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에 관심을 갖게 된지 어언 20년... (제대로 배운건 아니고 잡지식 익히기 수준으로만)
제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중국 지역중에는 바로 천년수도 장안과 그 주변지역인 관중입니다. 춘추전국시대를 마무리한 진나라 영역이기도 하죠.
이 지역은 사방이 험준한 산맥과 초원, 그리고 함곡관으로 막혀있어 방어에 유리하고 그 사이에 있는 땅은 비옥한 농경지 덕분에 생산량이 타지역을 압도했다고 합니다.
수년전 저는 이 게시판에 이런 질문을 남겼는데요.
전란과 기근으로 난장판이 됐던 관중지역의 생산력으로 황제가 된 한고조 시대로부터 400년이 지난 삼국지 시대에는 왜 척박하고 오랑캐땅 비스무리 하게 취급을 당했는지 말이죠.
많은 분들이 좋은 댓글 달아주셔서 유익한 시간이 되었지요.
오랜 농경으로 인해 토양에 염화현상이 심해지고 기후변화로 인해 척박한 땅이 되었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게 삼국시대 이후에 또다시 400년 가까운 대혼돈 카오스 시기인 오호십육국 시대가 열리는데 이 시기를 들여다 보니 여전히 관중지역을 먹었던 국가가 국력이 우위에 있더라구요.
조위처럼 관중+중원 먹고 압도적인게 아니라 관중+(가끔 익주)를 차지한 세력이 관동+하북 세력을 밀어내고 양견이 수나라로 재통일 했고 후에 당나라 200년 넘게 장안을 도읍으로 삼았는데 분명 관중지역은 생산력이 떡락했음에도 국력을 유지시킬 무언가가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대체 그것은 무엇일까요?
첫댓글 오래써서 생산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오랫동안 구축된 인프라 자체는 강력하니까요. 삼국지 시절에도 삼보의 난으로 인구랑 인프라가 박살나니 똥땅 된거지 위가 주워먹고 재편하니 다시 든든한 배후지로 작동했지요.
제갈승상이 그토록 따고 싶었던 배후지 ㅠ
인프라라고 하면 잘 정비된 농수로 같은건가요? 척박해도 인프라가 좋으면 생산력은 그럭저럭 나오나보네요.
당나라가 멸망하고 5대10국 시절 더이상 장안은 수도로서 기능을 하기 어려우니 동쪽의 개봉으로 천도했다고 해서 삼국시대 이후 당나라시기까지 뭐로 버텼는지가 궁금했거든요.
어차피 도시(특히 수도)는 주변 인근 지역 생산력으로만 버티는게 아니라 운송망을 통한 외부 물자로 버티게 됩니다(ex 북경 대운하, 한양 조운선). 도로망이나, 타 지역과의 인적 네트워크 등등이 여전히 살아 있었으니 장안 or 낙양이 수도로 기능을 한 것이라 볼 수 있죠.
육로, 수로 등 교통망 같은 인프라도 무시못하겠네요 ㅎㅎㅎ
관중이라는 이름의 가치가 크고 관중의 생산량이 줄었다고 해도 같은 화북 황하이북 파촉 화남에서 올라는 오는 교통은 그대로였습니다. 북조北朝의 경제적 기반은 사실 관중이 아닌 황하 이북 업땅이 중심였습니다. 북주北周가 북제北齊의 혼란을 틈타 화북을 통일한 힘이 수당의 힘이 되었죠 당나라시대만 해도 관중의 생산량은 급격히 하락 했습니다. 단지 황하와 위수의 수로가 발달하고 대운하로 강남의 곡물을 화북으로 옴겨 온 것입니다. 당이 망하고 오대시대를 통일한 송이 장안을 포기하고 개봉이라는 대운하 가까운 곳에 수도를 정한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송나라 이후 장안은 그 가치가 계속 하락해 이후 역대 왕조의 수도가 되지 못한 이유이죠 다만 장안이라 이름의 값은 분명 존재하기에 송나라까지 수도는 변량(개봉)이라고 해도 장안을 경조부京兆府이라는 특별주 처럼 대접한 것도 오랜 기간 진 한 당의 고도이자 정통 수도라 그런 것입니다.
장안의 상징성은 송나라 시대에도 여전히 강력했나보군요