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노창선
매우 고맙습니다
당신의 환한 얼굴 보여주시니
잔잔한 시냇물도 보이고
새로 돈은 연둣빛 풀잎도
사월 바람에 우우 물가로 몰려나옵니다.
은은한 당신의 저고리 같은 마음으로
하얗게 물든 싸리꽃도 피겠습니다
달의 향내 흩뿌려진 꽃그늘 아래
아무래도 오늘밤
진달래술 한 잔마저 기울이면
보름달 눈부시도록 솟아나겠습니다
<시 읽기> 보름달/노창선
위 시는 노창선의 시집 『오월의 숲에 와서』 속에 들어 있는 작품입니다. 이전 시집 『난꽃 진 자리에』에서 태양은, 이 시집에 이르러 달은 은은한 얼굴을 바라보며 환한 평화와 부드러운 충만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태양의 시대를 거쳐, 달의 시대로 들어온 그의 이런 영혼이 보기 좋은 풍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태양의 뜨거움을 지향하는 성취의 시간도 힘이 넘쳐 보기 좋지만, 보름달의 부드럽고 고요한 평화를 꿈꾸는 성숙이 시간도 농익은 깊이를 지녀 매력적입니다. 태양과 달, 뜨거움과 평화로움, 높이와 깊이 활동성과 안정성은 언제나 서로 맞물리면서 생의 길을 열어가는 자매들입니다.
그렇더라도 한 달에 한 번씩 우리들이 사는 마을에 보름달이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것은 은총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무게 있는 생의 상징성을 갖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뜨는 이 보름달의 ‘온전성’을 사모하며 우리는 그 달의 남은 시간들을 살아갑니다. 아니, 그렇게 찾아오는 보름달의 ‘온전성’을 마음속에 내장시킨 까닭에 그 힘에 기대어 우리들의 피곤한 나날을 보냅니다. 이렇듯 보름달의 온전성은 생의 숭고한 도달 지점이자 생명력의 원천입니다.
보름달의 온전성 앞에서, 위 시의 시인은 감사하다고 최고의 찬사를 황홀한 표정으로 바치고 있습니다. 보름달이 온전하다는 것은 그것이 지닌 겸허, 성숙, 환함, 맑음, 포용, 부드러움, 무심, 평온, 담담함 등과 같은 속성 때문입니다. 이런 보름달 앞에서 누구나 숨어 있던 어린이의 천진성과 현자賢者의 초월성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보름달과 마주한 시간은 천진성이 춤추는 시간이고, 초월성이 향기처럼 퍼져 나가는 시간입니다. 그런 시간을 한 달에 한 번씩 갖는다는 것과, 그런 시간을 기다리고 사모하며 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큰 은총이며 생에 내재된 진실한 원리를 아는 일입니다.
보름달 앞에서 참을 수 없는 감사의 마음을 보낸 시인은 보름달인 당신의 환한 얼굴로 인하여 세상이 다시 태어난다고 환호합니다. 어두웠던 세상에, 보름달의 사심 없고 환하 무한의 얼굴과 그 온전성으로 인하여, “잔잔한 시냇물”도 보이고, 4월에 “새로 돋은 연둣빛 풀잎”도 보이며, 물기 오른 싸리꽃도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보름달 아래서 세상의 모든 것들이다. 어둠과 속된 것들을 툭툭 털어내고 그들의 아름답고 싱싱한 모습을 두려움 없이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아래서 인간인 우리들도 모처럼 상하지 않은 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위 시에서 시인은 조금 흥분했습니다. 세속의 탐욕과 제도와 관습에 의하여 억압되고 과열되고 왜곡되었던 세상의 모든 상한 얼굴들이, 보름달 아래서만은 싱싱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름달 아래서만은 그런 모습을 볼 수 있게 눈이 트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세속의 한가운데를 통과해야 하는 우리 주변에 있는 뭇 존재들의 얼굴이 참 많이 상해 있습니다. 전철 속에 살려 가는 얼굴들도, 길을 가로 지르는 인파들도, 빌당 속의 사람들도, 동물원 속의 동물들도, 겨우 존재하는 가로수들도 모두 얼굴이 심하게 상해 있습니다. 그런 상한 얼굴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안쓰럽습니다.
시인은 보름달 아래서 모든 존재들이 제 얼굴을 찾고, 그런 얼굴을 볼 수 있는 눈이 트이는 걸 생각하며 흥분 속에서 “진달래술 한 잔”을 기울입니다. 꽃술은 꽃이자 술입니다. 꽃의 환함과 술의 뜨거움을 함께 지닌 에로스의 몸입니다. 삶의 에너지인 에로스의 몸을 들이킨다는 것은 삶이 살아볼 만하게 되기를 소망하는 일이며,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시인에게 이런 일로 인하여 생의 전변이 일어납니다. 보름달을 바라보며 그 보름달에 찬사의 노래를 바친 시인은 이제 그 보름달과 같은 세계를 자기 자신이 직접 낳은 단계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름달을 바라보고 찬사를 바치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그 보름달 같은 세계를 본인이 직접 낳는 일이야말로 더욱더 행복한 일입니다. 시인은 그 자신은 물론 보름달 아래서 제 모습을 찾은 모든 존재들이 다 그 나름의 색과 빛과 소리에 알맞은 보름달과 같은 세계를 낳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하늘에 뜬 보름달과 그 아래서 모든 존재들이 낳은 보름달과 같은 세계가 한데 어울려 있는 풍경은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최고의 황홀한 풍경입니다.
우리는 언제쯤 상한 얼굴을 치유하고 보름달과 같은 모습을 갖출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언제쯤 일그러진 내면을 치유하고 보름달과 같은 세계를 낳을 수 있겠습니까? 보름달은 어김없이 한 달에 한 번씩 우리들이 사는 마을로 찾아와 우리들을 향하여 아직도 보름달을 보지 못했느냐고, 아직도 보름달과 같은 세계를 낳을 수가 없느냐고 조용히 묻고 있습니다. 보름달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한 달에 한 번씩 우리들이 사는 마을을 찾아올 것입니다. 아직도 보름달을 보지 못한 사람과 아직도 보름달과 같은 세계를 낳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가 알기 때문입니다.
노창선 시인이 위 시에서 말하는 4월의 보름달과 봄의 향연에 기대어 잠시 상한 얼굴과 마음을 펴고 환희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입니다.
―정효구, 『시 읽는 기쁨』, 작가정신,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