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들어낸 제도가운데 그래도 가장 평등하다고 언급되는 것이 바로 법이다. 물론 법도 강자의 전리품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개체 자체가 불평등이라는 것을 대전제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그래도 법이라는 제도가 인간의 불평등을 그나마 해소하고 평등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한 흔적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다. 법이란 무엇인가. 법 法은 물 水변에 갈 去 그러니까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상식적이라는 것이다. 물처럼 자신의 아집을 배제한 물체가 세상에 없다. 바람과 물처럼 살고 싶다는 옛 선인들의 생각을 되돌아보면 바람과 물이라는 존재는 그냥 순리대로 흐르고 이동하는 무상무아의 경지라는 뜻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그런 경지에 조금이라도 접근하기 위해 법이라는 것을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복잡다단한 인생사에 숱한 갈등을 해결할 그런 도구로 법이라는 것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그 법에 의존하고 법에 따라 자신이 행한 잘못에 대한 벌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법을 무시하려는 작태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의 선도국이라고 하는 미국에서 이런 법을 무시하는 태도가 자행되니 국제적으로 우려적인 시각이 짙어지고 있다. 바로 미국 공화당의 내년 대선 주자로 유력시 되는 전 대통령인 트럼프 이야기이다. 트럼프는 퇴임이후 3차 기소가 이뤄졌다. 퇴임후에 그에대한 형사사법 절차는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기소는 그 중대성에서 앞서 있었던 2건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올해 들어 성인 영화 배우와의 관계에 대한 입막음 대가로 거액을 지급한 것과 관련돼 기소됐고 기밀문서 유출과 불법 보관 건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 하지만 이번 기소는 성격이 아주 다르다. 지난 대선 결과에 불복한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건과 관련해 대선 결과 뒤집기 모의와 선거 사기 유포 혐의에 대한 기소이기 때문에 앞선 두 건의 기소와는 무게감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안이 엄중한 것은 물론 역사적인 의미도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 그토록 애지중지하고 미국의 자랑으로 여기는 대선 승복 문화에 정면으로 어긋난 행위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선은 조용히 치뤄진 적이 거의 없었다. 선거 자체가 요란함을 띨 수밖에 없는 시스템인데다 미국의 대통령이 던지는 무게감때문에 민주당이나 공화당에서 정말 사활을 걸고 부딪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살벌한 경쟁구도속에서도 결과에 승복하는 문화를 지녀왔다. 패자가 승자에게 전화를 걸어 패배를 인정하고 상대의 승리를 축하해 주는 과정속에 미국의 민주주의는 그래도 존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달랐다. 대선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며 온갖 추태를 남발했다. 결국 그의 지지자들이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미국 의사당을 점거하는 전대미문의 악행을 저질렀다. 그 배후에 트럼프가 있다고 미국 검찰은 본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측은 이런 미국 공권력 그리고 미국의 법에 정면으로 저항하고 있다.아니 미국의 법체계를 비웃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인기와 지지가 높으니 현 바이든 정권에서 자신에 대해 말도 안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받아치고 있다. 트럼프의 이런 법을 무시하는 태도는 바로 미국 공화당 지지자들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조사에서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현 공화당 지지자들은 현 선거관리에 대한 불신이 심각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고 미국의 유력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 부정선거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지난 대선에서 현 대통령인 바이든이 부정하게 승리했다고 보는 공화당원이 70%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내년 대선이 공정하게 치러질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는 공화당원이 많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트럼프는 이런 공화당원들의 성향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이른바 트럼프교도들 같은 존재들에게 둘러쌓인 트럼프는 교주같은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게도 트럼프가 올 들어 3건의 기소에 처했지만 기소될 때마다 온라인 기부자들이 대폭 늘고 있다는 데서 트럼프교의 상황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콘크리트 지지가 따로 없다. 다이아몬드 지지같이 보인다.무슨 문맹률이 높고 무지한 후진국도 아니고 세계 최고의 나라라는 데서 이런 일이 행해지니 정말 보고도 못믿을 정도이다. 어떻게 법에 의해 기소가 됐지만 그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부인하고 법을 어긴 중대 사범인 트럼프에대해 더욱 짙은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가에 대해 미국내 뿐만아니라 미국 밖에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들이 속출하고 있다.
당연히 미국의 지식인들과 미국의 앞날을 우려하는 층은 이런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법을 무시하는 대선 후보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을때 어떻게 나라를 이끌 것인가에 대한 짙은 우려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법은 인간의 만든 그나마 평등한 제도가운데 으뜸이다. 그런 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독불장군처럼 살겠다는 사람이 미국의 대통령이자 세계 패권국가의 리더가 된다면 세계 질서도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독재자들은 거의 모두 법 위에 군림하려 하고 있다. 자신이 마치 법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초법적인 행태로 백성들과 국민들을 호령한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동국가들, 인도차이나 반도국들을 포함한 아시아국가들의 경우가 비슷하다.하지만 법은 무한하지만 독재자는 유한하다. 현재까지 발굴된 가장 오래된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부터 시작해 아직까지 법은 전세계 모든 나라에 존재한다. 역사상 수많은 독재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독재기간이 40년을 넘긴 경우가 흔치 않다. 법위에 존재하려는 그 자체가 모순이며 국가 부정의 자세이다. 하지만 독재국가가 아닌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미국에서 법을 무시하고 법 위에 군림하려는 그런 형태와 그런 행위에 맞장구치고 지지의 환호를 내지르는 지지자들의 모습은 너무도 쌩뚱맞고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2023년 8월 7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