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홉번 과거시험에 모두 장원급제한
한국의 천재 이율곡
한국의 역사상 현인의 경지에 근접한 인물을 꼽으라면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율곡 이이 선생을 꼽는데
누구도 주저하지는 않을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율곡 선생은 9번 과거시험에
모두 장원급제 한 인물이다.
우리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며 또한 예언자적
능력도 뛰어나 임진왜란을 미리 예견 하고
10만 양병설을 주장했으며
정치, 경제, 국방 등모든 분야에
식견이 탁월한 정치가요, 사상가이며,
교육학자였고, 철학자였다.
그의 가문은
또 유명한 신사임당을 어머니로 둔 뿌리깊은
천재가문의 집안이었으며
한국판 제갈공명, 한국정신사의큰 산맥,
성리학의 대가, 등
여러 가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천재는 단명이라고 했던가
그는 타고난건강이 좋지 않아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감했다
◆ 7개 국어에 능통했던 신숙주
보통 4-5개의 국어에 능통한 사람을 보고도
천재라고 극찬을 한다.
그런데 한사람이 7개국를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바로 조선조에 영의정을 지낸 범옹 신숙주가
주인공이다.
정치적인 얘기는 접어 두고
학자적으로만 평가한다면
그는 뛰어난 언어학자였으며 한국최초의 일본관련책
해동제국기를 저술하는 등
어문학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그는 특히 설총의 이두문자는 물론
중국어, 몽고어, 여진어, 일본어, 등에 능통했으며
인도어, 아라비아어, 까지도 터득했다고 한다.
명문가답게, 일제하 독립투쟁의 주역들인
단재 신채호, 신규식 선생 등이
그의 후손들이다
◆ 조선왕조 실록에 3000번이상 등장하는 송시열
송시열 그는 선조임금부터 숙종 임금때까지의
문신 학자이다.
본관은 은진이며 호는 우암[尤庵]이다.
그의 전성기는 효종때이며 효종임금의
오른팔이 되어 정계의 일인자가 되었다.
그는 문장과 서체에도 뛰어났으며
정계의 명망 때문에 교우관계가 넓었고
방대한 저술도 남겼다.
그러나 우암은 독선적이고 강직한 성품 때문에
교우관계가 끝까지 화합하지 못한경우가 많았는데
이점이 당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는 성리학으로 철저히 무장된 학자였으며
흙탕물같은 정치판에는 끼어들지 말아야했다.
그는 83세로 제주도 유배에서
서울로 압송되어오던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죽을때까지 당쟁과 파벌의 투쟁을
벌인 전형적인 외골수 선비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이 3000번 이상 나오는
사람은 오직 송시열 뿐이며
또 전국 42개 서원에 배향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역사적 비중을 가늠할 수 있다.
김삿갓 임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