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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남해바다 관광&드라이브 원문보기 글쓴이: 77road
[특집] 산골 학교의 기적-김해 용산초등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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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전학 오는 '명문 학교' 랍니다
‘폐교 위기를 딛고 한국 농촌학교 모델을 제시한 산골 작은 학교’. ‘떠나던 학교서 돌아오는. 나아가 도심지서 유학 오는 산골학교’. ‘학생-교사-학부모-지역민 등 교육공동체가 함께 만든 선진국형 초등학교’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에 소재한 용산초등학교를 평가하는 말이다. 용산초등은 전교생 38명의 시골학교에서 4년만에 전교생 126명. 60여명의 도심지 전학 대기자를 둔 명문학교의 대명사가 됐다. 특히 왕따. 비만. 편식이 없고(3無) 다양한 방과후교육. 건강. 자연교실이 있는(3有). 즉 ‘3無3有 학교’라는 별칭을 들을 정도다. ‘어린이를 학교에 맞추는 대신 아이들에게 맞는 학교를 운영한다’는 영국 섬머힐학교의 교육이념을 닮은. 그래서 ‘한국의 미래학교 전형’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사진설명] 김해 상동면 용산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용산초등은 어떤 학교= 일제 강점기인 1938년 5월27일 여차간이학교로 인가. 10년만인 48년 3월25일 용산초등학교로 독립 개교했다. 지난해 2월까지 58회 졸업생을 냈지만. 졸업생 수는 1천574명(한 해 27명꼴)에 불과한 김해 유일의 벽지학교이다. 10여년 전부터 주민들의 도시전출과 아동수 감소 등으로 전교생 수가 급격하게 줄어 폐교대상이 되면서 교육청의 행·재정적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는 학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급기야 경남도교육청은 소규모 초등학교 통폐합사업에 포함. 1999년 9월1일부터 금동초등학교 용산분교장으로 격하를 추진하게 됐다. 다행히 동창회. 주민들의 노력으로 경남도내 통폐합 대상 115개교 중 그대로 존속되는 3개교에 포함됐지만. 교육환경은 나아지지 않고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2002년 9월 현재의 최용진 교장이 취임하면서 대변신을 했다.
처음 한달간은 ‘왜 하필 내가 이 학교에 발령받았나’라는 원망으로 마음 고생이 컸다는 최 교장. 하지만 ‘문을 닫는 교장이 될 수는 없지 않느냐’는 오기가 발동했다. 당시 학생 수는 38명. 이마저도 언제. 어느 학생이 전학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에 최 교장은 농촌학교를 되살리기 위해선 특색 있는 교육프로그램만이 유일한 방안이라는 결론을 얻고. 제일 먼저 케케묵은 서고의 책을 모두 버리고 새 책을 아이들에게 선물했다. 또 특기적성 프로그램 운영예산 마련을 위해 전문용역업체에 맡기던 공휴일. 평일 야간경비를 도맡았다. 부산 동래구 사직2동의 집과 학교간 거리는 승용차로 40분 정도. 출퇴근하기에 충분했지만. 교육경비를 마련코자 학교 내에 허름한 시설을 숙소로 꾸며 자취생활을 하며 숙직을 자청했다. 여기서 절감한 연간비용 1천400여만원(학교경비의 1/4 해당)을 우선 확보하고. 이어 서울 강원 부산 등 전국의 동창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지원을 요청했다. 1년마다 바뀌는 전임 교장들의 모습에서 불신을 살만도 했으나. 1982~1983년 2년간 이 학교에서 열정적인 교사생활을 했던 터라 동창회의 믿음으로 7천만원을 모금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 재원으로 당시 시골학교로선 획기적으로 영어 원어민교사를 초빙했다. 이를 계기로 총동창회(회장 박명규·57·13회·김해 항성공업사 대표)와 학교운영위원회(위원장 권혁춘·52·19회·농업)가 매년 5천만원의 지원금을 내놓아 전교생 1인 1PC 확보 및 컴퓨터교육. 태권도. 텃밭체험. 플루트. 국악교실 등 14가지 특색교육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중국어 원어민 강사는 인제대·가야대 등 바쁜 강의 일정에도 불구하고 자원봉사를 자청. 수업을 맡고 있으며 부산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동창회원은 주 2회 학교를 찾아 무료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와함께 신라대 교수 6명이 3년째 해오고 있는 경제. 미술. 환경. 천연염색. 창작미술. 컴퓨터응용 등 다양한 체험활동은 이 학교만의 자랑거리이다. 더욱이 오전 20분씩 농로 2~4㎞를 달리는 단축마라톤은 학부모들의 호응이 큰 특색교육. 전교생과 전 교사들이 함께 하는 단축마라톤은 처음에는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감기. 비만. 편식 등이 사라지면서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들이 적극 호응하고 있다. 용산초등은 학급당 학생수가 20명 안팎이다 보니 전 교과 과정을 토론식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교사와 학생. 동급생들과의 친밀감이 더해져 ‘왕따’라곤 찾아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학교 뒤 금동산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였다. 학교림 3천여평 중 1천여평의 숲속에 자연체험학습장을 조성했다. 단위학교로선 전국 유일의 시설. 이곳에는 그룹별 학습과 독서를 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 심신건강을 다질 수 있는 11가지의 체육시설이 있다. 또 1천만원을 들여 정자와 ‘다시골 동산’ 맞은편에 연못도 추가로 만들 계획이다. 이같은 차별화된 특색교육에 대해 입소문이 나면서 거꾸로 20~30㎞ 떨어진 김해시내 학생들은 물론 창원. 마산. 부산 등지서 전학오는 기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학교로 전학하기는 쉽지 않다. 여차리는 김해서는 유일하게 공장이나 축사가 없는 전원주택단지이다. 그러다 보니 주택용지가 워낙 비싸 집짓기가 쉽지 않고. 농촌가옥 특성상 전셋집을 구하지도 못한다. 그렇다보니 김해시내에 집을 구해놓고 20~30분 정도 통학하는 위장전입자가 많은 실정이다. 현재 학구내 학생은 30명 안팎. 전교생 3/4이상이 학구외 지역에서 통학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위해 29인승. 25인승 등 통학버스 4대를 운행하고 있다. 엄격히 따지면 학구제를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교육청으로부터 버스구입비와 유류비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만약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교장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라는 각오로 통학버스를 운행하고 있으니 매일 2시간 동안 버스 운행시간에는 가슴을 졸인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 교장은 ‘개방형 자율학교’를 누구보다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용산초등 미래는 자율학교= 교육 열정과 학교경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면 자격과 상관없이 누구나 교장이 될 수 있고. 교장과 뜻을 함께 하는 교직원을 초빙해 학교의 형편에 가장 적합하고. 수요자가 요구하는 독자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자율학교. 최 교장은 이러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수요자 중심. 다양한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할 뿐 아니라. 존폐의 기로에 선 많은 농어촌 학교에 새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올해 초 김해시교육청에 자유학구 지정 건의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건의서는 반려됐다. 하지만 여기에 굴하지 않고 교육부에 전화를 걸어 “암암리에 불법을 저지르게 하는 현행 지역중심의 학구제를 선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자유학구로 지정해 용산초등을 경남교육의 특성화 사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합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따졌다. 또 교육부장관 면담도 계획하고 있다. 최 교장은 “우리나라도 이젠 선진국형 교육정책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될 때 경영부실과 학교 프로그램이 좋지 않은 학교는 도태되고 좋은 프로그램이 있는 학교에는 학생이 몰려 교육의 질이 좋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불신이 깊고 공교육의 비효율성에 대한 비판을 받고 있는 한국 교육현실. 비록 작고 외진 곳에 있지만.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추구하는 용산초등에서 공교육 정상화의 해법을 찾아볼 수 있다. 정오복기자 obokj@knnews.co.kr ★최용진 교장은… 1970년 2월 진주교육대학을 졸업. 승진가산점제가 없던 시절 졸업생 중 유일하게 도서근무를 희망했다. 통영 욕지도 원량초등. 지도초등. 통영 초도분교장 등 도서벽지만 9년간 근무하면서 학습부진아 지도와 특기·적성교육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84년 국민교육헌장유공교원 표창. 1991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2002년 한국교총 교육공로 표창. 2004년 김해시민이 수여하는 모범스승상. 2006년 제15회 SBS교육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2002년 9월 용산초등에 부임 이후 4년간의 근무를 마친 지난해 8월. 학부모. 동창회. 주민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도내 초등학교에선 유일하게 그해 9월 초빙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특히 최 교장은 마라톤맨으로 유명하다. 2004년 4월 미국 보스턴마라톤대회 완주를 비롯 일본 긴타이마라톤. 요미우리마라톤대회. 국내의 조선·중앙·동아일보마라톤대회 등 모두 22회 출전. 풀코스 완주 16번의 소유자다. 하지만 최근 5년간의 자취생활 여파로 62~63㎏이던 몸무게가 56~57㎏으로 줄어들면서 이젠 마라톤대회 참가를 미루고 있다고 한다. 5남매 중 장남인 최 교장은 “‘청상’ 때 아버지를 여의신 어머니(82)를 계속 모셔왔는데. 용산초등에 온 이후 야간경비를 도맡아 하다 보니 일요일 잠깐 어머니를 뵙고 오는게 전부다”며 “‘너도 할 만큼 안 했나? 이젠 아침. 저녁밥은 같이 묵자’라는 어머니의 소박한 소망조차 못 들어 드리니 내 죄가 크지요”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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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7-01-30 오전 9:44: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