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글은
2013년 7월 5일 포스팅하였습니다.
지난 수요일....
제대를 한 믿음의 아들 선대 형제를 만났습니다.
"화이트 하우스 다운"이라는 영화를 감상하고
개정에서 오랫만에 전주육회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이어서 대구 백화점에 들러 쇼핑을 하면서
남방과 정장 바지를 구매하였습니다.
그리고 커피와 도너츠를 먹으면서
군 생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울서 마지막 휴가 때 만난 후
제대를 하고 대구에 오자마자 만나 정다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많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지난 날 함께 여행하였던 추억을 떠올렸는 데
느닷없이 내일 개인택시 하시는 아버님께서 쉬시는 날이라면서
멀리 드라이버 떠나자고 하였습니다.
다산교회 가는 날이라 망설였지만
오전에 잠시 인터넷과 영상관련 업무를 보고 오후 떠나자고 하였습니다.
다음 날 자가용 개인택시를 타고
땅 끝 마을까지 머나 먼 길을 드라이버하였습니다.
다산에서 출발하여 구마 고속도로와 남해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땅 끝 마을까지 순조로운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장마가 예고된 가운데 오후에 떠난 길이어서
불안한 출발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순천에서 벌교를 지나는 터널을 통과하는 산악 지점에서
그 동안 미끄러지듯 고속도로를 달렸던 것과는 달리
집중호우가 쏟아져 1미터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커먼 구름이 창문 옆을 지나는 신비스런 광경을 보면서 경이로운 마음으로 구름 속으로 달렸는데
얼마 못 가서 창문 바로 앞에서 번개가 치고 운무가 가득한 가운데
집중 호우가 쏟아져 거북이 운행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얼마동안 고전분투하다가 몇 개의 터널을 더 지나면서
집중호우 지역을 벗어나서 순조로운 운행으로 땅 끝 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땅 끝 마을 해남을 찾아서
제대한 기념으로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땅 끝 마을의 해변가를 거닐며 사진을 찍고
맛집을 찾아 삼치 백반으로 저녁을 먹고 어두운 밤길로 대구에 돌아 왔습니다.
이미 날이 어두운 가운데 땅 끝 마을 출발하여
대구로 돌아가는 길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거북이 운행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순천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대구에 도착할 때까지
쏟아지는 장대비로 악조건 가운데 최악의 거북이 운행을 하였습니다.
터널로 연결된 산악 지대를 지날 때면
호우의 강도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구름 한 가운데를 그냥 비바람 그 자체가 되어
숨죽이고 지나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단시간에 가장 멀리 드라이버하는 기록을 세우면서
고속도로에서 폭우와의 전쟁은 또 다른 야생의 삶이 되었습니다.
비 오는 날의 서정을 넘어서
비와의 전쟁을 치른 혹독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구름 한가운데서 폭우를 경험하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차창 바로 앞에서 번쩍이는 번개불은
비와의 전쟁을 치르는 가장 큰 위협이었습니다.
폭우와 운무, 그리고 번개는
거북이 운행을 하는 가운데서도 생명의 위협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믿음의 아들, 선대 형제에게서
운전하면서 힘들어 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운전을 즐기는 취향을 가졌지만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느껴지는 구름 속 폭우와의 전쟁은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는 운행이었습니다.
낮에도 1미터 앞이 보이지 않았는데
밤에는 더욱 칠흑같은 어둠이었습니다.
자동차의 불빛은 반딧불 정도여서
빨리 산악지대를 벗어나는 것만이 최선이었습니다.
그나마 터널을 만나면.....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장마가 예고된 가운데 땅 끝 마을 해남을 찾아서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구름 속 거북이 운행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땅 끝 마을 해남을 찾아서
진지한 삶을 폭우가 내리는 구름 속 드라이버로 함께 하였습니다.
지난 날 운무 가득한 운문령을 넘어 경주로 드라이버 하면서 가졌던 살가운 정서를
땅 끝 마을 해남을 오고가며 깊이 나누었습니다.
학군단 시절 겨울비 내리던 날......
우포늪을 찾아 마음의 공간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웠던 추억은
땅 끝 마을 해남까지 이어졌습니다.
어느 덧 콘크리트 벽장 안에서 나누는 비좁은 만남이 아니라
움직이고 달리면서 인생을 나누었던 지난 세월은 확실한 미래 비전을 열어가는
감동의 대서사시가 되었습니다.
이제 믿음의 아들 선대 형제는
믿음과 사랑으로 연합되어 여수룬 언약 문화 공동체의 영원한 전사로 굳건히 세워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