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년 3월 28일 일요일.
오늘저녁 봉화산에 불이 났다. 밤 8시 20분경 슈퍼에 갔다 온 아내가 봉천사 뒷산에 불이 났다며 호들갑을 떤다. 슬리퍼를 끌고 덕천빌라 앞에까지 와서 확인을 했다. 산불은 봉천사 뒤편을 일직선을 그리며 타올라가고 있다. 석전동사무소에서는 산불진화작업에 참여해 달라는 방송을 하고 있다. 불을 끄기 위해 자가용을 몰고 온 사람들도 산을 향한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작업복, 모자, 장갑, 등산화 등 무장을 하고 달려갔다. 덕천빌라 앞 비탈길을 오를 때는 KBS방송국차가 올라오고 있다. 숨을 헐떡이며 봉천사에 도착했을 때에는 불길이 거의 진화되었다. 끄을림 냄새가 확 풍겨온다. 냄새가 독하다.
봉천사 마당에는 화재를 지휘하던 사람이 무전기를 들고 정리를 지휘하고 있다. 몇몇 전경이 서성이고 소방관들은 소방호수를 거둬들인다. 화재진압에 나섰던 사람들이 상당수 내려와 있고 계속 내려온다. 남자보다 여자가 많다. 회성동과 석전동 주민들이다. 서로 악수를 하며 수고했다는 말로 격려의 인사를 나눈다. 거의가 서로 아는 사이다. 그러면서 불을 끄던 상황을 쏟아낸다. 나는 진화작업은 못해보고 뒷이야기나 듣는 입장이 되었다.
“소방관들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었습니다. 역시 전문가들이라 화재진압이 뛰어나더군요.”
또 한 사람은
“마음은 급하게 달려왔으나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했습니다. 불을 끄는 일도 생각보다 어렵더군요.”
“이 친구 자네, 사명감이 보통이 아니더군. 역시 공무원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이 친구는 회성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사람인데, 오늘 부산에 갔다 오면서 산불을 보고는 곳곳에 전화를 걸어 불을 끄러 가라고 독촉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길로 달려와서 진압에 나섰지요.”
“형님도 참, 그걸 또 자랑이라고 얘기 합니까? 우리가 매일 올라오는 산인데 우리가 안 끄면 누가 끄겠습니까? 우리가 나서야지요.”
산불은 누가 버린 담뱃불이 번져 일어났다고 했다. 산을 내려오던 사람들이 덤벼들어 불을 끄려했으나 도저히 잡을 길이 없어 누가 소방서에 전화를 걸었다 한다. 소방서에는 신고전화가 빗발쳤다는 것이다. 아랫마을 주민들도 산불을 보고 너도나도 신고를 했단다. 특히 아랫마을 주민들은 소방서에만 신고전화를 한 게 아니라 이웃에 사는 사람들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진화작업에 적극참여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진화 작업을 하면서도 휴대폰으로 계속 아는 사람에게 진화작업에 참여하라 독려했다는 것이다.
어떤 주부는 드링크를 몇 박스를 가져와 수고하셨다며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고 있다. 오늘 진화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시민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라 표창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마지막 진화작업을 했던 사람들이 새까매진 얼굴로 내려온다. 기동타격대원들도 내려온다. 오늘 진압에 참여한 기동타격대원은 60명이라 했다.
지휘자로 보이는 사람이, 인원을 더 동원할 수 있었지만 다행이 바람이 없어서 이 인원으로 충분할 것 같아 요청하지 않았다는 말을 한다. 요청한다 해도 일요일이라 길이 막혀 신속하게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군데군데 몇몇씩 모여 산불에 대한 대화에 열중일 때 한 할머니가 내려온다. 장갑도 안 낀 할머니 손은 새까맣다.
“할머니 장갑도 안 끼셨어요.”
걱정스러워 누가 나서며 인사를 건네자.
“아이고 장갑을 낄 새가 어디 있나. 산이 다 타는데. 불은 자꾸 번지고 마음은 급하고 어떻게 하나 손으로 흙을 퍼서 뿌리는데 흙이 어찌나 뜨겁던지 혼났어. 땀은 줄줄 흐르는데 수건이 있어야지. 산이 타면 우리 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제일 많이 입게 되지. 이게 다 우리 재산 아니여. 우리가 나서서 끄지 않으면 누가 끌 것이여.”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장한 일을 하셨다며 칭송한다. 그러면서 오늘 바람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바람이 있었다면 위험했을 것이라며, 이런 진화작업에는 최소한의 무장은 갖춰야 위험하지 않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할머니 나이는 70이 넘었다고 했다. 한밤중에 저렇게 연로하신 할머니도 몸을 던져 불을 껐던 것이다.
새까매진 얼굴로, 담뱃불을 던진 사람을 잡아야한다고 열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불조심에 대한 경각심을 돋우는 사람도 있다. 모두 이번 산불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산을 사랑하기 때문이리라.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싶었는지 진화를 지휘했던 소방관, 경찰, 시청에서 나온 공무원, 봉천사 스님이 나서서 주민들을 위해 또 서로를 향해 깍듯이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나는 내려오면서 시민정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의 산을 지키기 위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또 밤중에 위험을 무릎 쓰고 몸을 던지는 일이야말로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위대한시민정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첫댓글 불이 난 것을 뉴스를 통해 들었습니다 제가 자주 오르는 등산길인데 안타깝군요 그래도 불이 빨리 진화되어 다행입니다
나도 아직 화재현장을 가보지 못했는데, 2시간을 탔으니 많이 탔을게야. 바람이 없어 천만다행이었지. 그 놈의 담배가 죄다. 산에 갈 땐 담배를 가지고 다니면 안되는데 사람들이 참...
형님 요즘 민첩성이 20대 젋은이들 못지 않습니다 고생많았습니다
민첩성이라기 보다 시민의식라 해야겠지. 조금 늦어 직접 화재진압에 동참하지 못한게 미안하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