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영화는 맨 인 블랙2. 이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는 쇤베르크의 현악곡 ‘정야’가 어두움 속에 가득 찼었다. 영화에 따라 조명 수시로 바뀜. 관객석 핀 조명. 카메라 앵글 근접 촬영, N에게로 줌인. 잡다한 영화 속 장식음들, 맨 인 블랙의 개 모습을 한 외계인의 목소리.)
젊고 활달하고 날쌘 N은 광화문에서 두 블록 효자동 쪽으로 올라간 언저리에 한옥 집에 살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이 동네는 다른 동네와 달리 징크 옥사이드 냄새로 특징지어지는데, 범우주지리연합회 목록에는 이 냄새가 우주탐색에 긴하게 쓰여질 촉매제 역할을 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이 동네에서는 라벨의 볼레로에서 느껴지는 반복적이고 지루한 비트가 울리고 있는데 이도 이 동네를 다른 곳과 비교해서 우주적인 트랜더로 만들어 주는 속성이었다. 그래서 적외선과 자외선을 장착한 천체망원경으로 보면, 음파굴절판을 이용한 음파측정기를 동원하면 어떤 곳 보다 이 지역은 쉽게 포착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 이 동네를 우주적으로 특징짓는 점이 있었으니 바로 N자신이었다. 그것은 N의 피아노연주였다. 그가 그의 한옥 사랑채에서 초여름의 천리향 냄새를 맡으며 연주하는 프로코피에프는 어떤 우주공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대단한 음색을 터뜨렸다. 그것의 음색은 적당히 교만했고 깊게 우러나오는 불그레한 마호가니 색으로 치장됐으며, 사방을 찌르는 예지적인 날카로움이 가득했다. 이를테면, 그가 연주하는 동안은 은하계에서 오른 쪽으로 두 블록 떨어진 ‘네오’행성의 정치가들은 모두 그의 연주에 주목하곤 했다. 수 광년 전의 그 행성의 역사를 낱낱이 반복하는 음가를 그가 연주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음률로서가 아니고 소리로서 인정되는 신호로만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시대는 음악을 포함한 모든 예술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라는 악기도 이 시대에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가 소유한 유일한 피아노는 수억 광년의 세월동안 완전히 폐쇄되었던 창고에서 옮겨온 것으로 발견당시 알 수 없었던 종이라 분류되었었다. 같이 발견된 약간의 악보들 중에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소품들도 들어 있었다. 물론 작은 개천이라는 원시 뜻을 지닌 바흐의 작품도 다량 발견됐었다.
N의 직업은 망가진 치과의치를 수리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수입이 부족했던 바 그는 피드백 우주왕복선 내의 전선을 갈아 끼우고 청소하는 일을 분초제로 계약해서 과외로 돈을 벌고 있다.
사실, N의 원래 직업은 아까도 묘사했듯이 피아니스트였다. 불행히도 우주공화국 내의 모든 예술행위가 소멸되는 경우를 당해 그의 직업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화성과 화음, 강약을 동반한 비트, 리듬의 감정행위 등 음률에 관계된 음악적 작업은 멸종 된지 오래였다. 이제는 가벼운 예술적 행위로서 그리기와 인형을 만드는 종이 접기 행위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서 화려한 명성을 지녔던 범우주공화국립음악원은 문을 닫고 말았다. 음악원의 원장 격인 음악군주는 자결했다. 그는 오랜 세월동안 연구하여 우주의 질서를 음악으로 구성해내는 거듭제곱십이음기법을 창시해 냈다. 그의 거듭제곱십이음기법은 이전의 통일장우주유물론을 완전히 뒤엎는 것으로서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예전 시대인 음악선지자 바흐의 음악에게까지 연결되는 광범위한 체계였다.
음악군주의 수석사제였던 피아니스트 N은 기억처리터미널의 과정을 거쳐 개조되었다. 그래서 모든 음악적 재능을 망각하는 상황에 처했었다. N에게서 음악적 재능이 사라져 버린 것은 다른 이에게서와 달리 그의 좌우 뇌의 팔 할의 프로세스가 정지된 것 같은 경우로 이제 그는 완전히 폐인이나 마찬가지였다.
폐인이 되었을 때, 방랑하다가 우연히 책행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가 이 곳에 다다를 수 있는 확률은 아마도 전 우주가 망했다가 다시 우연히 지금 같은 상태로 진화하는 경우의 확률과 비슷한 것으로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었다. N은 그곳에서 다시 진리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다. 음악과 문학 등 예술의 세계가 찬란하게 그의 심장 속으로 부대껴왔다. 그의 망실된 기억이 다시 살아났다.
그의 손가락은 다시 날렵하게 스케일을 그려낼 수 있게됐다. 아르페지오와 겹떨림음 등을 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재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 재생된 기억을 현실에 옮기지 못하는 배반적인 뇌기능 때문에 거의 정신병자 취급까지 받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모든 것을 접어두고 다시 방랑의 길에 올랐다. 아무 목적 없이 출발한 걸음이었지만, 그가 결국 선택한 곳은 지구라는 조그만 태양계의 작은 위성이었다. 이 위성은 수 억 광년 전 원시 제의가 가득했던 범 우주적 정신의 고향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주제국의 법은 이 행성을 쓰레기로 취급했다.
다시 오랜 세월이 흘렀다. 음악과 예술이 없는 우주의 세월 속에 오로지 각종 행성들의 움직임과 그들의 운행의 음악적 소리만이 우주를 가득 채웠다.(스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