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에 두면 비말이 배출기류에 튕겨나가" 공기 배출구가 코·입보다 높은 위치에 오도록 해야 "에어컨·선풍기 사용할 때도 환기 자주 하는 게 바람직"
코로나 바이러스를 예방하기 위해 밀폐된 실내에서 공기청정기를 틀면 오히려 바이러스 확산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공기청정기가 실내에 떠있는 바이러스 입자를 정화하기보다 도리어 더 멀리 퍼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함승헌 교수팀은 이런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을 지난 16일 한국역학회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Epidemiology and Health) 최신호에 게재했다고 29일 밝혔다. 함 교수는 “여름철 밀폐된 실내에서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사용해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면서 “환기를 자주 하고 공기청정기와 에어컨 등을 코로나 예방 수칙에 따라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기청정기, 바닥에 두면 도리어 바이러스 퍼트려”
함 교수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공기청정기는 대부분 기계 아래쪽에서 실내 공기를 빨아들여 필터로 정화한 뒤 깨끗해진 공기를 위로 배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정화된 공기를 멀리 보내기 위해 흡입구보다 배출구 주변에 바람이 더 강하게 나온다.
연구팀은 “따라서 공기청정기가 사무실 책상 위가 아닌 바닥에 설치하면 배출구 주변으로 기침이나 비말이 떨어질 때 공기청정기로 흡입되기보다 상승 기류를 타고 사무실 전체에 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이 공기청정기 흡입구 상단을 기준으로 8㎝, 16㎝, 24㎝ 높이에서 인공적으로 비말을 발생시킨 뒤 공기청정기를 작동시켜 비말의 이동 방향을 관찰한 결과, 가습기 배출구와 가장 가까운 24㎝ 높이에서 생긴 비말은 흡입구가 아닌 배출구 쪽으로의 이동하는 양상이 가장 강하게 나타났다.
함 교수는 “공기청정기를 밀폐된 사무실 등에서 사용하려면 탁자나 책상 위에 설치해 흡입구가 최대한 코와 입에 가깝게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기청정기의 하단에 있는 흡입구는 호흡기와 최대한 가깝게 두고, 상단에 배출구는 호흡기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오도록 배치해야 비말이 배출기류를 타고 다른 곳에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기청정기는 미세먼지에 최적화…바이러스 정화 효과 검증 안 돼”
연구팀은 공기청정기의 필터가 바이러스를 정화하는 효과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공기청정기 대부분이 유해물질의 농도를 낮추는 희석환기 방식이고, 미세먼지를 정화하는 게 주 용도라 고위험 생물학적 요인인 바이러스를 제대로 정화하는지 아직 검증된 바가 없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런 분석을 토대로 콜센터 등 밀집된 환경에서는 공기청정기를 제대로 설치·이용하지 않으면 도리어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트릴 위험을 더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부터 전국 상시근로자 50인 미만인 중·소규모 콜센터업체 1100여곳을 대상으로 공기청정기 구매와 간이칸막이 설치 비용 등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한 환경개선에 드는 경비의 70%를 2000만원 한도로 지원하고 있다. 함 교수는 “정부가 코로나 예방 차원에서 공기청정기 등을 사업체 등에 보급할 경우 올바른 위치에 설치해 제대로 이용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름철 에어컨·선풍기 사용할 때에도 환기 자주 해야 함 교수는 “여름철 밀폐된 실내에서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틀어도 공기청정기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이 에어컨이나 선풍기 앞에서 대화를 하거나 기침·재채기를 할 경우 기류를 타고 바이러스가 실내에
빠르게 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름철에도 에어컨이나 선풍기, 공기청정기를 사용할 경우 환기를 자주해 비말을 제거하고, 에어컨 앞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기침·재채기를 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함 교수는 “공기청정기나 에어컨 등에 사용되는 정화 필터에 검증된 바이러스 정화 효과를 가진 필터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와 정부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