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엔
최루탄으로 얼룩지던, 1980년대 종로 관철동.
관철동 3.1 빌딩 뒤 한국기원 5층 전국바둑대
회장에는 내로라하는 각지의 바둑 고수들이 속
속 모여들고 있었다.
지금이야,
전국 바둑대회라 해도 70명 안팎의 선수들이 참
가하지만, 당시에는 보통 200~300명이 시끌벅
적하던 시절이었다.
4명이 한조가 되어 예선을 치루는데(지금은 거
의 스위스 리그) 한국기원 대회장이 좁아 근처기원
에까지 배정이 되어 시합을 하던 낭만이 주마등
처럼 스쳐간다.
그 어수선한 한국기원 관철동 시절에 만난 사람
이, 양덕주 사범이다.
강산이 3번하고도 반이나 흐르는 동안 여태껏
바둑현장에서 고락을 함께 하고 있으니 참으로
모질고도 질긴 인연이라 하겠다.
그 양덕주 사범하고,
지난달 ‘바둑과 사람’ 회관에서 열린 [盤上遊戱
반상유희] 페어바둑대회(합 125살 이상)에 처음으
로 짝이 되어 참가했다.
양덕주 사범과 작전타임 중
2승2패의 성적으로 8강이 확정된 후 상황판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거기에, 이 대회를 후원해준
분의 사진과 성함이 적혀 있었다.
“양사범, 이 상금 보태 조그만 거 뭐 하나 해볼까?”
“그럼 좋지요”
그렇게 꺼낸 말이 씨가 되어, 그제 동남기원에서
‘唯一(필자의 아호)盃 바둑대회’가 조촐하게치러졌다.
양덕주 사범이 운영하는 동남기원에는 ‘동남기우회
(회장. 손양호)가 결성되어 있다.
작년 5월부터 ‘동남리그’가 매주 토요일 펼쳐지고
있는데 한 달반 동안의 성적으로 우승~10위까지 상
금이 주어진다.
현재 19명의 회원 속에 손자도 끼어 열심히 트레
이닝 하고 있는 중인데, 시작할 때부터 참여하고 있
으니 꼭 1년이 된다.
그동안 리그전을 통해 많은 도움을 준 사범님들
에게 조금마하나 고마움을 전하고자 마련된 대회가
이 ‘唯一盃 바둑대회’다.
☻일시 : 5월 1일(日) 오후 1시
☺장소 : 동남기원(개봉남부역에서 7분거리)
☻자격 : 동남리그 회원
☺경기 : 갑조(8명), 을조(8명) 스위스 리그 3라운드
☻시간 : 20분 30초 3개
☺경기위원장 : 양덕주 원장 진행
지각 회원 한명도 없이 입장하는 순서대로 대진표 추첨이 이뤄
졌다는 것은 참여하고자하는 그 열기가 대단하다는 증표.
오후 1시가 되자,
동남기우회 손양호 회장님의 인사 말씀에 이어 필자의 덕담으로
시합은 시작됐다.
을조에 참가 중인 손자 뒤로 갑조의 문영출 사범, 이철주 사범
장내는 금새 쥐 죽은 듯이 고요해지고 시선은 바둑판에 꽂힌다.
을조 대회
마치 침묵이 선생다운 선생의 가장 좋은 것이라도 됐냥.
쩡쩡 죽비소리가 들려야 하거늘.
대국하다가 목이 타면 음료와 커피를 마시면 처방은 의외로 간단
해진다.
어찌 저 싸움에 휘둘려 욱일승천하는 기세가 꺾였는가.
바닥까지 떨어져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첫 판을 졌더라도 다음 판을 기대하는 이유는 희망이 있기 때문.
을조 결승전 진재균 對 황선규
매번 남의 집 바둑대회에만 나가 상금을 타오던 양덕주 사범이,
오늘은 진행을 하느라 정신이 없구나.
암,
난생 처음이라도 진행을 해봐야 주최자들의 수고로움을 몸소 깨
닫지.
이제 마지막 ‘용으로 올라가는’ 등용문登龍門이다.
甲조 결승 신영복 對 이철주
乙조 결승 진재균 對 황선규
갑조 결승전 이철주 對 신영복(정선)
登龍門등용문은 황하강 상류에 있는 협곡으로서 물길이 매우 빠
르고 세차 웬만한 물고기는 거슬러 오르지 못한다.
江과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이 무척 많이 모이는 까닭은, 여기에
오르면 龍이 되기 때문이다.
복기에 여념이 없는 신영복사범, 최진복 사범, 이철주 사범. 표세웅 사범.
▪시상 甲조 乙조
우승 신영복 우승 진재균
준우승 이철주 준우승 황선규
3위 조동일 3위 정규영
4위 최진복 4위 황운기
5위 문영출 5위 박선우
▫행운상 최영주 (수를 읽다 上.下 36,000원)
박선우 (50,000원)
손양호 동남기우회 회장. (갑조) 신영복 우승. 이철주 준우승.
유일(시상, 필자 ) . 조동일 3위. 후원한 박병규 9단, 행운상에 당첨된 손자.
시상(필자), (을조)정규영 3위, 황선규 준우승, 진재균 우승. 손양호 기우회장.
상금이 크진 않지만 재밌게 참여해준 사범님들
에게 감사를 드린다.
미약하지만 처음 걸음을 옮기는 일은 대단히 중
요하기 때문이다.
대회가 끝나고 회식 자리를 마련해 준 손양호
기우회장님을 비롯 꽃을 닮은 회원님들, 맛있게
잘 먹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