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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한 요건
(디모데전서 6:11~16)
너 하나님의 사람아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너 하나님의 사람아 얼마나 듣고 싶은 말입니까? 모세가 120년의 인생을 마무리 짓고 인생의 마침표를 찍던 날 하나님께서 모세의 인생 결산서에 이런 말을 써 주십니다. 모세 너는 나 여호와의 얼굴을 맞대고 평생을 산 사람이다.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평생을 살았던 모세가 그 인생의 마지막 호흡을 몰아쉬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합니다. 그때 일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함 이러하니라
사무엘을 가리켜 이스라엘의 국부, 이스라엘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로써 블레셋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하고 나라의 초석을 놓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사울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개하여 초대 임금을 세운 자가 사무엘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이새의 아들 다윗을 이스라엘 2대 임금으로 세운 사람도 사무엘입니다. 그런 사무엘을 성경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다.
혹독한 가뭄에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르밧이라는 동네로 보냅니다. 그 동네에는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 아들 하나를 데리고 혼자 사는 가난한 여인을 예비하셔서 도움을 받게 합니다. 엘리야가 그 여인의 집에 머무는 동안 여러 사건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여인의 아들이 죽는 절망적인 사건입니다. 이 문제 앞에서 엘리야는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 이때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엘리야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 여인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요, 당신의 입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나이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었던 모세가 들었던 말이고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스라엘의 국부인 사무엘이 들었던 말인데 오늘 읽은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향하여 편지를 쓰면서 디모데를 향하여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서 하나님 안에 머물기에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불리워지는 이름 너 하나님의 사람아,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르면서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데 믿음의 선한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서 멀리햐야 할 것과 가까이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영생을 취해야 하는데 영원한 생명을 취하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고 취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주님의 날,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성결한 신부로 주님 앞에 서야 하는데 성결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 거절해야 할 것과 추구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멀리하며 버려야 할 것은 다른 교훈을 멀리해야 합니다. 언쟁을 멀리해야 합니다. 시기와 분쟁이 여기서 납니다. 마음이 부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자곡하지 못한 채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가까이 하면서 취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의와 경건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과 사랑을 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인내와 온유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이렇게 6가지 덕목 중에 오늘은 세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람은 경건을 추구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를 읽다보면 자주 반복해서 강조하는 말씀이 경건하라는 권면입니다. 딤전4:7~8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6: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딤전6: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경건이란 말을 잘 깨닫게 해주는 것이 해바라기입니다. 해바라기의 얼굴이 왜 커다란지 아십니까? 해를 너무 좋아해서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커다란 얼굴을 하고 잇습니다. 해바라기의 목이 왜 질긴지 아십니까? 매일매일 해를 따라다니느라 목이 질겨진 것입니다. 해바라기는 새벽이 되면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나서 목을 길게 빼고는 동쪽 하늘을 바라봅니다. 해를 따라서 목을 돌려 동쪽에서 하늘 꼭대기로 하늘 꼭대기에서 서쪽 하늘로 갑니다. 저물어 가는 태양을 마지막까지 바라보느라 목을 길게 뺍니다. 그리고 밤이 되어 하늘을 별들이 수놓으면 해바라기는 아침에 떠오를 해를 기다리며 밤을 지새웁니다. 이렇게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다가 해를 닮아가듯이 주님을 바라보다가 주님을 닮는 것이 경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하나님의 형상를 닮은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서로 사랑하게 하셨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옳은 것을 기뻐하게 하셨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선한 것을 추구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사람에게 죄가 들어왔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니 거룩한 것이 사라지고 속된 것이 자리 잡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니 사랑이 사라지고 미움이 자리잡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니 의가 사라지고 불의를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니 생명의 빛이 거두어지고 죄와 죽음의 그늘에 앉게 됩니다. 이렇게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본을 보여주셨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길을 열어 놓으셨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된 모습이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러운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기 위해서 미리 정해 놓으셨고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기 위해서 때가 되매 부르셨고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기 위해 의롭다함을 얻게 하셨고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기 위해 마지막 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이렇게 의롭다하심을 얻은 성도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생활을 경건이라고 합니다.
경건의 연습은 하나님의 마씀을 마음으로 듣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된 것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경건의 연습은 늘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부부가 서로 함께 살다보면 식성도 닮아가고 말투도 닮아가고 풍기는 인상도 닮아가고 심지어 얼굴도 닮아갑니다. 기도를 통하여 주님과 깊은 교제를 하다보면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경건의 연습을 버리고 취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닮아가는데 방해되는 것은 버려야 합니다. 쓴 뿌리는 뽑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닮아가는데 유익이 되는 것은 취해야 합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해 가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은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아름다운 덕목입니다. 조금 참으면 되는데 참지 못해서 실패하고 조금만 더 인내하면 되는데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양의 오래 참음의 모본을 길가에 있는 질경이를 듭니다. 마소에 짓밟히고 사람에게 짓밟히면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질경이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너 질경이여! 네 속에 비장한 힘을 길러 네 위에 수레가 짓이기고 굴러도 너를 밟고 여왕님이 걸어도 네 위에 소들이 입김을 뿜어대도 그것을 너는 모두 참아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나라 안에 번지는 모든 독과 병과 싸워 이겨냈도다’
인내가 얼마나 아름다운 덕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이 추구해야 할 인내는 더 아름답고 더 복됩니다. 여기에서 인내는 힘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약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적인 소망이 있기 때문에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기 때문에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기 때문에 참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히12장에 보면 신앙생활을 마라톤 경기에 비유를 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마라톤 선수가 출발선에 서기 전에 하는 일이 있습니다. 달리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벗어버립니다. 출발선에 섰으면 목표를 바라보고 목표를 향하여 달려야 합니다. 이렇게 출발준비를 하고 목표를 향하여 첫발을 내어 딛었으면 인내로 달려야 합니다. 오래 참음으로 달려야 합니다.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참고 달려야 합니다. 땀이 흘러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야 합니다.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참고 달려야 합니다. 언덕이 나와도 포기하지 말고 달려야 합니다. 강이 나와도 포기하지 말고 달려야합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는데도 여러 장애물이 있습니다. 건너야 하고 올라야 하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이 장애물을 극복하는 힘이 바로 인내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그리스도의 충만한데 이르기까지 오래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의 맡겨 주신 일이 열매를 맺도록 오래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을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오래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오래 참고 인내하였습니다. 오래 참음으로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좋은 일꾼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람은 온유합니다. 온유란 힘없고 연약한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 아닙니다. 줏대 없이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 아닙니다. 온유란 야생동물을 잘 훈련시켜서 주인이 시키는대로 주인이 통제하는 대로 따르는 상태를 온유라고 합니다. 야생동물이 들판에 살 때는 제멋대로입니다. 뛰고 싶으면 뛰고 눕고 싶으면 눕습니다. 이쪽으로 가고 싶으면 가고 저쪽을 가고 싶으면 갑니다. 그러나 주인의 손에 잘 길들여지면 주인의 신호에 따라서 앉기도 하고 서기도 합니다. 주인의 말에 따라서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도가 가진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고 내 안에 계신 주님의 뜻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을 온유라고 합니다. 자기의 감정대로 폭발하지 않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나를 하나님의 일꾼 삼으신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온유라고 합니다. 육체의 욕망대로 행동하지 않고 내 인생길에 빛 되시고 등불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 온유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온유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모세를 가리켜 이 사람 모세는 땅 위에 모든 사람보다도 온유하다고 성경은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처음부터 온유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바로의 궁전에 있던 모세는 혈기왕성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민족인 히브리인과 애굽인이 싸우는 것을 보고는 애굽 사람을 쳐서 죽이고 모래밭에 묻어두는 혈기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미디안 광야에서 훈련되고 다듬어집니다. 하나님의 손길 아래서 훈련되고 다듬어집니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러자 그 형이 아론과 누이인 미리암이 비방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시는가? 우리와도 말씀하지 않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다 말인가? 비평을 하고 흠집을 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강림하십니다. 모세를 부르고 아론을 부르고 미리암을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선지자들에게 나의 뜻을 알릴 때는 꿈이나 이상으로 알지만 내종 모세에게는 얼굴을 대면하여 말한다. 그런데 너희가 내가 세운 종 모세를 대하여 비평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하나님이 떠나셨습니다. 하나님이 떠나시자 모세를 비방하던 미리암의 얼굴에 문둥병이 하얗게 번졌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형님과 누님이 비방하고 나설 때 너무 분해서 따지고 들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과 누나가 그 누구보다 나를 이해하고 내 편이 되어 주어야 할 사람이 그럴 수 있는가? 누님의 얼굴에 문둥병이 하얗게 번질 때 내 누이지만 잘 됐다. 나를 그렇데 비방하더니 내 속이 다 시원하구나. 어찌하여 내 권위에 도전한단 말인가?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 누님을 고쳐주세요. 누님을 용서해주세요. 이렇게 하는 무세를 두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그 온유함이 땅위에 사는 모든 사람보다 더 하였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ᄉᆞᆷ은 모든 사람을 대할 때 온유함으로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온유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더더욱 온유하신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주님의 온유하심을 배우고 닮아가서 주님의 겸손하심을 배우고 닮음으로 좋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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