』(파란) 外 2권. 논문 「백석의 시에 나타난 기억술과 반복 기법 연구」가 있음.
▶해설: 시인은 시작 노트에서 메두사는 봄을 돌로 만드는 존재이자, 공포라고 밝힌다. 아니 응시의 비가역성을 의미한다고 밝힌다. 이번 봄도 그럴까. 봄은 생명을 ‘풀어놓는’ 계절이자 존재를 피어나게 하는 언어일지 모른다고 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이때 기표는 때론 주체를 생산하지만, 동시에 주체를 소외시킨다고 쓴다. 나는 봄 앞에 멈춰 선다고 쓴다. 탄생으로 규정화되고 밀려난 존재를 본다고 쓴다. 탄생은 언제나 소멸의 그림자를 동반한다고 쓴다. 봄은 보임 속에서 또 다른 나로 벗겨진다고도 쓴다. 이렇듯 자신의 시에 배경이 되는 여러 경우를 응시의 가면으로 만들어 쓰면 “풍경이 풍경으로 무수한 내가 나로 났다”는 어떤 기의의 결론이 제대로 읽힌다.-<박윤배 시인>
---------------------------------------------------------------------------
빛이 머무는 자리
유현민
노을은 바다의 어깨에 내려앉아
붉은 물빛으로 번져
세상을 적신다
자갈이 저무는 하루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바다는 그 속삭임 따라
파도의 옷자락을 끌어당긴다
멀어지는 빛을
다시 품는 반복의 순간
하루의 끝이 한 송이 연꽃으로 피어난다
시간의 흐름 속에
노을은 더욱 깊은 색으로 내려앉고
흘러가는 것들의 따뜻한 숨이 머문다
잠시 머문 자리에서
머물다 가는 빛의 이름으로
소중한 이름 하나 불러본다
▶약력: 충남 당진 출생. 중앙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1995년 《흙빛문학》 작품활동 시작. 2022년 한용운 신인문학상 수상. 2024년 《시현실》 신인상 수상 등단. 시집 『사랑하는 사람은 늙지 않습니다』, 『빛이 머무는 자리』 시인, 시낭송가 지도자
▶해설: 노을로 저무는 바닷가에서 시인은 오래 머물렀던 듯하다. 오래 바다와 노을과 인생을 번갈아 탐닉한 결과물이 이 시인 것으로 추측된다. 빛이 머무는 자리라는 제목의 그곳도 저녁의 해변인 것이며, 바다의 어깨에 내려앉는 노을의 묘사로 보아 고단한 바다를 달래어주는 노을로 보인다. 시인의 심정이 그렇다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세상을 적시기까지 하니, 참 따듯한 노을의 마음이 읽힌다. 이때 조잘거리며 들려주는 이야기는 자갈들의 몫이다. 바다는 파도의 옷자락을 끌어당기는 행위를 통해서 편안함 잠을 유도해 내고 있고, 어둠이 깊어지면서 피우는 연꽃은 결국 빛이 모여 이룬 숭고한 결정체인 것이다. “잠시 머문 자리에서/머물다 가는 빛의 이름으로/소중한 이름 하나 불러본다” 이때 흘러가는 것들의 따듯한 숨소리를 들으면서 시인의 저녁 바다는 빛의 소명이 아니라 응집으로 이루는 꽃인 것이다. -<박윤배 시인>
----------------------------------------------------------------------------
걸어서 티베트 속으로
하승윤
티베트 라싸 포탈라궁을 향해
성지순례 가는 저 오체투지
온몸이 노천염전이다
온몸 던진 그의 서원들이
밤이면 자락 논 같은 염전에
별똥별 되어 떨어진다
어느 집엔가 야크가 싼 똥도
여기선 자연 건조되어
전생처럼 붉은 눈을 밝힌다
설산은 달라이 라마의 고요한 눈빛처럼
한달음에 저 협곡을
찰나에서 영원으로 홀연히 떠나간다
어떤 질문처럼 복숭아꽃이 피고
천국의 입술을 훔친
그는 맨발로 탁발의 길을 떠난다
▶약력: 서울 출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문학박사). 2010년 계간 『문학·선』 시 부문 등단. 첫 시집 『비 내리는 버드나무』 가 있음.
▶해설: 티베트 속으로 걸어서 가는, 티베트 라싸 포탈라궁을 향해 가는, 그 길에는 오체투지가 있다. 온몸이 노천염전이다. 온몸 던진 그의 서원들이 밤이면 자락 논 같은 염전에 별똥별 되어 떨어진다. 여기까지는 성지로 가는 길의 모습이다. 다시 길에서 집으로 옮겨지면서 야크가 등장하고 야크 똥이 연료가 되는가 하면 “전생처럼 붉은 눈을 밝힌다”에서 드디어 현생이 아닌 전생의 길까지 후생으로 까지, 길을 빛으로 밝히는 고행을 위해 설산은 달라이 라마의 고요한 눈빛으로까지 영역 확장 시키는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는 점층법으로 끌고 가다가 결국 마지막 연에서 “어떤 질문처럼 복숭아꽃이 피고/천국의 입술을 훔친/그는 맨발로 탁발의 길을 떠난다”라는 화두의 답을 깨달았다는 듯이 얻어내고 있다 -<박윤배 시인>
--------------------------------------------------------------------------------
찬밥
이유정
찬밥 한 덩이 옆으로
종종걸음치던 하루가 저문다
너의 체온을 덮어주며
나는 점점 식어가고
빈 그릇을 채우려다
내가 더 텅 비어 있음을 알았다
그러다 느낀다
내가 건넨 온기가
내 안을 데우고 있다는 걸
이제야 안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내가 내 등을 토닥이며
살아내는 하루라는 걸
▶약력: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산업예술대학원 석사. 2006년 『아동문학세상』신인상으로 동시 등단. 2017년『미네르바』신인상으로 시 등단. 시집 『사랑은 아라베스크 무늬로 일렁인다 』.『너머의 시간이 있음. 동시집『첫눈에 반했어요』,『사라진 물고기』,『내 마음속 꽃과 나무』.제4회 전영택문학상, 제8회 전국계간문예지작품상 수상, 제3회 아름다운글문학상. 현재 『미네르바』편집 기획실장 및 문학회 회장.
▶해설: 따뜻한 밥이 온전히 식으면 그게 찬밥이다. 또한 비유적으로는 대접을 받지 못하는 상태를 신세에 비유할 때도 찬밥이라 부른다. 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는 밥을 두고 여러 방면에서 쓴 시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시는 밥이 주제이긴 하지만 관계의 밥 즉 너와 나라는 관계에서 “너의 체온을 덮어주며/나는 점점 식어가고”에서 “내가 건넨 온기가/내 안을 데우고 있다는 걸”로 보아 너와 나는 어쩌면 한 몸 안의 양분된 자기 자신임을 알 수 있는데 결국엔 이제야 안다는 시인에 말을 빌리면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내가 내 등을 토닥이며/살아내는 하루라는 걸”이라고 시는 강조하고 있다. 밥은 너의 체온을 덮어주며 식어가서 찬밥이 되는 것이고 인생도 별반 찬밥이 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어떤 암시를 찬밥의 입장에서 들려주고 있다.-<박윤배 시인>
------------------------------------------------------------------
간월도
이정옥
그는 물수제비를 잘 뜬다고 하였다
간월도에서 걸어 나오며
그에게 물수제비 한 그릇 먹고 싶다고 말할 걸
아직도 입덧처럼 허하다
목울대에서 머뭇거리던 말말말
한 삽 그 섬에 심어 놓는다
얼마만큼을 배워야 모국어를 반짝이게 빚을까
간월도에서 물수제비 한 그릇 탁발한다
바다에 뜬 간월도
한 대접 후루루 마신다
▶약력: 충남 서산 출생. 2020년 『애지』 등단. 시집 『간월도』 제11회 애지문학작품상 수상
▶해설: 물 위에 납작한 돌멩이를 던져 물수제비를 뜨는 것과, 끓는 물에 떼어 넣는 음식으로써의 수제비 어감을 절묘하게 나란히 한 편 시안에 가져다 놓고 있다. 뜨는 것에서, 후루룩 먹기까지를 간월도 배경에 그려놓고 있다. 그 라는 지시대명사에 해당하는 그는 남자로 물(여성)을 잘 아는 팔매질에 능한 남자다. 아마도 그는 간월도에 살거나 함께 간월도에 든 그다. 그런 그에게 물수제비 한 그릇 먹고 싶다고 고백하지 못한 시인은 입덧처럼 허하다? 입덧은 묘한 뉘앙스를 풍기면서 엉뚱한 상상을 하게까지 한다. 그래서 머뭇거리던 말 한 삽 그 섬에 심어 놓는 것인데, 한 대접의 바다에 떠 있는 섬 하나 그게 간월도이자 후루룩 마시면 딸려 와 목구멍으로 넘어갈 수제비 그게 섬? 이런 말장난 또한 가능한 게 모국어의 맛? 무얼 탁발할 게 없어 한 그릇 물수제비라니! 나도 물수제비 한 그릇 해볼거나? 아무튼 웃게 하는 시다. -<박윤배 시인>
--------------------------------------------------------------
알래스카
김인옥
개 썰매장 가는 길
얼어붙은 구름장 하얗게
귀밑 터럭까지 내려앉아
실실 풀리는 눈 스칠 때마다
은근한
겨울 쌓인 어깨
팔뚝으로 구르는 눈 입술에
불그레한 뺨
숨어
날갯죽지 터는
낮달 내려앉은 자작나무
새의 눈동자가 주시하는
흰 뼈
눈을 반쯤 감다 몸을 부르르 잽싸게 날아가
알래스카 맬러뮤트가 가파른 길 달릴 때마다
점점 멀어지는
한나절 해어스름
개가 끄는 페어뱅크스의 하루
헐리다 만
동冬
동動
▶약력:2017년 문학나무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햇간장 달이는 시간』 『힐 엔드』가 이 있다. 재외동포문학상, 시드니문학상을 수상했다.
▶해설: 알래스카가 품고 있는 여러 풍광 중에 동冬과 동動의 실체들을 체험과 함께 풀어내면서 직관적인 사유를 끌어내고 있는 시로 읽힌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알래스카를 동적으로 구체화하면서, 개 썰매장 가는 길-낮달 내려앉은 자작나무-페어뱅크스의 하루로 이어지며 겹쳐 오버 랩 되는 장면들을 보여주는가 하면 얼어붙은 구름장을 귀밑 터럭으로, 몸뚱이가 흰 자작나무를 새의 눈동자가 주시하는 흰 뼈로 서로 깊은 연관성을 찾아가면서 “겨울 쌓인 어깨/팔뚝으로 구르는 눈 입술에/불그레한 뺨/숨어/날갯죽지 터는” 자신 모습을 맬러뮤트라는 개가 끄는 썰매 위에 올려놓고 있다. 결국 자신은 낮달 내려앉은 자작나무와도 다르지 않은 채 하루는 싱싱하게 살아나고 있어, 나름 따뜻한 알래스카를 심심하지 않게 그려놓고 있다-<박윤배 시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